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Grace eventually)』, 앤 라모트 지음, 김승욱 옮김, 청림출판, 2011.
지은이 앤 라모트는 이십 대에 알코올중독과 마약, 낙태를 경험하고 삼십 대에 싱글 맘이 된다. 그와 아들 샘을 환대한 곳은 교회였고 작가였던 그의 아버지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글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은 지은이가 이십 대에 겪은 고민과 관계를 중년이 되는 동안 어떻게 극복하고 이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떤 상황에서도, 불만스럽고 고통이 느껴지는 상황일지라도 엄청 솔직하고 여유 있는 태도를 잃지 않으며 재치로 가득해서 그것들의 짓누름을 단숨에 날려버린다.
한 번은 라모트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의 험한 운전습관 때문에 운전을 금지해 버린다. 아들은 아들대로 화가 나고, 엄마는 자신이 사랑했던 아이는 사라지고 한 남자가 되어버린 아들에 대해 몹시 속상해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님이 열일곱 살 때 어떤 아이였는지 여러분도 궁금해질 것이다. 성경에는 그때 이야기가 전혀 나와 있지 않다. 예수님이 정말 끔찍한 아이였나 보다."(98쪽)
라모트는 가난하고 연약한 자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진보 운동가다. 그는 캘리포니아주에서 가난한 지역 가운데 한 곳의 공립도서관 폐쇄에 반대하여 도서관을 지켜낸다든가, 낙태문제는 여성이 내릴 수 있는 기본 권리에 속한다고 주장하거나, 여성 유권자들에게 투표를 독려하기 위한 모임에 함께 한다든지, 전쟁과 지구온난화에 반대하는 평화 시위를 주도하는 등 사회 운동가의 면모도 보여준다.
이 책의 원제, '그레이스 이벤츄얼리(Grace eventually)'에서 알 수 있듯이 라모트는 그의 일상 속에서 늘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결국은 은총을 경험한다. 재미있게도 그의 책은 신앙 서적 코너가 아니라 에세이 선반에서 찾을 수 있다. 자유로운 영혼과 확고한 신념이 오묘하게 공존하는 독특한 작가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교회 언니였네, 이런 느낌이다.
요즘 앨라배마주 몽고메리는 코로나 19 확진자가 10명 가운데 1명꼴이다. 한인들은 대체로 방역 지침을 준수하는 편인데도 지난 연말부터 드문드문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우리 교인 중에도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목사님에게, 목사님은 전체 교인에게 감염 사실을 바로 알렸다. 교인들은 자가격리에 들어간 그들과 기꺼이 음식을 나누고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기도가 이어졌다. 목사님과 몇몇 가정은 병원에서 보험이나 자비로 자발적으로 검사를 받아 감염 여부를 얼른 밝혔다. 감사하게도 이후 추가 확진자는 나오지 않았고 감염되었던 이들도 회복되었다.
교회 상황이 이래도 예배드리러 나오는 몇몇 사람은 여전히 있고-앞으로 얼마 동안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교회 나오지 말아야 할 이유를 한 가지 더 추가한 이들도 있다. 이래도 저래도 괜찮다.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을 조금만 집중하면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다는 것을 금방 깨닫는다. 라모트는 지루한 예배를 드리며 당장 교회를 나가서 다시는 이 교회를 나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때도, 스키장 리프트에서 뛰어내려 눈 속에 처박혔을 때도, 사귀던 남자 친구에게 다른 여인이 생겼는데 그 여인이 쓴 책에서 영감을 얻을 때도 하나님은 늘 가까이에 있다고 얘기한다. 라모트를 읽다 보면 엷은 웃음이 입가에 번지고 답답하고 불안정한 마음속에도 소망의 불이 켜진다.
"사실 인생이 이렇게 결딴날 때 영적인 경험을 하기가 더 쉽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절망과 무력감이 슬금슬금 기어들어 오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낳는다. 오래지 않아 겸손함과 다정함이 나의 꽃밭에서 피어나기 때문이다."(들어가는 말)
***이 글은 스마트폰 앱, 바이블 25와 인터넷 신문, 당당뉴스의 '오늘의 책'에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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