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P (2)


Prom 2013


 
앞으로 두 번 정도 남은 IEP 미팅이라도 잘 해보자는 생각으로 일 년 전 받았던 IEP 서류를 꺼내 다시 훑어보았다. 모든 학교 생활이 끝나면 부모와 같이 산다고 하더라도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전자레인지를 이용하여 간단한 음식 조리해 먹기, 식기세척기나 세탁기 사용하기, 시계보고 시간 알기, 동전과 지폐의 가치 알고 헤아리기, 일터에서 다른 사람의 건설적인 비판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기…… 이러한 목표들을 학교에서, 집에서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 묻고 답하게 될 것이다.

다음은 직업훈련과 관련된 질문을 적어보기 위해 강산이가 그 동안 일했던 곳과 맡겨진 일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살펴보았다.

여기 지역 과도기 학급(transition class, 만 18-21 세)의 직업훈련은 기본적으로 다니던 고등학교에 출석하면서, 학교 안에서 일하는 것(school-based work experience)과 지역사회에서 일하는 것(community-based work experience)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참고로 전에 살았던 곳에서는 직업훈련이 ADAPT(Assisting Developing Adults with Productive Transitions)STRIVE (Supported Training and Rehabilitative Instruction In Vocational Education) 프로그램으로 나뉘어 있다. ADPAT는 다니던 고등학교에 계속 머무르면서 학교와 지역사회를 경험하는 프로그램이다. STRIVE는 교육 시간 내내 일터로 직접 나가서 직업 훈련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이것 역시 공교육 과정에 들어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4 년을 마친 후 이 두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주마다 다르고, 같은 주라도 카운티마다 조금씩 다르다. 사실 강산이를 통해 미국의 특수교육을 아주 조금 경험했을 뿐 새로운 현실에 맞닥뜨리면 여전히 어리바리 하다.

강산이네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직업훈련은 학교 소식지 발송을 위해 라벨 붙이기, 온실 관리, 일정 지역 청소 등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강산이가 지역사회에서 했던 일은 피트니스 센터에서는 수건 정리하는 일, 백화점이나 Family Thrift shop(재활용품 파는 곳)에서 옷 따위를 옷걸이에 걸어 진열, 정리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USC School of Medicine(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 약학대학)에서는 사무실 업무 보조 역할로 편지 발송을 위한 라벨 붙이기와 간단한 서류 정리를 했다고 한다. 직업훈련과 관련되어서는 실습을 나간 곳에서 강산에게 맡겨진 일들을 잘 하고 있는지, 어떤 일을 가장 재미있게 잘 하는지를 꼭 물어보리라 적어두었다.

그리고 강산이가 학교 밖에서 잘 하고 있는 일 한 가지를 더 적어두었는데, 교회 재정부에서 집사님들을 도와드리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집사님들이 헌금 정리하시는 시간에 강산이가 교회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일마다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 같아 집사님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하루는 사무실 문을 살짝 열고 강산이 보고 그만 나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집사님은 괜찮다고 하셨다. 그래도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한 집사님께서 강산이가 어디 있느냐며 찾으셨다. 재정부 일 볼 시간이라면서 말이다. 집사님은 일부러 강산이와 함께 일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집사님들 곁에 강산이의 자리를 마련해주신 그 배려에 어찌나 감사하던지…… 강산이가 사무실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모른다. 그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재정부 일이 끝났는지 종이 두 장을 들고 나온다. 그 중 하나인 헌금 수입 보고서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교회 게시판에 걸어두고, 다른 하나인 재정보고서는 재정부장님과 목사님의 사인을 받아가지고 간다. 그 일을 하는 동안 강산이의 걸음은 얼마나 힘찬지 모른다. 이 사실을 IEP에 가서 얘기하고 싶어 잘 보이게 적어놓았다.

정해진 IEP 미팅 시간보다 조금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 현관에서 체크인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의실이 있는 3층으로 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는데 마침 강산이와 담임 선생님이 엘리베이터 문 앞에 와 있었다. 회의실이 1층으로 바뀌었다며 내려가자고 했다. 엄마가 학교에 온다고 강산이가 많이 좋아라 했다며 선생님께서 전해주셨다. 선생님이 그 말을 하는 바람에 금방 잊었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 두 사람을 만나지 못했으면 조금 헤맬 뻔 했다. 학교가 생각보다 넓고 복잡하다.

담임 선생님은 회의를 시작하자며, 그 동안 여러 차례의 IEP 미팅을 하느라 애쓰셨을 텐데 오늘이 마지막 회의가 될 것이라, 고 말씀하셨다. 2014 1월에 강산이가 스물 한 살이 되므로 이번 학년도가 마지막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장애 학생은 스물 두 번째 생일 전 날까지, 그러니까 교육 받을 수 있는 21 세까지는 꽉 채워 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면 강산이는 이번 학년도가 끝나는 2014 6월이 끝이 아니라 스물 두 살 생일이 들어있는 2015 1월이 끝이어야 하는 것이다. 내년 6월이 끝인지 몇 번 확인을 했는데 그렇다는 것이다. 한 학기 일찍 학교를 마친다고 해서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게다가 학교 심리학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강산이가 학교를 마친 후에 일할 곳을 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강산이가 자원봉사든, 보수를 받든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생긴다는 것은 사회와 소통하는 길 가운데 중요한 하나다. 그 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것일지라도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어떤 노력도 하기 전에 단정지어 얘기하는 것 같아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한편 일터와 더 먼 거리에 있는 중증장애인들을 생각하면 강산이의 경우는 투정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은 강산이가 지난 IEP 목표들을 대체로 잘 수행했다고 평가해주셨고, 나는 준비해간 직업훈련과 관련된 질문들을 주로 했다. 선생님은 강산이가 특히 사무실 업무를 좋아하고 잘 한다고 하셨다. IEP 초안에도 사무실 일과 관련된 기술들을 강화하는 계획들이 들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의 약학대학 사무실에서도 일을 아주 잘 했다고 하셨다. 강산이가 교회 재정부에서 일을 돕고 있다는 것도 비슷한 종류의 일인 것 같아, 선생님의 평가에 이어 자연스럽게 잊지 않고 얘기할 수 있었다. 보통은 IEP 회의에 가도 난 그다지 말이 많지 않은데, 이번엔 미리 준비한 얘기가 적절하게 강산이의 강점을 드러내는데 도움을 준 것 같았다. 신기하고 감사했다. 담임 선생님은 이번 IEP모임을 한 장에 정리한 문서를 나중에 보내주셨는데, 강산이가 사무실 업무를 더 잘하기 위해서 지역 내 다른 교회나 미술을 가르치는 사무실 등에서 훈련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것은 잘 되었다.

또 마지막 IEP 모임이기 때문에 가디언십(Guardianship, 장애인의 법적인 후견인을 세우는 일)이나 직업재활센터에 대한 정보를 다른 때보다 구체적으로 제공해주었다. 데이케어(day care, 주간보호시설)에 대해서는 지난 번과는 달리 언급하지 않으셨다. 언젠가 방문하여 알아본 데이케어 종일반에 다닐 경우 매월 3,000 달러 정도의 비용이 든다. 또 현재 어느 장애학생이 다니는 데이케어에서도 그 정도의 비용을 받는다고 그 어머니로부터 들은 바 있다. 이 비용은 개인적으로 부담하기도 하고, 메디케이드 웨이버(Medicaid waiver, 연방정부가 정한 기준에 해당되는 장애인에게 주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주정부가 그 비용을 담당하게 되므로 장애인 본인은 무료로 데이케어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메디케이드 웨이버 대기자가 몇 천명에 이른다. 여기는 5,000 명 정도 된다고 했다. 강산이가 데이케어를 이용하려면 그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와우! (더 적은 비용으로 다닐 수 있는 주간보호시설이 있는지, 이것을 지원하는 정부차원의 다른 서비스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와우! 반면, 만약 저렴한 비용으로 다닐 수 있는 데이케어가 있다면 애틀랜타에서 만난 여러 장애우들이 다니고 있었을 텐데 그 당시에는 내가 만난 이들 중에 한 명도 없었다.)

회의를 마치고 갑갑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가면 되겠지, 하면서도 산 넘어 산 같이 여겨진다. 당장 의문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도 해서 그 짐을 덜어내리라. 애틀랜타에 살 때 알고 지내던 어느 장애학생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공립학교에 언제까지 다닐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역시 내가 알고 있던 대로 스물 두 번째 되는 생일 전 날까지 다니는 거라고 했다.

나는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냈다. 애틀랜타에서는 스물 두 살 생일이 되는 전 날까지 학교를 다니는데 강산이에게 이번 학년도가 마지막인 것이 맞느냐고 말이다. 선생님은 바로 답장을 주셨다. 주마다 법 적용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 정책에 따르면 21 세 생일이 들어 있는 학년도까지만 학교에 다니게 되어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내년 6 6일이 마지막 날, 맞는다고 하셨다. 자세한 설명을 해주어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답글을 보내드렸다.

보통은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나 직장을 갈 나이쯤 되면 부모의 품을 떠나는데 우리 강산이는 더 가까이 오게 된다. 강산이가 학교를 다 마친 후의 삶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패턴의 삶이 딱 한 학기만큼 더 가까이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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