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글을 조금 옮겨 적다

며느리가 가끔 생활이야기를 써서 교회 홈페이지(한국)에 올린 것을 보시더니 언젠가부터 어머님의 이야기도 써보시겠다고 하셨더랬습니다. 그러시더니 우리 가족이 미국에 올 때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주시면서 네가 잘 정리해 봐,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님, 죄송해요. 미국 온 지 2년이 가까워오는 오늘에서야 어머님이 쓰신 글을 꺼내 보았어요. 제가 이래요. 그래도 오늘이라도 열어보았으니 괜찮죠? 히히히. 늘 마음에 담고 있었어요.”

여선교회 공문으로 받은 A4 크기의 종이와 그 크기와 똑같게 자른 교회 달력 뒷면에 가지런히 적어놓으신 글이 세어보니 28장이나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아끼고 절약하는 어머님이시기에 이런 종이를 사용하신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그리고 강화 망월에서 60 여년을 사시면서 100년도 넘은 교회를 한결같이 섬기신 어머님에게 28장은 너무 적은 분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머님 글을 제 블로그에 사용할 목적(^^)으로 타이핑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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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2008년 2월에 씀)

나는 지금 66세에 들어섰다. 요즘 자꾸만 마음 속에 지나온 일들이 새록새록 머리에 떠올라 생각에 잠길 때가 많다. 이 못난 딸을 주님께서 부르시어 주님의 깊으신 사랑을 깨닫게 하셨고 그 많은 생명들 중에 나를 구속하여 생명의 길을 찾게 하셨기에, 살아온 발자국마다, 임마누엘 되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생각할 때마다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여 그 누구에게라도 우리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성격이 소심하고 담대하지 못하여 늘 자신 없고 교회 공동생활 하는데도 앞장서기 보다는 뒤에서 일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늘 부족한 사람이다.
우리 교회에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이 전하시는 말씀 가운데 “여러분, 주님을 만나보셨습니까? 성령을 체험했습니까? 주님과 나와의 관계는 지금 어떤 모습입니까?” 질문하실 때마다, 재작년 성경을 읽다가 큰 감동을 받은 신명기 33장 29절 말씀을 마음 속으로 대답하곤 했지요.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전에도 읽었던 말씀이건만 그날따라 신명기 말씀이 나를 향한 말씀임을 알았지요. 주님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부족한 죄인을 돌보시고 늘 어려움에 닥칠 때마다 주님 앞에 무릎 끓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내 모습을 보시고 늘 도우시고, 위로해 주시고, 말씀으로, 기도로, 찬송으로, 이 못난 자를 이끌어주심을 감사하며 필(筆)을 들게 됨을 감사 드립니다.

나는 고향이 바다 건너 이북에 있는 황해도 연안 칠리라는 동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업을 하셨고 어머니, 언니, 동생들과 나, 이렇게 여섯 식구였다. 4 형제 가운데 둘째였다.
그 당시 홍역이라는 무서운 병이 동네에 들어와 많은 어린 아이들의 생명을 빼앗아갔다. 우리 가정 역시 나와 두 동생이 홍역에 걸렸다. 나와 여동생은 거의 죽어가 부모님이 포기했었고 내 밑에 남동생 봉수는 아들이 죽을까봐 아버지와 어머니는 안절부절 살리려고 병원에 다녔지만 결국 아들은 죽고 죽어가던 딸 둘은 살아났다. 부모님은 너무나 큰 슬픔에 신음하던 끝에 살던 곳을 떠나기로 결심하시고 12월에 강화로 이사를 하였다.
그 때 나는 7세였다. 이북 연안은 수리조합이 있어서 농사 짓는 것이 잘 되었지만 강화에 이사오니 물이 없고 흉년이 들어 동네 사람들은 굶기가 일쑤였고 배고픈 시기였다. 그리고 그 해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이북에 사시던 이웃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피난 오시어 사랑방에는 피난민들로 가득했고 부모님은 그분들을 맞아들여 재워주시고, 큰 가마니 솥으로 밥을 한 솥씩 해서 대접했다. 그러는 사이 된장 단지, 고추장 단지도 다 거덜났다.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우리 집은 이사올 때 쌀을 많이 싣고 왔기 때문에 보리 방아 쪄서 양식을 삼아 지내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휴전이 되면서 고향으로 돌아간 분도 많았다.

강화 망월에 이사오니 돌로 지은 조그마한 예배당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예수 믿는 집이 많지 않았다. 언니는 이웃 동무들을 따라 교회에 다녔고 나 또한 언니를 좇아 교회에 나갔다. 아버지는 언니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무척 반대하시면서, 성경책도 아궁이에 태우시고 언니의 뺨도 때리셨다. 하지만 언니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주일학교 교사 하다가 이웃 동네에 있는 오상교회 장로님댁 며느리로 시집갔다. 언니가 믿음의 길을 닦아 놓고 시집을 갔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 핍박 없이 교회에 잘 다니게 되었다. 망월로 이사 와서 태어난 여동생이 하나 더 있어서 4 자매가 되었는데, 남은 두 동생과 함께 언니처럼 교회학교 교사도 하면서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딴 집들은 온 가정이 교회에 나가는데 우리 가정은 그렇지 않아 그것이 늘 기도제목이었다. 아버지는 일 잘 하시고 농사도 잘 지으시고 양심적으로 사시는 것 같은데 하나님을 모르시는 것이 우리 자매들 마음에는 늘 안타까웠다. 가을이 되어 추수감사절이 돌아오면 하나님이 햇빛 주시고, 바람 주시고, 비 주시고,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은혜를 아버지가 모르시는 것 같아 아버지께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말씀 드리면 쓸데 없는 소리 한다고 하셨다. 새벽마다 기도를 간절히 했다. 우리 가정도 하나님 믿게 해주세요, 기도하며 주님께 매달렸다. 아버지를 설득하던 중 오히려 어머니께서 교회에 나오시게 되었다. 어머니는 글도 모른다고 하시면서 부끄럽다고 하셨지만 우리 자매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성경 말씀을 들려 드리며 “어머니는 이제부터 천국에 갈 수 있잖아요. 감사하세요” 했다. 그래도 온 가정이 교회에 나오는 것이 제일 부러웠다.

나는 몸이 약했지만 열심히 일하고 주일에는 교회에 나가는 것이 정말 기뻤다. 마음 속 깊이 원하는 소원이 생겼는데, 이 세상에서 예수 잘 믿는 청년을 인생의 동반자로 만나는 것이었다. 그 때는 왜 그렇게도 연애편지가 마음을 꼬여보려고 여기 저기서 날아들었는지…. 나에겐 시험인 것 같았다. 학교 선생으로부터, 부잣집 아들, 동창들, 여기저기서 나를 꼬였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못났어도 주님 섬기는 청년만을 선택하리라 기도하며 마음 먹고 있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 가장 친한 친구가 권사님네 아들을 소개해주어 비밀로 하고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이 비밀 만남을 아시고 반대하셨다. 반대하는 결혼은 자신 없다 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그 만남이 인연이었던지 3년 후 어느 장로님 부인이 우리 아버지에게 사람을 한 명 소개했는데 전에 만났던 그 청년이었고 장로님 부인은 아버지 마음을 바꾸어 놓으셨다. 6월26일 약혼을 하고 10월18일에 결혼하였다. 시집살이 3년 하고 큰 아들 첫 돌날 이웃에 조그맣게 집을 지어 세간을 났다.
시어머니 권사님이 믿음이 좋으셨다. 큰 아들 가졌을 때 어머니께서 기도하시던 중에 자부가 임신한 지 일곱 달이 되었다고 하시면서 하나님 종으로 첫 아들을 바치라고 하셨다고 하시기에 마음 속으로 아멘 하였다. 열심히 신앙 생활하면서 두 아들 주심에 감사하며, 두 아들을 저에게 맡기신 주님, 이 땅에서 꼭 필요한 생명들이 되게 해달라고, 새벽마다 왜 그렇게 간절하게 눈물로 호소하게 되는지요…. 주님께서 복 주시어 온 가정이 건강하고 살림도 남부럽지 않게 늘어나갔다.

**어머님 글에 <찬송 305장 쓰세요> 라고 되어 있네요. ^^

1.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지 즐거운 동산이라
2.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있고
기쁨과 설움도 함께하니 한간의 초가도 천국이라
3.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같이 일하는 온식구가
한상에 둘러서 먹고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후렴)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여기까지 옮겨 적고는 그 다음 내용은 읽어보고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어머님이 정하신 제목처럼 성령 체험을 통해 신유의 은사를 받고 치유의 기적을 경험한 이야기들과 여러 가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이야기들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 동안 어머님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러다 끝에 몇 장 남겨두고는 쪽수가 다시 (1)로 시작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뒷부분 4장은 저희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특히 남편과 강산이에 대한 어머님의 마음들이 담겨 있기에 일부분을 다시 옮겨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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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서울에서 공부하기 위해 서울에 사는 언니네로 보냈다. 나는 안심이 되었다. 형부가 세광교회 장로님이셨고 언니는 권사였고 사촌 형들이 둘이 있었다. 5학년인 둘째 아들도 함께 보냈다. 아들들이 집을 떠났어도 믿음의 가정으로 갔으니 마음이 놓였고 남편과 나는 열심히 농사지어 자녀들 교육비 대는 것에 전념하였다.
큰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감신대를 가기 위해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그 때는 막내 동생네로 애들을 옮겼고 친정 어머니가 외손주들을 돌보고 계셨다. 첫 새벽에 시험장에 아들과 함께 갔다가 시험장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동생네 골방에서 하루 종일 음식을 전폐하고 기도 드렸다. 주님, 도와 주세요. 주님께 맡깁니다. 그 이튿날 집에 돌아왔다. 시험 발표날이 다가와 소식만 기다리게 되었다. 가슴이 졸여왔다. 저녁 때 전화가 왔다. 합격하였다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주님께 감사 드렸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났다. 아들이 신학 3학년 때 데모하는데 휩쓸리게 되었다. 어느 날 오후에 정보부에서 왔다고 남자 두 사람이 들이닥치는 것이었다. 누구세요, 물으니 아들 김성은 집이냐고 부모님들이냐고 한다. 우리 부부는 누구시냐고 또 물었으나 다짜고짜 방으로 들어가더니 책꽂이를 살피더니 조사를 하면서 교회 나가시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다. 그 남자들은 아들이 데모하다가 붙잡혀서 남부경찰서에 들어갔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우리 아들은 그런 아들이 아니라고 하면서 공부만 열심히 하고 교회만 열심히 다니고 그럴 리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듣지도 않고 그런 줄 알라고 하면서 건국대학교에서 데모하다가 2 천명이 넘는 학생들이 수감되었다는 것이었다.
가슴이 콩당콩당 뛰면서 여보, 이런 일이 왜 일어났어요. 서울 동생네랑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사실이었다. 남편과 나는 동생들과 만나 서울시남부경찰서에서 아들을 만나게 되었다. 유리 안으로 얼굴을 보며 건강하냐고 물으니 걱정 말라고 하며 안심시켰다.
집으로 돌아왔으나 마음이 무거웠다. 잠도 안 오고, 갑자기 입술이 부르트고, 속이 타니 변비도 생기어 화장실에 가면 대변이 막히어 꼬챙이로 파내어 피가 나기도 하였고, 마음이 편치 않으니 음식도 다 맛이 없었다. (이 일 때문인지 어머님은 2000년도에 대장암 수술을 받기도 하셨어요) 첫째 부끄러움은 동네 사람들에게 였고, 소문이 귀에 들려오기는 성은이가 데모하다가 들어갔대 하며 교회에서도 수군대는 눈치였다. 저녁이면 잠이 안 와서 교회에 나가 울며 불며 하나님, 막아주시지 왜요, 기도하다 새벽기도 마치면 돌아오곤 하였다. 담요를 싸가지고 오산리 기도원으로 갔다. 첫 시간에 응답을 주셨다. 예레미야 33장3절 예레미야가 시드기야 뜰에 갇혔을 때에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는 말씀이었다.
금식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남편과 면회를 갔다. 아들이 나왔다. 싱글벙글 웃으며 말한다. 걱정 말라고 잘 있으니까, 하는 말 뿐이다. 나는 예레미야 33장3절 말씀을 보고 그 속에서 기도하며 부르짖으라고 하니 알았다고 한다. 면회 시간이 다 되어 금방 들어가는 것을 보니 너무나 허무했다. 아들 말로는 독재 정치가 물러가고 민주주의 정치를 위한 호소였다. 속히 나올 것 같지가 않았다. 반성문을 쓰는 사람은 나오는데 반성문을 쓰라고 하니 무얼 잘못했냐며 쓰지 않아서 재판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 당시다.

재판 전날 꿈을 꾸니 아들이 대여섯 살쯤 되었는데 큰 웅덩이에 빠졌는데 물은 없었다. 남편을 찾아 다니며 저기 아들이 떨어졌다고 하다가 꿈이 깼다.
남편과 나는 재판 받는 아들을 보려고 갔다. 복도에서 두 사람이 가운데 있는 죄수를 싸고 들어간다. 조금 있으니 아들이 동아줄로 손을 꽉 묶인 채로 들어오는 것을 보니 기가 막혔다. 나는 가슴이 떨렸다. 재판이 끝나 아들과 고개만 끄떡 하고 헤어져 죄수들 차에 실려 교도소로 간다. 나는 갑자기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가 생각났다. 마리아는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며 아팠을까. 그 때처럼 마리아를 존귀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마리아에 비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마리아를 생각하며 위로 받았다. 며칠 후에 아들이 쓴 편지를 받았는데 재판 받고 나올 줄 알았는데 마음이 괴로운 편지였다. 마음을 다스리기 힘든 편지였다. 나중에 6 개월 만에 나왔다.
그 이듬해 학교에서 행사를 하다가 그 때도 또 감옥에 갔다가 3개월 만에 나왔다. 9개월을 옥살이 했다. 노태우 대통령 때 6.29가 선포되고 민주화 항쟁들이 유리하게 뉴스가 흘러나왔다. 학교에서 그런 학생들에게 나쁜 표현은 없는 것 같다. 나중에 민주화보상법이 통과되어 장학금(보상금)도 탔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아들에게 당부 또 당부했다.

대학 졸업을 하고 종교교회 교육전도사로 있었다. 대학원 1년 된 해 가을에 결혼하여 첫 목회지인 강화 성은교회로 오게 되었다. 시골에 작은 교회. 성도는 약 70명, 장로님 두 분이 계신 곳이다. 우리 부부는 어린 종이 목회를 잘 감당하여 양들을 잘 보살피는 목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성은교회 성도님들은 어린 종을 사랑으로 격려해주며 사랑으로 감싸주셨다.

1993년 1월에 첫 손주를 맞게 되었다. 아들이었다. 모두들 기뻐했다. 자연분만으로 병원에서 낳고 우리 집에 와서 일주일 있다가 친정 인천으로 가서 친정 엄마의 보살핌을 받고 건강하여 우리 집에 다시 들렸다. 그런데 이상하였다. 한 달이 지나면 애기가 얼굴도 몸도 목욕시키기가 편안한데 그것이 아니었다. 목사와 사모는 얼굴에 근심이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아기를 보고 의아해하니 목사가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름은 김강산이라고 지었는데 강산이가 몸이 약하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큰 병원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가슴이 떨렸다. 꿈자리가 사나웠다. 목사와 사모에게 기도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일이니 기도하자 하고 돌려보냈다. 우리는 가끔 손주를 보러 갔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결과만 기다리는데 사모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 강산이가 안 좋대요, 하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못한다. 가슴이 덜컹 주저 앉은 기분이었다. 주님 저희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일이 있습니까. 목회자의 아들이 이게 말이 됩니까. 성도들에게 본이 됩니까. 항의 기도인지 원망 기도인지 나도 모르게 울며 부르짖어 기도하였지만 마음이 답답했다.(병 이름은 다운증후군) 새벽녘에 찬송으로 응답을 주셨다.

찬송 462장
1.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바다 저 등대의 불빛도 희미한데
이 풍랑에 배저어 항해하는 주 예수님이 이배의 사공이라
2.큰 풍랑이 이배를 위협하면 저 깊은 물 입벌려 달려드나
이 바다에 노저어 항해하는 주 예수님이 이배의 사공이라
3.큰 소리로 물결을 명하시면 이 바다는 고요히 잠자리라
저 동녘이 환하게 밝아올 때 나 주함께 이바다 건너가리
(후렴)
나 두렴없네 두렴없도다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리라

목사와 사모는 금식 기도에 들어갔다. 기도가 끝난 후 집에 왔다. 종교교회에서 사역하던 시절 함께 계시던 부목사님이 읽어보라고 주신 책을 가지고 왔다. 목사와 사모는 금식하면서 응답 받고 힘을 얻은 것 같았다. 책 제목은 “작은 햇살”. 영국의 어느 천주교 신도가 아주 흉악한 기형아를 낳은 것이다. 둘째 아기를 낳았는데 둘째도 그렇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아기를 사랑하며 온 가정이 사랑의 가족이 된 것을 쓴 체험적 수기였다. 그 아기 부모는 책을 쓰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하는 하늘이 내린 천사로 생각되었다. 책을 읽고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우리 인간들은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저울질 하고 판단하고 저주하고 죄값으로 태어났다고 결론 짓는다. 그 책을 읽고 인간이 갖추어야 할 참사랑을 깨닫게 해주었다. 천국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아기를 통해서 참사랑의 사람으로 바꾸어 놓으시는 것을 깨달았다.

강산이를 보면서 하나님 뜻이 분명하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산이를 보며 미운 맘이 생기면 죄 받을 것 같고 동생 강윤이는 얼마나 똑똑하게 태어났는데도 강산이가 더 사랑스럽고 사랑을 깨우쳐주는 인간 천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도가 바뀌었다. 강산이가 자라면서 교회에서도 성도들이 강산이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감사를 드린다. 작은 목장 안에 힘 없는 어린 양을 보면서 위로하고 싸매주고 도와주면서 성도들에게 사랑의 마음이 싹트어 자랄 때 사랑의 성도, 천국 백성이 된다면 강산이에게 도리어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중략)
아들 목사가 여기서 공부하는 것이 있는데 미국에 갈 일이 생겼단다. 사모와 함께 15일 동안 다녀온다 하였다. 미국에 다녀온 후 문제가 생겼다. 미국에 있는 큰 교회에서 목사 한 분을 초빙하는데 어느 목사님이 소개하였고 부모님 의사는 어떠냐고 물었다. 남편 장로와 나는 반대했다. 고생하러 가느냐고. 그전에는 미국에 관심도 전혀 없던 아들 목사가 외국으로 나간다는 말을 들으니 당황했다. 아들 목사는 주님 뜻에 맡기고 가게 되도 안 가게 되도 하나님 뜻에 맡기고 기도한다고 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니 하나님 뜻인듯 하여 비자 내고 바쁘게 일이 추진되었다. 2월20일이면 고국을 떠나 목양지가 바뀌게 되니 앞으로의 일을 주님께 맡기고 기도할 뿐이다.

1월28일 우리 교회 부흥회가 있었다. 감사헌금을 간절하게 드리고 싶었다. 지방여선교회 연합회장직이 끝나면 기념으로 금반지 3돈을 해주는 전례가 있다. 옛날 결혼 때 남편으로부터 금반지 3돈 받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중간에 팔아서 쓰게 되어 없었다. 지방여선교회로부터 금반지 3돈을 받아 손에 끼어 보았다. 주님이 주신 것 같아 마음이 흐뭇했다. 옛날 어머니 생각이 나서, 나도 이 반지를 자녀를 위해 바치리라 기도 중에 결정했다. 낮 예배 때 바쳤다. 마음이 기뻤다.

찬송 353장
1.내 주예수 주신은혜 한없건만 내 주앞에 이적은 것
다 드리니 주예수여 내 정성을 받으소서
2.주 날위해 보배로운 피흘리사 그 귀하신 생명까지
다 주시니 내천한몸 이 생명을 왜 아끼랴
3.주 예수께 빚진 것이 한없건만 나 주위해 갚은 것은
참 적으니 주 예수여 너그럽게 보옵소서
4.날 위하여 십자가에 피흘리사 주 예수의 은혜로써
인치시고 내 모든 것 주의 소유 삼으소서
5.주 날위해 그 귀하신 몸버리사 이 내몸을 피값으로
사셨으니 내 생명도 주 예수께 바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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