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될 만한 음식들


평범한 듯 보이지만 날씨가 무더워지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J 권사님이 만들어주시는 냉면과 오징어 튀김입니다. 두어 주 전 어느 집사님이 올 여름에는 냉면 안 해주냐는 귀여운 투정에 권사님은 흔쾌히 해주지, ! 하셨습니다. 성가대를 위한 회식이면서 교우들 누구나 함께 참석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권사님은 재료를 준비하시고, 냉면 육수를 내고, 고명으로 얹을 무와 오이를 무치시고, 오징어는 초벌 튀김을 해 오셨습니다. 30여 명이 먹고도 남을 양이니 여러 날 준비하셨을 것입니다. 주일 오후에 교우들이 모여 냉면을 삶아 고명을 얹어 내고, 이미 한 번 튀겨진 오징어를 다시 한 번 튀겨서 더욱 바삭바삭한 튀김이 되었습니다. 오징어를 살짝 데쳐서 튀기면 생오징어를 튀길 때보다 기름이 덜 튄다는 요리 팁도 얻었습니다. 냉면을 안 드시는 몇몇 교우들은 핫도그를 준비해서 나눠 드셨습니다. 하지만 오징어 튀김은 누구나 좋아해서 튀기기가 무섭게 게눈 감추듯 입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여름 끝자락, 한가한 주일 오후에 열린 조촐한 잔치 자리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한인들 사이에서는 권사님의 냉면이 맛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고 교우들이 이구동성으로 알려주었습니다. 이곳은 미국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여름이 길고 무덥습니다. 그렇다 보니 여름이 되면 권사님만이 낼 수 있는 맛을 가진 시원한 냉면이 생각나고 언제 한 번 먹어보려나 기대가 생기나 봅니다. 권사님을 만나고 나서 여름마다 그 냉면을 대접받았습니다. 이대로라면 여름을 지내면서 권사님의 냉면을 먹지 않고 지나가면 여름이 왔는지 갔는지 알 수가 없다는 전설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에 먹은 냉면은 무더웠던 여름을 마무리 하고 새로운 계절을 건강하게 맞이하는 늦여름 특별식이었습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는 경기도 이천에 사는 친구, 부부가 만들어준 푸짐한 수육과 삼계탕, 밭에서 막 뜯어온 온갖 쌈 채소들이 기억납니다. 이 부부의 맛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그리고 멀리서 찾아온 우리 가족도 만날 수 있다는 이유를 살짝 보태어 이천 가까운 곳을 비롯하여 서울, 인천, 용인, 평창, 금산에서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친구의 남편은 고기를 부드럽고 담백하게 삶아, 솥에서 바로 꺼낸 따뜻한 수육을 친구들이 식사하는 내내 고기 접시가 비지 않도록 채워놓았습니다. 김치 그릇도 바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김치는 그의 아내 솜씨입니다. 요리를 해서 여러 사람들과 나누는 이 부부의 넉넉함과 그들만의 비법으로 만들어낸 건강한 음식에 대한 칭찬이 밥상을 더욱 가득 차게 했습니다. 그 부부나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지인들이나 오랜만에 만났어도 삼십여 년에 가까운 인연들이다 보니 늘 봐왔던 사람들마냥 편안하고 유쾌한 자리였습니다.

이천 친구 가족과는 도시에서도 가능한 신앙공동체를 만들어보자며 공동목회를 했었습니다. 서울에서 삼 년 동안의 그 실험적인 시간들은 엉성하기도 하고 엄청 가난하기도 했고 공동체가 쉽지 않다는(쉬울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요) 뜨거운 맛도 보았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신앙이나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에 공통분모가 많아 공동육아를 지속할 수 있었고, 리더십에 대한 고민과 탐구를 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무엇보다 소중한 친구들과 가까이 살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공동목회 하는 동안 그 부부 집에서 삼겹살을 참 많이도 구워 먹었습니다. 그 집에서 먹으면 왜 그렇게 더 맛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삼겹살을 고르는 안목과 양념장에 뭔 비법이 있었던 걸까요?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 부부의 음식은 친구들 사이에서 맛있기로 알아줍니다. 그 부부는 워낙 음식 솜씨가 좋은데다가 사람들이 편안하고 좋다 보니 음식에 그 모든 것이 담겨 감동적인 맛이 나오나 봅니다.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들과 만들어진 음식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전설이 될 만한 음식들을 여름의 첫머리와 끝자락에서 맛보다니 입이 호강한 시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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