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2018

5마일 혹은 7마일





올해 동남부지방 여름수련회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쥬날루스카 호수(Lake Junaluska)에서 열렸다. 지방에 속한 모든 교회의 교인들과 목회자 가족이 모이는 큰 행사로 2년마다 열린다. 성인들을 위해서는 하나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아침과 저녁 예배가 준비된다. 예배를 위해서 지방 밖에서 강사를 초청한다. 부모님이 예배 드리는 동안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중고등부는 수련회 기간 내내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활동한다.

지난 번 수련회도 같은 장소에서 열렸고 우리 교회 교인들과 목사인 남편과 아이들이 참여했었다. 나는 일한다는 이유로 함께 가지 못했다. 이번 수련회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참석여부가 불투명했는데, 남편이 예배 순서에 맡은 바도 있고 하여 우리 가족만 뒤늦게 합류하게 되었다. 예배 드릴 때 보니 다른 교회에서도 많이 참여하지 못해서 단출한 모임이 되었다.

쥬날루스카 호수 둘레에는 개인소유의 주택들도 있고, 수련회장에 속한 여러 건물들도 자리잡고 있다. 수련회장은 미연합감리교회 남동부 관할구역에 속한다. 언젠가 애쉬빌에 갔다가 감리교회와 연결된 곳이어서 잠깐 둘러본 적이 있었고 이번이 나에겐 두 번째 방문이었다. 우리 집에서 두 시간 반 정도를 자동차로 가서, 수련회에 등록을 하고 숙소를 배정받기 위해 웰컴센터에서 내렸다. 남편이 등록을 하는 동안 그 공간을 둘러보다가 탐스럽게 피어있는 붉은 꽃에 이끌려 창가로 다가갔다. 밖으로 나가서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에 남편에게 용무가 끝나면 문을 열어달라는 부탁의 말을 남기고 건물 뒤쪽으로 나갔다. 건물 밖으로는 나갈 수 있으나 들어올 수 없는 문 같았다.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와 한 가족이 분명한 꽃이었다. 우리 무궁화는 은은하고 단아한 모습이라면 그곳에서 만난 무궁화는 강렬하고 화려했다. 웰컴센터로 들어오다가 본 꽃들도 퍽 인상적이어서 어서 가서 살펴보고 싶었다.

아침 예배가 끝난 다음 저녁 예배 전까지는 자유시간이었다. 호숫가를 걸으면서 예쁜 꽃들을 만나고 싶어 자유시간을 그렇게 보내기로 했다. 숙소 건물에 있는 안내 데스크에 가서 호수 주변을 안내하는 지도를 얻었다. 난 사진을 찍을 마음에 휴대폰만 챙기고 받은 지도는 살펴보지도 않고 남편에게 건네주었다. 남편은 와 봤던 곳이라 그런 것인지 굳이 지도가 필요치 않다고 말했다. 옆에서 우리를 보고 계시던 어느 지방 목사님은 워킹트레일을 따라 걸어보셨다며 정보를 하나 주셨다. 다리를 건너서 가면 5마일(대략 8킬로미터)이고, 그렇지 않고 호수 전체를 돌면 7마일(11킬로미터쯤)이라고 알려주셨다. 지도는 남편 바지 주머니로 들어가서 걷는 내내 나오지 않았다.

산에 둘러 쌓여 있고 구름이 많은 흐린 날이라 그런지 아침 기온이 선선했다. 걷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우리 부부와 산이는 운동화로 갈아 신고 가볍게 길을 나섰다. 언덕 위에 있는 숙소를 나서서 왼편 비탈길을 따라 내려왔다. 넓은 호수가 곁에 있어서 마음도 여유로웠다. 언덕길 아래에 이르자 다리가 바로 나타났다. 도로와 인도가 따로 있는 넓은 다리다. 지방 목사님께서 설명해주신 5마일짜리 산책길로 들어서는 다리라 여기고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걷느라 너무 힘들지 않게 짧은 길이 적절하게 선택되었다는 생각, 다른 하나는 전체 호숫가를 살펴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꽃들도 만나고, 모양이 모두 다른 집들도 지나치고, 이 모든 것이 호수 물에 그대로 들어가 앉아있는 풍경도 감상했다. 가장 많이 마주친 것은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었다. 한두 사람 빼고는 모두 빠짐 없이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복 받은 길이다.

그렇게 얼마를 걷고 나니 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진 곳에 이르렀다. 산책로를 따라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길, 호수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는 길. 이 다리는 좁고 사람들만 다닐 수 있는 다리다. 나는 옆으로 새지 말고 앞으로 조금 더 걷자고 했고 남편은 동의했다. 산이는 그냥 따라왔다. 또 얼마큼 걸어가자 넓은 찻길이 나왔다. 눈에 익은 듯하여 가만 보니 고속도로에서 빠져 나와 쥬날루스카 호수를 향해 가던 그 길이었다. 이렇게 연결되는 구나, 재미있었다. 도로와 붙어있는 산책길의 오른쪽은 호수이지만 왕복 6차선 아스팔트에서 나오는 열기가 대단하였다. 산이는 이때부터 힘들어했다. 조금 더 힘을 내 호수 입구에 있는 웰컴센터에서 쉬어 가기로 했다.

산이는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내 얼굴에서도 살짝 열이 오른 것이 느껴졌다. 호수 안쪽으로 들어오니 다시 마음이 안정되었다. 수련회장에 속한 건물들 앞에는 꽃으로 꾸며놓아 그것들을 지나칠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집 근처에 있는 주립공원에서 일 주일에 두세 번 5마일씩 걷곤 했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보통 1시간 50분쯤 걸렸었다. 호수 주변을 걸은 지 1시간 20분 남짓. 숙소까지 가면 걷는 시간으로 따져볼 때 5마일 코스려니 속셈을 하고 있는데, 산이가 또 쉬자고 했다. 나무 그늘에 마련된 벤치에 앉았다. 바람이 솔솔 불어 무척 시원했다.

호수 위에 놓인 다리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두 갈래 길에서 다리를 선택했으면 우리가 건넜을 다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쉬고 있는 벤치로 바로 건너올 수 있는 다리였다. 다른 길을 선택하여 멀리 돌게 되었지만 건물들과 꽃들을 더 볼 수 있어서 후회가 없었다. 얼굴에 땀이 다 마를 즈음에 남편은 1마일 정도 남은 길은 자기 혼자 걸어가서 차를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산이를 보니 더 걷자고 하는 것은 내 욕심이었다. 남편의 수고로 나머지 길은 자동차로 편히 이동했고, 출발지이자 목적지인 숙소에 다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다가 점심을 먹으러 가면 딱 좋을 시간이었다. 남편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바지에서 지도를 꺼내놓았다. 걷는 동안 한 번도 꺼내 볼 생각을 못했던 지도가 궁금해졌다. 구겨진 지도를 펼쳤다. 그제야 지도가 읽혔다. 우리가 걸은 길은 7마일 길이었다! 호수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는데, 5마일 길은 좁은 다리를 가로질러야 한다. 우리는 넓은 다리를 건너면서, 다리를 건넜으므로 5마일 길을 걷고 있다고 단정한 것이었다. 경험상 산책 시간도 5마일을 가리키고 있었으므로 의심이 없었다. 시간을 잘못 재었는지 아니면 호수 경치와 분위기가 아주 좋아서 날아간 것인지 머리를 흔들어 보았다.

다리가 뻐근하여 발끝에 힘을 주어 뻗어보려 하니 쥐가 났다. 마음은 즐거웠으나 몸은 무리를 했나 보다. 걸음이 어눌한 산이가 그만큼 걸은 것이 대견했다. 지도를 꼼꼼히 보고 5마일 길을 선택했으면 덜 힘들어서 좋았으려나. 그냥 선택한 길이 7마일 길이어서 힘은 들었으나 쥬날루스카 호수 수련장을 다 돌아볼 수 있어서 미련이 남지 않아 좋은가. 언젠가 걸었던 길들과 7마일 산책길이 많이 닮은 듯하여 웃음이 났다.






댓글 2개:

  1. 하바스커스 꽃이 아주 아름답워요. 맑고 깨끗한 수채화를 번듯하고 7마일을 7분 만에 걷게된 기적도 일어났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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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동행해주셔서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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