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2014

두려움 없이 기도로 나아가기


<미국으로 이사올 때 친구가 만들어 준 십자가>


요즘 새벽기도 시간에 기도하다 보면 입이 근질근질해진다. 기도 소리가 슬금슬금 닫힌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온다. 종알종알 읊조리다가 어느새 커져버린 내 목소리에 놀라, 다시 기도 소리를 안으로 삼켜버리고 만다. 몇 년간 새벽에 침묵 기도(언제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었다. 미처 떨쳐내지 못한 졸음이나 잡생각에 빠져 있던 적도 꽤 많다)로 일관해 왔다. 그런데 마음에 생긴 갈급함이 소리를 타고 입 밖으로 자꾸 쏟아져 나오려고 한다.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건강하게 믿음을 지켜가도록 지켜주십사 하는 것이다. 여기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주도인 콜럼비아에 한인은 4,000명 정도이고, 한국에서 오는 유학생과 그들의 가족을 빼면 한인들의 인구 이동이 거의 없는 곳이다. 간혹 우리 교회에 새로 등록한 교우들처럼 다른 주에 살던 다문화 군인 가정들이 육군 훈련소와 새로 마련된 국립묘지가 있는 이곳으로 이사를 오기도 한다. 개신교 교회는 12개쯤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USC) 근처에 있는 교회는 150여명으로 제일 많은 교인들이 있고, 너덧 교회의 교인들이 50-70여명쯤 되는 것 같다.

6,7년 전에 이 지역 여러 목회자들의 이동이 있었다. 그때는 이곳에 살지 않았으므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교회 안에 문제들이 생겨 결과적으로 목회자들이 바뀌게 되고 교인들도 다른 교회로 수평 이동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요즘 몇몇 교회들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들이 다시 들려오고 있다. 어느 목사는 자신이 속했던 교단을 떠나 남미 선교사로 갔는데, 자신이 목회했던 지역을 방문하여 자신을 따르던 교인들을 따로 모아 여러 날 동안 만나고 갔다는 것이다. 선교비를 부탁하고 갔으며 6개월 후에 다시 오겠다고 했단다. 그 목사의 상식 없는 행동이 새로 부임한 목사와 교인들, 교인과 교인 사이를 껄끄럽게 하고 있다. 어느 교회는 시작할 때부터 이단 시비가 있었고, 이제 다른 한 교회에서도 목사가 이단이라며 교회가 어지러워졌다. 한 교회는 많은 수의 젊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났고, 다른 교회는 교회 건물 구입 과정에 문제가 생겨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었다.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서도 여전히 죄를 짓고 살아가는 연약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회 안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하나님 믿는 믿음 안에서 기도와 말씀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교회나 여기 한인교회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교회의 목회자나 교인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이 혼란스럽고 아플까, 안타깝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에베소서 6:18)

이 말씀을 붙잡고,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베드로전서 5:8) 이때에 지역 교회들이 반석 같은 믿음 위에 든든히 서 가길 기도하고 있다. 다른 교회뿐 아니라 나의 교회를 위해서도 마땅히 같은 기도를 올려 드린다.

하나님께 드리는 또 하나의 기도는 모국을 위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정부의 무능과 태만, 기업의 탐욕, 사회 전반에 만연한 안전불감증 등을 온 국민이 문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생명이 존중되고, 정의로운 정치 지도자들이 세워지고, 가정의 가치가 회복되고, 백성이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뜻이 여러 집회나 의식 있는 언론을 통해 모아지고 있음을 타국에서나마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또 이러한 의지를 가진 국민들이 곧 있을 지방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출애굽기18:21)

이 말씀과 같은 지도자를 분별하는 영의 눈이 열려서 국민을 위하여 일하는 참된 지도자가 세워지길 간절히 기도한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눈물, 콧물 뽑아가며 기도하다가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오는 음성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 음성은 나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에 순종하려는 결단이 있을 때 들려왔다. 조용하고 간결한 그 음성을 듣게 되면 평안이 찾아오며,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고, 두려움 없이 살아가도록 도와 주셨다. 그렇게 말씀만으로도 삶을 재창조하는 힘을 가진 분은 하나님뿐임을 고백한다. 교회와 나라를 위한 기도를 통해 무뎌진 영성을 일깨우시고 기도의 자리로 이끄심을 감지한다.

5/11/2014

올바른 쪽으로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주립공원이 있다. 공원의 대부분은 숲이고, 숲 속에 있는 나무들 사이로 걷거나 자전거로 달릴 수 있는 길들이 여러 갈래로 나 있다. 그리고 캠프장, 늘 고요한 호수, 호수에서 탈 수 있는 배를 보관하는 건물, 공원을 관리하는 사무실이 있는 단층 건물 두어 채가 있다. 동네나 상가 입구에 철철이 색과 종류를 달리하여 심겨지는 꽃들을 늘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공원에서는 정문 표지판 근처에 심겨진 몇 그루의 꽃나무를 빼면 인위적으로 심겨진 꽃을 본 기억이 없다. 억지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어림잡아 헤아려 본다. 공원 밖도 마찬가지여서 정문 쪽에 장사가 될까 싶을 정도로 한가해 보이는 햄버거 가게가 하나 있을 뿐이다. 공원 이름을 적어 놓은 표지판이 아니면 그냥 지나쳐 버릴 만큼 밋밋하다. 넓은 공원의 안이나 밖이나 참으로 수수하다.

자칫 지루하게 보일 만큼 조용한 이 공원은 남편과 나에게 치료실 같은 곳이다. 나무 사이로 한 시간 반쯤 걷는 일을 반복하면서 남편의 불편한 허리가 거의 다 나았다. 한국에서보다 움직임이 많이 적어져서 살만 둥실둥실 늘어난 나에겐 그나마 지금 상태를 유지하게 해준다. 또 맘놓고 수다를 떠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면 갈 길 못 찾던 생각들이 가지런히 정리가 되기도 하고, 답답한 문제들은 해소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기도 한다. 남편은 이런 공원이 곁에 있어서 감사하다며 언젠가 공원에 뭐라도 기부해야겠다,고 할 정도였다.

우리는 이 공원에 들어가기 위하여 공원 정문의 반대편에 있는 출입구를 이용했다. 전에 살던 집에서 이차선 도로만 건너면 이 입구가 있기 때문이다. 걸어서도 들어갈 수 있다. 이쪽 입구에 들어서면 발걸음이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옮겨 갈 만큼 익숙해졌다.

그런데 지난해 9월쯤인가, 우리가 다니는 출입구에 표지판이 하나 세워졌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오라는 빨간 글씨의 경고용 안내판이었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좁은 입구가 있는 이곳은 주차장도 있고 숲길을 알려주는 게시판도 있지만 요금을 받는 곳은 없다. 정문 쪽으로 들어갈 때도 요금을 받는 곳이 닫혀 있어서 그냥 들어갔다가 나온 적이 있다. 산책 나온 주민들을 위해 무료로 개방해 놓은 공원인줄 알고 다닌 것이다. 그래서 그냥 편하게 집에서 가까운 출입구를 이용한 것인데 입장료를 내야만 하는 곳이었나 보다.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나 편한 대로 생각한 것이다. 공원 측에서 보면 입장료도 내지 않고 숲을 휘젓고 다니는 뻔뻔한 방문객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도 무슨 배짱인지 몇 번 더 뒤쪽 입구로 다녔으나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았으니 공원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범법자가 되는 것이다. 기분이 찜찜했다. 공원에 갈 때마다 그쪽으로 드나드는 사람도 여럿 만나곤 했는데 사람들 수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았다. 이건 아니다 싶어,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정해진 규칙을 지키기로 마음 먹었다.

정문 매표소를 찾아갔다. 문이 닫혀 있었다. 다음에 다시 매표소 앞에 차를 멈추었다.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하지, 생각하는 순간 매표소 벽에 붙어 있는 안내판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나이에 따른 요금표였다. 매표원이 없으면 방문객이 자율적으로 입장료를 내야 하는 것이다.

몰랐다면 모를까 입장료를 내야만 한다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이 공원의 숲이 주는 편안함을 되찾고 싶었다. 공원 정문 쪽에서 가까운 관리사무실을 찾아갔다. 공원입장료는 방문할 때마다 한 사람당 2달러(65세 이상은 1.25달러, 15세 이하는 무료). 남편과 나는 이렇게 저렇게 계산해본 뒤, 내가 살고 있는 주의 주립공원은 어디든지 일년 동안 무제한으로 입장할 수 있는 75달러짜리(사용범위에 따라 99달러, 50달러짜리도 있다) 입장권을 샀다. 이 입장권을 걸어둔 차량에 타고 있는 사람은 모두 입장이 가능하다.

입장권이 있으니 정문으로 들어가든 뒤쪽으로 들어가든 마음에 거리낌이 전혀 없다. 어느 날 웬일인지 매표소에 연세 많으신 할머니께서 앉아 계셨다. 느낌에 자원봉사자 같았다. 우리는 일 년짜리 입장권을 보란 듯이 자동차 뒷거울에 걸어놓았다. 할머니께서는 얼른 입장권을 확인하시고 들어가도 좋다는 표시를 웃는 얼굴로 보여주셨다. 우리도 상쾌하게 굿모닝인사를 남기고 매표소를 쌩 하니 빠져 나왔다.

정해진 규칙은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자율적으로 지켜서 사회 질서가 원만하게 유지되고 이런 체계에 자부심을 갖는 분위기를 이 나라에서 경험한다. 한편, 규칙을 어긴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금을 물게 하는 엄격함도 함께 경험한다. 숲에게 고마워서 기부하고 싶을 정도였는데, 이 기회에 입장료라도 내게 되어 숲에게 받기만 하는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었다. 작은 규칙이 지켜지고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쪽으로 한 걸음 옮겨갔을 뿐인데 마음이 편하고 당당하다

5/04/2014

가시덩굴




지금 집은 여태 살아본 집 가운데 꽤 넓은 앞뒤 뜰을 가지고 있다. 뜰이 넓다는 것은 잔디를 관리하는데 그만큼 힘이 든다는 것이기도 하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농부들이 논의 상태를 서로 비교하며 그 집의 형편을 가늠하듯이 미국 사람들은 잔디가 얼마나 잘 관리되고 있는가를 서로 비교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은 윤구병 님의 『잡초는 없다』나 황대권 님의 『야생초 편지』의 글처럼 사람이 그렇듯 풀도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자기 자리에서 자라고 있으려니 했다. 풀과 나는  다양하게 자라는 모습을 호기심 있게 바라봐 주는 그저 그런 사이였다. 그런데 남편이 하는 말을 듣고 나니 잔디보다 훨씬 잘 자라서 눈에 잘 띄는 풀은 그 순간부터 잡초가 되었다.

잡초를 그냥 놔둘 수가 없었다. 잡초도 관리 안 하는 게으른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지난 이태 동안 봄이 시작되면 잔디 사이사이로 올라온 잡초를 뽑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잡초를 제거하는 화학 약품을 쓰고 싶지 않아서 시간이 날 때마다 손으로 열심히 뽑아 젖혔다. 남편도 양 옆집의 잔디에 뒤지지 않게 우리 뜰도 반듯하게 깎아 놓곤 했다. 손으로 잡초를 골라내는 수고가 헛되지 않아 처음보다는 잡초의 수가 많이 줄었다.

이른 봄, 잡초들이 슬슬 올라오려고 준비하는 낌새가 보였다. 올해는 왕성한 번식력을 가진 고것들을 어찌하나 일찍이 결정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쭈그리고 앉아서 풀 뽑는 모습이 동네 사람들 보기에 어떨까 싶기도 하고, 손마디에 약한 통증이 생긴 것을 고려했다. 언젠가 광고지에서 잡초를 통제하는 제품을 본 것이 기억났다. 가게에 가보니 잔디에 뿌리면 잡초가 제거되는 가루가 있었다. 정원관리 업체에서 사용하는 농약 같은 극단의 조치는 아니지만 화학 약품을 선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잡초가 다른 해보다는 훨씬 덜 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난 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잡초들이 생겨났다. 뒤뜰 한가운데에는 찔레같이 생긴 가시가 많은 넝쿨도 자리를 잡았다.

처음 그 가시 넝쿨을 봤을 때 어이가 없었다. 어디 담 밑이나 잔디밭 가장자리도 아니고 뜰 한가운데 나다니 겁도 없다. 그 넝쿨이 자라면 주변의 잔디를 못살게 굴 것이다. 나는 두어 달 전에 남편한테 그 가시넝쿨을 파내라고 하였다. 남편은 그걸 그냥 두고 있더니 며칠 전 잔디를 깎으면서 그 못된 풀을 파내지 않고 그냥 깎아놓았다. 다시 자랄 텐데 말이다. 풀들이 자라는 데는 저마다 그곳에 있을만한 이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잔디가 깔린 뜰 한가운데서 자라는 가시덩굴은 잔디에게나 사람에게나 그럴만한 이유를 못 찾겠다. 뜰에 나가 손이든 화학 물질이든 삽이든 사용하여 그 가시가 달린 풀을 없애야겠다,고 마음 먹고 들여다 보는데 그 풀의 가시가 내 마음을 쿡쿡 찌른다.

겉으론 평온한 듯 보여도 마음 속엔 안정을 추구하는 마음이 가시덩굴처럼 나를 찔러댄다.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나라, 자국민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나라, 재난구호가 체계적인 나라라고 말하는 미국에서 7년차 살고 있는 나는 아직 이방인이다. 그 모든 수식어가 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가고 있으나 태어나고 자라면서 체득한 내 나라의 것들과 달라 낯설기만 하다. 낯선 것을 감당해야만 하니 두려움이 생기고, 두려움은 안정된 생활에 대한 갈망을 커지게 하고, 그 갈망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게 한다. 만족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믿지 않는다는 것의 다른 말이다.

뒤뜰의 가시덩굴은 내 마음에 있는 가시덩굴도 보게 하고, 동시에 요즘 많은 생각이 집중되어 있는 한국의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도 한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자기 역할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주변에 해만 끼치는 정부 지도자들과 기업인들이 가시덩굴 같다.

어디에도 쓸 데가 없는 가시덩굴을 더 자라기 전에 뿌리 채 뽑아 버려야겠다. 뒤뜰에서도, 내 마음에서도 말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 속에 박힌 가시덩굴도 뽑아내야 되지 않을까

4/25/2014

코를 바짝 누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종자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하는 단원고 촛불기도회(출처:뉴시스)


고국의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는 내내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누를 길이 없다. 사건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네의 슬픔과 실종자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 나의 어느 이웃은 방송을 보고 있으면 울화통이 치밀어 속이 꽉 막히는 바람에 소화제를 먹어야 했고 더 이상 방송을 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 어느 목회자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탐욕과 부패의 고리로 서로 얽히고설켜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명백하다며 침을 튀며 외쳤다. 지금 여기도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놓치지 않으려고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한국 방송을 들쳐보던 중 세계테마기행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타이완 편이 시작되고 있었다. 여행을 직접 하면서 곳곳을 소개하는 해설자는 타이루거 협곡을 소개하면서 협곡을 관통하는 길이 나게 된 사연을 이야기 했다. 그 길은 타이완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것인데, 도로 공사를 하면서 주변에 살던 많은 원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더 깊은 산속으로 옮겨갔다고 했다.

해설자는 원주민 부족 가운데 쩌우족 사람을 만나 그들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문명이 발달하기 전, 불만 있던 때에 어느 새가 부리로 불을 물고 가서 세상 사람들을 구해주었다는 전설을 기억하는 전통 놀이였다. 깜깜한 밤, 산 위에 불이 준비되어 있다. 청소년쯤 된 아이들은 저마다 들고 있는 횃대에 그 불을 나누어 붙이고 산 아래 정해진 곳까지 불을 운반하면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방송을 보면서 불을 소중히 여기는 자신들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른에서 아이로 전수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불을 든 아이들은 한 줄로 서서 산길을 따라 내려왔다. 그러다가 골짜기를 지나게 되었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듯 자기들이 들고 있는 횃불을 한 곳에 모았다. 불이 붙어 있는 횃대의 끝을 서로 서로 맞붙여 불을 커다랗게 만드는 것이었다. 횃불이 홀로 있으면 골짜기를 타고 불어오는 산바람에 불이 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횃불을 여럿이 함께 모아서 골짜기를 빠져 나오는 동안 좁은 산길을 걷는 아이들은 기꺼이 불편을 견디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한 사람도 불을 꺼트리지 않고 성공적으로 산 밑으로 가져왔다. 불을 들고 옮기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놀이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불을 잘 옮겨놓은 후에야 아이들 얼굴에서 웃음꽃이 피어났다.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세찬 바람이 불 때 옆에 있는 친구들과 힘을 모으니까 불도 지켜내고 친구도, 소수 민족인 자신들의 공동체도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를 쓰린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각성의 소리가 마음을 때린다. 이런 울림이 있는 이들의 각성의 횃불을 한 곳에 모아야 할 때다. 부정과 부패와 탐욕으로 가득 찬 어둠이 몰려와도 함께 모아 만든 환한 불빛 앞에선 어림도 없다. 이 각성의 불꽃을 꺼트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길을 찾아야 한다. 생명을 살리는 길, 진리로 나아가는 길(요한복음 14:6) 말이다. 그래야 내가 살고 나라도 산다.

내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결혼식을 올리는 전날까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중간에 잠시 떨어져 산 적도 있지만 그다지 길지 않았다. 할머니께서는 첫 손녀인 나를 엄청 귀하게 여겨주셨다.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 자랑스러운 보물로 대해주셨다. 그래서 학생으로 지내는 동안은 집안 일을 도통 시키지 않으셨다. 결혼하면 싫어도 다 하게 될 일인데 벌써부터 할 필요 없다며 손에 물을 묻히게 하지 않으셨다(할머니가 말씀하신 대로 결혼해 살다보니 빨래도 하고 김치도 가끔 해 먹고 산다. 그런데 썩 잘 하지 못하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새하얗게 빨래하는 것과 맛난 김치 담그는 솜씨가 생길 것 같지가 않다).

그런데 나에게 한없이 넓은 품을 가진 할머니가 화를 내실 때가 있다. 할머니께서 뭘 찾아오라고 시키셨는데 못 찾아 올 때다. 나도 아이들을 시켜봐서 안다. 물건을 둔 나는 어디에 있는지 훤히 보이지만 아이들은 코 앞에 두고도 못 찾을 때가 많다. 할머니는 일을 건성건성 하는 것을 싫어하셨다. 일을 시작했으면 똑 부러지게 하고 끝을 맺어야 한다고 하셨다. 심부름 시킨 물건을 찾아오지 못하면 할머니 눈에는 대충 살펴보고 온 것으로 보이셨나 보다. 그러면 할머니는 다시 가서 찾아보라며 말씀하신다.

코를 바짝 누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집중해서 찾아보라는 뜻으로 그리 말씀하셨던 것 같다. 어릴 적에는 정말로 코를 바짝 누르고 물건을 찾아내기도 했다. 물론 찾아내지 못하고 할머니의 꾸중을 들을 때도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를 지휘, 감독하는 정부 관리들은 코를 바짝 누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의 무능과 무책임과 부패를 보길 바란다. 바닷물 속에 들어가 실종자를 찾고 있는 잠수부들은 코를 바짝 누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애쓰고 있으리라 믿어보겠다. 그리고 이런 부정과 부패, 탐욕으로 가득 찬 세상, 이대로는 절대 안 돼, 라고 깨닫고 있는 사람들은 코를 바짝 누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생명의 길, 진리의 길로 나서야 한다. 반드시, 멈추지 말고 말이다.

4/18/2014

손이 가는 대로





아이들이 봄방학을 해서 일주일 동안 집에서 쉬고 있다. 이렇게 학교를 가지 않는 동안 다른 여행 계획이 없다면, 꼭 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애틀랜타에 다녀 오는 것이다. 자동차로 세 시간 반을 가야 하는 거리이니 하루 나들이 정도는 된다. 애틀랜타는 미국에 와서 처음 삼 년을 산 곳이라 익숙하기도 하고 마음이 편하다.

집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해서 애틀랜타에 도착하면 얼추 점심 시간이다. 점심으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장면을 먹는다. 첫째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고 가족 모두 동의가 되는 메뉴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장 보기다. 애틀랜타에는 큰 한국가게가 여럿 있어서 한국 식료품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쌀이나 라면 같은 주식 거리처럼 덩어리가 큰 것을 먼저 산다. 그리고 때론 순대나 족발 같이 지금 사는 곳에서 사먹기 어려운 음식들을 챙겨오기도 한다. 그리고 애틀랜타에서 하는 또 한 가지는 미용실에 가는 것이다. 집에서 엉성하게 깎은 머리를 여러 달 하고 있다가 모처럼 대도시 미용실에서 전문가의 서비스를 받는다. 엄청 많은 미용실들 가운데 남성 헤어 컷 가격으로 8달러 받는 곳을 찾아냈다. 팁까지 계산해도 십 달러면 되니 부담 없이 머리를 깎고 온다.

이번 봄방학에도 애틀랜타나 하루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과 첫째 아이는 집에서 한 달에 한번 머리를 깎기 때문에 그런대로 머리 길이가 봐 줄만하다. 하지만 꼭 애틀랜타에 있는 미용실에 가길 원하는 둘째 녀석은 1월에 깎은 머리가 어느새 덥수룩하다. 봄방학에 머리를 다듬으면 좋겠다고 나름 속생각을 가지고 있어나 보다. 한국가게에도 들려 장도 볼 겸 애틀랜타에 갈 구실이 두루두루 생긴 것이다.

그런데 봄방학 하기 한 주 전, 남편이 통일위원회 모임을 하러 애틀랜타에 다녀왔다. 집에 돌아오면서 몇 가지 장도 봐 왔다. 애틀랜타에서 하게 될 한 가지 일을 이미 해결한 것이다. 봄방학 동안 애틀랜타를 방문하지 않게 된다면, 첫째 아이에게는 중국집 자장면 대신 짜파게티라는 해결책이 있지만 둘째 아이 머리는 어쩌나머리 깎자고 왕복 일곱 시간을 운전해서 갔다 오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다. 둘째도 자기 하나 때문에 먼 길 나서길 원하지 않았다. 여름방학이 시작될 때까지 견디겠노라 했다.

고난주간과 겹친 봄방학을 심드렁하게 보내다가 부활주일 맞이 머리 단장을 하기로 했다. 첫째 아이에게 말했다.

이번 주일이 부활주일이잖아. 머리 깨끗하게 깎고 가면 좋겠다,” 그지?”
~”

입술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옆으로 구부리며 귀여운 표정으로 웃는 걸 보니 좋다는 뜻이다. 토요일에 잠자리에 들 때도, 내일은 교회 가자. 잘 자, 하면 꼭 환하게 웃는다. 스물 한 살 된 청년 아이는 주일에 교회 가는 것이 좋은가 보다.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바리깡 사용은 남편이, 가위질은 주로 내가 손이 가는 대로 정성을 다해 모양을 낸다. 뒷머리와 옆머리는 짧게, 앞머리는 이마 위로 가지런히 내리면 된다. 집에서 머리를 깎을 때마다 언제나 같은 헤어스타일이다머리카락의 자른 면이 일정하지도 않고, 오른쪽과 왼쪽 머리 모양이 다르기도 하고, 바가지를 엎어 놓고 자른 것 같은 모양이기도 하지만 괜찮다. 한 눈에 보아 깔끔하게 느껴지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첫째 아이의 머리 깎기가 마무리되어 갈 무렵 남편은 자기도 깎으려는 눈치다. 계획에 없던 일이다.

당신도 깎을 거야?”
그럼!”

남편은 머리 숱이 점점 없어지는 터라 머리 깎는 시간이 아이보다 훨씬 적게 걸린다. 남편의 머리 깎기는 온전히 내 몫이다. 머리를 깎아 놓고 자꾸 웃음이 나면 그건 잘못 깎았다는 뜻이다. 남편의 짧아진 머리 모양이 산뜻해 보이니 그런 대로 안심이다.

 두 사람 머리 깎기를 마치자 둘째 녀석도 머리를 디민다. 사춘기 청소년 치고는 수더분한 편이다. 멋 내는데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저 몇 달에 한 번 머리 깎는 것만 자기 마음에 드는 미용실에 가려고 하는 정도다. 나의 머리 깎는 솜씨가 우스운 것을 알기에 자기 머리를 맡기려고 하지 않았었다. 여름방학 때 애틀랜타에 갈 때까지 참는다고 하더니 무슨 마음인지 자기 머리도 깎아달라고 한다. 나 또한 열 여덟 살 고등학생의 머리 깎기에 대한 깜냥도 없이 그러자고 했다.

인터넷에서 요즘 잘나가는 남자 배우 김수현의 이미지를 검색했다. 그나마 젊은 청년의 헤어 스타일을 살펴볼 생각이 난 것이 다행이다. 뒷머리와 옆머리는 짧지만 머릿속 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길이이고, 앞머리는 조금 길어서 이마가 보이게 넘어갈 정도라는 것을 되뇌며 머리 손질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다듬고 나니 웃음이 자꾸 실실 나온다. 앞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낸 것 같다. 아이가 실망할까 봐 대놓고 웃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던 남편이 바리깡을 들고 나섰다. 요즘은 짧은 머리가 유행이라며 머리를 점점 짧게 자른다. 어찌 어찌 이발을 마쳤다.

머리를 감으러 가는 둘째에게 헤어젤을 발라 앞머리를 뒤로 넘겨보라고 했다. 머리를 감고 머리 손질을 하고 나온 아이에게 괜찮네, 하며 바람을 잡았다. 둘째도 큰 불평이 없다. 보통 때보다 짧아진 머리가 아주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렇게 한 나절 동안 우리 집 세 남성의 부활주일 맞이 머리 손질 행사를 마쳤다. 올해 부활주일은 깔끔하고 산뜻한 모습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앞으로 둘째 녀석의 머리를 깎아줄 기회가 얼마나 더 있을 지 모르겠다. 부모에게 머리 깎아달라고 부탁을 하는 아들, 내 아들이 멋있길 바라는 마음을 실은 손이 가는 대로 아이의 머리를 요리조리 만지는 부모. 서로를 의지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엄마, 아빠가 깎아준 어설픈 머리 모양을 하고 다니던 때가 부활주일 즈음이었음을 기억해주길……

***고국에서 들려온 여객선 세월호의 침몰 소식에 마음 한 켠이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다. 이 소식을 함께 나눈 이민자들도 함께 울고 함께 당황스러워 했다. 갑작스런 사고로 희생된 이들과 그 유가족에게 멀리서나마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실종자들도 하루 속히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한다

4/11/2014

나의 놀이터가 될 텃밭





드디어 뒤뜰에 손바닥만한 텃밭을 만들었다. 나무 뿌리와 잡초들이 뒤엉킨 땅을 고르고, 흙을 일구어주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돌보겠노라, 며 남편을 보채서 만든 텃밭이다. , 그리고 남편이 해야 할 한 가지 일이 더 있긴 하다. 흙을 사다가 이곳의 모래투성이 흙과 섞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식물을 심을 수 있는 터가 준비된다.

여기는 흙을 한 삽만 떠내면 모래가 나온다. 숲 속에도 모래가 깔려 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흙에 왜 이리 모래가 많은지 언제인가 가족들과 얘기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둘째 아이의 말에 따르면 목화를 많이 심었던 곳이라 그렇단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과거에 많은 노예들을 동원해 목화 재배를 주요 산업으로 삼았던 미국에서 대표적인 주였다. 목화는 흙에 있는 좋은 성분을 다 흡수하고 땅을 황폐화하는 작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땅은 모래흙으로 변했다. 목화 재배가 점점 줄어들고 이미 거칠어진 땅에는 그나마 생명력이 질긴 소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곳 주변, 꾸며지지 않은 곳에는 정말로 소나무와 참나무가 엄청 많다. 둘째 아이의 말이 일리가 있는 듯도 하다.

우리가 만들 텃밭의 크기를 어림잡아 흙과 퇴비를 예닐곱 푸대 사고, 몇 십 달러가 계산되었다. 썩 내키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이 돈으로 야채 실컷 사 먹어도 되겠다!”
여보, 내가 일 년 동안 가지고 놀 놀잇감 산 거라고 생각해~”

장보러 가서 야채 값이 조금이라도 비싸다고 여겨지면 나중에 먹으면 되지, 하며 눈길을 돌리곤 한다. 그런 내게도 몇 십 달러는 꽤 가슴 떨리는 액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을 강조하며 그에 비하면 흙 값은 별거 아니라는 쪽으로 얘기를 돌렸다.

집에 돌아와 흙 푸대를 나르려던 남편은 흙이 꽤 무거웠는지 아이들을 불러댄다. 힘 쓰는 일은 결국 자기 손이 가야 되는 것 아니냐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농사 짓는 것을 보고, 돕고 자란 남편은 농사가 쉽지 않은 일임을 너무도 자세히 알고 있어서 그런지 작은 텃밭일지라도 섣불리 시작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그리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 지난 여름, 멀지 않은 미래에 식량을 자급자족 해야 되는 때가 올 것이고 그 방법으로는 자연과 인간을 다같이 살리는 자연농법이어야 할 거라며, 자연농법과 관련된 책들에 푹 빠져 있던 남편이다. 하지만 지금은 목회와 내실을 다지는데 더 집중해야 할 때라고 여긴다. 그렇다 보니 텃밭이 정신을 분산시키는 자질구레한 일로만 여겨지는 것이다.

텃밭에 대해 이유 있는 거부를 하고 있는 남편과는 달리 나는 그저 주어진 자투리 공간에 텃밭을 한번 해 보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이다. 이번에는 나의 단순한 고집이 남편의 고상한 이유들을 이겼다. 아니면 텃밭 만들기에 대해 계속 나 몰라라 했다가는 일 년 내내 잔소리를 들을 것 같아 입막음 하기 위해 져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어느 날인가 담장 아래 잔디가 깔리지 않은 땅(미국 사람들은 이런 공간에 보통 나무를 심는 것 같다)을 깔끔하게 골라 놓았다. 그리고 가게에서 사가지고 온 흙과 퇴비를 섞어 고랑을 만드는 일은 둘째 아이와 힘을 합쳐서 남편의 할 일을 마무리 했다.

나는 텃밭에 제일 먼저 쑥갓 씨를 뿌렸다. 고것이 어느새 코딱지 만하게 새싹을 내놓았다. 상추, 가지, 시금치와 방울 토마토는 모종을 사다가 조금씩 심어놓았다. 고추는 지금도 모종을 키우는 중인데, 모종 시작하는 시기를 잘 몰라 너무 늦어 버렸다. 잘 자란 모종을 사다가 심어볼까도 했지만 그냥 내 모종이 자라는 대로 실험 삼아 심어 보련다. 퇴비를 듬뿍 넣은 구덩이에는 호박씨도 심어두었다. 모두들 부디 잘 자라주기를 부탁하며 날마다 물도 정성껏 뿌려주고 있다.

사람들이 텃밭을 가꾸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자연과 친해지기 위해서, 생명의 소중함을 가까이서 느끼기 위해서, 건강한 먹거리를 얻기 위해서…… 나는 그냥 거기 빈 땅이 있어서, 그리고 이민 생활의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놀이터가 될 듯하여 텃밭을 갖는 즐거움을 누리려 한다.

그리고 호박이 잘 자라면 올해 연세가 98세이신 S 권사님께 보여드리고 싶다. 권사님은 이민 오신 뒤로 오랫동안 집 주변에 텃밭을 만들어 온갖 야채를 키우셨다. 그 연세가 되셨는데도 고추, 오이, 호박이나 고춧잎, 깻잎 따위를 얼마나 잘 가꾸시는지 우리 교회 교우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권사님의 열매를 나눠 받았다. 처음 딴 열매는 황송하게도 목사네 집에 주셨다.

지난해까지 권사님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오이와 호박을 얻어 먹었는데, 올해는 권사님의 손에서 키워진 열매들을 나눠주실는지 아직 모르겠다. 권사님은 얼마 전 많이 편찮으셨고 지금도 기운이 무척 없으시다. 권사님께서 다행히도 무기력과 가족들의 만류를 떨치고 텃밭을 가꾸셔서 호박을 우리에게 나눠주시면 못이기는 척 받아 챙겨야지. 올해는 권사님이 잘 드시는 호박을 내가 좀 나눠드릴 수 있어도 좋겠다.

3/28/2014

부러진 나무, 구부러진 나무





날씨가 좀처럼 따뜻해지질 않는다. 올해 첫머리에 기온이 뚝 떨어져 이곳에선 흔하지 않은 눈도 보고 좋다고 했더니, 그 추위가 쉽게 사라지지 않아 실내를 따뜻하게 하기 위한 전기요금이 엄청 불어나고 바깥 운동을 하지 못하는 찌뿌둥함도 쌓여 있다. 기온이 조금 오른 날에도 운동 삼아 하는 숲 속 걷기를 아침에는 추워서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오후에 햇볕이 한참 풀렸다 싶을 때 나갔다 온다. 걷는 운동도 그나마 일 주일에 한 번 하면 다행이다.

모처럼 날씨도 좋고 시간도 나서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늘 가던 길을 잡아 걷기 시작했다. 춥다 춥다 해도 세상 만물이 제 역할을 하며 움직이고 있듯이 아직도 칙칙한 겨울 색깔을 벗겨내지 못한 나무에도 새순이 제법 올라와 있다. 새 생명을 세상 밖으로 기꺼이 밀어내고 있는 나무들이 대견하다. 그들이 내어놓는 새순을 바라보면 경이롭고 앙증맞고 귀하다.

그 모양과 색도 가지각색이어서 오래 두고 볼 요량으로 늘 가지고 다니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거의 실패다. 핸드폰으로 어떤 대상을 가까이 찍으면 흐릿하게 나온다(요즘 스마트폰에 근접 촬영 기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 것은 아이폰이다). 사진이 선명하게 찍히지 않는 줄 알면서도 자꾸 버튼을 눌러대는 이유는 새순을 볼 수 있는 시간은 한 때, 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다, 고 혹시라도 제대로 찍힌 사진이 하나 걸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보이는 새순마다 찍어댔다.

그렇게 숲길을 걷다가 길을 가로질러 쓰러져 있는 소나무를 만났다. 세찬 바람이 불거나 큰 비가 온 다음에 숲을 찾아가면 쓰러져 있는 나무들을 가끔 보게 된다. 나무가 늙었거나 병들었거나 약해서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 같다. 제 삶을 다한 나무가 안쓰러워 한 번 더 살펴보게 된다. 하지만 덩치가 큰 나무는 쓰러져 있어도 그 기운이 당당하여 근처에 가는 것이 망설여지기도 한다. 이번에 만난 소나무는 그다지 굵지도 않았고 밑동을 보니 튼실해 보이지도 않았다. 올 겨울 추위와 바람은 그 소나무에게 숲 속 다른 나무와 동물들을 위해 거름이 되어달라고 부탁했고, 그 나무는 기꺼이 순응을 한 것인지……

공원 관리인들이 어떤 절차에 따라 쓰러진 나무를 치우는지 모르겠다. 쓰러진 나무는 그렇게 길을 가로 막은 채 몇 개월이고 그대로 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자리에 가보면 톱으로 잘려져 길을 다시 터 놓는다. 잘려진 나무 토막들은 숲 속에 그대로 둔다. 다시 흙으로 돌아가라는 배려인 듯싶다.





죽은 나무를 뒤로 하고 다시 숲길을 걸었다. 이번엔 늘 다니던 길에서 일 년도 훨씬 전에 쓰러진 또 다른 나무에 다다랐다. 이 나무는 참나무의 일종으로, 쓰러지기는 했어도 아직까지 나무 밑동에 연결되어 있다. 이 나무 밑을 지나려면 고개를 살짝 숙여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은 내려서 지나가야 한다. 길을 가로질러 낮게 쓰러져 있어서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만 아직 생명이 붙어 있어서 그런지 공원 측에서는 이 나무를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쓰러져서 구부러진 모습이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똑바로 서 있는 다른 나무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으나 여전히 새싹과 줄기를 내며 생명 활동을 하고 있는 이 나무가 다시 보였다. 세상에! 다른 나무의 새싹은 조그맣게 열리고 있는데 이 나무는 새 줄기가 쭉쭉 뻗어 나와 새로 나온 잎들도 잔뜩 달고 있었다. 대단한 생명력이다. 그 나무 아래로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왕성한 기운을 나눠주며 좋아라, 하는 것만 같았다.

나무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뿌리가 달린 밑동에서 떨어져 나간 소나무는 초록 솔잎이 달려 있었지만 누가 봐도 죽은 나무다. 그런데 구부러져 있을지언정 밑동에 붙어 있는 나무에서는 생명을 보는구나, 생각했다. 구부러진 나무가 있는 길을 벗어나는데 금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첫번째로 암송했던 성경 구절이 문뜩 떠올랐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5)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님께만 붙어 있으면 산다는 말씀이다. 난 이 말씀을 굳게 믿는다. 어둠이 나를 삼킬 듯이 덤벼들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을 겨우겨우 혹은 억지로라도 붙잡고 있으면 된다. 힘든 때를 벗어나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소심한 몸짓으로 허우적거려도 괜찮다. 하늘을 바라볼 수만 있으면 된다. 말라빠져 죽은 가지처럼 보여도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꼬~옥 붙어 있으면 된다. 그러면 언젠가 가지에 물이 오르고 새싹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난 그렇게 믿는다.

숲 속에서 만난 나무들에게 고마움을 남기고 공원을 총총히 떠났다.

3/21/2014

더 진지하게




3월 첫 주간에 재의 수요일을 보내고 사순절 기간을 살고 있다. 재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으며,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지어다, 는 말씀을 들었다. 짧은 의식이지만 뭔가 모르게 숙연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올해 재의 수요일에서는 그 잔잔한 속삭임의 의미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잿물이 너무 질척하게 개어진 탓에 이마와 콧등을 간질이며 흘러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와 섞여서 흘러내리는 올리브유를 닦아낼 휴지를 가지러 화장실로 달려가야만 했다. 예배가 끝남과 동시에 여러 사람이 휴지를 찾아 허둥지둥 댔다.

어쩌나…… 난 그런 웃음 나는 상황이 싫지 않으니 말이다. 예수님이 겪으신 십자가의 고난, 예수님 때문에 어떤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나, 우리를 온전히 사랑하시는 예수님처럼 살고 있나, 이런 거창한 주제들은 흘러내리지 않는 재를 이마에 바르고 있을 지라도 음미할 여유가 없다. 수요일 저녁예배가 끝나고 빨리 집에 가서 씻어야지, 하는 마음뿐이다. 그런데 얼굴 위로 줄줄 흘러내리던 비실비실한 잿물에 대한 기억 덕분에, 재의 수요일은 진작 지났어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한 번 더 묵상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렇게 사순절은 이미 시작되었는데 남편은 그제서야 금식 얘기를 꺼냈다. 교회 친교실과 교실을 늘리는 것이 간절히 필요하다면 하루에 한 끼, 금식한 끼니만큼 헌금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한 끼에 들어가는 식사 비용을 금식한 끼니 수대로 모아 건축에 필요한 헌금으로 드리자는 내용이었다. 교우들과 이러한 생각을 나누면 어떨까 물어왔다. 밥 굶는 것도 힘든데 굶은 만큼 헌금을 하라니, 난 관두라고 했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에게 금식하라고 하면 힘들어서 일 못 한다, 이미 하루에 두 번만 식사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무엇보다 나처럼 저혈압인 사람은 끼니를 거르면 까부라져서 안 된다, 며 오지랖 넓은 걱정을 쏟아냈다. 남편은 무엇인가 생각을 해 보는 표정이었다.

내 말이 그렇게 일리가 있었나?’

그러고 나서 돌아온 사순절 첫 번째 주일 예배 때, 남편은 금식에 대한 성경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했다. 얄미운 남편. 차라리 물어보지나 말고 설교를 하던지. 금식은 꿈에서라도 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금식이라는 말에 걱정부터 한 보따리 풀어놓는 믿음 없는 사람을 만들어 놓았다(남편에게는 이런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안다. 나 혼자 찔려서…).

금식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설교했다.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 뜻을 분별하는 금식이 될 거라고 했다. 금식 기도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기도하는 것이기에 그 간절함이 더 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남은 사순절 기간 동안 자기를 위해, 교회를 위해 금식 하자고 설교를 했다.

금식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 알려주었다. 예수님처럼 사십 일 금식(이건 아무나 할 수 없다고 단단히 일러주었다), 다니엘처럼 물과 채식만 하는 열흘 금식, 에스더 같이 삼 일 금식, 그리고 몸 비우기 운동에서 하는 일 주일 금식도 예로 들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금식하는 기색을 내지 말고,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는 마태복음 6장의 말씀도 함께 전해주었다. 본인은 하루 한 끼 금식을 해보련다고 했다.

남편은 점심을 먹지 않기로 했다. 그럼 나는 어쩐다…… 내 자신을 위한 금식이라면 꾸준히 밥 잘 먹으면서 기도하면 된다고 했을 것이다. 한편, 교회를 위해서라고 하면 조금 더 간절해지는 마음이 있긴 하다. 그래서 다니엘처럼 점심을 채식으로 하리라 마음 먹었다. 평소에 육류를 워낙 좋아하는지라 그걸 절제하되 굶지는 않겠다는 속셈으로 채식을 선택한 것이다.

점심 때가 되면 혼자 먹을 거리를 야무지게 준비한다. 아침에 먹다 남은 과일 조각에 어린 시금치 잎이나 양상추를 보탠다. 그 위에 그리크 요거트 두 숟가락과 마른 크랜베리 한 꼬집을 올린다. 말이 절제지 푸짐한 샐러드 한 접시가 된다. 이건 틀림없이 금식과 상관 없이 한 끼를 해결하는 모양새다.

, 꼭 만나야 할 사람과 약속이 생겨서 점심을 먹게 되면 맛있게 먹을 작정이다. 사람을 만나 삶을 나누다 보면 홀로 조용히 샐러드 한 접시를 마주할 때와는 다른 은혜를 경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순절 동안 조~금 절제하는 한 끼 식사를 하겠다는 다짐은 상황에 따라 바뀔 가능성이 많은 나와의 약속 같지 않은 약속인 것이다.

사순절 기간 동안만이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절제하면서 예수님의 고난을 조금이라도 경험해보자는 차원에서 여러 가지 제안을 하기도 한다. 커피 안 마시기, TV 드라마 안 보기, 아이스크림 안 먹기(어느 어린이의 결심), 쇼핑 덜 하기, 낮잠 안 자기 따위다. 여기에 이번에 실행하고 있는 한 끼 곡물과 육류 안 먹기도 추가해 본다. 편리하고 가벼워 보이는 제안들 같아도 사십 일을 지속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러한 제안들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그 순간에는 마음 속에 정한 기도가 떠오르곤 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마음에 정한 기도와 절제하는 삶을 얼마만이라도 살아보는 것이 일상 생활을 유지하며 기도하는 것보단 더 간절함이 있는 것 같다. 절제의 방법으로 선택한 야채 한 접시를 앞에 두고 보니, 한 끼를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남편이 나보다 더 진지하게 여겨지는 마음을 부인할 수 없다

3/14/2014

우리 교회는


봄이 오는 우리 교회 


벌써 금요일이다. 금요일 저녁에는 성경공부 모임이 있다. 그 모임에서 성경구절을 암송해야 하는데 아직도 외우지 못했다.

수요일 저녁 예배 때, 몇몇 교우들이 성경을 얼마나 외웠는지 서로 확인하며 이번에 외워야 할 구절은 잘 외워지지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느 권사님이 외운 것을 큰 목소리로 암송해 보이셨다. 아직 완전히 외워지지가 않으셨는지 중간 중간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옆에 계시던 다른 교우들이 틀린 부분을 고쳐주기도 하고,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대신 외워주기도 하셨다. 모두가 비슷하게 암송을 어려워하는 모습에 깔깔깔 호호호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눈치를 가만히 보니 모두들 거의 다 외우신 듯 하였다. 부끄럽게도 나만 그때까지 성경을 들쳐보지도 않은 것이다.

2월에 시작된 이번 성경공부에 참여한 교우들은 한 주 한 주 시간이 흐를수록 신선한 감동을 나눠주고 계신다. 성경과 성경공부 교재를 넣는 예쁜 책가방을 서너 분이 마련하셨다. 그 다음에는 연필 서너 자루를 담은 필통을 몇 분이 보여주셨다. 성경암송이 시작되자 인덱스카드에 성경구절을 적어가지고 다니면서 외우시는 분, 종이에 적어서 냉장고에 붙여놓고 오고 가며 외우시는 분, 성경구절을 복사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시며 직장에서도 외우시는 분, 종이에 여러 번 쓰며 외우시는 분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성경공부를 여러 번 경험해 보신 분들도 있고, 처음이신 분들도 있다.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이 그저 좋은 분들도 있고, 하나님 · 예수님에 대해 새로 알게 되는 부분이 있어 좋다고 고백하시는 분들도 있다. 이렇게 성경공부에 열심을 내시는 분들은 어느 집사님과 나를 빼고는 모두 6,70대의 집사님, 권사님들이시다. 그리고 암송 숙제를 잊어버리거나 제일 늦게 외우는 뺀질이는 나 뿐이다.

우리 교회는 창립 17주년을 얼마 전에 보냈다. 교회가 창립된 지 17년 동안 열 명에 가까운 목회자가 바뀌었다. 그 시간 동안 그렇게 많은 목회자가 바뀌었다는 것은 교회 안에 불편하고 불안정한 일들이 많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자랑스럽지 않은 이야기들은 너무 가벼워 천 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둥둥 퍼져간다. 이곳 작은 한인 공동체 안에서 우리 교회의 변화무쌍한 사정은 한인들 사이에서 늘 심심풀이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목회자들 모임에 나가보면 애틀랜타나 다른 지역에 있는 목회자들도 우리 교회 소문을 들어 알고 있는 것을 티 내기도 했다.

나의 남편인 목사가 우리 교회에 부임한 후 지난 3 년 동안 교우들과 지역 한인들은 우리 가족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부임한 첫 해에 교우들 집집을 돌며 심방을 했었다. 심방하던 중 미국 남자 집사님은 대놓고 이렇게 물어보셨다.

당신은 이 교회에 얼마 동안 있을 거요?”
글쎄요. 3, 5…… 하나님만 아시겠지요.”

생각지도 않은 질문에 난 얼렁뚱땅 그렇게 대답했다. 그 집사님은 의구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우릴 바라보셨었다.

우리 교회는 김씨네 교회라는 소문도 달고 다닌다. 교우들 가운데 어느 한 가족의 구성원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나아갈 바를 정할 때에 다수인 한 가족의 의견이 힘을 가질 수 있는 구조인 것은 틀림없다. 지난 날 그들의 힘이 교회를 좌지우지 했는지도 모르겠다.

또 우리 교회는 현재 어느 교단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남편이 아틀란타 한인연합감리교회에 부목사로 있었던 인연으로, 아틀란타한인교회의 파트너십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 교회는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분리되어 창립이 되었으나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그 교단에 들어가지 못했다. 기독교대한감리교회에도 잠시 가입을 했었으나 다시 탈퇴를 하였다고 한다.

지난 날 안타까운 역사의 연장선 속에 있는 우리 교회는 부흥되는 데 걸림돌을 많이 갖고 있다. 하지만 교회의 주인이시며 머리 되신 예수님이 계시고, 교회가 교회답게 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믿고 따르는 교우들이 점점 늘어난다면, 과거가 교회 부흥의 발목을 잡을 수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과거의 아픔은 우리의 믿음을 정금과 같이 단련하는 불쏘시개로나 사용하면 된다. 우리에게는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일만 남아 있을 뿐이다.

요즘 우리 교회는 조금씩 밝아지고 꿈틀거리고 있다. 새로운 가정들이 우리 교우가 되었다. 올해부터는 성경공부도 여러 모양으로 하고 있고, 비전세우기 세미나도 하고, 친교실과 교실을 늘리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인 방안들도 찾아보고 있다.

여전히 교우와 목회자가 서로 조심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쁘지 않다. 우리 교회에서 신앙 생활 하면서 교우도 행복하고 목회자와 그의 가정도 행복해서, 그 행복의 물결이 지역 한인들에게도 가 닿기를 기도한다. 이제는 사랑으로 소문난 교회가 되기를 온 교우가 함께 기도하고 있다.

그나저나 금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한 사람씩 돌아가며 외우는 성경구절이 무엇인지 어서 찾아보아야겠다. 성경공부 모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3/07/2014

아이들은 자란다





나의 아이들보다 나이가 아래인 어린 아이들을 보면 참 귀엽다. 나의 아들들은 미국 나이로 치면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곧 졸업할 나이다. 아들들을 그 나이만큼 키워봐서 그런지 그보다 어린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조금 여유가 생긴다. 아들만 키워봤으니 딸이나, 저마다 다른 성격의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적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아이들을 보면 그냥 귀엽다는 느낌이 먼저 들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이 성가대를 다시 시작했다. 그 동안 아이를 키우는데 더 집중하다가 기회가 되어 성가대에 합류하셨다. 집사님과 아이는 주일 예배 때 적어도 성가대 찬양 시간이 지나기까지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예배 시작하기 전이나 끝난 다음에 하는 성가 연습 시간에도 아이는 엄마를 찾지 않는다. 어느새 아이가 꽤 자라서 엄마와 분리되어 잘 지내는 듯하다.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의 시간을 가질 줄 알게 되었고, 그만큼 엄마에게도 엄마만의 시간이 주어지는 때가 되었나 보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예배를 드렸을 아이는 아멘이라고 말하는 타이밍을 아주 잘 안다. 찬송 부를 때 마지막 절을 어떻게 아는지, 마무리 되는 부분에서 맑고 힘찬 목소리로 ~~”을 음 높이에 맞추어 부른다. 또 기도가 끝나는 시점에서도 역시 티 없이 맑은 아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아이의 깨끗한 아멘은 자주 들을 수는 없다. 아이는 예배실 밖에서 엄마와 다른 아기 엄마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다. 가끔 그 아이의 아멘 소리를 들을 때면, 처음 듣는 곡조의 특별 찬양을 한 곡 들은 것처럼 신선하다.

이번 주일에는 점심 먹고 성가 연습을 하는데 엄마 곁에서 슬그머니 잠드는 그 아이를 보았다. 자기를 돌보지 않고 성가 연습만 하려는 엄마에게 잠투정을 할만도 한데 말이다. 이불도 없이 딱딱한 긴 의자 위에서 어느새 잠든 아이의 모습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또 다른 젊은 집사님은 주일 예배 때 몇 주 동안 신시사이저를 연주하게 되었다. 집사님에게는 어린 자녀가 둘이 있다. 아직은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을 제일 편안해 하는 나이라, 아이들이 예배 시간에 엄마와 떨어져 있을 수 있으려나 살짝 긴장하고 있었다.

예배는 시작되어 집사님은 예배실에서 연주를 하고, 아이는 친할머니께서 돌봐주시기로 했다. 예배 시간이 꽤 흘러 집사님이 반주하고 있는데 아이가 엄마를 찾아왔다. 집사님은 아이와 더불어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도록 나에게 기도를 부탁했었다. 그 집사님과 가까운 거리에 앉아 있던 나는 그 모자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일에도 부끄러움을 잘 타는 집사님은 얼굴이 벌써 홍당무가 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오셔서 아이를 데려가려고 하셨지만 아이는 싫다고 했다. 아이는 그저 엄마 옆에 있고 싶은 것 같았다. 집사님은 할머니께 그냥 두시라고 눈짓을 보냈다. 아이는 엄마의 몸에 기대었다. 그 뿐이었다. 자기를 떨어뜨려 놓은 엄마를 원망하며 칭얼거릴 만도 한데 말이다. 그리고 집사님은 예배 끝부분에 있는 결단의 찬송가를 연주하셨다. 허리를 구푸려 엄마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엄마가 연주하는 찬송 소리를 듣는 아이의 모습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만약 아이들이 엄마가 성가대 연습하는 동안 엄마를 찾아대거나, 성가대 자리에 있는 엄마를 찾아 강단 위에 올라오거나, 엄마가 악기를 연주하지 못하게 울거나 한다면……. 그런 아이들이 예배를 소란스럽게 할까 봐 애가 타는 사람은 누구보다 부모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통제하는데 부모만큼 잘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아이들이 더욱 자라서 스스로 예배를 드릴 때까지 부모가 즐거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아이들의 그런 모습들도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나는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낼 것이다. , 예배 드리기를 사모하는 부모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빌 것이다. 예배에 집중하는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나의 아이들도 많이 컸고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린 아기들이 예쁘게 보이는 것이지, 나의 아들들이 어렸을 때는 이렇게까지 마음이 넉넉하지 못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둘째 아이가 여섯 살쯤이었나…… 첫돌을 맞은 아이를 축하하기 위해 교우네 집에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었다. 그 교우 집에는 친척들도 초대하여서 우리 가족을 포함하여 이십 여명이 되었던 것 같다. 생일 축하 예배를 드리려고 넓은(거의 45(?) 아파트) 거실에 둥글게 앉았다.

그런데 둘째 아이가 갑자기 사람들이 앉아 있는 가운데 텅 빈 공간에 드러눕기 시작했다. 웬 장난?, 이라고 생각하면서 누워있는 아이의 발목을 잡아 끌어내었다. 그랬더니 다시 꿈틀꿈틀 등으로 밀어 가운데 빈 공간으로 가는 것이다.

아니, 이 녀석 왜 그래!’

다시 아이의 발목을 잡아 당긴다. 그리고는 가운데로 가지 못하게 꼬옥 끌어 안는다. 그러면 몸부림을 치며 내 팔을 벗어나 또 가운데로 가려고 하는 것이다. 예배는 시작되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장난인지 심술인지, 도저히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아이의 손목을 잡고 집으로 걸어오는 동안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다스리려고 나름 애썼다. 집에 도착하여 아이에게 이유를 물었다. 대답이 없다. 더 어이가 없었다. 말에 화를 실어 야단을 한참 쳤다. 이유도 모르면서 뭐라고 야단을 쳤는지 모르겠다. 예배 드리는데 어찌 그럴 수 있느냐, 뭐 그랬을 것이다.

그 상황이 벌어진 당시의 교회에 부임하기 전에는 도시공동체를 지향하는 교회에서 목회를 했었다. 그 교회에는 우리 아이들과 같은 또래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어른들 예배 시간에 아이들끼리 잘 어울려 놀았다. 그러다가 새로 부임한 작은 교회는 또래 아이들도 별로 없고, 놀 공간도 작았고, 아이들을 따로 돌볼 여력이 없었다.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하는 것은 남편인 목사가 하고, 그 외의 모든 것을 신경 써야 했다. 그렇다 보니 내가 아이들에게 방해 받지 않기 위하여 예배 시간에 조용히 하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

둘째 아이는 무조건 조용히만 하라는 내게 유치원에서 배운 욕을 종이에 써서 주기도 했다(지금도 그 종이를 보관하고 있다. 재미있어서). 또 한 동안은 예배가 시작되려고만 하면 괜한 짜증을 내어서 힘든 때도 있었다. 추측해보건대 아마 돌집에서 벌어진 일도 이런 일련의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힘겨운 시절이 어느새 흘러가고 아빠의 설교에 대해 코멘트도 하고, 무엇이 의미 있는 삶인지 함께 얘기할 만큼 아이들이 자라났다. 큰 아이는 교회 어르신들의 배려로 주일 예배가 끝나면 노트북,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정리하고, 모아진 헌금도 사무실로 나르고, 목사님의 성경과 설교 원고도 정리하여 목사님 방에 갖다 놓는다. 작은 아이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예배 찬송과 성가대 찬양을 돕는다. 작고 어설픈 일이지만 아이들은 기쁘게 감당하고 있다.

우리 교회 어린 아이들도, 내 아들들도 계속 자라면서 부모님과 함께 예배 드리며, 부모님의 신앙을 본받아 믿음의 가문을 이어가길 바란다. 살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만날 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던 부모님의 신앙을 떠올리며 살아갈 힘을 얻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