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11의 게시물 표시

계속되는 부활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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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하라고 시켰으면 정말 하지 않았을 못된 심보를 가진 제가 별 거 아닌 종이꽃을, 하지만 부활절 기쁨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스스로 나서서 접어본 것입니다.

교회 권사님께서 정성스레 장식을 해주셨고, 교우들은 예쁘다 해주셨습니다.
우헤헤. *^^*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갈라디아 5장13절)

신앙의 추억을 만드는 부활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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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꽂이 하기 전 모습입니다. 나중에 멋있게 장식된 모습도 보여 드릴게요. ^^>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는 성(聖)금요일입니다.
둘째 아이에게 성금요일 저녁예배와 부활주일 새벽예배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나도 꼭 가야 돼?” 아이가 묻습니다.
“그럼!”
뭔가를 더 물어올 것 같아 아이가 있는 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습니다.
예배에 가겠다는 게로군, 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지금 둘째 아이 나이 또래에 경험했던 부활주일 새벽예배를 더듬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부활주일 새벽연합예배를 드리는지 알지 못하나, 제가 어릴 적 살던 지역에서는 인천광역시 도원동에 있는 공설운동장에서 모이곤 했습니다.
그 큰 공설운동장에 예수 믿는 자들이 꽉 들어 차게 모여, 각자 준비해 온 양초를 밝혀 손에 들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연합성가대는 해마다 특송으로 헨델의 “메시아(할렐루야)”를 불렀고, 공간이 넓어서 그런지, 찬송을 다 함께 부를 때 이곳과 저 건너편 쪽의 박자가 맞지 않는 것도 저를 감격스럽게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한 번은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비가 그쳤던 것 같습니다), 공설운동장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서서 예배를 드렸던 광경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중학생이던 제가 살고 있던 곳은 제물포였고, 공설운동장까지는 버스를 타고 10 분쯤(아마도)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 새벽에 버스가 다니지 않았으므로, 저는 혼자 걸어서 오전 5시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겁도 없었다 싶은데, 그때는 세상도 지금보다는 그리 험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어린 시절은 참으로 순수하게 신앙 생활을 한 것 같습니다.
참석할 수 있는 모든 예배 시간은 으레 가야 하는 것으로 여겼나 봅니다.
가끔 다른 신앙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교회가 양적으로 부흥을 이루던 7, 80년대에는 아마도 순수하게 열심히 신앙 생활하던 분들이 많…

목사 취임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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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사역을 시작한 콜럼비아제일교회에서 지난 주일 저녁, 담임목사 취임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남편은 담임했던 다른 교회에서와는 달리 취임예배를 드리는 것은 목회를 하면 할수록 더욱 많은 기도가 필요하며, 우리 교회 형편을 아시는 분들께 기도 부탁을 드리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부목사로 섬겼던 아틀란타한인교회와 우리교회는 파트너교회가 되었습니다.
목회비전을 공유하고 함께 이루어가는 동반자가 된 것입니다.
아틀란타에서 주일예배를 드리시고 김정호 담임목사님과 부목사님들, 전도사님, 그리고 여러 교우들이 먼 길을 달려 찾아오셔서 함께 예배하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아틀란타한인교회는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섬겼던 교회여서 그런지, 교우들을 만나니 편안하고, 우리 가족을 향한 그들의 기도가 있었음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고추가루… 사다 주신 집사님들에게선 친정 식구들을 만난 느낌이 들기도 했구요. 헤헤헤 *^^*
사정이 있어서 오지 못하신 교우들의 마음도 고맙게 받았습니다.


아틀란타한인교회와 파트너십을 가지고 있는 여러 교회의 목사님들도 방문해주셨습니다.
목사님들께서 찬송가 204장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를 축가로 불러주셨는데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저는 성가대라서 축가를 부르시는 분들을 뒤쪽에서 바라보며 찬송을 듣게 되었는데, 동역자 혹은 동지에게서 느껴지는 든든함 같은 것이 울려 나오는 듯 했습니다.
아틀란타에서 떨어져 나와 보니, 미국에서 처음으로 관계를 맺었던 옛사람들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나 봅니다.


이곳 콜럼비아 지역에 사시는 목사님들과 교우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새로 부임한 목사도 보고, 유~명한 김정호 목사님의 설교도 듣고,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교우들끼리도 만나는 잔치 자리였습니다.
저는 아직 여기 지역 교우들은 잘 모르지만 그분들의 관심과, 함께 예배함이 어찌 감사하던지요.
살면서 오래 두고 갚아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손님들을 맞이한 우리교회 교우들은 마음이 즐겁고, 넘치게 채우시는 은혜를 경험하는 기회였습니다…

『울지마 톤즈』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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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톤즈』는 아프리카 수단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고(故) 이태석 신부님(48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하던 중 사제가 되기로 결심을 한 이태석 신부님은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하는 것이 나에게 하는 것이다”는 성경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수단 남부에 있는 오지 중의 오지 톤즈 마을로 찾아갑니다.

수단은 남북 내전이 있을 뿐 아니라, 톤즈가 있는 남부 지역 내에서도 부족간의 전투가 끊이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잦은 전투로 불안정한 분위기, 교육과 의료시설이 없는 톤즈에서 이태석 신부님은 그곳에 사는 한센병 환자를 돌보고, 병원을 만들어 언제고 찾아오는 많은 환자들을 치료합니다.
또한 병원에서 백신을 보관하려면 냉장고가 필요한데 전기가 없어 태양열을 이용한 발전소를 손수 짓고, 아이들 놀이를 위한 농구대를 만들고, 학교를 세우고, 집이 먼 아이들을 위해 기숙사를 만들고, 기쁨과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기 위해 음악을 가르치고, 남부 수단 최초로 35인조 브라스밴드를 만드는 것을 통해 톤즈에 대한 사랑을 키워갑니다.

환한 웃음으로 7년 동안 톤즈를 위해 노래하던 이태석 신부님은 한국에 휴가를 보내기 위해 들렸다가 대장암을 진단 받고, 1년 넘은 투병 끝에 2010년 1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리고…
남겨진 톤즈 마을 사람들과 신부님의 사랑을 이어가기 위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실려있습니다.


둘째 아이와 꼭 같이 보아야 한다며 남편이 가져온 것입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지난해 9월에 한국에서 개봉되었고, 저희가 본 것은 KBS 스페셜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성경 말씀에 따라 진실되게, 열심히 사랑을 나누는 고 이태석 신부님의 모습에 그저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람을 사랑하는 열정과 헌신이 나에겐 얼마나 있나, 아무도 몰래 헤아려 보았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더욱 사랑”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 할 숙제가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 것만 같아 퍼뜩 정신을 차려 보았습…

쑤~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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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뒷쪽으로 넓은 마당이 있습니다.
그 마당에는 교우들이 가꾸는 텃밭도 있고, 오래 전에 몇 포기 심어놓은 쑥이 시간이 흐르면서 넓게 퍼져 자라난 곳도 있습니다.
쑤~욱 쑤~욱 잘 자라는 쑥은 교우들이 뜯어다가 떡을 만들어 오십니다.

주일 예배가 끝나고 친교를 나누는 점심 시간에는 교우들 각자가 만들어오신 반찬도 다양하고 맛날 뿐 아니라, 매주 떡을 해오시는 교우도 계십니다.
미루어 짐작해보건대, 쑥이 나는 철에는 쑥떡도 자주 먹게 될 것 같습니다. *^^*

쑥도 쑤~욱 쑤~욱 자라고,
교우들의 사귐도 쑤~욱 쑤~욱 자라고.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에베소서 4장1절-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