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14의 게시물 표시

서설(瑞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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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이틀 동안 집에서 쉬다가 학교에 갔다. 등교도 보통 때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했다. 휴일도 아닌데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간 것은 그제 밤에 내린 눈과 낮은 기온 때문이다.

그저께 일기예보에서는 오후 늦게나 눈이 올 것이라고 했지만, 교육구에서는 아예 수업이 없는 것으로 전날 저녁에 이미 알려주었다. 교육구나 학교에서는 공지사항이 있으면 학부모에게 안내 전화를 한다. 궂은 날씨나 비상상황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을 경우는 학부모 전화, 교육구 홈페이지, 그리고 지역 TV나 라디오 방송 채널에서도 안내해준다.

그날 볼일은 오전 중에 마치고 오후가 되어서는 하늘을 살피며 눈이 오기만 기다렸다. 정말 이제나저제나 하는 마음으로 창 밖을 살폈다.

“곧 올 텐데, 뭘 그래?”

남편은 눈 오길 간절히 기다리는 내 모습을 보고 픽 웃는다. 나도 우습다. 한국에 있을 때는 겨울마다 보던 눈인데, 살아가는 환경이 바뀌니 눈 오는 걸 보는 것마저 귀하고 그립다.

저녁 8시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집 앞에 서있는 가로등 불빛을 휘감으며 힘차게 내렸다. 눈발이 굵어지고 잔디 위에 조금씩 쌓이기까지 한참을 지켜보았다. 눈을 기다리던 마음 같아서는 뒤뜰에 쌓이는 눈을 밤새 감상할 것 같았는데, 몸은 벌써 잠 자리에 들어가 있었다. 내일 아침에도 눈을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늘 청춘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낭만적인 감성을 위로하며 잠을 청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주도인 콜럼비아로 이사온 지 4년차에 이렇게 많은 눈을 보게 되다니 기분 좋은 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얼추 2인치(5cm)쯤 쌓여있다. 학교를 쉴 정도의 눈은 5년 전쯤에도 왔었나 보다. 우리 교회 어느 권사님은 이렇게 많은 눈은 20년 만이라고 하셨다. 이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눈 내린 풍경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새롭고 흥분된다. 여느 아침과는 달리 바깥이 더욱 환하다. 눈에서 나오는 하얀 색 때문이다. 구름 사이 사이로 비추이는 햇살에 반사된 눈빛이 반짝거린다. 화사하다.

온화한 기후를…

빛바래지 않는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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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에서는 날마다 말씀을 읽기 위하여 말씀묵상집 『기쁨의 언덕으로』를 사용하고 있다. 『기쁨의 언덕으로』는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발행되는 말씀묵상집이다. 사순절이나 대강절 같이 절기의 의미를 되새기는 말씀을 보게 되는 때를 제외하고는 새벽기도 시간에도 『기쁨의 언덕으로』에 나와 있는 말씀을 나눈다.
올해는 온 교우가 더 적극적으로 성경을 읽기 위하여 매주 성경문제지를 만들어 성경공부를 한다. 교우들은 그 문제지를 집으로 가져가 일주일 동안 성경을 읽고 문제에 답을 달아 온다. 그 성경 문제지의 내용도 『기쁨의 언덕으로』에서 제시되는 말씀을 따라가고 있다.
이번 주에 읽은 출애굽기 17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한 후 아말렉과 싸운 이야기가 나온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긴다. 그래서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아론과 훌이 붙들고 있었고, 여호수아는 용감히 싸워 아말렉을 무찌른다. 이 이야기를 읽다가 고등학교 체력장 때의 일이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3학년 가을쯤 대학 진학을 위한 체력장 평가가 있었다. 체력장 점수는 20점이 만점이었고 대입 시험인 학력고사에 반영되었다. 보통 체력을 가진 학생은 어려움 없이 만점을 얻을 수 있었기에, 학력고사에서 20점을 거저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대입 체력장 종목에는 윗몸 일으키기, 오래 매달리기, 멀리뛰기, 멀리 던지기, 100M 달리기, 그리고 800M(?) 오래 달리기가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종목들이 다 치러지고 오래 달리기가 체력장 평가의 마지막 종목이었다. 학급에서 사용하는 번호 순서대로 운동장 트랙을 따라 달렸다. 체육 선생님뿐 아니라 고 3 담임 선생님들도 나오셔서 체력장 결과를 기록하셨다. 대입 시험에서는 1, 2점이 당락을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적어도 체력장 점수에서는 인정을 넉넉히 베푸셨다.
내 순서가 되어 오래 달리기를 시작했다. 얼마큼 달렸을까?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다리는 몸에 붙어있기는 한 것인지 느껴지지 않고, 얼굴은…

발을 따뜻하게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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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大寒)이 소한(小寒) 집에 놀러 왔다가 얼어 죽는다, 고 하더니 올해도 소한이었던 지난 주 초부터 많이 춥다. 이상기온 때문에 세계 곳곳이 예년보다 더 많이 춥기도 하고 덥기도 한가 보다. 한겨울이라고 해도 한국의 초겨울 기온 정도를 유지하는 이곳도 기온이 영하로 자꾸 내려간다. 입동부터 소설, 대설, 동지, 소한, 그리고 대한이 24 절기 가운데 겨울에 해당하는 절기다. 겨울의 끄트머리 절기인 대한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그러고 나면 집 바깥을 산책하기에 부담이 없는 날씨가 되었으면 좋겠다.
난 제일 추운 절기인 소한에 태어나서 그런지 여름보다 겨울이 더 좋다. 더운 것보다 추운 것을 더 잘 견디기도 한다. 다만, 추워지면 발이 유난히 차가워져서 그건 별로 안 좋다. 몸이 활동하는 시간에는 발 시린 것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참을 만도 하다. 그런데 제일 참기 힘든 시간은 자려고 누웠을 때이다. 의식이 잠잠해지고 몸의 활동이 줄어드는 잠 자리에 들면 얼음장처럼 차가운 발에 신경이 온통 집중된다. 이불을 덮고 있어도 소용이 없다. 발바닥으로 한기가 몰려드는 느낌을 사라지게 못한다. 발에서 시작된 찬 기운은 점점 온몸으로 퍼져서 잠이 들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발을 손으로 비벼서 열을 내보기도 한다. 괜찮으려나 싶어 누워보면 여전히 발이 차다. 다시 일어나기 싫어 발끼리 부대껴보아도 한기가 가시지 않는다. 이쯤 되면 별 수 없다. 옆 사람의 체온을 이용해야 한다.
“발이 너~무 시려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쳇!”
인정을 구하는듯한 음색으로 신호를 먼저 보낸다. 그리고 싫다, 좋다 반응하기 전에 얼른 차가운 발을 옆에 누운 사람의 다리 밑으로 쏙 집어넣는다. 남편은 머리가 베개에만 닿으면 잠드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보다 먼저 잠들 때가 많다. 어렴풋이 잠든 남편은 번번히 당하는 일인데도 화들짝 놀란다. 나의 불쌍하고(!) 차가운 발을 차마 밀쳐내지는 못한다. 그렇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발은 어느새 따뜻해진다. 잠결에도 차가운 발을 참아주는 것이 고…

이것이 성도의 교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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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마지막 주일에는 처음 뵙는 몇 분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그 중 한 부부는 우리 교회 권사님 부부와 아주 오래 전에 이웃으로 사시던 분들이라고 했다. 다른 나라와 주에서 한참을 사시다가 콜럼비아로 다시 이사 오셨단다. 권사님과 나누던 정이 그리워서인지 우리 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하셨다. 미국 남편 분(다문화 가정을 소개할 때 이해하기 좋게 모국을 붙여 설명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나도 따라 해 본다)은 산소 호흡기를 착용하고 계셨다. 그래도 몸이 불편하시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밝고 쾌활하셨다. 한국에서 만났던, 지금은 하늘 나라에 있는 은비가 생각이 났다. 근육과 관련된 질병으로 누워만 있던 예쁜 아기, 그 아이도 산소 호흡기를 끼고 예배에 빠지지 않았었다. 몸은 아파도 예배를 지키려는 사람들…… 가슴 뭉클한 깨달음이 새로 오신 분들로부터 전해졌다.
또 다른 한 분도 타주에 사시던 집사님인데 미국 남편분의 직장을 따라 이곳으로 이사오신 분이다. 다문화 가정을 갖고 있는 집사님은 가족이 한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기를 원하셨다. 얼마 전 한국 음식점에서 우리 교회 어느 권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우리 교회에서 예배 드릴 때 동시통역이 가능하다는 정보를 귀담아 들으셨던 것 같다. 집사님의 남편은 평일에 우리 교회를 방문하여 외관을 둘러보고 놀이터가 잘 꾸며져 있어 맘에 드셨다고 한다. 아이들을 위하는 교회는 따뜻한 교회라고 판단하신 것 같다. 놀이기구가 작고 오래 되어 2 년 전인가 십시일반 헌금하여 새것으로 바꾸었다. 그것이 누군가의 마음을 끌어 교회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다니 신기했다. 놀이터에 우리 교회 아이들에 대한 교우들의 애정이 묻어 있었나……
이런저런 사연으로 처음 만나게 된 분들과 예배를 함께 드린 날은 한 해를 돌아보는 마지막 주일이기도 하고 한편, 새해를 새해답게 맞이하고자 하는 새로운 다짐을 하는 주일이기도 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예배를 드려서 그런지 목사님의 설교도 다른 때보다 더욱 힘차고 다부지게 들렸다. 창세기에 나오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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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무릉계곡으로 여행 갔을 때의 일이다. 단짝친구와 둘만의 여행이었다. 대학교에서 만난 우리는 방학이 시작되면 바로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둘 다 신학생이어서 각자 다니는 교회에서 주로 교육부를 맡아 일하고 있었으므로 여름성경학교나 수련회 또는 성탄절 준비로 바빠지기 전에 짧은 여행을 했다. 대학교3학년인지, 한 학년을 마친 겨울방학이 되었고 우리는 강원도 쪽으로 여행을 하기로 했다. 지금처럼 여행 정보가 넘쳐나는 시절이 아니어서 아마도 미용실에 머리 하러 가서 보게 되는 여성 잡지의 어느 한 구석에서 무릉계곡이라는 곳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싶다(친구야, 맞니?).
내 친구 E는 깡마른 체구에 가무잡잡한 피부와 작지만 깊이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 새파랗게 젊던 그 시절, E는 이러한 자신의 외모를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요즘 한국에서는 마른 사람이 미인이 되는 분위기다. 지난해 한국에서 여러 친구들을 만났을 때 우선, 겉모습에서 느껴지는 대로 서로 안부를 묻던 중 어느 친구가 E를 바라보았다.
“E야, 넌 여전하구나. 하나도 안 변했다.” “시대를 잘 만나서 어깨 펴고 산다.”
다들 공감하는 E의 대답에 한바탕 까르르 웃었던 기억이 난다. E는 대학 생활이 해를 더할수록 학교 안에서 인기가 많은 사람이 되었다. 착한 심성을 가진 데다가 친구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연극, 그림, 노래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대학이라는 공동체 생활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E와 절친이었던 나는 강의실과 도서관만 오고 가는 샌님 같았다고 할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친구들은 날 범생이(모범생을 낮춰 부르는 말)라고 불렀던 것 같다.
말라깽이와 범생이는 한 인격체로서 성숙해가는 과정 중이었고, 제한적이나마 세상에 대한 탐구와 모험심이 가득했다. 그래서 여행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나 별다른 준비물 없이 작은 배낭 하나만 짊어지고 둘만이 떠나는 어설픈 여행이 가능했다.
동해시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나자 한겨울 짧은 해는 이미 저문 상태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