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기 보다는 진솔하게


20여년 전 신학생 때 인천 어느 교회에서 봉사하던 때였습니다.
청년부 형님들이 한 달에 한번씩 봉사하러 가는 곳이 있는데 저보고 찬양과 율동을 인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율동을 하려면 마음처럼 잘 되지 않지만 그때는 한참 젊을 때라 봐줄만했는지 부탁을 받았고, 저는 또 부탁해준 것이 고마워서 그러마 했습니다.
그런데 찬양하고 율동하는 것은 괜찮은데 봉사하러 가는 곳은 장애우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장애우에 대한 아무런 생각도 관심도 없던 터라 알 수 없는 부담감이 조금 있었지만, 내가 맡은 것만 하면 되겠지, 했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찾아간 곳은 특수학교였는데 교실 하나에 꽤 많은 장애우들이 모여있었습니다.
물리치료 기구들이 있는 교실이었는데, 많이 낯설었지만 찬양을 시작했습니다.
찬양을 인도하면서 그들의 모습을 보니, 찬양도 많이 알고 있고 정말 기쁘고 즐거운 모습으로 찬양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신기해 보였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잘 지나갔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찬양이 끝나고 다음 순서가 진행되는 동안 장애우들과 섞여 앉아 있는데,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들 앞에 조금 서있었다고 서로 제 옆에 와서 앉으려고 하고 저를 만지려고 하는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습니다.

장애우에 대해 관심은 그만두고, 왜 그들이 그곳에 주일 오후에 모여 있었는지, 20명쯤 이었는지, 30명쯤 이었는지, 찬양 인도를 더 부탁 받았었는지 지금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뒤로 그곳에 다시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제가 결혼을 했고, 찬양을 엄청 좋아해서 가사와 율동을 아주 많이 외우고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만지려고 하고 껴안기를 잘 하는,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는 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장애우 선교단체인 밀알에서 일을 하고 있고요.

이렇게 자세하게는 아니고 부끄럽지만 교사준비모임 때 이 이야기를 대부분 고등학생이거나 대학에 갓 들어간 자원봉사자들에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참 좋은 선택을 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뭐 딱히 왜 좋은 선택인가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미 밀알에서 봉사하겠다고 찾아온 이들인지라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통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나누는 사랑만큼이나 많은 것을 배우고 얻고 갈 수 있을 것이라고요.

밀알 여름학교 3주 동안 자원봉사자들을 보면서 참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대학 가려면 봉사한 기록이 크레딧(credit)이 된다고 하는데, 이것과는 상관없이 그들의 따뜻하고 살가운 배려들을 엿볼 때마다 아직 어린 저들의 마음 어디에서 저런 사랑이 흘러나올까 자못 놀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안아주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를 하루 종일 안아주고, 바닥에 누워있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서는 다른 아이들에게 밟힐까봐 자기가 막아서 앉아 있어주고, 축구를 하면서도 우리 아이들에게 공을 한번 더 차게 해주려고 자연스럽게 공을 밀어주고, 밖에 나가고 싶어하는 아이를 위해서는 휠체어를 밀어서 돌아다니게 해주고, 음식을 잘게 잘라 먹여주고 닦아주고, 고집부리면 기다려 주고…

그리고 무엇보다 3주 동안 거의 빠지지 않고 나와서 자기 맡은 일을 했던 봉사자들과 해마다 정성스런 점심을 제공한 교회와 교우들에게는 고마운 마음도 보태어 감동입니다.
첫 목회를 했던 강화에서 목회자 부인들이 노인들과 장애인들이 살고 있는 시설에 빨래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리면 좋겠는지 시설 관계자에게 물으니, 물도 잘 나오지 않고 세탁기도 작은 것 밖에 없어서 이불 빨래를 자주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불을 빨아주겠다고 했더니 그 관계자가 덧붙이는 말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정기적으로 꾸준히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번 여름학교를 하면서 그때 들었던 그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어렴풋이 느껴보았습니다.

오늘 밀알에서 3주 동안 있었던 여름학교를 마쳤습니다.
밀알을 진하게 경험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밀알 학생과 그 가족들과는 조금 더 가까워지고 좀 더 깊이 아는 기회가 되었고, 자원봉사자들의 섬김이 얼마나 귀하고 고마운지 다시 깨닫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짧은 시간 동안 밀알에 대해 다 알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오늘 찍은 사진도 정리하고, 여름학교를 마친 느낌을 글로 적어볼 자원봉사자도 연락하고, 주변 정리도 하려고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장애우와 가족, 봉사자들의 사랑이 더 넘쳐나서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는 밀알이기 위해 저 또한 태워지고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야 할 텐데 아직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이 한참이나 모자란 사람인줄 알기에 완벽한 것 보다는 진솔(眞率)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것도 말처럼 쉽지 않은 줄 알지만 그런 바람을 가지고 살으렵니다.
그렇게 애쓰며 살다 보면 지금 보다는 좀 더 진실하고 솔직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 이같이 너의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5: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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