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나무, 구부러진 나무





날씨가 좀처럼 따뜻해지질 않는다. 올해 첫머리에 기온이 뚝 떨어져 이곳에선 흔하지 않은 눈도 보고 좋다고 했더니, 그 추위가 쉽게 사라지지 않아 실내를 따뜻하게 하기 위한 전기요금이 엄청 불어나고 바깥 운동을 하지 못하는 찌뿌둥함도 쌓여 있다. 기온이 조금 오른 날에도 운동 삼아 하는 숲 속 걷기를 아침에는 추워서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오후에 햇볕이 한참 풀렸다 싶을 때 나갔다 온다. 걷는 운동도 그나마 일 주일에 한 번 하면 다행이다.

모처럼 날씨도 좋고 시간도 나서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늘 가던 길을 잡아 걷기 시작했다. 춥다 춥다 해도 세상 만물이 제 역할을 하며 움직이고 있듯이 아직도 칙칙한 겨울 색깔을 벗겨내지 못한 나무에도 새순이 제법 올라와 있다. 새 생명을 세상 밖으로 기꺼이 밀어내고 있는 나무들이 대견하다. 그들이 내어놓는 새순을 바라보면 경이롭고 앙증맞고 귀하다.

그 모양과 색도 가지각색이어서 오래 두고 볼 요량으로 늘 가지고 다니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거의 실패다. 핸드폰으로 어떤 대상을 가까이 찍으면 흐릿하게 나온다(요즘 스마트폰에 근접 촬영 기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 것은 아이폰이다). 사진이 선명하게 찍히지 않는 줄 알면서도 자꾸 버튼을 눌러대는 이유는 새순을 볼 수 있는 시간은 한 때, 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다, 고 혹시라도 제대로 찍힌 사진이 하나 걸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보이는 새순마다 찍어댔다.

그렇게 숲길을 걷다가 길을 가로질러 쓰러져 있는 소나무를 만났다. 세찬 바람이 불거나 큰 비가 온 다음에 숲을 찾아가면 쓰러져 있는 나무들을 가끔 보게 된다. 나무가 늙었거나 병들었거나 약해서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 같다. 제 삶을 다한 나무가 안쓰러워 한 번 더 살펴보게 된다. 하지만 덩치가 큰 나무는 쓰러져 있어도 그 기운이 당당하여 근처에 가는 것이 망설여지기도 한다. 이번에 만난 소나무는 그다지 굵지도 않았고 밑동을 보니 튼실해 보이지도 않았다. 올 겨울 추위와 바람은 그 소나무에게 숲 속 다른 나무와 동물들을 위해 거름이 되어달라고 부탁했고, 그 나무는 기꺼이 순응을 한 것인지……

공원 관리인들이 어떤 절차에 따라 쓰러진 나무를 치우는지 모르겠다. 쓰러진 나무는 그렇게 길을 가로 막은 채 몇 개월이고 그대로 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자리에 가보면 톱으로 잘려져 길을 다시 터 놓는다. 잘려진 나무 토막들은 숲 속에 그대로 둔다. 다시 흙으로 돌아가라는 배려인 듯싶다.





죽은 나무를 뒤로 하고 다시 숲길을 걸었다. 이번엔 늘 다니던 길에서 일 년도 훨씬 전에 쓰러진 또 다른 나무에 다다랐다. 이 나무는 참나무의 일종으로, 쓰러지기는 했어도 아직까지 나무 밑동에 연결되어 있다. 이 나무 밑을 지나려면 고개를 살짝 숙여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은 내려서 지나가야 한다. 길을 가로질러 낮게 쓰러져 있어서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만 아직 생명이 붙어 있어서 그런지 공원 측에서는 이 나무를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쓰러져서 구부러진 모습이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똑바로 서 있는 다른 나무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으나 여전히 새싹과 줄기를 내며 생명 활동을 하고 있는 이 나무가 다시 보였다. 세상에! 다른 나무의 새싹은 조그맣게 열리고 있는데 이 나무는 새 줄기가 쭉쭉 뻗어 나와 새로 나온 잎들도 잔뜩 달고 있었다. 대단한 생명력이다. 그 나무 아래로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왕성한 기운을 나눠주며 좋아라, 하는 것만 같았다.

나무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뿌리가 달린 밑동에서 떨어져 나간 소나무는 초록 솔잎이 달려 있었지만 누가 봐도 죽은 나무다. 그런데 구부러져 있을지언정 밑동에 붙어 있는 나무에서는 생명을 보는구나, 생각했다. 구부러진 나무가 있는 길을 벗어나는데 금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첫번째로 암송했던 성경 구절이 문뜩 떠올랐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5)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님께만 붙어 있으면 산다는 말씀이다. 난 이 말씀을 굳게 믿는다. 어둠이 나를 삼킬 듯이 덤벼들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을 겨우겨우 혹은 억지로라도 붙잡고 있으면 된다. 힘든 때를 벗어나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소심한 몸짓으로 허우적거려도 괜찮다. 하늘을 바라볼 수만 있으면 된다. 말라빠져 죽은 가지처럼 보여도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꼬~옥 붙어 있으면 된다. 그러면 언젠가 가지에 물이 오르고 새싹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난 그렇게 믿는다.

숲 속에서 만난 나무들에게 고마움을 남기고 공원을 총총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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