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하는 선생이 되기 위하여


<뒷면에 동요 가사를 써서, 보면서 불렀어요.>


한국학교에서 가까운 공원으로 나들이를 갔다. 올해 봄 학기를 마무리함과 동시에 한 학년을 잘 마친 아이들을 격려하는 자리였다. 아이들은 몇 가지 놀이를 신나게 하고 나서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이 준비한 맛있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한국학교에 빠지지 않고 출석했거나 한국어 실력 향상을 위하여 노력한 아이들을 칭찬해주고, 수료한 모든 아이들을 축하해주었다

미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학교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한국학교는 타국에 거주하는 동포의 자녀들(유치원생에서 고등학생까지)에게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기관이다. 혹은 한국어에 관심 있는 본토 학생에게도 열려 있어서, 이곳 한국학교에는 두어 명이 수업을 듣고 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미국 안에 있는 한국학교의 수가 생각보다 많았다.

재미한국학교협의회(NAKS)는 미국 전역 14개 지역협의회로 구성돼 있고 산하에 953개의 한글학교가 있으며 전체 교사 수는 7천 명, 재학생 수는 8만 명에 달하는 조직이다. 이들 한글학교는 주로 교회나 성당, 한인회 등이 주말에 운영한다”(웹진 재외동포의 창, 2012 8월호).

한국학교에서 가르친 경험이 있는 지인들의 소개로, 나는 애틀랜타에 이어서 이곳 한국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엔 대체교사로 두 번 수업에 참여했다. 그러다 어느 선생님이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어 학기를 마치기까지 남은 4주 동안 한 반을 맡게 되었다. 짧은 기간이라 아이들과 사귐이 깊지 않았지만 가르치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는 즐겁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주택가 한 가운데 자리잡은 한적한 공원에는 우리들뿐이었고 두 모둠으로 나누어진 아이들은 맘껏 뛰놀며 놀이에 참여했다. 놀이가 끝나면 반마다 부모님들과 다른 반 친구들 앞에서 장기자랑을 하나씩 하기로 되어 있었다. 제일 큰 언니 반만 K팝에 맞추어 춤을 추기로 했고 나머지 반은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우리 반은 동요인 솜사탕을 부르기로 했다. 다 같이 불러보는 연습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잘 부를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앞에 나가 섰다. 이동용 스피커에 연결된 마이크를 내 앞에 서 있는 어느 아이의 손에 쥐어 주었다. 말할 때 거의 영어를 사용하지만 한국어를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학생이었다. 그 아이는 마이크가 부담스럽다는 눈길을 내게 보내면서도 마이크는 여전히 붙들고 있었다. 나도 아이들 뒤에 서서 함께 부르기로 했다. 준비된 음악이 나오면 따라 부르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기계끼리 연결이 잘 안되었는지 음악 소리가 너무 작았다. 이미 음악은 흘러나오고 있었고 순간 나는 마이크를 든 아이에게 눈을 찡긋하고는 마이크를 다시 내게로 가져왔다. 아이들이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도록 작은 소리의 음악 대신 내 목소리를 듣고 따라오라는 판단이었다.

노래를 마치고 인사를 하다가 마이크를 가지고 있던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뭔가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이었다. 아차, 싶었다. 아이는 한글을 더듬더듬 읽기는 하지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었나? 아무런 요청 없이 마이크를 가져가 버린 것이 화가 났나? 내가 아이에게 한 행동이 짧은 순간에 스치고 지나가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마이크를 되가져온 그 순간의 내 마음은 1분 남짓한 공연의 가치를 잊고 있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준비된 상황이 예상했던 대로 되지 않고 여러 사람들이 보고 있더라도 선생은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이 끝까지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서 서툴더라도 한국말로 부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도왔어야 했다. 선생의 노래 자랑 시간이 아니었는데, 부끄러웠다.

우리 반 아이들은 선생에게 배움의 기회를 베풀었다는 것을 아직 모른다. 예수회 사제이며 영성 신학자인 헨리 나우웬은 인간은 서로에 대한 적개심(hostility)과 그들을 무조건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환대(hospitality) 사이를 오고 가면서 산다고 말하면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환대해 주는 선생은 학생들에게 자신도 베풀 것이 있다는 점을 드러내 주어야 합니다. 많은 학생들은 오랜 세월 동안 받는 입장에만 있었고 또 아직도 배울 것이 더 많다는 생각에 깊이 잠겨 있습니다. 그런 나머지, 그들은 자신감을 잃어버렸으며 자기들보다 교육을 덜 받은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동료 학생과 선생에게까지도 자신들이 베풀만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거의 안 합니다”(영적 발돋음, 두란노).

어릴 적 경험을 돌아보아도 그렇고, 선생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고 격려가 되기도 하는 것을 안다. 다음 학기에 한국학교에서 한 반을 맡아 가르치기로 했다. 그 때 아이들을 다시 만나면 학국학교 선생으로서 부족했던 마음가짐에 대해 귀한 가르침을 주어 고마웠노라 얘기해야겠다. 물론 미안했던 마음도 함께 말이다. 헨리 나우웬의 표현처럼 학생들을 따뜻하게 환대하는 선생이 되기 위한 발돋음을 해보련다.

한편, 상황에 이끌려 학생들을 환대하는 마음을 또 잃게 될 가능성이 많은 내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선생으로서 학생을 가르치기만 할 뿐 학생에게서 배우려는 마음이 옅어진다든가 학업의 성과를 드러내 보이려 한다든가 하면서 말이다. 그런 순간에 부디 주님께서 내 영혼을 일깨워 주시고 환대하는 선생의 자리로 다시금 이끌어 주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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