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4/2009

아미시 자매? 아미시 자매!



지난 주 블로그에 시편23편을 올린 녀석은 제 둘째 아들입니다.
며칠 집을 떠나있어야 했기에 부탁하고 갔는데, 나름대로 그림도 찾아 붙이고 지 사진도 넣어 해놨네요.
나중에 부모님께 안부 전화 드렸더니 강윤이가 할머니께 시편 23편에 어울리는 사진은 어떤 거냐,고 물어봤답니다.
‘앙증맞은 녀석.’

요즘 부쩍 부쩍 자라서 저보다 훨씬 키가 커지고 사춘기라고 버럭버럭 소리 지르며 대들지만(?), 엄마가 부탁한 것을 꼼꼼하게 처리해 놓는 이쁜 막내입니다.
지금도 제 옆을 지나가면서 이 글을 살짝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쓰랍니다.
“제가 부탁을 하면 언제나 NO 라고 말하지만 나중에는 꼼꼼하게 해놓는 착하고 훌륭한 아들입니다. 이렇게 써야지!”
“하하하”
“왜? 맞는 말이잖아!” 아들이 쑥스럽게 말하고는 사라집니다.
일에 대한 결과에 대해서는 맞는 말이긴 한데, 아직 “훌륭한” 아들 같지는 않습니다. ^^!
“축복한다, 아들. 하나님 앞에, 사람들 앞에 훌륭한 사람 되길.”

집을 비웠던 까닭은 미주 밀알 선교단 가운데 동부지역 연합으로 해마다 열리는 <사랑의 캠프>에 강산이와 함께 참석했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펜실베이니아 케티즈버그(Gettysburg, Pennsylvania)에서 모였습니다.
캠프에는 밀알 선교단의 간사 자격이라기 보다는 강산이 엄마로 참여하여 일정에 따라 은혜도 받고 다운타운도 잠깐 나가 보고, 좋은 호텔에서 잘 먹고 잘 자고 편하게 있다 왔습니다.


캠프가 끝나고 함께 캠프에 참여했던 아틀란타 밀알 가족들은 아미시 마을(Amish Village)을 구경하고 왔습니다.
사실 캠프장에 일찍 도착하여 Hersh Chocolate World도 구경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남편의 말처럼 “미국 생활을 당신이 제일 잘 즐기는 것 같아”가 맞을 지도 모릅니다.
휴가 갔다 와서 또 캠프 다녀 오고…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어디를 다니거나 맛있는 것을 먹어보거나 더 많은 경험을 하는 사람은 물론 저보다 남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금도 목회의 경험을 꾸준히 쌓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전문성과 경험과 깊어져가는 영성을 바탕으로 목회자로서의 길을 갈 것입니다.
저는 한국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이 목회와 가정에 도움이 되는 이것 저것에 기웃거리고 있구요.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여 공동 목회를 했다고는 하나… 하나님은 아실려나…
지금 여기서 새롭게 뭘 시작하려고 하니 두렵고 자신이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렇지 않았는데… ‘
미국 생활이 길어지기 전에 제 자신을 위하여 뭔가 결단을 해야 할 일들이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건 그렇고 아미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은근히 기대가 되었습니다.
주워들은 말은 있어서 신앙 결단 아래 소박하고 자연 친화적이고 성경에 있는 초대교회처럼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는 정도의 이해를 가지고 갔습니다.
집에 <아미시 그레이스>,(도널드 크레이빌과 2사람이 씀, 김재일 옮김, 뉴스앤조이) 책이 있길래 혹시 시간이 되면 조금이라도 훑어 보려고 여행 가방에 넣어가기는 했는데 들여다 보지 못했습니다.


찾아간 아미시 마을 입구는 선물 가게를 통과해서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선물 가게 한쪽에 난 문을 지나면 작은 방이 나오는데, 거기에 등받이 없는 긴 의자가 여러 개 놓여 있고, 의자에 앉아서 아미시 한 사람의 설명을 듣습니다.
그리고는 가재 도구들이 잘 정리 되어있는 작은 방 서넛을 돌며 아미시 아저씨의 설명과 더불어 아미시의 사는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입니다.
아미시가 사는 실제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갔던 곳은 그랬습니다.


선물 가게를 포함하여 한 가정이 살만한 건물을 나서면, 또 다른 선물 가게, 대장간, 학교 전시관(?)과 넓은 마당이 있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다였습니다.

하늘은 맑고 구름도 예쁘고 서늘한 바람까지 불어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 마당에서 사진을 찍으며 웃어보았습니다.

마당에 놓여 있는 마차에 올라가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 두어 사람이 저보고 아미시 같답니다.
저는 아미시 내용도 모르면서 기분이 괜찮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책을 읽어보니 아미시 문화의 핵심 가치는 공동체입니다.
그들에게는 자기부정, 복종, 수용, 그리고 겸손이 핵심 단어이고, 말보다는 행실로 자기를 표현하며, 고요하고 조심하면서 겸손으로 자신을 감싸는 것이 그들의 영성이라고 합니다.
이런 의미까지는 아니어도 이런 느낌으로 저를 아미시 자매라 하셨는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사는 아미시를 보면서, 미국 생활에 어리버리하다 그런 거지요? --!

<아미시 그레이스>를 읽으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용서를 어떻게 실천하고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용서를 한 것도 아니고 하지 않은 것도 아닌, 다시 말하면 용서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옅어진 그래서 여전히 남아 있는 응어리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결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날 그 문제를 가지고 기도도 해보고 코칭도 받아 보았지만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들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용서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용서는 결단이고, 용서하는 사람은 그 문제에 대해서 자유해진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런 걸 안다 해도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잖아요.
믿음 생활이 그렇듯이.

으으으~~~
“용서” 라는 엄청난 무게에 제가 정신이 없나 봅니다.
횡설수설.

자기 가족을 죽인 살인자에게도 바로 용서한다고 말할 수 있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아미시에게는 일상적인 용서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극단적인 용서로 보여지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한번 저도 해보려고 합니다.
아미시는 성경에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까 말씀에 따라 하는 것뿐이랍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태복음18:35)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주기도문)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로새서3:13)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로마서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