5/29/2009

거저 받은 것들


글을 썼다 지웠다 하며 두어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엇인가 거저 받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기분 좋게 받았던 것들을 떠올리며 글을 쓰다 보니 엄청 많습니다.
먹다 남은 음식, 김치 한 병, 행사 기념 셔츠, 화장품 샘플, 향수, 반가운 눈 인사, 격려하는 따뜻한 말 한 마디, 여러 가지 모양의 친절,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치인의 삶의 흔적…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예수님의 진한 사랑.
오늘 안으로 글을 정리할 시간이 모자랄 정도입니다.

진작 알았지만 한 줄 한 줄 그 내용을 적다 보니 받은 것에 비해 나눈 것이 너무 없었습니다.
창피해서 다 지웠습니다.

무엇보다 값없이 받은 그 모든 것들이 관심과 사랑의 표현인 것을 느낄 때, 제대로 나누고 살지 못함이 더욱 부끄러워집니다.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나눠주신 그 사랑이 더욱 빛을 발하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너희가 …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룻1:8b)

5/22/2009

답답한 일


“으악~”
정말 왜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는지 모르겠습니다.

바깥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들르는 곳이 바로 우편함이 있는 곳입니다.
어느 때는 열어보면 텅 비어 있어서 멋쩍게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느 때는 광고지만 어수선하게 있을 때가 있는데 그래도 뭔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고마워 왠만하면 우편함 옆에 놓여있는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들고 옵니다.
어느 때는 한 두 통의 청구서들이 조용히 놓여 있습니다.

‘이 요금을 낸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나‘ 하면서 우리 우편물이 맞는지 주소나 이름을 확인하고 가져옵니다.
청구서는 거의 공과금과 관련된 것으로 생활에 필요한 전기, 수도, 가스, 그리고 인터넷 같은 것을 잘 사용했으니 사용한 만큼 청구서가 요구하는 대로 날짜를 지켜 요금을 지불하면 그만입니다.

여러 개의 청구서는 저마다 지불해야 하는 날짜가 다릅니다.
청구서가 오면 잘 보이는 곳에 놔두고 잊지 않고 지불을 합니다.
연체료를 내는 것은 너무 아깝기 때문에 정해진 날짜보다 훨씬 앞서서 계산을 합니다.

그런데 두어 달 전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청구서만 있으면 제 때에 잘 처리를 하는데 청구서가 오지 않은 것 까지는 확인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지난 달 전기요금 청구서를 받고 보니 두 달치가 청구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계부를 찾아보니 수도요금도 밀려있었습니다.
수도요금은 지난 해에 석 달치가 한꺼번에 오는 바람에 물 관리하는 곳과 이메일을 주고 받은 적이 있습니다.
청구서를 받고도 요금을 내지 않았다면 제 잘못이지만 청구서를 보내지 않은 그 회사의 잘못으로 연체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 부당하게 여겨졌습니다.

이메일을 통해 “난 지금까지 요금을 제 때에 잘 냈으며 연체료를 내고 싶지 않으니 청구서를 잘 보내달라 그리고 난 분명히 청구서를 받지 못했으니 연체료를 내지 않겠다” 했습니다.
그러나 연체료를 포함해 백 몇 십불의 요금을 다음 날로 보냈습니다.
제가 청구서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하하하

그런데 지난 달에는 수도요금 회사가 제대로 걸렸습니다.
지난 해와 똑같은 상황에서 이메일을 보냈더니 답장이 오길 청구서가 되돌아 왔으니 우리 지역을 관할하는 우체국에서 확인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청구서를 받지 못한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우체국에 가서 어찌된 것인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소포 하나 붙이는 것도 겨우 겨우 하는 제가 어떻게 따져 묻는 일을 하겠어요?
어느 날 밀알 엄마들과 얘기하다가 답답한 일이 있다며 푸념을 했더니 어느 분이 기꺼이 도와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시간을 기꺼이 내셔서 우체국에 함께 가주셨습니다.
수도요금 회사와 주고 받은 이메일 너 댓장을 프린트해서 우리가 분명히 그 주소에서 살고 있는데 반송시킨 증거물을 가지고 갔습니다.
지역 우체국에서는 우편물 배송하는 곳으로, 배송하는 곳에서는 배송 관리 책임자가 있는 또 다른 우체국으로 가보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책임자는 만나지도 못했고 겨우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우리 집 우편물을 배달하는 사람과 연락해 보라는 말만 듣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어찌 되었을까요?
우편배달부는 그런 일이 없답니다.
……
지난 달 수도요금도 연체료와 더불어 요금을 지불했습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의 약속이 깨어지는 상황이 너무 싫습니다.
그리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해 제대로 항의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답답합니다.

그 일을 계속 마음에 담고 있으면 속병이 생길 것 같아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습니다.
이메일로 청구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신청을 해놓았고 각 회사의 홈페이지를 통해 청구서를 볼 수 있는 것은 별수 없이 due date 전에 확인해서 온라인 뱅킹으로 처리하기로요.

이번 달 수도요금 청구서는 여전히 오지 않았습니다.
온라인으로 청구서를 확인해보니 service location은 우리 집 주소로 되어 있는데 mailing address는 캘리포니아로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회사에 그 사실을 알렸더니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Please contact your local post office to see why they are returning your mails back to us so that this matter can be resolved altogether.” 라고 답장이 왔습니다.

어쨌든 주소가 잘못되어 있는 것을 바로 잡았다는 것과 다음 달부터는 제대로 청구서를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이것이 이번 주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인터넷과 관련된 한 장의 청구서를 받았는데 지난 달이 연체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받은 청구서는 버리지 않고 다 모아놓습니다.
결혼하면서 지금까지 가계부를 적으면서 영수증을 모아놓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달 청구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청구된 금액을 오늘 당장(!) 온라인 뱅킹으로 지불했습니다.
뭐가 어디서 어긋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언제쯤 알 수 있을지….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시편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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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유스 모임을 갔다 오는 강윤이와 남편이 들어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합니다.
무지 서글픕니다.
좀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습니다.

5/15/2009

하늘 나라로 한 장애우를 떠나보내며


어제 서영진의 입관 예배에 갔었습니다.

영진이는 아틀란타 밀알선교단에서 “알게 된 아이”입니다.
영진이를 알았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아는 것이 별로 없고 따뜻하게 안아본 적도 없는 아이입니다.
제가 아이라고 했지만 영진이는 서른 두 살의 숙녀입니다.

그 영진이가 엊그제 하늘 나라로 갔습니다.

언젠가부터 영진이가 몸이 더욱 약해지면서 직장에도 나가지 못하고 그러더니 지난 4월 10일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악성 빈혈이라면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영진이가 진단을 받은 그 병원에 며칠 입원해 있는 동안 보러 갔었습니다.
그 때는 영진이가 의료 기구와 약의 도움을 받아서 그런지 그렇게 아파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깐 영진이의 병실에 머무르는 동안 다른 친구들의 격려 편지도 읽어 주고, 찬양도 불러 주고, 어떤 친구는 춤도 춰주고…
그리고 병실을 나오면서 손을 마주잡아 보았습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아프지 않고 평안하길 바라는 마음을 실어 영진의 손을 꼬옥 잡았더랬습니다.

그 뒤로 영진이는 건강 상태에 따라 병원, 집, 그리고 호스피스를 오가면서 한 달여를 보내는 동안 밀알 가족들, 밀알 목사님 부부와 몇 분은 자주 영진이를 찾아가 살폈습니다.
영진이가 있는 곳을 지나갈 적마다 정말 자주 들러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가진 관심과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영진이를 가까이 알던 이들의 사랑을 그렇게 조금 더 받고 영진이는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영진이의 입관 예배를 드리기 위해 갔더니 정말 많은 조문객이 장례식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누군지 다 모르겠지만 대부분이 영진이와 가족이 다니던 교회 교우들과 밀알 가족들 같았습니다.
그 동안 잘 보지 못했던 장애우 부모님들도 여러분 눈에 띄었습니다.
밝지 않은 얼굴 표정들로 봐서 남의 일 같이 여겨지지 않는 듯 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예쁘게 화장한 영진이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며 하나님 품에서 편안히 쉬길 빌었습니다.
예배실을 빠져 나오자 장애우 엄마들이 몇 분 계셨습니다.
피곤해 보이기도 하고, 덤덤한 척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서글퍼하기도 하면서 말이죠.

영진이는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 아이도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개인차가 있다지만 자꾸 가늠해보게 됩니다.
제 아이와 같이 살 수 있는 날들이 20년, 30년….
‘하늘 나라 갔는데‘ 하면서도 제 아이를 생각해 보면 그다지 편안한 감정이 되질 않습니다.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가요?
기독교인으로서 내세관이 확고하지 않아서 그런가요?
마음에 한(恨)이 많아 그런가요?

오늘도 새 날을 주시고 호흡하며 살게 하심이 은혜요 감사뿐인데,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상상해 볼 때, 제 마음 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5:24-25)

5/08/2009

어머니 날 꽃을 보며


참으로 바쁜 한 주를 보냈습니다.
“바쁘다”는 말이 저하고는 잘 어울리지 않는 말인데 이번 주를 돌아보면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일터에서도 바빴고, 집에 돌아와 강산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발 치료 하러 갔다 오고, 그때부터 한국학교 학기 마지막 준비인 상장, 학습평가서, 그리고 아이들에게 나눠줄 작은 선물들을 만들면서 저녁 준비해서 먹고요.
오늘이 아무래도 바쁠 것 같아 내일 한국학교에 필요한 준비물을 이미 다 준비를 해 두었는데도 하루가 뚝딱 가버렸습니다.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을까 싶은 일들을 한 가지 한 가지 마무리할 때마다 “감사합니다”가 저절로 나옵니다.--!

휘몰아치듯 바쁜 하루였지만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오늘이 “어버이의 날” 입니다.
가끔은 어버이의 날에도 부모님들과 동생들 가족이 모두 모여 저녁을 먹기도 하고 작은 선물이라도 나누고 했는데 올해는 어떻게 보내셨을까 “살짝” 궁금합니다.

엄청 궁금해 하지 않고 조금만 궁금해 하는 것은 이곳에서 제대로 섬겨 드리지도 못하거니와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길 바라는 제 멋대로의 마음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다음 주 월요일쯤 되어 전화 드릴 때 어버이 날은 어떻게 보내셨느냐 여쭤보는 정도로 지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래도 되는지…

여기는 이번 주일이 어머니의 날입니다.
어머니에게 선물도 많이 하고 가족끼리 식사도 하는 날로 지내는 것 같습니다.
어떤 선물이 좋을지 텔레비전에서 광고도 제법 많이 나옵니다.
한국에서는 용돈 받는 것을 부모님이 제일 좋아하신다는 앙케이트 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여기는 보석, 향수, 옷 광고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곳은 비단 어머니의 날 뿐만 아니라 명절이나 공휴일에는 멀리 떨어져 지내는 가족이라도 더욱 뭉치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날들에 여행을 가더라도 가족끼리 같이 가고 말이죠.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왜 미국의 이혼율이 세계 1위인지…’
이그~, 쓸 데 없는 생각!


며칠 전에 강산이가 학교에 갔다 오면서 화분을 하나 갔고 왔습니다.
이거 뭐 잘못 가져온 것은 아닌가 싶어 슬슬 구슬리며 물어보았습니다.
“강산아, 이 화분 뭐야?”
“코스코에서~ 게미지 선생님하고~ 샀어.”
“어, 산거야? 게미지 선생님 하고? 언제? 왜?”
“…….”

강산이는 이층으로 올라가 책가방을 내려 놓고 옷을 갈아 입고 내려옵니다.
“자!”
절반으로 접은 초록색 도화지를 살짝 제 옆에 놓습니다.
펼쳐보니 어머니 날 카드를 만들어 온 것입니다.
그제서야 그 큰 화분이 어머니 날 선물인 것을 알았습니다.
저에게 선물하기 위해 꽃을 고른 사람이 강산이인지 게미지 선생님인지 궁금했지만 어쨌든 저에게 온 선물인 듯하여 기분이 좋았습니다.

화분을 현관문 앞에 햇빛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아 주고 꽃이 더욱 활짝 피라고 물을 주면서 저는 마음으로 이 화분을 한국에 계신 어머니들께 보내드렸습니다.
어머님, 엄마, 어머니, 그리고 막내 동생댁의 어머니,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라고 기도하면서요.

보이지 않는 마음뿐이지만 여기 올린 사진 가득 제 마음을 담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들 사랑합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찌어다 /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 /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시100:1-5)

5/01/2009

오늘은


요즘 자동차를 운전할 때마다 CD를 틀어놓습니다.
어느 영어 회화 책과 함께 있는 CD입니다.
같은 CD 한 장을 거의 2개월 넘게 들은 것 같습니다.
운전하고 다니는 길이 집, 일터, 교회와 마트 정도이니 운전하는 시간이 길지 않아 CD 플레이어에 그냥 놔둬보았습니다.
이 CD를 8개월 전에 사서 들었을 때는 영 귀에 들어오지 않고 시끄럽게만 들리더니 요즘은 들을만 합니다.
하지만 들을 때는 “아 요럴 때 이렇게 써먹으면 되겠다” 하면서도 잘 외워지지도 않고 활용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집을 나서면서 그 CD를 빼고 CCM CD를 집어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이 부르신 찬양 CD인데 기분이 마땅찮을 때 들으면 위로가 되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주님의 손 날 일으켜 주시고 풍랑 위를 나 걷게 하시네
주 어깨에 기대어 있으니 이전보다 더 강하게 되리~”

오늘 구름이 많이 낀 날씨라 기분이 가라앉았나?
“월남 국수 먹고 싶지 않아?” 하며 남편이 전화를 했습니다.
남편은 국수 종류의 음식을 좋아하는데 처음에 그 국수를 먹었을 때는 영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또 먹고 싶지 않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오늘처럼 흐린 날은 월남 국수가 먹고 싶어진답니다.

늦은 밤인 지금 밖에서 천둥 소리가 연이어 들립니다.
감각이 저보다 예민한 남편의 미각이 들어 맞은 것 같습니다.

제 노트북을 요즘 포맷(format: 틀 잡기, 형식에 따라 배열하다) 하고 있습니다.
한 달 전쯤부터 없던 디렉토리(directory)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맘에 들지 않는 작동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노트북에 문제기 생기기 시작한 것은 남편이 뭘 더 좋게 해준다고 만지다가 그런 것 같은데 본인은 한사코 아니라고 합니다.
남편은 노트북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자 뜯고 어쩌고 하다가 저장해 놓은 자료들 가운데 일부가 없어졌고 결국은 모든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해 포맷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저보다 컴퓨터에 대해서 훨씬 더 잘 알고 있으니 처분만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저희 가족의 삶도 포맷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삶의 내용들을 새로운 형식에 맞추어 배열하고, 그래서 실행 키(key)를 누르면 적절한 과정을 거쳐 창조적인 내용으로 끄집어 내올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남편은 사역에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저는 일터에서요.

언제쯤이면 “처음, 시작, 포맷…” 이런 말을 쓰지 않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제 스스로 그런 말들 하는 것이 질릴 때가 오겠죠?

이곳에서 새로이 경험하는 만남과 헤어짐, 잉태와 죽음, 사귐과 외로움, 협력과 경쟁…이 잘 정리되고 저장되고 처리되어 아름답고 유익한 결과물로 출력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오늘 밤 비가 시원스럽게 내려주고, 낡은 노트북이 고쳐지면 꿀꿀한 기분이 한결 나아지겠지요?
내일은 어떤 CD에 손이 갈려나...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3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