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14의 게시물 표시

언제나 남는 것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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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는 가족과 함께 장거리 여행을 했다. 시카고 근처에 사는 몇몇 친구들을 만나고 오는 일정이었다. 이 여행이 실행되기를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빼고 자동차로만 열두세 시간이 걸리는 긴 여행을 아이들과 함께 해 보고 싶었고, 아직 미국 중북부를 가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그곳의 풍광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오래된 친구들이 있으니 기회만 되면 그들에게로 달려가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이 여행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기 전, 둘째 아이는 성탄절 즈음에 친구네 가족을 따라 스키장에 가도 되느냐고 했다. 우리 가족은 딱히 계획이 없었던 지라 아이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허락했었다. 아이는 방학이 가까워지자 스키장에서의 구체적인 일정을 점검하고 있었다. 스키장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는 홈페이지도 보여 주었다. 거기엔 스키복과 스키 장비를 빌리는데 드는 비용도 잘 정리되어 있었다. 아이는 맨몸으로 가서 모든 장비를 빌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빠르게 속셈을 해보니 그것들을 하루만 빌린다 해도 몇 백 달러가 필요했다. 이거 너무 비싸다, 했더니 안 되겠지, 라는 대답이 바로 이어서 나왔다. 렌트 비용을 미리 살펴본 눈치였다. 아이와 이런 짧은 대화가 오고 간 다음날 남편은 시카고 여행을 제안했다. 중북부를 여행할 기회가 바로 이때라고 판단되었나 보다.
가족 여행 계획이 친구와 스키장을 가지 못한 아이의 아쉬움을 얼마나 채워줬는지는 모르겠다. 남편은 친구들과 연락을 하여 적극적으로 일정을 잡았다. 남편의 그런 모습은 참으로 오래간만이었다. 방학 동안 심심해 할 아이들을 위해서도, 단순한 일상 속에 묻혀 있는 아내를 위해서도, 그리고 친구들이 몹시 그리운 자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여행이라 여겨졌는지 일을 진행하는 모습에 파드닥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 100세가 가까워 오시는 권사님께서 성탄주일이 되기 일주일 전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날마다 병문안을…

그 플러그(pl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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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감았다. 머리를 감고 나면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준비가 된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집안에서일을 하든, 사람을 만나거나 교회에 가는 일 따위로 외출을 하든 말이다. 머리를 감은 후에 급하게 집 밖을 나갈 일이 아니라면 헤어 드라이어를 쓰지 않고 젖은 머리가 자연스럽게 마르도록 나둔다. 헤어 드라이어에서 나오는 열기로부터 머리카락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이다.
헤어 드라이어의 열기를 때로 피했다 하더라도 또 다른 열로 머리 모양을 잡아주는 플랫 아이론(flat iron)을 사용해야 하는 단계가 남아 있다. 플랫 아이론은 직사각형 모양을 한 넙적한 판이 마주보고 달린 고데기 같은 도구이다. 머리카락에 남아 있는 물기가 마르는 동안 부스스해지고 이리저리 삐친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펴주는데 아주 쓸모 있는 도구이다. 이 플랫 아이론의 열이 머리카락을 더 손상시킬지도 모르지만 지난 몇 년 전부터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플랫 아이론은 미용실 원장님이 쓰던 것을 받아온 것이다. 원장님이 내 머리에 퍼머를 해주었는데 잘못되어 머리카락이 거의 다 타버렸었다. 뜨거운 압축기로 눌러놓은 것처럼 머리카락이 작은 지그재그 모양으로 구부려졌다. 그걸 만지면 바사삭 바스러질 것처럼 건조하고 거칠기가 이를 데 없었다. 머리를 묶지 않고 풀러 놓으면 가발을 쓴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머리를 삭발하기 전에는 해결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냥 괴상한 머리카락을 달고 그냥저냥 시간이 가서 머리카락이 자라는 대로 조금씩 잘라내며 상태가 나아지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머리카락 때문에 참담함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원장님은 미안한 마음에 다시 퍼머도 해주고(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자기가 쓰던 플랫 아이론과 고데기도 주었다. 그렇게 플랫 아이론은 머리카락을 일시적으로 진정시켜주는 도구로 나와 친해졌다.
얼마 전, 머리를 감고 다 마르도록 그냥 놔두었다. 하던 일이 마무리 되어 머리를 마저 정리하기 위해 플랫 아이론이 있는 화장실로 갔다. 플랫 아이론의 플러그를 찾아 …

새로운 설거지 짝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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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주일 점심 식사는 늘 푸짐하다. 반찬이 항상 열 가지가 넘는다. 와우! 후식도 떡과 빵이 늘 있다. 교인들이 각자 알아서 해 온 음식들이다. 대부분 한국 사람 입맛에 맞는 음식들이다. 각자 집에서 늘 해 먹던 음식이 아닌 다양한 것들을 먹는 즐거움이 있다. 다문화 가정의 미국 교인들도 한국 음식을 잘 드신다. 미국 남편과 사시는 교인들은 집에서 한국 음식을 요리할 기회가 아무래도 적다 보니, 그들 또한 주일 점심 식사에 대한 기대가 있는 듯하다. 예배를 드리며 영적인 갈망을 채우는 것만큼 음식에 대한 욕망을 맘껏 채우는 시간이다.
음식은 정해진 순서 없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사람이 알아서 준비하고,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는 당번을 정하여 돌아가면서 한다. 두 사람이 한 조다. 젊은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연세 드신 교인들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설거지에 동참하고 계신다.
나와도 한 조를 이룬 사람이 있었다. 그분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함께 설거지 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도 다른 교회로 가버리는 바람에 당번인 주일에 혼자 설거지를 했다. 물론 정말 혼자 한 것은 아니다. 언제나 다른 집사님들이 도와주셨다.
그런데 나에게 다시 설거지 짝꿍이 생겼다. 우리 교회에 나오신 지 얼마 안 된 분이다. 어느 집사님이 내 설거지 짝이 없는 걸 아시고 그분께 설거지를 권유하셨나 보다. 그 분은 흔쾌히 내 설거지 짝꿍이 되어 주셨다. 나도 좋아서 그분께 다가가 “저와 설거지 같이 하시는 거예요!” 했다. 그분은 “그래유~” 하면서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요청하셨다. 설거지 하자는데 뭘 이렇게 기뻐하시나 싶었다. 그분은 언제가 당번인지를 물어오셨다. 나는 11월 마지막 주쯤 될 거라고 알려드렸다. 주일에도 한 주 건너마다 직장에 나가셔야 하기 때문에 미리 계획을 짜두셔야 했다. 그 뒤에도 설거지하는 날짜를 계속 확인하셨다.
설거지 당번인 주일. “설거지 할까요?” 했더니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채 또 “그래유” 하셨다. 마음이 넉넉해 보이던 첫인상 그대로였다…

두 권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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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계신 두 권사님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기질도 다르고 각각 다니는 교회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꽤 많다.
우선, 70대의 여성분들로 삶이 곧 신앙생활 그 자체다. 하루의 시작과 끝은 기도이며, 일상 속에서도 예수님을 의지하는 마음은 그들의 태도나 언어에 배어 있다. 주일을 반드시 지키는 것은 물론이요(중병으로 수술을 해도 병원에 마련되어 있는 예배실에서 주일을 지킨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나 모임에 빠지지 않으신다. 헌금도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여 드린다.
두 분은 이웃과 나눌 수 있는 것들을 쌓아두는 법이 없다. 그러면 이웃들은 이 권사님들께 무엇인가를 다시 나눈다. 그들의 나눔은 계속 순환되기도 하고 혹은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 그걸로 만족하기도 한다. 권사님들은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살고 계신다.
개인적인 성품으로는 부지런하여 일을 미뤄두지 못하는 성격이시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당장 끝장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몸이 지치기도 하는데, 입술에 물집이 여러 개 생기면서 부르트는 모습도 비슷하셨다. 두 분 모두 일을 하시다가 지독한 감기 몸살에 걸리셨다. 몸살 치료하려고 병원에 가셨다가 14년, 12년 전에 대장암을 진단받기도 하셨다.
그때만 해도 대장암 수술이 큰 수술이어서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맡기겠노라, 그래도 살려주시면 신앙생활 더 잘 하겠노라 기도하시고 들어가셨다. 두 분의 수술은 잘 되었다. 그 뒤로 혹독한 항암치료를 견뎌내셨고 5년 동안 정기적으로 몸 상태를 살펴야 했다.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 살려두셨을 거라며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욱’ 이웃과 나누는 생활을 이어가고 계신다.
두 권사님은 감리교인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게 엄청 규칙쟁이다. 먼저 수술 받은 권사님은 입원했던 병실에서 만난 어느 환우로부터 야채 스프와 현미차에 대하여 소개를 받으셨다. 권사님은 퇴원하신 다음 야채 스프와 현미차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5년 이상을 만들어 드셨다. 뒤이어 같은 암에 걸린 다른 권사님은 친분이 깊던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