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아니오




요즘, 아니 몇 달 전부터 “예” 할 때와 “아니오” 할 때는 언제일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예, 아니오 하는 것이 좋을까, 자꾸 생각해봅니다.

눈길이 닿는 그 무엇을 보다가도 그 생각이 문득 문득 떠오릅니다.
운전을 하다가 빨강색 신호등을 보고 멈추어 섰다가, 신호등 불빛처럼 분명한 자기 표현이 좋은 거야 해봅니다.
신호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능력인 빨강, 노랑, 초록의 빛을 적절한 때에 바꾸어 교통의 흐름을 조절하듯, 자기에게 어떠한 능력이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은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때로 예와 아니오가 너무 분명한 사람은 능력 있어 보이고 깔끔해 보이지만 인간적인 맛이 덜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교회 화단에 중고등부가 심어놓은 꽃들 가운데 여러 가지 빛깔로 조화롭게 피어 있는 꽃에 눈길이 머물면서, 분명한 자기 색깔은 없어도 저렇게 예쁠 수 있는데, 해봅니다.


우리 집에서 교회를 가다가 둘루스 시내쯤 되는 곳에 속도 제한이 35마일로 바뀌는 곳이 있습니다.
보통은 45마일로 달릴 수 있는데 그곳에 가면 갑자기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길가에 상가들이 있어 사람들의 통행이 다른 길보다 많을 수 있어서인지(?)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 길에 들어서면 달리던 속도를 확인하게 되고,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운전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그곳에 서 있는 속도 제한 표지판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자신보다는 이웃을 향하여 한걸음 더 나아가는데 예와 아니오를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능력이 있지만 조금 천천히 가는 길을 선택하는 아름다운 사람도 있는데, 하면서 생각의 고리를 이어갑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어지럽습니다.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의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Yes)하고 아니라(No)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Yes)만 되었느니라 /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Yes)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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