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올 때 공항 면세점에서 한국 화장품 몇 가지를 샀다. 요즘 많은 한국 여성들이 얼굴 피부가 촉촉해 보이기 위해 사용한다는 미스트 제품과 쿠션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메이크업 제품이다. 사용해보진 않았지만 믿음이 가는 제품들이라 구입한 것만으로도 얼마나 마음이 뿌듯하던지……. 함께
있는 아이들은 화장품에 관심도 없을 텐데 나 혼자만 기분이 살짝 들떴다. 그리고 나서 우리가 탈 비행기가 있는 게이트를 찾아 가는데 면세점에서 산
물건값의 합계가 얼마 이상이면 사은품을 받을 수 있다며 예쁜 여성 두 명이 안내를 해 주었다. 게다가
사은품까지!
그 이름을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판에
핀들이 여기 저기 꽂혀 있어서 위에서 공을 굴려 넣으면 핀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 나와 번호가 적힌 구멍으로 공이 들어가는 놀이판이 그들 앞에 있었다. 먼저 온 사람이 하는 것을 보아하니 공만 굴려 넣으면 되고 주는 사은품을 받아가면 그뿐이었다. 앞사람은 물 티슈가 당첨 됐다. 안내원이 같이 좋아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쓸 데가 많은 물 티슈네요.”
물 티슈, 그거 괜찮은데, 생각하며 영수증을 보여주니 공 한 개를 내주었다. 소비한 금액이
클수록 공을 여러 개 주는 모양이었다. 강산이에게 놀이판 구멍에 공을 넣을 수 있는 기회를 양보(!)했다. 데굴데굴, 툭툭
공은 굴러 떨어졌다. 안내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고무 재질로 만들어진 팔찌 하나를 집어 쑥
내밀었다. 얼핏 보니 팔찌 위에 그려진 비행기, 화장실, 환전소 따위를 나타내는 듯한 아이콘들이 보였다. 내 껀 아니다 싶어
강산이 손목을 잡아 끌어 안내원에게 내주었다. 우리 표정이 심드렁해 보였는지 안내원은 팔찌를 아이 손목에
끼워주고는 간단히 설명을 해 주었다.
“이렇게 손가락으로 아이콘을 가리키며 승무원에게
보여주시면 됩니다.”
설명을 듣고 나니 더 재미가 없었다. 공항이나
비행기를 이용할 때 도움이 필요하면 팔찌를 내밀고 요구사항을 말없이 바보처럼 손가락으로 가리키라는 말이었다. 이런걸
사람들이 받기 원할까? 우리 나라 비행기를 타는데 이게 왜 필요하지?
우리 한국말 다 잘하는데……. 이거 괜히 했다, 에 생각이 이르고 있는데 강산이가 내 가방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팔찌를 빼서 넣을 곳을 찾는 것이었다. 그래, 너도 별로구나.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시간이 얼마큼 흘렀는지 강산이는 좌석 밑에 내려놓은 내
가방을 뒤적거렸다. 뭘 찾느냐고 했더니 이 녀석이 말은 안 하고 손가락으로 자기 손목을 동글게 말아
쥐는 것이었다. 내 가방에서 그런 몸짓과 관련된 것을 찾고 있었다면 공항에서 담아놓은 팔찌를 찾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심심한가 싶어 내주었다. 강산이는 팔찌를
손목에 끼워 넣더니 아이콘 하나를 가리켰다. 여성과 남성이 그려져 있는 표시, 화장실 표시였다.
“그래서 뭐?”
“형, 화장실
가고 싶다는 거 같은데.”
기가 막힌다. 말로 하면 될 것을 굳이
팔찌를 찾아 끼고 그 짓을 한다. 강산이가 사은품 주던 안내원의 설명을 제대로 알아들은 것이었다. 참 재미있는 것은 그때 마침 승무원이 강산이의 어줍잖은 행동을 보아주려는 듯 우리 좌석 가까이로 오고 있었다. 나는 그 승무원이 빠른 걸음으로 우리 좌석에서 멀어져 가길 바랐다. 하지만
강산이는 잽싸게 일어서더니(지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에는 이렇다) 좌석들
사이에 있는 복도로 나가 승무원을 막아 섰다. 제발, 강산아~그냥 비켜서 가. 강산이는 해맑게 웃으며 승무원에게 팔찌를 내보이며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가리켰다. 둘째 아들의 말에 의하면, 승무원은
바로 뒤에 있는 화장실이 사용중인 것을 확인하고 비행기 제일 뒤쪽에 있는 화장실을 강산이에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강산이는 사은품 팔찌를 제대로 사용한 것이다..
우리가 받은 팔찌는 어쩌다 한 번 일지라도 쓸 데가 있는 사은품이었다. 없어도 아무 불편함은 없었겠지만 한 사람에게 비행시간 동안의 지루함을 아주 아주 잠깐씩 달래주었다. 강산이는 승무원이 있던 없던 그 팔지를 끼고 화장실을 서너 번 다녀왔으니 말이다. 혹시 자신의 모국어나 학습을 통해 배운 언어를 사용할 수 없는 곳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에게 혹시 이런 팔찌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꼭 필요하거나 값진 것은 아니지만 있으면 나름 쓸모가 있는 것이 사은품인가 보다.
사은품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목회자의 아내를 두고 1+1(buy 1 get 1) 이라고 한다는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 1+1은 물건 하나를 사면
똑 같은 또는 동등한 값어치의 것을 하나 더 주는 판매 방법이다. 1+1이라고 해도 판매자는 어떤 식으로든
받을 가격을 다 받을 것이라는 뚱딴지 같은 소견을 가지고 있다 해도 소비자에게 1+1 상품은 매력적이다. 하나를 살 수 있는 가격에 두 개를 얻게 되니 말이다. 그러니까
목사가 목회를 할 때 자신의 일을 따로 갖고 있지 않은 그의 아내는 남편 목사에게 거저 딸려온 덤이라는 것이다.
목사의 아내는 그들이 부부로 살아가는 한 다른 교회로 옮겨갈 위험이 없는 고정된 봉사자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누가 목회자의 아내를 덤으로 생각한단 말인가, 교인들이? 아내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교인이라면 나는 그를 안타까이 여기며 자신과 이웃의 삶을 좀 더 사랑스런 눈길로 살펴봐주길 바랄 것이다. 한편 목회자의 아내가 자신의 삶을 남편 목사에 얹혀진 동등한 가치를 가진 덤으로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면 거기엔 덧붙일 말이 없다. 그것도
하나의 아름다운 인생이 분명하므로.
사실 이 글을 쓰다가 공항에서 받은 팔찌를 사진으로
찍고 싶어서 찾아봤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아 답답했다. 관심도 없다가 필요하다는
마음이 생기니 팔찌가 어서 눈앞에 뿅 하고 나타났으면 했다. 식구들의 증언을 토대로 자질구레한 것을
모아놓은 서랍과 바구니들을 이틀 동안 뒤졌건만 보이지 않았다. 찾아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사라지지를
않았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생각 없이 세면대 아래 서랍을 잡아당겼다. 그곳에는 머리 말리는 드라이어가 들어있어서 매일 열어보는 서랍이다. 드라이어를
쓸 것도 아닌데 정말 그냥 서랍을 앞으로 쭉 끌어냈다. 그제도 어제도 안 보이던 팔찌가 거기 있었다(이럴 때 “감사”가 절로
나오기도 한다. 이게 뭐라고). 하찮은 것일지라도 필요할
때 어디에 두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아 며칠을 두고 헤매다가 찾아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 흐뭇함을 알 것이다.
사은품이든 +1에
해당하는 상품이든 필요가 있어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물며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가진 인생이며 꼭 필요한
곳에 쓰이도록 최고의 전문가가 철저한 계획 가운데 만든 인생인데, +1 같은 인생이면 어떤가. 난
본 상품과 동등한 가치를 가지지도 않았고 받는 사람에게 꼭 필요할지 어떨지도 모르는 사은품 같은 인생만 돼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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