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2009

들꽃처럼


어제 그제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옆에 있는 앨라배마 주에 토네이도가 지나가는데 그 영향으로 조지아 주에도 비가 많이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몇 해 동안 가물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비가 반갑기도 한 것 같습니다.

비 오기 전 날씨가 좋을 때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를 타러 가다가 들꽃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들꽃에 유난히 눈길이 가곤 했는데, 들꽃이라는 것이 그다지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차를 타고 다니면 더더욱 보기가 어렵습니다.
건물에서 주차장까지 몇 걸음 되지 않지만 교회 주차장 언저리랑 밀알 주차장 둔덕에서 똑같은 들꽃을 보게 되었습니다.

몇 해 전 하이 패밀리 가정사역 아카데미에 다닐 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글로 표현해 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쑥쓰럽지만 제 자신을 들꽃 같은 사람이라고 해보았습니다.

“빈들이나 험한 산골짜기 혹은 도시 아스팔트 틈새에도 피어나는 들꽃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참 비바람과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쳐도 어김없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올립니다.

또 들꽃은 수수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들꽃은 작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모습이 온화하며 은은한 향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편안한 마음으로 작은 미소를 짓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이는 이제 열매에 자신을 실어 바람에 날려 보내고 있습니다.
한 무더기 꽃으로 피어나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줄 꿈을 꾸며,
사람 곁으로, 또 한 사람 곁으로.”

그렇게 살고 싶어서 쓴 글이었기에 글을 출력하여 눈에 띄는 화장대 유리 밑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왜 들꽃이야? 향기 좋고 보기 좋고 누구나 좋아하는 백합이나 장미면 안 되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들꽃 같은 것이나 좋아하고, 모든 일에 “정성껏, 천천히”, 뭐 이런 생각 가지고 있으니까 그저 그렇게 사는 것 아닐까 싶은 거예요.
아마도 제 자신에게 만족스럽지 못할 때 들었던 생각인 것 같습니다.


요즘 읽게 된 이해인 님의 「풀꽃단상」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진정 풀꽃 같은 삶이란 어떤 삶일까.
그저 순하고 부드럽고 여린 낭만적인 모습의 삶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척박한 땅 속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강인함, 아픔을 견디는 인내, 도전을 두려워 않는 용기를 지녀야만 감히 풀꽃을 닮은 삶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다.”
들꽃, 풀꽃에서 이해인 님의 글과 같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이해인 님은 나태주 시인의「풀꽃」이라는 시를 외우노라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저도 읽어보니 또한 그렇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미 주신 많은 것에 감사하며 , 그냥 “나는 나다(I am I)”하며 살아야 하려나 봅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4:4)

3/20/2009

또 다른 처음을 살며

“일하는 건 어때?”
“괜찮아요.”
“너무 피곤하지 않게 해.”
“네~, 피곤하면 자요. 호호호.”
“그래, 잘 자고, 잘 챙겨 먹고.”

며칠 전에 강화 어머님께 전화 드렸더니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 집에 계시는 동안 밀알에 일하러 나가는 것을 몇 번 보시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밀알에 일하러 나간 지 삼 주가 지나갔습니다.

사무나 행정에 대해 해야 할 일들을 하나 둘씩 해보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거의 컴퓨터로 작업해야 하는데, 참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저의 컴퓨터 사용 능력이라는 것이 남편이 설치해 놓은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료를 조금씩 업데이트 시키는 것이라든지, 제 블로그를 관리하는 것이라든지, 워드 프로세서를 조금 다룰 줄 아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입니다.

밀알에서 일하는 것이 결정되기 전, 인터뷰할 때 컴퓨터에 대한 실력은 미리 얘기한 바 있으나, 막상 일이 시작되자 일이 되도록 앞으로 나아가는 것 밖에는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물어보고, 또 물어보며 배우고 있습니다.
같이 일하는 간사님은 귀찮을 법도 한대 착하게도 다 가르쳐줍니다.
단장 목사님께 “ 잘 안 돼요”하면 “잘 해 보세요”하며 기다리십니다.
그러고 보면 밀알에서 아주 큰 믿음을 가지고 저를 채용하신 것 같습니다.

조금 다행인 것은 몰랐던 것을 배워서 일을 해결할 때의 기쁨이 크기 때문에, 잘 몰라서 받는 스트레스를 덮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넌 할 수 있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터무니없는 자신감도 그런대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밀알 일꾼으로서 몇 주가 지나면서, 기계를 다루는 능력도 필요하려니와 거기에 밀알이 썩어져서 열매로 맺힌 어떤 마음들을 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기능적인 것을 어느 정도 익히고 나면, 제가 관여할 수 있는 영역(?)에 따뜻한 웃음, 사랑, 관심, 행복, 그런 것들을 곁들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만 한가득 입니다.^^
이런 저는 뭘 믿고 일하겠다고 했는지, 참.
쩝쩝쩝...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순간들을 맞이하며 살아갑니다.
조금 아까와는 다른,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새로운 시공간 속에서 말입니다.
알아채든 알아채지 못하든 늘 새로움 속에 있게 됩니다.

밀알의 일꾼이 된 것은 제 삶에 있어서 엄청나게 놀랍고 새로운 시작입니다.
밀알과 함께 하는 동안 값진 사랑을 배우고 경험하게 될 것이며,
나눌수록 풍성해지는 비밀을 열어보이게 될 것입니다.

기도해주십시오.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믿음과 실력, 지혜와 능력, 겸손과 용기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주십시오.

특별히 기도의 용사, 어머님!!!
우리 가족을 위해 얼마나 기도를 열심히 하실지 압니다.
얼마간 이 며느리를 위해서 더 간절히 구해주십시오.

엄마도 마찬가지!!!
엄마가 드리는 중보기도의 꼼꼼함도 잘 알고 있고요.

이래저래 기도의 자리로 이끄는 사순절입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40:29-31)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6-19)

3/13/2009

봄꽃을 보는 기쁨


3월 첫날에 눈이 많이 내려 꽃을 세상에 막 내어놓은 나무들은 어떻게 하나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겨울을 지내고 나온 꽃봉오리들이라 그런지 어쩌다 내린 눈에는 끄떡없었습니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면서 여기저기서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나무들이 고운 빛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주 시작할 때는 날씨가 갑자기 여름이 된 것처럼 덥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봄은 봄인지라 옷을 가볍게 입으면 바깥 활동하기에 그만이었습니다.
수요일쯤 되니까 건물 안에 있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땡땡이를 쳤습니다.
영어 수업이 30 여분만 있으면 끝날 텐데, 집에 가기 전에 장볼 것이 있음을 핑계 삼아 교실에서 일찍 나와 버렸습니다.

지하에 있는 교실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건물을 빠져나왔을 때, 마치 고등학교 때 몸이 아프거나 해서 일찍 조퇴를 하고 거리로 나섰을 때와 비슷한 느낌!!
보통 때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주차장과 거리가 더 한가해 보이고 여유 있어 보였습니다.

남편이 좋아하는 오렌지를 파는 곳으로 천천히 차를 몰아갔습니다.
나무마다 물이 오르고 꽃이 한가득입니다.

눈에 가장 많이 띄는 것은 하얀 꽃을 피운 나무입니다.
더그우드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어쩜 그리도 풍성하게 꽃을 안고 있는지 볼 때마다 탐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또 함박웃음을 웃고 있는 듯한 하얀 나무를 많이 보다가, 분홍빛 벚꽃나무나 자주빛 목련을 어쩌다 만나면 느낌이 사뭇 달라집니다.
그 모습이 우아하고 세련되어 보인다고나 할까요.
이들이 있어 봄꽃의 색이 단조롭지 않은 것 같아 반갑습니다.

장보기 위해 도착한 곳에 이 두 가지 빛의 꽃을 모두 만나게 되었습니다.
몇 가지 과일만 사고 나와서 한껏 여유를 부리며 사진에 담아 보았습니다.


지난 해 이맘때는 미국으로 이사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자가용도 없고 해서 거의 집에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꽃이 많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 보지는 못했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봄을 다시 맞이하니 이제는 이곳에 찾아온 봄이 조금씩 눈에 들어옵니다.
아마도 봄을 느끼는 만큼 이곳 생활에 대한 긴장감도 풀려가는 것일테지요.

삶 속에서 누리는 모든 것들이 고마워지는 순간입니다.
풍성한 봄꽃을 보는 기쁨을 주신 것도 감사하고.....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딤전4:4-5)

3/06/2009

지금 알차게 살다보면...

**3월 첫날, 눈이 많이 왔어요. 이곳에서는 몇 년만의 일이랍니다. **

2월 중순을 넘기면서 세 권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소설이 읽고 싶어 한국에 있는 동생(사실은 동서)에게 부탁했더니 여러 권의 책을 부모님들 편에 보내왔습니다.
그 가운데 박완서 님의 단편들을 모은 『친절한 복희씨』가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어떻게 이렇게 노인네의 마음을 잘 헤아릴까 싶게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소설들이 끝나고 책 뒷부분에 실린 해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70대 후반의 노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해설자는 작가가 노년이라는 것 이상으로, 노인이기에 가능한 세계 인식, 삶에 대한 중후한 감수성, 이것들에 따르는 지혜와 관용과 이해의 정서가 품어져 있는 작품세계를 드러내기에(285쪽) 노년문학이 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설이 문학사에 있어서의 가치, 뭐 그런 것은 잘 모른다 하여도, 작가는 나이가 든 자신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을 조화롭고 충실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만은 분명하게 남았습니다.

다른 두 권은 아틀란타 밀알선교단과 관련되어 읽게 된 책들입니다.
세계밀알 총재이신 이재서 교수님의 『내게 남은 1%의 가치』, 그리고 이승복 님의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이재서 교수님은 열 다섯 살에 실명하여 시각장애인이 됩니다.
눈은 몸의 99%라는 통념대로라면 자신에게 남겨진 것은 1%이지만 하나님을 만난 다음 그 1%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습니다.
집 안의 가난과 세상의 온갖 편견 속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꿈을 키웁니다.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총신대에 들어가서 장애인을 위해서 전도, 봉사, 계몽을 목표로 하는 밀알선교단을 시작하게 되고, 장애인 선교 사역은 성경 지식만으로는 어렵다는 현실 인식과 세계 장애인을 위한 선교 기구를 세우기 위해 미국에서 유학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복지정책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고, 그의 꿈대로 세계 곳곳에 밀알선교단을 세우게 됩니다.

이승복 씨는 여덟 살에 미국에 이민 와서 부모님과 조국에 기쁨을 줄 수 있는 길을 찾다가 체조 선수가 되기로 합니다.
호기심과 열정이 가득한 그는 늦게 시작한 체조 선수 생활에서도 두드러지게 됩니다.
올림픽에 한국 선수로 출전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연습하던 중 사고로 척추손상을 입습니다.
열여덟 살 체조 선수로 촉망받던 그는 사지마비 장애인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장애를 얻은 것에서 끝나지 않고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 자랑스런 한국인이 되기 위한 꿈을 갖습니다.

요즘 신문에 미국 명문 다트머스 대학 총장에 한국인이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슈퍼맨 닥터 리라고 불리는 이승복 씨는 바로 그 다트머스 의대와 하버드 인턴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합니다.
그리고 존스 홉킨스 병원 재활의학과 수석 전공의가 되어 재활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닥터 리는 자신에게 장애는 축복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을 믿고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우리 가족이 이민자로서의 삶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막 지났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신기했던 것은 길지 않은 시간인데도 이곳 생활을 경험하지 않았을 때는 심드렁하게 읽었을 것 같은 미국을 배경으로 한 글들이 마치 바로 제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처럼 여겨졌습니다.

또 하나는 “No pain, No gain"의 내용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는 저자들을 보면서 삶에 대한 용기도 얻지만, 이민자이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어떻게 살 것인지 아직도 저에게는 또렷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남편과 늘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남편과 제가 분리된 것 같다고나 할까요...

이번 주부터 자연스럽게 밀알선교단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장애인, 장애인 가족, 그리고 장애인 선교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이들과 사귀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지금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