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차게 나아가야 할 시간


첫 목회를 시작했던 강화 성은교회입니다.
남편의 고향 마을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교회 뒤로는 야트막한 동산이 있고, 앞으로는 들판이 있는 확 트인 언덕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좋은 쌀, 감과 밤이 많이 나고, 강화에서도 제법 큰 저수지가 가까이에 있는 경치 좋은 교회이기도 합니다.

교회 이름이 남편 이름과 같아서, 남편이 개척한 교회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호호호.
아무리 교회를 개척한다고 해도 자기 이름으로 교회 이름을 지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 재미난 질문을 하시는 분이 꽤 많았습니다.
그러면 아니오, 하고 웃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남편이 말하길, 자기도 이 교회에서 목회하게 된 것이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결혼을 해서 그곳에 살 때도 오고 가는 버스가 자주 있지 않은 때였으니, 남편이 어렸을 적에는 어지간한(?) 거리는 거의 걸어 다녔다고 합니다.
한편, 남편은 모태 신앙으로, 어머님께서 아들을 주시면 목회자로 키우기로 서원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은 어려서부터 목사가 되는 꿈만 가지고 살았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라던 어린 남편이 성은교회 앞을 지나 걸어갈 때면, 자기 이름이랑 같으니까 이 다음에 커서 이 교회에 와서 목회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곤 했답니다.
“예사롭지 않은 끌림이 있었지” 라고 남편은 말합니다.


첫 목회지 성은교회는 신학교를 졸업했다고는 하나 나이도 어리고, 세상 경험도 많지 않은 젊은 목회자를 목회자로서의 첫 발을 내딛도록 키워준 부모님 같은 교회였습니다.
하나씩 배워나가는 목회가 서툴고 어설퍼도 교우들은 예쁘게만 봐주셨습니다.
그나마 교육 전도사를 하다가 목회를 나온 터라, 교회학교를 섬기는 일은 나름 참신한 아이디어로 동네 아이들과 중고등부 학생들이 재미있어 했던 것 같습니다.

아! 남편이 목회자로서 듬직해 보이던 것 가운데 하나가 지금 기억났습니다. ^^
농촌이라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많이 계셨고, 그래서 초상을 치르는 일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신학교에서 저는 배운 기억이 없는데, 남편은 어디서 배웠는지 임종예배서부터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위로예배,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를 의젓하게 인도합니다.
그 모습은 언제 보아도 목회자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성은교회를 섬기는 동안 저희 가족이 가족으로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목회를 나가고 서너 달 지나서 결혼을 급하게 하게 되었고, 첫 아이를 낳은 곳이고, 목사 안수도 받았고, 둘째 아이를 태중에 갖게 된 곳이기도 합니다.

아버지 같은 장로님들과 어머니 같은 권사님들의 사랑을 저희 가족이 듬뿍 받으며 목회를 하다가 사임을 하고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삿짐을 다 싸고 교회 앞에서 장로님과 몇 분 교우들과 마지막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제가 울음을 참지 못하고 그만 통곡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자로서 첫 사랑을 나눈 교회이고, 저희 가족을, 특별히 장애아인 첫째 아이를 마음으로 받아주시고 함께 키워주신 교우들을 두고 떠나는 것이 죄송스러워 꺼이꺼이 많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교우들과 연락을 안 하고 살았습니다.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마음에 없어서가 아니라, 맡았던 교회에 온 후임자를 위한 배려이고 새로 담임하게 된 교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담임했던 교회의 교우들과 관계를 의도적으로 지속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일 어르신 장로님께서 큰 아이는 잘 있냐,며 전화를 주셨습니다.
말이 별로 없으시고 살짝 까다로우신 장로님이셨기에 그저 안부를 묻는 전화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뒤로 어~쩌다가 한번씩 전화를 해서 가족들의 안부를 물어오셨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는 팔순 잔치에도 초청해주셨습니다.
“장로님, 안 그런 척 하셔도, 이제는 전화 연락이 안 되어도 장로님의 그 따뜻한 마음, 저희 마음 속에 잘 간직하고 있어요. 건강하게 지내시는 지….”

성은교회에서의 첫 목회를 시작하여 올해로 목회도, 결혼도 20주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목회 현장에서 한 발 물러선 채로 몇 개월을 보내면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교회에서 전문적인 사역자로서 열심히 감당하는 것이 남편의 소명이고 또한 제 소명이기도 한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지난 20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목회 현장 가운데로 힘차게 나아가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첫 목회에서 가졌던 열정과 순수함에, 하나님을 경험한 삶과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좀 더 깊어진 사랑을 더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목회를 정성껏, 천천히, 신나게 해보고 싶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 장로로 있는 이들에게, 같은 장로로서,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함께 누릴 사람으로서 권면합니다. / 여러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십시오.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진하여 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여 할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십시오. / 여러분은 여러분이 맡은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 그러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변하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베드로전서5장1절-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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