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3/2009

그 녀석들을 바라보다가


주말(週末)은 언제부터 시작이지?
금요일 저녁 아니면 토요일….
주말이라고 해서 뭐 특별할 것은 별로 없고 주일을 준비하는 시간이지만 주말이 주는 여유로움을 그래도 조금 더 길게 가지려면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터에서 그 동안 정리가 필요한 일들 가운데 하나를 마무리 했습니다.
시각 장애인을 위해서 좋은 책을 선정하여 음성 녹음한 CD를 언제고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도록 목록을 작성하고, CD를 여러 개 복사해서, 레이블을 만들어 붙이고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해 놓는 것입니다.
몇 시간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것이라 그날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조금씩 하다 보면 급하지 않고 덩치가 큰 일은 뒤로 미루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시간이 허락되어 도서 녹음 CD(밀알에서 사용하는 공식 명칭)와 관련된 일들을 집중해서 할 수가 있었습니다.

마음 먹은 일이 거의 마무리되고 보니 홀가분합니다.
혼자 뿐인 사무실에서 맘껏 기지개를 켜며 “아~” 소리를 내어봅니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이고 날씨는 곧 비가 올 것처럼 흐리고 나무는 알록달록 물들어가니 차 한잔 마시면 딱 어울릴 분위기입니다.
주방에 가서 둥글레차 한 잔을 타가지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다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게 되었습니다.

어라, 저 녀석 왜 저기 있는 거지?
으잉? 목에 줄도 안 묶여 있네.
어쩌자고….
일터 앞쪽에 있는 중고센터(재활용센터?) 사장님네 개 같습니다.

아침에 출근하여 차에서 내릴 때면 그 녀석이 빤히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는 그 녀석에게 눈길은 주지도 않고 묶여 있는지 확인한 다음,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떨어져 사무실로 내려옵니다.
조그만 강아지도 아니고 누런 빛을 가진 개인데 앉아 있다가 제가 지나갈 때 벌떡 일어서면 살짝 움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녀석이 거추장스러운 목줄에 묶여 있지 않음을 보여주기라도 할 모양으로 사무실로 내려오는 길에 철버덕 누워 자고 있는 것입니다.

이따가 어떻게 차 있는 데로 가지?
걱정이 아주 잠깐 되다가 궁금증이 생겨났습니다.
그 녀석은 사무실에서 4, 5 미터 떨어진 곳에 있고 사무실 철문은 닫혀 있는데 내가 소리를 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 왕” 하고 큰 개인 것처럼(???) 소리를 내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녀석이 고개를 번쩍 쳐들더니 아직까지 본 적 없는 똘망 똘망한 얼굴로 두리번거립니다.
재미있다 싶어 발도 굴러보고 으르렁거리는 소리도 내어보니 녀석은 귀를 쫑긋 세우고 더욱 고개를 이리저리 돌립니다.

그러는 중에 중고센터 사장님 부인(그냥 또 다른 사장님이라고 할까 봐요)이 창고에 무엇을 넣어두려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앗, 사장님 옆에 언제나 봐왔던 개가 묶인 채로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개가 한 마리가 아니었나 봅니다.
사장님이 물건을 넣고 가게 쪽으로 가시니 아주 길게 길게 묶여 있는 개가 따라가고 풀려 있던 녀석도 촐싹대며 따라갑니다.
흉내낼 수 있는 개 소리가 좀더 많았더라면 더 장난칠 수 있었는데….
개들은 사라지고 부디 가서 이쪽으로 오질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무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또 궁금해졌습니다.
그 녀석이 다시 와서 누워 있으려나?
그렇다면 사진으로 찍어 증거를 남겨두리라.
사진기를 들고 창문 곁으로 가보니 두 녀석 모두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 기다려보았는데 잘 보이던 묶인 녀석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사장님이 이쪽을 힐끔 보고 가셨는데 혹시 사람 있는 줄 아시고 녀석들 단속하시나 싶게 집에 올 때까지 그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언제 보았다고 아는 척 꼬리치며 달려드는 개나 모르는 사이라고 짖어대는 개나 반갑지도 않고 무섭기도 합니다.
온갖 호강 속에 사는 애완견도 예쁘지 않습니다.
아마 애완견을 가족처럼 사랑하는 이들은 저 같은 사람이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라 그런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함이 지금의 제겐 어떤 의미인지, 그 의미 있는 사랑을 어떻게 살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주말 저녁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몇 번의 주말 저녁을 보내고 있기도 하구요.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8:37-39)
<윗 글을 쓰고 며칠 뒤에 찰칵!!!>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