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성도의 교제인가


우리 교회 십자가 탑입니다. 하늘, 구름과 잘 어울려 있어서...


지난해 12월 마지막 주일에는 처음 뵙는 몇 분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그 중 한 부부는 우리 교회 권사님 부부와 아주 오래 전에 이웃으로 사시던 분들이라고 했다. 다른 나라와 주에서 한참을 사시다가 콜럼비아로 다시 이사 오셨단다. 권사님과 나누던 정이 그리워서인지 우리 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하셨다. 미국 남편 분(다문화 가정을 소개할 때 이해하기 좋게 모국을 붙여 설명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나도 따라 해 본다)은 산소 호흡기를 착용하고 계셨다. 그래도 몸이 불편하시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밝고 쾌활하셨다. 한국에서 만났던, 지금은 하늘 나라에 있는 은비가 생각이 났다. 근육과 관련된 질병으로 누워만 있던 예쁜 아기, 그 아이도 산소 호흡기를 끼고 예배에 빠지지 않았었다. 몸은 아파도 예배를 지키려는 사람들…… 가슴 뭉클한 깨달음이 새로 오신 분들로부터 전해졌다.

또 다른 한 분도 타주에 사시던 집사님인데 미국 남편분의 직장을 따라 이곳으로 이사오신 분이다. 다문화 가정을 갖고 있는 집사님은 가족이 한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기를 원하셨다. 얼마 전 한국 음식점에서 우리 교회 어느 권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우리 교회에서 예배 드릴 때 동시통역이 가능하다는 정보를 귀담아 들으셨던 것 같다. 집사님의 남편은 평일에 우리 교회를 방문하여 외관을 둘러보고 놀이터가 잘 꾸며져 있어 맘에 드셨다고 한다. 아이들을 위하는 교회는 따뜻한 교회라고 판단하신 것 같다. 놀이기구가 작고 오래 되어 2 년 전인가 십시일반 헌금하여 새것으로 바꾸었다. 그것이 누군가의 마음을 끌어 교회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다니 신기했다. 놀이터에 우리 교회 아이들에 대한 교우들의 애정이 묻어 있었나……

이런저런 사연으로 처음 만나게 된 분들과 예배를 함께 드린 날은 한 해를 돌아보는 마지막 주일이기도 하고 한편, 새해를 새해답게 맞이하고자 하는 새로운 다짐을 하는 주일이기도 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예배를 드려서 그런지 목사님의 설교도 다른 때보다 더욱 힘차고 다부지게 들렸다. 창세기에 나오는 롯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약하고 부족한 죄인이었던 롯을 위해 기도하는 삼촌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며, 천사들을 보내어, 죄악의 구렁텅이인 소돔과 고모라에서 그의 가족을 구출해내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절히 느껴지는 설교 시간이었다. 게다가 우리 교회 예배에 처음 참석하신 집사님은 설교 시간 내내 아멘으로 어찌나 힘차게 화답하시는지, 정신이 번쩍번쩍 나고 설교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예배가 끝나고 교우들이 그 집사님과 인사 나누는 것을 들어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나 보다. 지난해 마지막 주일, 그 낯선 분들은 나와 우리 교우들에게 그렇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헤어졌다.

이틀 뒤, 저녁 때가 되면 교회에서 모여 떡국도 먹고, 윷놀이도 하고,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멘집사님으로부터 당황스러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함께 예배 드린 다음 날, 그러니까 월요일에 집사님네 이삿짐이 도착했다고 한다. 온 가족이 이삿짐을 풀고 있었고 집사님의 남편은 세탁기를 연결하고 계셨다. 그러다 남편 분께서 쓰러지셨고 응급실로 가던 중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50 대 후반이셨는데 지병이 있으셨나 보다. 왕래가 거의 없던 결혼한 큰 딸이 노스캐롤라이나에 살고 있으나 콜럼비아에는 아는 이가 하나도 없는 집사님이셨다.

고인이 되신 집사님의 남편은 은퇴한 군인이셨는데, 장례 절차를 간소하게 하고 화장을 하여 군인묘지에 안장해 달라고 평소에 유언하셨다고 한다. 집사님은 콜럼비아에 있는 군인국립묘지 측과 상의하여 화장 절차를 진행할 것이고, 유족들과는 교회에서 추모 예배 드리기를 원하셨다. 이러한 집사님의 사정은 우리 교회 온 교우들에게 빠르게 전해졌다. 교우들은 한 번도 뵙지 못한 분의 추모 예배를 준비하는 것에 대해 예 혹은 아니오, 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가 해야 될 일로 받아들였다. 여선교회에서는 음식 그리고 남선교회에서는 꽃을, 유족들이 준비하는 것 외에 필요한 것을 예측하여 마련했다. 교우들은 차분하게, 정성을 다해 고인과 유족을 위한 예배에 마음을 썼다. 우리 교회 교우들이 한마음 되어 동참하는 모습이 따스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또 감동적인 것은 그 집사님이 다른 주에서 다니던 교회의 교우들이 자동차로 22시간 운전하여 먼 길을 달려오신 것이다. 같은 목장에 속해 있던 회원들이신데 집사님네 소식을 듣고 세 분이 바로 출발하셨다고 한다. 집사님과 오랜 친분이 있는 그 세 분은 남편과 아버지를 여의고 낯선 곳에서 살아가야 할 유족을 위로할 뿐 아니라 며칠 동안 추모 예배에 오실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푸짐하게 만드셨다.

지난 토요일에 추모예배를 드렸다. 예배가 소홀해지지 않도록 사회, 설교, 기도 등 모든 것이 이중언어로 진행되었다. 애달픈 조가도 불려졌다. 조문객이 너무 적어 쓸쓸하면 어쩌나 했는데 아주 적지도 않았다. 집사님 큰 딸의 미국 시아버지가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어느 미연합감리교회 목사님이시라고 들었다. 그 목사님 부부가 예배에 참석하셨다. 내가 다 감사했다. 고인의 화장 일정을 담당할 군인들도 참석했다. 추모예배와 교제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진행되었다. 멀리서 오신 집사님의 옛 교우들은 주일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며 점심식사를 마치고 바로 떠나셨다.

단 한 번 예배를 같이 드림이 인연이 되어 누군가의 아주 슬픈 일에 함께 울어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마음은 무엇인가? 함께 신앙 생활했으므로 갑작스런 사고에 슬퍼하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멀고 먼 길을 달려오는 그 마음은 또 무엇인가? 이것이 성도의 교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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