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5/2021

그냥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야


앤 라모트 지음, 한유주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 2015.


"!" "으악!“

얌전하게 앞으로 진행 중이던 우리 차를 누군가 뒤에서 들이받는 순간 들린 소리였다. 상체가 앞으로 튕겼다가 목이 뒤로 꺾이는 몸의 짧은 움직임은 낯선 경험이었다. 가족 동반이 아닌 친구들과 아주 오랜만에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중이었다. 그들과 약속한 곳이 눈앞에 보여 안타까움과 긴장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운전하던 친구는 어느새 며칠 동안 아팠던 사람처럼 낯빛이 회색에 가깝게 변해있었다.

3중 추돌의 맨 앞에 있던 우리 자동차의 피해는 감사하게도 그다지 크지 않았고, 이 사고로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새 달려온 경찰들은 교통사고를 능숙하게 처리했고 다른 사고 차량의 운전자들은 친구들이 몰고 온 SUV나 픽업트럭을 각각 타고는 휑하니 사라졌다. 그들의 찌그러진 자동차는 견인차가 싣고 갔기에.

친구와 나는 차를 몰아 약속한 식당에 이르렀고 친구들과 어이없는 교통사고 얘기를 나누며 조금 지체된 저녁 식사를 했다. 한 친구가 사고당한 친구들을 위해 기꺼이 음식값을 치렀고 그가 사는 동네에 전시된 성탄 장식을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오래된 작은 마을, 반짝이는 크고 작은 전구들, 여러 콘셉트의 성탄 트리들, 겨울 안개비와 쌀쌀한 밤공기는 좀 전의 사고에 대한 불쾌감을 옅어지게 했다. 아기 예수님이 후줄근한 중년 여성들의 마음을 살짝 들뜨게 하는데 한몫을 하셨다.

우리는 서로 집에 도착하면 문자로 안부를 남기기로 하고 헤어지려는데 다른 한 친구가 우리에게 도시락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식당에서 미리 주문해두었나 보다. 그는 도시락을 아이들에게 주지 말고 남편들에게만 주라, 는 말도 덧붙였다. 이 말이 얼마나 지혜로웠는지는 집에 와서야 알아챘다. 고통스러운 일은 언제고 일어나고 주변 사람들의 친절과 배려는 그 침울함을 밀어내는 치료제 같았다.

작가 앤 라모트는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 테러, 전쟁, 자연재해, 총기 난사와 같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아플수록 함께 하는 행동을 찾아라, 서툰 것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자기 안에 갇혀 있지 말고 더 큰 무언가의 일부가 되어라···,고 조언한다. 그의 글은 우리 안에 있는 인간애가 발현되도록 슬며시 돕는데, 그것은 그 스스로가 글을 쓰거나 전쟁의 피해를 알리며 투표를 독려하고 혹은 주일학교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등 크고 작은 실천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라모트의 여러 저작을 통하여 그의 영성은 십자가와 부활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의 삶이 조각나고 흔들릴 때마다 짜깁기 받침공("달걀 형태의 나무나, 돌 또는 도기로 만들어진 물건으로 대부분의 양말 속에 꼭 맞는 크기다")같은 역할을 한 교회가 곁에 있음을 보았다. 라모트네 교회는 나쁜 날들에 힘이 되어주는 좋은 교회인 것이 분명하다.

얼마 전 나의 작은 아들은 리조트에서 스노보드를 맘껏 타는 휴가를 보냈다. 휴가에서 돌아온 아들은 자기 몸 여러 군데에 멍이 든 것을 보여주었다. 한 번은 스노보드를 타고 산 아래로 내려와 멈추려는데 도착 지점이 예상과 다른 상황이어서 급하게 몸을 틀다가 미끄러지면서 뒤로 꽈당 넘어졌단다.

다행히 헬멧을 쓰고 있었지만 충격이 너무 커서 눈이 안 떠지고 속이 울렁거렸다고. 얼마 동안 그대로 누워 있는데 한 젊은 여성이 다가와서 내려다보며 "너 괜찮니?", 라고 물어보더란다. 어린 꼬마도 괜찮은지 물어보려고 가던 길을 멈추고 말이다.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니 여성은 주먹을 내밀며 주먹끼리 부딪치는 펀치를 요청했고 아이는 자기와 하이파이브 하자고 요청했다고 한다. 쓰러진 사람이 몸에 정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려고 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고, 말을 건네고, 음식을 나누고, 함께 걷고, 또는 지난 10일 미국 중서부를 강타한 엄청난 토네이도로 사랑하는 사람과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에게 성탄헌금을 모아 보내고, 노숙자에게는 담요를 나누는 이 모든 행동을 라모트의 말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완전해지기보다는 조각조각 난 삶을 잘 연결하는 사람으로 살자.“

 

*이 글은 모바일 앱 '바이블 25'와 인터넷 신문 '당당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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