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글로 쓰여진 좋은 책을 읽는 맛


이것 참!
수요일 오후, 집으로 배달된 택배 상자를 받을 때에는 기분이 한층 좋아서 이렇게 저렇게 글을 써서 고마움을 전해야지 했는데,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났다고, 그리고 오늘이 얼마 남지 않은-글을 마쳤을 때는 이미 또 다른 오늘이 되어있었습니다- 이 시간에 글을 쓰려니 마음만 급하지 머리 속은 둔하기만 합니다.

자, 눈을 잠깐 감고, 호흡을 깊이 들이 쉬고 내쉬고….

다른 날보다 일찍 학교에서 돌아오는 강윤이가 들뜬 목소리로 말합니다.
“엄마는 택배 온 것도 모르고 뭐하시나?”
한국에서 작은 엄마가 강윤이가 보고 싶은 책도 보내주기로 한 것을 알고 있는 터라 얼른 열어보려는 마음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오늘 학교 수업을 짧게 하는 날이었으니 더욱 가벼운 기분인 것 같구요.

한 학기에 이틀 동안 킨더(1학년 되기 바로 앞 학년) 부터 초등학생을 둔 부모님은 선생님과의 만남이 한 차례씩 있습니다.
중학교에 가면 원하는 학부모만 선생님과 만나게 됩니다.
고등학교는 따로 그런 날을 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틀은 학교 수업이 일찍 끝나서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번 주 수요일과 목요일이 바로 그 날이었습니다.
선생님을 만나 강윤이가 학교 생활 어떻게 하는지 이야기를 나누면(!!!) 좋으련만, 강윤이가 잘 하고 있기도 하고, 또 누군가 통역을 해주지 않으면 정확하게 의사소통이 안 될 테니 저에게는 보통 때와 다를 바 없는 날입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서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마음을 나누기 어려우며, 정보를 얻는데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 참 서글프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결국 여기에 사는 동안 두루두루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려면 이곳의 언어를 배우는 길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어찌하면 좋을까….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면 새로운 학문을 배우기도 할뿐더러 영어도 더 잘 배우게 될 거라는 충고나 조언을 들은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얼핏 들어도 맞는 말 같은데, 제 자신과 주변 상황을 돌아보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은 갈팡질팡 미적대는 저에게 공부하라고, 당신은 할 수 있다고, 힘을 팍팍 실어주는 것이 아니겠어요?
입학 자격을 얻기 위해 영어 시험도 보아야 하고, 아이들 돌보는 것, 재정 상태, 나이… 학교에 다니기 위해서 걸리는 것이 한 두 개가 아니고, 다 어려운 것들뿐인데, 이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요즘 집에서 뭐하며 지내냐고 누가 물으면, 그냥 있다고 대답하곤 합니다.
영어 시험 준비 한다고 말해놓고 결과는 엉터리가 될까 봐 그런 것입니다.
정말 자신 없습니다.
짧은 시간 준비한 시험을 한 차례 치뤘습니다.
시험은 엄청 못 본 것 같은데, 마음은 그 분의 은혜로 어떻게 안 되려나 하는 얼렁뚱땅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헤헤헤.
이미 본 시험의 결과에 따라 시험을 다시 봐야 할 지도 모르고, 더 어려운 또 다른 시험도 준비해야 합니다.
집에서 혼자 자료 찾아가며 하려니 이게 맞게 준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내가 꼭 이렇게 어려운 길을 찾아가야 하나, 자꾸 확신이 서지 않는 생각이 오락가락 합니다.


지난 주인가요, 한국에 있는 동생(동서인데 동생하기로 했습니다)이 이메일에 “오두막” 읽었냐며 안 읽었으면 보내주겠다며 강산이 강윤이에게도 보고 싶은 책 있으면 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강윤이는 만화책 2권을 주문했습니다.
두, 세주 동안 다시 시작해야 하는 공부가 너무 엄청나서 스스로에게 쉼을 준다는 명분으로 조금씩 미루고 있는 사이에 동생이 보낸 책 꾸러미가 도착한 것입니다.

열어보니 주문하지도 않은 책까지 7권이나 들어있었습니다.
우와~, 하여튼 마음 씀씀이가 정말 맘에 듭니다. **^^**
외워야 하는 영어 단어장에는 처음 보는 단어들이 깨알 같이 적혀 있어서 선뜻 손이 가지 않고 먼지만 몇 주째 쌓이고 있는데, 동생이 보내준 책을 보니 눈이 확 뜨이면서 가슴이 벅차고 몽롱하기까지 합니다.
이거 연애할 때 연인과의 약속 시간이 다가오면 설레임과 기대를 경험했던 것과 아주 비슷한 증상인 것 같습니다.

장영희 교수가 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붙들고 앉았습니다.
밥해야 하고, 밥 먹어야 하고, 설거지 해야 하고, 잠을 자야 하는 시간이 아까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만 먹고 따뜻한 햇빛이 있는 창가에 앉아 읽다가, 해가 저만치 가버리고 난 뒤에는 소파에 콕 틀어박혀 일찍 귀가한 강윤이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책 한 권을 끝냈습니다.

아하!
책 읽는 맛이 이리 달콤할 수가 없습니다.
쓰여진 글들에 담긴 작가의 느낌들이 오롯이 전해지면서 온갖 감상에 휩싸입니다.
그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조이스 럽 수녀의 “산티아고 가는 길, 느긋하게 걸어라”를 읽으면서는 나도 그런 순례의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과 그 여행을 하기 위한 정보를 얻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책은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었고 정말 흥미롭게 읽었으나, 장영희 교수의 책이 주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차이일까.’

요즘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번 주 설교 시간에 목사님은 그 분들을 위한 말씀도 주셨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은 내 나라이고, 내 가족이 있고, 모국어를 쓰는 곳으로 돌아가는데 뭐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거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 였습니다.--;
그 설교 가운데 모국어를 쓰는 곳으로 간다는 말씀이 다른 나라 언어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는 저에게는 남아 있었습니다.
제가 느끼는 차이가 이것일까요.
모국어와 다른 나라 언어.
지금까지의 삶과 자연스럽게 함께 해온 모국어가 주는 느낌….

좋은 책을 읽고 나니,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용기가 조금씩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삶에 같이 하게 될 영어 공부가 아주 많이 자신 없지만, 저와 제 가족과 더욱 확대된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 의미 있는 일이 되게 할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공부하려는 목적을 다시 세워봅니다.
동생이 추천해준 “오두막”은 남편이 먼저 찜해서 읽고 있습니다.
그 책도 얼른 마저 읽고 나면 더욱 강건해지리라 기대를 해봅니다.

고마워, 동생.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베드로전서 1: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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