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2014

서설(瑞雪)





아이들이 이틀 동안 집에서 쉬다가 학교에 갔다. 등교도 보통 때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했다. 휴일도 아닌데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간 것은 그제 밤에 내린 눈과 낮은 기온 때문이다.

그저께 일기예보에서는 오후 늦게나 눈이 올 것이라고 했지만, 교육구에서는 아예 수업이 없는 것으로 전날 저녁에 이미 알려주었다. 교육구나 학교에서는 공지사항이 있으면 학부모에게 안내 전화를 한다. 궂은 날씨나 비상상황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을 경우는 학부모 전화, 교육구 홈페이지, 그리고 지역 TV나 라디오 방송 채널에서도 안내해준다.

그날 볼일은 오전 중에 마치고 오후가 되어서는 하늘을 살피며 눈이 오기만 기다렸다. 정말 이제나저제나 하는 마음으로 창 밖을 살폈다.

곧 올 텐데, 뭘 그래?”

남편은 눈 오길 간절히 기다리는 내 모습을 보고 픽 웃는다. 나도 우습다. 한국에 있을 때는 겨울마다 보던 눈인데, 살아가는 환경이 바뀌니 눈 오는 걸 보는 것마저 귀하고 그립다.

저녁 8시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집 앞에 서있는 가로등 불빛을 휘감으며 힘차게 내렸다. 눈발이 굵어지고 잔디 위에 조금씩 쌓이기까지 한참을 지켜보았다. 눈을 기다리던 마음 같아서는 뒤뜰에 쌓이는 눈을 밤새 감상할 것 같았는데, 몸은 벌써 잠 자리에 들어가 있었다. 내일 아침에도 눈을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늘 청춘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낭만적인 감성을 위로하며 잠을 청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주도인 콜럼비아로 이사온 지 4년차에 이렇게 많은 눈을 보게 되다니 기분 좋은 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얼추 2인치(5cm)쯤 쌓여있다. 학교를 쉴 정도의 눈은 5년 전쯤에도 왔었나 보다. 우리 교회 어느 권사님은 이렇게 많은 눈은 20년 만이라고 하셨다. 이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눈 내린 풍경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새롭고 흥분된다. 여느 아침과는 달리 바깥이 더욱 환하다. 눈에서 나오는 하얀 색 때문이다. 구름 사이 사이로 비추이는 햇살에 반사된 눈빛이 반짝거린다. 화사하다.

온화한 기후를 가지고 있는 미국 남동부에 눈 폭풍이 온 것은 뉴스에 나올만하다. 눈이 잘 오지 않으니 제설장비가 제대로 있을 리 없다. 부족한 제설장비와 재해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주지사나 시장을 향한 질책은 예상할 수 있는 뉴스거리들이다. 애틀랜타에서 처음 겨울을 맞이할 때부터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애틀랜타에서는 이번에 내린 눈이 미북부 지역에 비하면 많지도 않은 양인데, 그에 대한 행정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실망이 큰가 보다.

이곳, 콜럼비아는 안전하게 학교도 일찍 문을 닫았고, 교우들끼리도 안부를 물으며 서로 챙겨주었다. 하루, 이틀 먹을 물과 식료품은 준비되어 있는지 물어오는 교우도 있었다. 모두 감사한 일이다.

한국은 설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음력으로 새해를 다시 한번 시작하는 날이다. 미국에서는 음력 설을 쇠지는 않지만, 한국인인 나와 우리 가족, 교우들에게 이번에 온 눈은 새해에 복되고 좋은 일이 많으리라,고 알려주는 서설(瑞雪) 같다


때마침 무리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만났어요.
잘 안보이나요???  ^^

1/23/2014

빛바래지 않는 손길




우리 교회에서는 날마다 말씀을 읽기 위하여 말씀묵상집 『기쁨의 언덕으로』를 사용하고 있다. 『기쁨의 언덕으로』는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발행되는 말씀묵상집이다. 사순절이나 대강절 같이 절기의 의미를 되새기는 말씀을 보게 되는 때를 제외하고는 새벽기도 시간에도 『기쁨의 언덕으로』에 나와 있는 말씀을 나눈다.

올해는 온 교우가 더 적극적으로 성경을 읽기 위하여 매주 성경문제지를 만들어 성경공부를 한다. 교우들은 그 문제지를 집으로 가져가 일주일 동안 성경을 읽고 문제에 답을 달아 온다. 그 성경 문제지의 내용도 『기쁨의 언덕으로』에서 제시되는 말씀을 따라가고 있다.

이번 주에 읽은 출애굽기 17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한 후 아말렉과 싸운 이야기가 나온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긴다. 그래서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아론과 훌이 붙들고 있었고, 여호수아는 용감히 싸워 아말렉을 무찌른다. 이 이야기를 읽다가 고등학교 체력장 때의 일이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3학년 가을쯤 대학 진학을 위한 체력장 평가가 있었다. 체력장 점수는 20점이 만점이었고 대입 시험인 학력고사에 반영되었다. 보통 체력을 가진 학생은 어려움 없이 만점을 얻을 수 있었기에, 학력고사에서 20점을 거저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대입 체력장 종목에는 윗몸 일으키기, 오래 매달리기, 멀리뛰기, 멀리 던지기, 100M 달리기, 그리고 800M(?) 오래 달리기가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종목들이 다 치러지고 오래 달리기가 체력장 평가의 마지막 종목이었다. 학급에서 사용하는 번호 순서대로 운동장 트랙을 따라 달렸다. 체육 선생님뿐 아니라 고 3 담임 선생님들도 나오셔서 체력장 결과를 기록하셨다. 대입 시험에서는 1, 2점이 당락을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적어도 체력장 점수에서는 인정을 넉넉히 베푸셨다.

내 순서가 되어 오래 달리기를 시작했다. 얼마큼 달렸을까?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다리는 몸에 붙어있기는 한 것인지 느껴지지 않고, 얼굴은 달아올라 불덩이를 올려놓은 것 같았다(30대에 건강검진을 받고 나서 나의 폐활량이 보통에 못 미친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한참을 앞서갔다. 뒤쳐져서 창피하다거나 20점을 받지 못할까 걱정된다거나, 뛰고 있는지 걷고 있는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때였다.

가자!”

친구 두 명이 달려와 내 양쪽에서 팔짱을 끼었다(친구 한 명은 얼굴이 기억나는데 다른 한 친구는 기억에 없다. 아쉽다). 친구들이 날 붙잡고 함께 달려주어서 남은 거리를 마저 달릴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800M 달리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나서 운동장 한가운데 놓여 있던 하얀 매트리스에 난 한참을 누워있었다. ET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국사 선생님이 죽었나 살았나 내려다 보셨다(실제로 1994년 체력장 평가 때 학생이 사망한 뒤로 이 제도는 폐지되었다).

내 인생에 얼마나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을지 모를 체력장 점수 20점을 그렇게 얻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을 친구들의 도움도 받았다. 얼굴을 아는 친구 Y는 운동장에서 헤매고 있는 날 보고 도와주고자 나섰을 것이다. Y는 그런 의리와 용기가 있는 사람이니 충분히 그럴만하다. 그 친구가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계가 끊어진 지 오래되었다. 그래도 Y와 가까이 지내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행복하다.

민족과 민족 간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아론과 훌이 모세를 돕는 이야기와 체력장에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견주어 보고자 함이 아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이끌고 나온 위대한 지도자나 평범한 나나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게 된다. 그럴 때 만나는 가족, 친구, 교우들의 관심과 도움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지치고 힘들 때 가자!” 하며 붙들어주는 이들의 손길을 생각하면 눈물이 왈칵 솟기도 한다. 그런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깊든 얕든, 도움을 주고 받는 그 순간만큼은 감동이다. 거기에 주님의 이름으로 빌어주는 기도가 보태어지면 은총이다

1/16/2014

발을 따뜻하게 하려면




대한(大寒)이 소한(小寒) 집에 놀러 왔다가 얼어 죽는다, 고 하더니 올해도 소한이었던 지난 주 초부터 많이 춥다. 이상기온 때문에 세계 곳곳이 예년보다 더 많이 춥기도 하고 덥기도 한가 보다. 한겨울이라고 해도 한국의 초겨울 기온 정도를 유지하는 이곳도 기온이 영하로 자꾸 내려간다. 입동부터 소설, 대설, 동지, 소한, 그리고 대한이 24 절기 가운데 겨울에 해당하는 절기다. 겨울의 끄트머리 절기인 대한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그러고 나면 집 바깥을 산책하기에 부담이 없는 날씨가 되었으면 좋겠다.

난 제일 추운 절기인 소한에 태어나서 그런지 여름보다 겨울이 더 좋다. 더운 것보다 추운 것을 더 잘 견디기도 한다. 다만, 추워지면 발이 유난히 차가워져서 그건 별로 안 좋다. 몸이 활동하는 시간에는 발 시린 것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참을 만도 하다. 그런데 제일 참기 힘든 시간은 자려고 누웠을 때이다. 의식이 잠잠해지고 몸의 활동이 줄어드는 잠 자리에 들면 얼음장처럼 차가운 발에 신경이 온통 집중된다. 이불을 덮고 있어도 소용이 없다. 발바닥으로 한기가 몰려드는 느낌을 사라지게 못한다. 발에서 시작된 찬 기운은 점점 온몸으로 퍼져서 잠이 들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발을 손으로 비벼서 열을 내보기도 한다. 괜찮으려나 싶어 누워보면 여전히 발이 차다. 다시 일어나기 싫어 발끼리 부대껴보아도 한기가 가시지 않는다. 이쯤 되면 별 수 없다. 옆 사람의 체온을 이용해야 한다.

발이 너~무 시려서 잠을 잘 수가 없어, !”

인정을 구하는듯한 음색으로 신호를 먼저 보낸다. 그리고 싫다, 좋다 반응하기 전에 얼른 차가운 발을 옆에 누운 사람의 다리 밑으로 쏙 집어넣는다. 남편은 머리가 베개에만 닿으면 잠드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보다 먼저 잠들 때가 많다. 어렴풋이 잠든 남편은 번번이 당하는 일인데도 화들짝 놀란다. 나의 불쌍하고(!) 차가운 발을 차마 밀쳐내지는 못한다. 그렇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발은 어느새 따뜻해진다. 잠결에도 차가운 발을 참아주는 것이 고마워서 나도 그리 오래 남편의 잠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요즘에는 발을 따뜻하게 하는 또 다른 한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족욕이다. 양동이에 물을 3분의 2쯤 받는다. 물에 발을 담갔을 때 좀 참아야 할 정도로 따끈한 온도면 좋다. 10분에서 15분 정도 있으면 발도 따뜻해지고 몸도 따뜻해진다. 그동안 물 받고 어쩌고 하는 것이 귀찮아서 그냥 견디든가 남편의 체온을 이용하든가 했다. 다시 족욕을 해보니 발뿐만 아니라 온몸이 이완되는 듯하여 좋다.

그럼, 오늘 밤에는 어떤 방법으로 발을 따뜻하게 할까? 나에게 물었다.
A.    남편의 체온을 이용한다.
B.     족욕을 한다.

대답은 A+B이다. 전에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A가 좋을까, B가 좋을까, 만 생각했다. 그 둘을 동시에 선택할 수도 있다는 발상이 잘 안 되었다. 앞으로 A나 B, 혹은 A+B를 선택해서 밤마다 따뜻한 몸으로 잠들 것이다. 또 다른 좋은 방법을 알게 되면 더욱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을 테니 재미있을 것 같다.

내 몸의 건강을 위한 사소한 질문에 대한 선택은 쉽고 다양하다. 그런데 반드시 둘 중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진실과 거짓, 하나님 말씀과 사탄의 교묘한 왜곡, 백성을 살리는 정치와 백성을 죽이는 정치…… 이런 질문에는 적절한 타협과 두루뭉술한 선택을 할 수 없다. 예와 아니오가 분명해진다.

에구구, 생각의 흐름이 뜬금없이 옆길로 샜다. 발을 따뜻하게 하려는 노력이 심장도 덥혔나 보다

1/09/2014

이것이 성도의 교제인가


우리 교회 십자가 탑입니다. 하늘, 구름과 잘 어울려 있어서...


지난해 12월 마지막 주일에는 처음 뵙는 몇 분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그 중 한 부부는 우리 교회 권사님 부부와 아주 오래 전에 이웃으로 사시던 분들이라고 했다. 다른 나라와 주에서 한참을 사시다가 콜럼비아로 다시 이사 오셨단다. 권사님과 나누던 정이 그리워서인지 우리 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하셨다. 미국 남편 분(다문화 가정을 소개할 때 이해하기 좋게 모국을 붙여 설명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나도 따라 해 본다)은 산소 호흡기를 착용하고 계셨다. 그래도 몸이 불편하시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밝고 쾌활하셨다. 한국에서 만났던, 지금은 하늘 나라에 있는 은비가 생각이 났다. 근육과 관련된 질병으로 누워만 있던 예쁜 아기, 그 아이도 산소 호흡기를 끼고 예배에 빠지지 않았었다. 몸은 아파도 예배를 지키려는 사람들…… 가슴 뭉클한 깨달음이 새로 오신 분들로부터 전해졌다.

또 다른 한 분도 타주에 사시던 집사님인데 미국 남편분의 직장을 따라 이곳으로 이사오신 분이다. 다문화 가정을 갖고 있는 집사님은 가족이 한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기를 원하셨다. 얼마 전 한국 음식점에서 우리 교회 어느 권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우리 교회에서 예배 드릴 때 동시통역이 가능하다는 정보를 귀담아 들으셨던 것 같다. 집사님의 남편은 평일에 우리 교회를 방문하여 외관을 둘러보고 놀이터가 잘 꾸며져 있어 맘에 드셨다고 한다. 아이들을 위하는 교회는 따뜻한 교회라고 판단하신 것 같다. 놀이기구가 작고 오래 되어 2 년 전인가 십시일반 헌금하여 새것으로 바꾸었다. 그것이 누군가의 마음을 끌어 교회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다니 신기했다. 놀이터에 우리 교회 아이들에 대한 교우들의 애정이 묻어 있었나……

이런저런 사연으로 처음 만나게 된 분들과 예배를 함께 드린 날은 한 해를 돌아보는 마지막 주일이기도 하고 한편, 새해를 새해답게 맞이하고자 하는 새로운 다짐을 하는 주일이기도 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예배를 드려서 그런지 목사님의 설교도 다른 때보다 더욱 힘차고 다부지게 들렸다. 창세기에 나오는 롯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약하고 부족한 죄인이었던 롯을 위해 기도하는 삼촌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며, 천사들을 보내어, 죄악의 구렁텅이인 소돔과 고모라에서 그의 가족을 구출해내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절히 느껴지는 설교 시간이었다. 게다가 우리 교회 예배에 처음 참석하신 집사님은 설교 시간 내내 아멘으로 어찌나 힘차게 화답하시는지, 정신이 번쩍번쩍 나고 설교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예배가 끝나고 교우들이 그 집사님과 인사 나누는 것을 들어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나 보다. 지난해 마지막 주일, 그 낯선 분들은 나와 우리 교우들에게 그렇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헤어졌다.

이틀 뒤, 저녁 때가 되면 교회에서 모여 떡국도 먹고, 윷놀이도 하고,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멘집사님으로부터 당황스러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함께 예배 드린 다음 날, 그러니까 월요일에 집사님네 이삿짐이 도착했다고 한다. 온 가족이 이삿짐을 풀고 있었고 집사님의 남편은 세탁기를 연결하고 계셨다. 그러다 남편 분께서 쓰러지셨고 응급실로 가던 중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50 대 후반이셨는데 지병이 있으셨나 보다. 왕래가 거의 없던 결혼한 큰 딸이 노스캐롤라이나에 살고 있으나 콜럼비아에는 아는 이가 하나도 없는 집사님이셨다.

고인이 되신 집사님의 남편은 은퇴한 군인이셨는데, 장례 절차를 간소하게 하고 화장을 하여 군인묘지에 안장해 달라고 평소에 유언하셨다고 한다. 집사님은 콜럼비아에 있는 군인국립묘지 측과 상의하여 화장 절차를 진행할 것이고, 유족들과는 교회에서 추모 예배 드리기를 원하셨다. 이러한 집사님의 사정은 우리 교회 온 교우들에게 빠르게 전해졌다. 교우들은 한 번도 뵙지 못한 분의 추모 예배를 준비하는 것에 대해 예 혹은 아니오, 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가 해야 될 일로 받아들였다. 여선교회에서는 음식 그리고 남선교회에서는 꽃을, 유족들이 준비하는 것 외에 필요한 것을 예측하여 마련했다. 교우들은 차분하게, 정성을 다해 고인과 유족을 위한 예배에 마음을 썼다. 우리 교회 교우들이 한마음 되어 동참하는 모습이 따스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또 감동적인 것은 그 집사님이 다른 주에서 다니던 교회의 교우들이 자동차로 22시간 운전하여 먼 길을 달려오신 것이다. 같은 목장에 속해 있던 회원들이신데 집사님네 소식을 듣고 세 분이 바로 출발하셨다고 한다. 집사님과 오랜 친분이 있는 그 세 분은 남편과 아버지를 여의고 낯선 곳에서 살아가야 할 유족을 위로할 뿐 아니라 며칠 동안 추모 예배에 오실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푸짐하게 만드셨다.

지난 토요일에 추모예배를 드렸다. 예배가 소홀해지지 않도록 사회, 설교, 기도 등 모든 것이 이중언어로 진행되었다. 애달픈 조가도 불려졌다. 조문객이 너무 적어 쓸쓸하면 어쩌나 했는데 아주 적지도 않았다. 집사님 큰 딸의 미국 시아버지가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어느 미연합감리교회 목사님이시라고 들었다. 그 목사님 부부가 예배에 참석하셨다. 내가 다 감사했다. 고인의 화장 일정을 담당할 군인들도 참석했다. 추모예배와 교제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진행되었다. 멀리서 오신 집사님의 옛 교우들은 주일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며 점심식사를 마치고 바로 떠나셨다.

단 한 번 예배를 같이 드림이 인연이 되어 누군가의 아주 슬픈 일에 함께 울어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마음은 무엇인가? 함께 신앙 생활했으므로 갑작스런 사고에 슬퍼하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멀고 먼 길을 달려오는 그 마음은 또 무엇인가? 이것이 성도의 교제인가......

1/02/2014

두려움을 이기기 위하여


이 사진은 http://blog.daum.net/nchwang15 에서 가져왔어요.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무릉계곡으로 여행 갔을 때의 일이다. 단짝친구와 둘만의 여행이었다. 대학교에서 만난 우리는 방학이 시작되면 바로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둘 다 신학생이어서 각자 다니는 교회에서 주로 교육부를 맡아 일하고 있었으므로 여름성경학교나 수련회 또는 성탄절 준비로 바빠지기 전에 짧은 여행을 했다. 대학교 3학년인지, 한 학년을 마친 겨울방학이 되었고 우리는 강원도 쪽으로 여행을 하기로 했다. 지금처럼 여행 정보가 넘쳐나는 시절이 아니어서 아마도 미용실에 머리 하러 가서 보게 되는 여성 잡지의 어느 한 구석에서 무릉계곡이라는 곳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싶다(친구야, 맞니?).

내 친구 E는 깡마른 체구에 가무잡잡한 피부와 작지만 깊이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 새파랗게 젊던 그 시절, E는 이러한 자신의 외모를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요즘 한국에서는 마른 사람이 미인이 되는 분위기다. 지난해 한국에서 여러 친구들을 만났을 때 우선, 겉모습에서 느껴지는 대로 서로 안부를 묻던 중 어느 친구가 E를 바라보았다.

“E, 넌 여전하구나. 하나도 안 변했다.”
시대를 잘 만나서 어깨 펴고 산다.”

다들 공감하는 E의 대답에 한바탕 까르르 웃었던 기억이 난다. E는 대학 생활이 해를 더할수록 학교 안에서 인기가 많은 사람이 되었다. 착한 심성을 가진 데다가 친구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연극, 그림, 노래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대학이라는 공동체 생활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E와 절친이었던 나는 강의실과 도서관만 오고 가는 샌님 같았다고 할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친구들은 날 범생이(모범생을 낮춰 부르는 말)라고 불렀던 것 같다.

말라깽이와 범생이는 한 인격체로서 성숙해가는 과정 중이었고, 제한적이나마 세상에 대한 탐구와 모험심이 가득했다. 그래서 여행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나 별다른 준비물 없이 작은 배낭 하나만 짊어지고 둘만이 떠나는 어설픈 여행이 가능했다.

동해시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나자 한겨울 짧은 해는 이미 저문 상태였다. 기차역 근처였는지(! 그때를 자세히 기억하기에는 시간이 꽤 흘렀나 보다) 여관을 정해 들어갔다. 낯설고 침침한 여관에서 두 여대생이 하룻밤을 묵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편안하지가 않다. 겁이 많은 나는 헐렁한 여관방 문고리가 마음에 걸려 밤새 뒤척였다. 잠이 많은 E는 잠 못 드는 날 신경도 안 쓰고 무심하게 잘도 잤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아침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밝아왔다.

뻑뻑하고 충혈된 눈으로 세수만 겨우 마치고 여관 문을 나섰을 때 깜짝 놀랐다. 온 세상이 하얬다. 밤새 눈이 온 모양이었다. 무릉계곡이 있는 산에 올라갈 수가 있으려나 아니, 거기까지 가는 버스가 다니기는 하는 걸까 궁금해하면서 동시에 물어 물어 버스를 타고 무릉계곡 입구에 이르렀다

매표소 앞에 다가가 작은 창문을 두드렸다. 아저씨 한 분이 계셨다. 아저씨는 이렇게 눈이 많이 온 날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셨다. 산에 올라가려고 한다니까 아저씨는 매표소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아저씨는 우리들을 아래 위로 훑어보셨다.

운동화는 신었네. 아직 산에 올라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짐은 여기에 맡기고 가도 돼.”

다른 주의 사항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런 등산 장비 없이 운동화 신은 것만으로 등산이 허락되었다. 그 시절은 그랬던 것 같다.

길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쌓여 있었다. 우리가 그날 아침 처음 등산객이니 앞서 간 사람의 발자국도 없었다. 매표소 아저씨가 허락해주어 들어가긴 했지만 참으로 무모한 산행이었다. 의심 많고 두려움이 많은 나는 도저히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E가 앞장 섰다. E가 두 걸음 앞서 가면 난 한 걸음을 내디뎠다.

등산길 옆으로는 계곡이었는데 얼음이 얼었는지 물이 흐르고 있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쌓여 있었다. 온통 눈으로 덮인 크고 하얀 산에 처음 손님이 되어 찾아 들었으니 흠집 없는 그대로의 설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곳을 찾아간 보람이 있었으련만 온 몸이 긴장되어 있어 주변 경관에 눈 돌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다리에 힘을 엄청 주며 걸은 탓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입구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수백 명이 올라갈 수 있다는 무릉반석이 나온다. 아주 넓은 바위인 무릉반석 위에 서보려면 길에서 내려서서 계곡 쪽으로 걸어가야 한다. 그곳에 이르러 E는 무릉반석 위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내딛는 곳이 바위 위일지 계곡물이 흐르고 있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는 무릉반석의 평평한 눈 위에 누워 좋아라 했다. 그래도 난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래가지고는 무릉계곡에서 유명한 용추폭포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아저씨들 몇 명이 보였다. 그들도 겨울산행에 나선 이들 같았다. 아저씨들은 우리와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앞으로 쭉쭉 나아가셨다. 아저씨들은 길 위에 발자국을 쿡쿡 찍어 놓으셨다. 우리들은 뜻밖에 나타난 아저씨들의 고마운 발자국을 따라 올라갔다. 기대하지 않았던 도움이 우리의 산행을 수월하게 했다.

그래도 눈 쌓인 산길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나와 동행하고 있었다. 그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 친구와 서로 의지하며 걷고 또 걸어야 했다. 도중에 멈추어 서는 것은 우리의 모험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며, 그건 더 두려운 일이었다. 우리가 계획했던 용추폭포에 이르렀다. 우리는 감사하게도 별다른 문제없이 산을 다시 내려왔다

12/28/2013

멋진 힘 조절


아틀란타한인교회 마당에서.


동남부 한인연합감리교회 목회자 가족 수련회에 갔었다. 2 3일을 미국에서 고향 같은 애틀랜타에서 보내면서 반가운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새로 얼굴을 익히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수련회 둘째 날, 한인연합감리교회(아래 연감)와 기독교대한감리회(아래 기감) 목회자들의 친선 경기가 아틀란타 한인교회에서 열렸다. 경기 종목은 탁구, 족구와 배구였다. 목회자 아내들은 경기가 열리는 동안 각자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하도록 허용되었다. 덕분에 아틀란타 한인교회 근처에 있는 한인 마트를 어슬렁대다 돌아왔더니 탁구와 족구 경기는 끝나 있었다. 경기 결과는 연감과 기감이 1:1 상황이었다. 마지막 종목인 배구 시합은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구경하기로 맘 먹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친선 경기이니 누가 이겨도 좋겠으나 남편이 연감 쪽 선수로 뛰게 되었으니 당연히 연감을 응원했다.

9명의 선수가 참여하는 9인제 배구가 시작되었다. 배구공이 날아가고 튕겨지는 곳으로 눈길이 바쁘게 따라다녔다. 목사님들이 재주가 많으신지 배구도 잘 하셨다. 그 자리에서 만들어진 팀이니 팀 플레이 보다는 각자가 열심히 경기하는 모습이었고, 그 중에서 좀 더 기술적으로 잘 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빠르고 힘차게 날아온 공을 가볍게 받아서 공격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때론 힘차게 내리꽂거나 때론 살짝 네트를 넘겨 점수를 획득할 때마다 구경꾼들은 환호와 박수로 선수들을 응원했다.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 공을 살려낼 때도, 갑자기 자기 앞으로 날아오는 공을 민첩하게 받아낼 때도 선수들은 박수를 받았다. 선수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3 세트 경기를 했고, 연감이 이겼다. 올해 수련회 친선경기에서는 전체적으로 연감이 이기게 되었다.

구경꾼들은 박수로 선수들을 격려하고 선수들은 물을 마시며 흩어지려고 하는데, 어느 목사님께서 40, 50대 나눠서 경기해 보자고 제안하셨다. 이 제안은 연감과 기감 목회자들이 섞여서 경기하자는 말씀의 다른 표현이었던 것 같다. 경기가 재미있게 진행되었다. 연령대가 높으신 목사님들은 배구 기술이나 경기에 임하는 열정이 젊은 세대에 뒤지지 않으셨다. 하지만 힘은 좀 부치시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공이 네트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옆에서 50대 목사님 편을 응원하시던 사모님 한 분이 경기를 하고 있는 젊은 목사님께 애교 섞인 항의를 하셨다.

살살 좀 하셔~”
이건 경기에요. 경기는 이기려고 하는 거에요.”

젊은 목사님께서 짐짓 진지하게 대꾸하시는 모양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몇 마디 더 말씀을 나누시는 것 같았는데 다 들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젊은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귀에 쏙 들어왔다.

힘 조절 하는 것도 능력이에요.”
맥락 없이 들린 말이긴 한데 이 말이 자꾸 되뇌어졌다.

공을 잘 받아내는 상대 선수를 향해서는 강한 스파이크로 공격하고, 연세 많으신 선수를 향해서는 퉁퉁 튕겨 공중에 띄워 힘 빠진 공을 넘겨주기도 하고, 공을 서비스 할 때도 점수를 내기 위해 잘 받아내지 못하는 선수 쪽으로 스리슬쩍 보내기도 하고…… 이런 걸 두고 힘 조절 잘 한다고 하는 것이리라.

내 눈에는 배구 경기를 하고 있는 양팀 선수 열 여덟 명 모두 힘 조절하는 능력은 다르지만 힘을 다해 경기를 하고 있었다. 심판은 어느 팀이 이겼는지 정확한 판가름을 하려고 힘을 다하고 있었다. 환호하는 구경꾼들은 경기에 집중하면서 선수들을 응원하는데 힘을 쏟고 있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주변을 맴도는 구경꾼들도 저마다의 이유에 힘을 쓰고 있었다. 운동신경이 둔하고, 융통성이 없고, 순발력이 떨어져서 상대적으로 무기력해 보이고 존재감 없는 나라는 사람은 구경꾼으로 앉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데다가 힘을 싣고 있었다.

이 장면에서 쓸데없는 군더더기 힘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힘을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의해 어딘가에 사용하고 있었고, 적어도 그 시간은 각양 각색의 힘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멋지다!

2013년 세밑이다. 다가오는 새로운 해에는 어디에 힘을 쏟아야 할까…… 

12/19/2013

믿고 기다리는 연습




몇 주 전 아침이었다. 뒤뜰이 내다보이는 창문의 블라인드를 여는데 이상한 조각들이 눈에 띄었다. 뭐지?, 하며 얼굴을 창문 가까이에 대고 좌우로 살펴보았다. 이런! 옆집 J 아주머니네 울타리 일부분이 부서져 있었다. 그 울타리는 왕복 2 차선 도로 쪽에 쳐진 것으로 우리 동네를 둘러싸고 있다. 울타리가 하나로 쭉 연결되어 있으나 집집마다 자기 땅에 해당하는 부분의 울타리를 각각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집이 있는 쪽은 동네를 둘러싼 울타리만 있을 뿐, 집과 집 사이 경계되는 곳에 울타리를 치지 않고 산다. 그래서 뒤뜰에 나가면 옆집 뒤뜰과 다 연결되어 있어 엄청 넓어 보인다. 그래도 남의 집 뒤뜰로 걸어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J 아주머니네 울타리가 부서져 크고 작은 나무 조각들이 우리 뒤뜰에까지 날라온 것이다. 그리 굵지 않아도 제법 잎이 많이 달리던 나무 하나도 부러졌다. 길가 쪽에 서 있는 전봇대 보호판도 부서져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울타리와 나무, 그리고 전봇대 보호판까지 상한 걸 보면 바람에 넘어진 것 같지는 않다. 이곳에 그리 오래 산 것은 아니나 그렇게 심한 바람이 부는 걸 아직 보지 못했다. 남편은 밖에 나갔다 오더니 자동차가 들이받은 것 같다고 했다.

옆집 J 아주머니는 홀로 사시는데 몸이 많이 아프시다. 이웃이 되어 처음 만났을 때 지팡이를 많이 의지하고 계셨고 말소리에도 힘이 없으셨다. 그런데 요즘에는 몸이 더 안 좋아지셨는지 간호보조사들이 돌아가면서 거의 24 시간 아주머니를 돌보고 있다. 병원도 자주 가시는 듯 하다. 그런데 집 울타리까지 말썽이다. 아주머니가 많이 속상하실 것 같았다. 경찰이나 보험회사 직원들도 만나야 할 테고…… 아니면 아프신 분이니 누군가 돕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한국 생활이 몸에 베인 내가 느끼기에 미국 사람들은 일을 서둘러 하지 않는 것 같다. 일을 처리 하는 기간이 명시된 것은 그 시간을 잘 지키는 편이다. 별 거 아닌 일로 판단하고 일찍 일이 해결될 거라고 기대했다가는 속만 태우기 십상이다. 정해진 시간을 다 채운 후에야 일이 마무리되는 것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한편, 일 처리 기간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는 경우는 그 결과가 언제 나올지 잊어버리고 있어야 한다.

지난 여름, 한국을 방문하고 있을 때 여기는 비가 많이 왔다고 한다. 한국에서 돌아온 후에도 꽤 굵은 비가 심심치 않게 내렸다. 그러다 보니 뒤뜰 한 쪽에 빗물이 땅 속으로 미처 빠지지 못해 웅덩이가 길게 생겼다. 웬만하면 하루 정도 지나서 물이 빠지고 잔디가 원래대로 회복이 된다. 그런데 올 여름에는 비가 연이어 내린 탓인지 배수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 물웅덩이가 생기는 것을 알고 있는 친절한 A 아주머니는 동네 관리하는 업체에서 사람이 오기로 했다고 전해주셨다(A 아주머니는 동네 일을 보고 계신 듯하다). A 아주머니에게 그 얘기를 듣고 비가 몇 번이 더 왔는데 관리 업체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물웅덩이는 점점 커졌고 며칠을 지켜보아도 물이 빠지지 않았다. 둘째 아이도 물웅덩이가 눈에 거슬리는지 가까이 가서 살펴보고는 모기 같이 생긴 벌레들이 많다고 걱정을 했다. 나는 물웅덩이를 사진으로 찍어두고 동네 관리하는 곳에 이메일을 보냈다.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되면 연락 달라고 했다.

여름이 서서히 물러가면서 비는 자주 내리지 않았고 물웅덩이도 점차 줄어들어 흔적이 없어지도록 그것을 살피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홍수가 난 것도 아니고, 비록 오랜 시간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인 빗물이 사라지기는 했으니 관리 업체에 독촉하기가 어정쩡해졌다. 그리고 옆에 있는 남편은 기다려 보라, 고 하니…… 이메일을 보내놓고 물웅덩이가 그대로 있는 동안은 이메일의 받은 편지함을 확인할 때마다 약간 짜증이 났었다.

어느 날 운동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웬 청년들 서넛이 우리 집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동네 관리하는 사람들이 온 것이다. 관리회사에 이메일을 보낸 지 두 달 반이 지난 때였다. 자기네는 배수관을 살펴보러 온 사람들인데 어디에 물이 제일 많이 고이냐고 물어왔다. 이 사람들을 반갑다고 해야 될지, 어이가 없다고 해야 될지…… 어쨌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좋은 사람은 내 쪽이기에 찍어둔 사진을 얼른 보여주었다. 리더인듯한 청년은 사진이 있어서 문제가 무엇인지 얼른 알 수 있었다며 고맙다고 했다. 물웅덩이가 생기는 곳에 배수관을 새로 묻어 빗물이 동네 도로 쪽으로 빠지게 공사하겠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앳돼 보이는 젊은이가 상냥한 태도를 보이는 바람에 어이없던 마음은 정말 어이없게도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일이 이런 식으로 아주 더디게 해결될 수도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일들을 몇 차례 경험한 바가 있는지라 J 아주머니네 울타리는 언제쯤 고쳐지려나, 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저 성탄절 전에 울타리가 복구되어 아주머니에게 메리 크리스마스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사고가 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전봇대를 교체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주민의 안전을 위한 일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와서 빠르게 일을 마무리했다. 그로부터 한 열흘쯤 지나고 나서는 넘어진 울타리와 나무를 치우고, 또 며칠이 지나 새로운 울타리가 뚝딱 생겨났다. 예상보다 일찍 울타리가 복구되어 내 기분이 다 좋았다. 아주머니의 마음도 편안해지셨을지……

삶을 정성껏, 천천히살아가고자 하며 감정의 기복이 심하지 않은 편인데 요즘은 조급증이 생긴 것 같다. 살아가는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지 나이가 들어 호르몬이 바뀌어 그런지 모르겠다. (주로 나와 가족과 관련된 일- 이렇게 사족을 달아놓고 보니 비겁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우주가 다 연결되어 있는 것을)이 내 맘처럼 진행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짜증이 난다. 마음이 불안하고 화를 내도 일이 해결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줄 알면서도, 부정적인 감정들을 들쑤셔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한다. 호르몬이 바뀌어서 그런 거라면, 감정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조절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들을 찾아봐야겠다. 삶의 자리가 바뀌어서 조급증이 생겼다면, 이곳의 문화와 사람들을 신뢰하는 것이 필요할 듯 하다. 응급상황이 아니라면 믿고 기다리는 연습을 더 해야겠다. 일이 처리되는 과정을 다 알 수 없어도 해결될 거라고 믿고 기다리는 마음은 평안할 것이다

12/12/2013

엉성하고 느슨한 성탄축하예배


2012 성탄축하예배






추수감사절이 지나자마자 라디오에서는 캐럴을, 텔레비전에서는 성탄이 소재가 되는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듣고 보게 된다. 어떤 채널에서는 이런 것들을 하루 종일(!) 듣거나 볼 수도 있다. 내가 사는 미국 동남부, 특히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눈을 거의 볼 수 없고 기온이 낮아져 서리가 내리면 겨울철인가 보다 할 정도의 날씨다. 그렇다 보니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카푸치노가 담긴 컵에 손을 녹이며, 커다란 창 밖으로 내리는 함박눈 속에서 바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을 친근한 눈길로 바라보며, 아련히 들려오는 캐럴이 성탄절기를 보내고 있으며 곧 한 해가 마무리 될 것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모습은 영화 속에나 등장할 법하다. 같은 동부인데도 북쪽은 요즘 눈 폭풍이 휩쓸고 있고 정부가 셧다운할 정도라고 하니, 눈이 마냥 낭만적이지 않고 재해인 곳도 있어 안타깝기도 하다. 하여튼 추운 계절에 듣는 캐럴은 기분을 달뜨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지난해에도 올해처럼 캐럴을 즐겨 들으며 성탄 장식이 자주 보이는 미국 영화도 가끔 찾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시골 교회에서 성탄절 연극(?)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내레이터가 성경 본문을 읽으면 교인들이 그걸 몸으로 표현했다. 말은 필요치 않았다. 아주 소박해 보이는 성탄극이었다. 하지만 극에 참여하고 있는 교인들은 저마다의 역할에 맞는 의상을 그럴듯하게 차려 입었고 소품도 아기자기 하게 여러 가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연극이라는 것이 대사를 외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대사가 없는 연극이라니 우리 교회에서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성탄을 기뻐하는 마음을 담아, 성경 말씀을 몸으로 표현해보자는 의미를 두고 진행이 되었다. 목사님은 성탄과 관련된 성경 본문을 찾아 시간의 흐름대로 나열하여 이야기를 만들었다. 셀별로 이야기를 나누어 맡았다. 영화에서처럼 대부분 내레이터가 본문을 그대로 읽어주면 셀원들은 몸으로 본문을 표현했다. 때로 이야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주 간단한 대사가 들어가기도 했다.

몸으로 표현하는 성탄이라는 의미를 계속 강조했으나 성탄 때마다 들어온 말씀을 그대로 읽고 표현하다보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성극인데 잘 참여하시려나 아주 조금 걱정했다. 그런데 성극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60 , 70 세 넘으신 분들이 맡은 역할을 잘 표현하기 위해 서로 조언해주며 하하 호호 즐겁게 극을 꾸며갔다. 96 세나 되신 할머니 권사님께서도 참여하셨다. 와우! 극중 의상도 솜씨 좋은 분들은 만들기도 하고, 언젠가 성극할 때 입었던 옷을 찾아오신 분도 있고, 이집트 여행할 때 사두었던 옷을 가지고 오신 분고 계셨다. 성극에 참여하지 않는 교인들은 대부분 찬양이나 연주 등으로 준비를 했다.

성탄주일 예배는 우리가 준비한 모든 것을 발표하는 것으로 드려졌다. 무대 의상을 입은 채로 예배를 드리다가 자기 순서가 되면 무대에 나가서 자기가 준비한 것을 보여주었다. 연습한 시간도 길지 않았고 대사도 없는 성극은 예상대로 어설펐다. 무대 위에 올라가 서로의 자리를 정하느라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내레이터 맡으신 어느 집사님은 평상시에도 혼자 잘 웃으시는데, 이 날 어떤 장면에 눈길이 가셨는지 웃음을 참지 못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셨다. 교인들 모두가 미소를 머금은 채 예배를 드리는 동안 성탄의 기쁨이 슬그머니 그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는 듯 했다. 이 날 성탄예배는 엉성하고 느슨하면서도, 화목한 분위기로 드려졌다.

올해 성탄축하예배는 지난해와 구성은 비슷하나 성극이 대사가 많아졌다. 이번에도 주인공들은 60 대 중반 되신 권사님들이다. 지난해보다는 각자 좀 더 열심히 준비 중이신데 서로 만나서 연습하는 시간이 적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어느 권사님은 대사를 못 외우면 극본을 보고 하면 되고, 틀리면 그게 더 재미있는 거라고 하신다. 연세 많으신 권사님들이 성탄 축하에 기꺼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성탄예배가 좀 엉성하고 느슨하면 어떤가! 그 엉성하고 느슨한 빈 틈을 따라 아기 예수님이 누워 계신 곳으로 인도할 유난히 밝고 시린 별빛이 흘러 들어오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 별빛을 따라 거친 들판을 걸어가는 목자들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한 걸음 내딛는 사람들이 여기에도 있다.   

 




12/05/2013

영혼의 불꽃을 일으킨 한 단어, 순수


즐겨 걷는 길가에 서있는 오래된 참나무(Oak)다. 
나무 이름이 참(!) 좋다.


어려서부터 교회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주일에 교회를 거의 안 빠지고 예배에 참석했다. 교회 선생님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잘 따라 했다. 성경 구절을 외우라면 외우고, 찬양을 예쁘게 부르라고 하면 그렇게 하려고 애썼다. 교회 선생님들은 나를 많이 귀여워해 주셨고 나는 더 열심히 선생님들의 말씀을 잘 듣고 따랐다. 어린 나에게 교회는 유익하고 즐거운 놀이터였다.

교회 선생님으로부터 성경 말씀과 그들의 신앙 태도를 여전히 배우면서, 중학교 2 학년 때부터 나도 교회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나의 모교회는 작은 교회가 아니어서 청년들도 많았는데 어린 나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어찌 일이 그렇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고 그 맡겨진 일을 얼마나 잘 감당했을까, 돌아보니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늘 흥분되고 도전이 되었다. 아마도 교회는 나에게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꿈을 꾸게 해준 곳이었던 것 같다.

교회 안에는 지금이나 그때나 남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귀찮은 일들이 있다. 행사준비, 청소, 식사준비, 설거지, 예배 후 뒷정리…… 난 무슨 생각이었는지 집에서는 손도 까딱하지 않으면서 교회에서는 그런 일들이 마치 나의 일인 양 참 잘도 했다. 그때의 마음을 기억해보면 칭찬을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생색을 내려고 한 것은 더 더욱 아니었다. 그냥 남들이 잘 안 하려고 하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되는 것이고 그런 자리에 내가 있었을 뿐이었다. 개신교와 천주교, 뭐 이런 개념이 없던 어린 시절에는 난 수녀가 되어야 하나 보다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이 밖에도 나의 모교회는 내 삶의 태도나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고등학교 3 학년이 되어 가고 싶은 대학을 고르기 전까지 신학대학이라는 학교가 있는 줄 몰랐다. 난 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세상 지식을 가르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신학대학이라는 존재를 알고 나서 어떤 길이 하나님을 위해 더 잘 일할 수 있는지, 일 년 동안 밤 9 시만 되면 교회 있는 곳을 향하여(왜 이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더 정성스럽다고 여겼는지…… 나의 과거지만 딱히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무릎을 끓고 하나님께 물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께 더 헌신하길 원하시면 증거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 증거로 대입 학력고사 점수를 몇 점을 달라고 내 맘대로 정했다. 학력고사 결과가 나왔는데 점수는 기도하던 것에서 일 점도 어긋나지 않는 딱 떨어지는 그 점수였다. 난 망설임 없이 신학대학을 가기로 결정했다. 일반 대학에 진학하길 바랐던 기대를 저버린 딸에 대한 부모님의 분노도, 친척들과 친구들이 찾아와 신학대학 가는 것을 말리는 충고도 이미 확실한 증표를 가진 내 마음을 바꾸지는 못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면접이 있었던 날이다. 교수님은 왜 신학대학을 왔냐고 물으셨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하나님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라고 대답했다. 난 교회가 좋고 교회를 위해서 뭔가 더 잘 하고 싶은 단순한 마음이었다. 원서 접수를 할 때 신앙고백을 적어 내는 것이 있었다. 난 거기에 사도신경을 적어서 냈다. 그 보다 더 좋은 신앙고백문이 있을 수 없다는 고매한 생각에서가 아니라 신앙고백이라고는 사도신경 밖에 몰라 그걸 적은 것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자신의 신앙을 고백해 보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교수님은 내 대답과 신앙고백문을 보고 어찌 생각하셨는지 알 수 없는 웃음을 웃으시며 나중에 교수님 자신의 아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셨다(교수님의 두 아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수님을 통해 그 아들을 소개받는 일은 없었지만 교수님은 재미있는 기억 하나를 만들어 주셨다). 신학과 180 명 신입생 가운데 다섯 번째의 꽤 괜찮은 성적으로 입학을 했다.

성실한 교회 언니에서 신학생이 되고, 전도사가 되고, 20 여 년 전부터 목사의 아내가 되어 살고 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교회와 더불어 신앙생활 하면서 기쁘고 은혜롭고 감사한 일들과 슬프고 황당하고 괴로운 일들이 참으로 많이도 찾아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숲길을 걸으며 남편과 새해에는 무엇을 기도해야 하나 이야기 하게 되었다. 야트막한 산 속을 한 시간 반 이상 걷다 보면 수다를 많이 떨게 된다. 이 날은 이야기가 흘러 흘러 교회와 관련된 나의 어린 시절을 더듬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남편은 당신의 순수함을 보시고 이 길로 이끄셨나 보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말이 발에 밟혀 부스러지는 나뭇잎 소리에 섞여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남편은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당신의 그 순수함을 회복해야 될 때 같은데.”
순수함?’
머릿속에서 반짝하는 불꽃이 튀었다. 일정한 주제도 없이 떠들어댄 기억의 조각들 속에서 나의 순수함을 읽어준 남편이 예뻐 보였다. 동시에 미국으로 와서 느슨해져 있던 기도의 끈을 다잡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나이가 어리든 나이가 들어가든 순수하게 살 수 있다. 어릴 때는 세상에 물들지 않아 그 자체로 순수한 상태라면 나이가 들어서도 사사로운 욕심이나 그릇된 생각을 하지 않는 순수에 머무를 수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미국으로 온 뒤로 난 자꾸 순수와는 거리가 먼 속물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낯선 현실이 불안하게만 여겨졌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성경 가방 속 깊숙이 밀어두고, 한 달의 수입과 지출에 맞추어 모든 것이 숫자로 표현되었다.
당신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
아니야, 나 원래 그런 사람이야. 어떡할 거야!”
남편과 이런 주제로 때때로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지금까지 왔다. 그런데 나에게도 순수한 구석이 있었노라 남편이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 동안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들었을 때의 마음가짐도 보통 때보다 순수한 상태였다고 할 수 있겠다. 불안과 걱정, 지식과 경험, 선택과 방법, 손해와 이익 계산을 다 떠나 보내고, 앞으로 열려질 모든 가능성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그 어떤 것을 주셔도 그것은 좋은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모형인 가족과 교회를 위한 응답을 바라는 마음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선한 길로 인도해주시리라 믿고 마음을 텅텅 비우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한결 같은 사랑으로 나의 삶을 인도하고 계심을 확신시켜 주셨다.

이제부터 하나님께 드릴 기도의 키워드를 찾아냈다. 바로 교회다. 미국에 온 뒤로 목사는 교회라는 일터에서 월급 받는 고용인 같다는 느낌이 많았다. 난 그 고용인의 월급으로 살림을 사는 아내일 뿐이고 말이다. 누구도 이렇게 얘기한 사람은 없다. 그냥 나의 시답잖은 느낌이다. 이런 느낌도 불필요한 것이므로 흘러 보내려 한다. 그저 나는 교회를, 교인을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남편 말대로 혹여 교회를 사랑하는 나의 순수함을 보시고 지금의 자리로 이끄셨다면, 그래서 빈 마음으로 다시 교회를 사랑한다면, 하나님은 분명 나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우리 교회가 사랑이 넘치는 교회, 소망이 있는 교회가 될 것이다

11/21/2013

소설『높고 푸른 사다리』를 읽고


 
 
전자책으로 한 권의 책을 완독했다. 처음이다. 전자책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도 나는 종이책이 더 좋다. 종이가 주는 느낌이나 냄새도 좋고, 맘에 드는 구절은 연필로 삐뚤삐뚤 줄을 긋거나 동그라미를 쳐 놓을 수도 있고, 책 내용과 관련되어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놓기도 하고, 그래서 종이책이 좋다. 전자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든 기기나 일부 앱들의 기능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 종이책을 읽으면서 하는 줄긋기, 메모, 북마크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하는 내용을 찾아주는 검색 기능도 있어 편리하기도 하다. 그래도 아직 나는 손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읽는 종이책이 익숙하고 정겹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 책을 구입할 수 없는 이곳에서  빨리 읽고 싶은 마음에 전자책 구매를 하자는 남편의 의견에 동의를 했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 값을 결제하면 바로 내려 받아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처음 구입한 전자책은 공지영 작가의 새로운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작가의 소설은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그런 점이 공지영 작가의 글을 자꾸 읽게 한다.

높고 푸른 사다리』에서도 감동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1950 12월에 있었던 흥남 부두 철수사건과 관련된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 잔잔한 배경이 되어 자리잡고 있다. 전쟁에 필요한 연료를 전달하기 위해 흥남 부두를 향해 미국 국적의 배 한 척이 항해를 한다. 북쪽 흥남 부두에 도착했을 때 중공군의 개입으로 대대적인 철수가 이루어지고 있는 때였다. 피난을 떠나려는 많은 사람들은 부두에 모여 어떻게 해서든 배를 타기 위해 몸부림을 치기도 하고 승선이 허락될 배를 조용히 기다리기도 한다. 이것을 본 연료 운반선의 선장은 열 두 명이 정원인 배에 무려 1 4000 명을 태운다. 배가 가라앉거나 바닷속 지뢰가 터질 위험을 감수한 결정이었다. 사흘 동안 바다를 달려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무사히 거제도에 도착한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한 선장은 종적을 감춘다. 이 사건의 자세한 내용과 그 후 선장이 어찌되었는지 소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소설에서는 사랑이라고 꼬집어 말하지는 않으나 여러 가지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한 미국인 선장의 피난민을 향한 사랑, 북한에서 선교하다가 죽거나 살아서도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남한에서 평생을 수도하는 외국인 수사들의 우리나라 사랑, 철탑에 올라가 있는 여성과 그녀의 가난한 아이들을 보듬는 어느 수사의 사랑, 친구들끼리의 사랑, 신부 서품을 앞두고 한 여성과 사랑하게 되어 신부가 되려는 것도 다 버리겠노라 하는 주인공 수사의 열렬한 사랑……

동시에, 사랑하기에 견뎌내야 하는 아픔과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을 겪으며 하나님께 도대체, ?” 라는 물음을 계속 묻는다. 이러한 물음과 톨스토이가 물었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대답은 같다.  공지영 작가는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 지상에 머문다고 표현한다.

높고 푸른 사다리』의 현실적인 배경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과 거기서 노동하며 기도하는 수사와 신부들이다. 그들은 나와 교단은 다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 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신앙인이라는 동질감이 생겨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읽었다. 내 생각이나 욕심과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늘 갈등하면서 그래도 하나님의 뜻을 묻고 따르려고 애쓰며살아가는 나의 마음에 남는 글귀가 있어 적어본다. 주인공인 요한 수사는 소설의 끝부분에서 미국에 살고 있는 노년이 된 연료운반선의 선장을 극적으로 만난다. 이 선장님이 요한 수사에게 한 말이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날 배를 운전한 것은 제가 아니었습니다. 당신 자신을 그대로 놓아주세요. 힘을 빼고 즐거워하세요. 그러면 어떤 항구에 도착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절대 미리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가르쳐주셨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고통을 통해서만 우리는 성장한다는 것을요.”

11/14/2013

포옹


엄마의 화장품을 놀잇감 삼아 놀았던(으~~~) 산과 윤이.
 
 
둘째 아들 윤이가 싸놓은 도시락을 챙겨 학교에 가기 위해 주방 쪽으로 온다. 그러면 나는 가방 앞 쪽에 도시락을 편안하게 자리잡아 넣는 아이를 옆에 서서 지켜본다. 아이는 가방의 지퍼를 밀어 잠그고 나를 향해 돌아선다.

엄마, 나 갔다 올게.”

그래, 잘 갔다 와~.”

우리는 서로 꼭 끌어안는다. 그리고 이어서 나 보다 키가 훨씬 큰 윤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뺨을 어루만져 주며 한 마디 빼놓지 않고 덧붙인다.

축복합니다.”

나는 엄마로서 윤이에게 아주 미안한 몇 가지 잊지 못할 일들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윤이가 새로운 생명으로 우리에게 찾아왔을 때이다. 첫째 아이 강산이를 얻은 이후로 임신이 되었을 때 마냥 기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강산이의 다운증후군 장애를 검사했던 병원에서 다음 아이를 갖게 되어도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주변 사람들은 물론 가족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조용히 검사를 받았다(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이런 태도로 새로운 생명을 맞이했는지 제발 묻지 말아달라. 겨우 감추고 사는, 그래도 잘 감추어지지 않지만, 나의 어리석음과 부족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용기가 아직은 없다). 검사 결과, 정말 정말 감사하게도 건강한 아이였다. 하지만 검사 결과가 나오기 까지 임신 기간의 절반은 걱정 속에서 보내야만 했다. 태아가 가장 잘 느끼는 감정이 두려움이라는데 윤이가 의식하지 못한다 해도 두려움 속에서 그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무엇으로도 갚을 길이 없는 미안함이다.

두 번째는 아이들을 더욱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한 것이다. 서울에서 살 때의 일이다. 한 전셋집에서 다른 전셋집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짐을 싸고 있었다. 이사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이삿짐 센터에 맡기지 않고 남편과 둘이서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있었다. 미리미리 조금씩 짐을 싸두었다 해도 이사 전 날에 싸야 할 짐이 제일 많았다. 우리 부부는 짐 싸는데 온통 정신을 쏟고 있었고, 아이들은 현관 앞에 있는 정말 손바닥만한 화단에서 흙 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 화단은 창고 건물 지붕에 꾸며져 있던 것인데, 우리가 살던 2층집 현관과 창고 지붕이 연결되어 생긴 아주 조그만 공간이었다. 아무런 안전 장치도 없는 그 좁은 공간에서 아이들이 놀도록 방치한 것이다.

짐을 싸다가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밖에 나가보니 윤이는 계단 10 개 정도의 높이인 창고 지붕에서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십 몇 년 전 일인데 여기에 사실을 밝혔다고 경찰에 잡혀가지는 않겠지?). 두 살 반 밖에 되지 않은 작은 아이가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는 것 같은 그 때의 적막한 느낌이란…… 다시는 느껴보고 싶지 않은 분위기다. 한 쪽 팔꿈치 아래에서부터 손목까지 깁스하고 몇 개월 치료하는 것으로 그 사건은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도 윤이가 몸 어디가 불편하다고 하면 지붕에서 떨어진 일과 자꾸 연결시켜 생각하게 된다. 미안한 마음이 언제나 가실 지 모르겠다.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한 것이 이 밖에도 많으나 마지막으로 미안한 마음이 큰 일은 윤이가 어릴 적에 너무 엄하게 대한 것이다. 예절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아는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은 늘 지적당하고 바로 잡아져야 했다. 목회자 가정이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 가는 경우도 많았고 공동육아 하면서 친구들과도 어울릴 때가 많았는데, 사람이 많은 곳에서건 그렇지 않은 곳에서건 어리광이나 칭얼거림을 잘 받아주지 못했고 단호했다. 교육에 일관성이 있어야 된다는 명분 아래 상이든 벌이든 “~하면 ~ 한다고 말했으면 그대로 지키려고 애썼다. 고지식하여 융통성 없는 나의 성향 대로 아이를 키운 것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넓은 공간에서 옷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생활용품을 일정 기간 동안만 팔고 없어지는 세일 행사장이 빈번히 열리던 때였다. 집에서 자동차로 10 여분 떨어진 곳에 그런 행사장이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젊은 교인들과 그들의 아이들과 함께 쇼핑을 갔다. 장난과 호기심도 많아지고 이리저리 잘 뛰어다니던 6 살쯤 된 윤이도 함께 있었다. 행사장이 복잡하고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그 입구에서 윤이에게 주의를 주었다. 주의의 내용은 엄마를 잘 따라 다녀라, 딴 짓 하다가 엄마 놓치면 그냥 두고 간다”,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이것은 엄포를 놓으려고 흔히 말하는 관용어구 같은 것이었다.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길 잠깐의 시간이 흘렀는데 윤이가 보이지 않았다. 온 길을 되짚어 행사장 밖에 까지 나왔으나 윤이는 보이지 않았다. 같이 간 교인들도 이리저리 흩어져 찾아 다녔다. 행사장 안 있던 곳까지 다시 들어갔다가 또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하얀색 승용차가 그 복잡한 틈으로 들어오더니 윤이를 내려놓는 것이었다. 윤이는 편안한 얼굴이었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중년의 여성이었는데 자동차 뒷좌석에 백화점 쇼핑 가방이 여러 개 있었고 옷 차림새로 보아 잘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이의 말을 들어보니 여기 계실 것 같아 다시 데리고 왔습니다.”

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맙습니다, 만 여러 번 말하고 있었고, 그 여성은 휭하니 그 자리를 떠났다. 쇼핑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윤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윤이는 행사장에 들어서자 마자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엄마와 일행을 잃어버린 것이다. 엄마를 놓치면 두고 간다고 했으니 엄마는 저를 두고 가버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윤이는 밖으로 나와 주차장에서 울고 있는데 어느 아주머니가 울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윤이는 엄마가 자기를 두고 집에 갔다라고 설명을 했고, 우리 교회 있는데 까지 데려다 주시면 집을 찾아갈 수 있다고 했단다. 아주머니는 기꺼이 윤이를 승용차에 태워주었고, 윤이는 차 안에서 아주머니의 핸드폰으로 나와 지 아빠와 교회에 전화를 했으나 통화가 안 되었다. 교회 십자가 탑이 보이는 곳에 다다랐는데 그제서야 엄마인 나와 아주머니가 통화가 되었고, 아주머니는 다시 세일 행사장으로 돌아온 것이다(이것은 윤이의 증언(!)에 따른 것이다. 그 아주머니와 통화한 기억이 사실은 없다. 정신이 없긴 했나 보다). 가슴 철렁하고 어이없고 황당한 이 일을 윤이는 대단한 일을 해낸 모험담처럼 떠들었다. 윤이가 엄마를 원망하지 않고 그 정도로 기억해주어 고맙다. 정말 아찔하고 미안한 일이다.

이런 일들은 잊혀지지 않고 종종 윤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했다.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어느 날 아침 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윤이를 더욱 따뜻하게 보듬어야겠다는 마음이 진하게 들었다. 오늘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될 같은 절박한 마음도 들었다. 그 날부터 등교하는 윤이와 포옹이 시작되었다. 일 년이 조금 넘은 것 같다.

윤아, 오늘부터 엄마랑 허그 하고 학교에 가자.”

윤이는 선뜻 그러자, 고 하고 꼬옥 안았으나 서로 어색했다. 윤이는 나를 껴안는 팔의 힘 조절을 어떻게 할 지 몰라 했다. 팔을 내 등에 얹는 듯 마는 듯 하길래 성의 없이 이게 뭐야, 했다. 그랬더니 다음 날은 어찌나 세게 껴안는지 내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다. 나는 또 피드백을 해 주었다. 그것도 반복되는 훈련 같아서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이제는 엄마와 포옹하고 나서 학교 가려고 윤이는 나를 기다리기도 한다. 축복의 말도 꼭 듣고 싶어하는 것 같다.

윤아, 엄마는 네게 줄 복을 갖고 있지 않아. 엄마가 축복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그 말 앞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 생략된 거야.”

나도 알아!”

알고 있다니 고마운 일이다. 포옹하고 나서 자동차에 오르고, 차고의 문이 열리고, 자동차가 차고를 빠져 나가고, 다시 차고 문이 닫히기 까지 윤이를 바라보며 기도한다. 축복합니다~, 뒤에 생략된 기도도 이 기회에 윤에게 들려주고 싶다.

주님, 윤이가 만나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관계 속에 늘 함께 있어주세요.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지식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혜가 되게 해 주세요. 세상과 사람을 위해 사랑으로 헌신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