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8/2010
"닮은 꼴" 사진에 대한 긴 설명
하루 동안 자동차를 운전해서 이곳 저곳 참 많이 다녀본 날입니다.
장보러 한 번 나갔다 왔습니다.
키가 커져서 더 이상 입을 바지가 없다는 아이 옷 사러 또 한 번 나갔다 왔습니다.
장애우를 위해 테니스를 무료로 가르쳐주시겠다는 고마운 코치님이 계셔서, 큰 아이 테니스 레슨 시작하는 날이라 다시 한 번 나갔다 왔습니다.
잽싸게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중고등부 예배에 둘째 아이를 데려다 주러 마지막이려니 하며 나갔습니다.
아이를 교회에 내려 주고, 저녁 밥을 먹다가 다 못 먹고 따라나선 큰 아이가 배고프다는 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셀폰이 울려서 받으니 남편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교회에서 입관 예배가 있어서, 중고등부가 따로 모이지는 않고 함께 입관 예배에 참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입관 예배에 참석할 맘이 없는 아이를 다시 데려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지금 어디쯤 가고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가면 씻고, 저녁도 먹고, 글도 써야 하고, 우리 교회 쥬빌리 교재도 살펴봐야 하는 일들이 남아 있는데, 차를 돌려서 다시 갈 맘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미리 좀 알려 주지. 여기 35마일로 가는 데야. 몰라!”
살짝 짜증이 섞인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교회에서 집까지 1/3 쯤 간 거리였는데, 물론 다시 돌아가지도 않았습니다. ^^;;
될 수 있으면 정한 시간에 하루 세끼를 꼭 챙겨먹는 편인데, 보통 때보다 2 시간 늦게 저녁밥을 먹고 나니 움직이기가 싫습니다.
겨우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서니, 큰 아이는 벌써 곯아떨어졌습니다.
블로그를 열어 놓고 멍~ 하니 앉아있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나 봅니다.
월요일 저녁에 밥을 먹던 남편이 무슨 마음에선지 아이들에게, 밥 먹고 팔씨름 해보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밥상을 치우고 팔씨름 하려고 하길래, 잠깐만. 사진 찍어줄게, 했더니 싫답니다.
“혹시 글을 못 쓰게 되면 사진이라도 있어야 돼.”
우리 집 남정네들은 무슨 마음에선지 거기에 대해서는 토를 달지 않고, 사진을 찍거나 말거나 셋이서 돌아가며 힘을 겨루었습니다.
팔씨름 하는 사진을 찍으며 보니 런닝 셔츠에 반바지 입은 세 사람의 닮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난 번 플로리다 데스틴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을 보며, 어쩜 이렇게 걷는 모습이 똑같을 수가 있나 했었는데, 또 닮은 꼴의 아버지와 아들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글쓸 재료가 없으면 이 사진들을 사용해야지 했는데, 딱 오늘 쓰면 될 것 같습니다.
장보면서 생활에 필요한 물건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키가 쑥쑥 크는 아들이 고맙고 신기했습니다.
코치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제법 잘 따라 하고, 테니스에 대해 흥미롭게 여기는 아들을 보니 행복했습니다.
아이를 데리러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그런가 보다 여기고, 입관 예배를 잘 마친 남편과 예배 드리는 동안 무던하게 아빠를 기다리던 아들이 함께 집에 돌아오니 하루가 꽉 찬듯 마무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음~~ 자꾸 하품 나오고 졸려서, 블로그에 "간단하게" 닮은 꼴 아버지와 아들들 사진을 올리기 위해 설명이 "이리도 길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5-7)
5/21/2010
이런 믿음도 예뻐하실까
기회가 되어서 성지순례를 한 번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어렴풋하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그다지 간절하지 않았던 까닭인지 성지순례에 대한 많은 정보가 있어도 눈길이 가질 않았습니다.
요 며칠 마음에 여유도 생기고 해서 읽을만한 책이 있나 남편의 책상을 살피다 보니 『바이블루트』라는 책 표지가 보였습니다.
책의 옆면을 보니까 흰색과 함께 여러 색깔의 종이가 많이 끼워져 있습니다.
책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한 손의 엄지 손가락으로 두르르 넘겨보니 예상대로 사진이 꽤 들어가 있고, 글씨도 작지 않고, 줄 간격도 넉넉해 보였습니다.
맨 뒷장 표지 앞에는 CD 크기 만한 비닐 종이가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동영상으로 볼 수 있는 자료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작은 제목들이 붙은 글들을 사진과 함께 읽어 내려가니 이해도 더 잘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3분의 1쯤 읽어보니 제목이 의미하는 정보를 더 얻고 싶은데 글에서는 채워지지가 않았습니다.
아마 동영상에 더 많은 내용이 들어 있으리라 기대를 하며 책을 읽었습니다.
책의 절반을 넘어서니까 사도 바울과 관련 있는 내용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가을 12주와 이번 봄 12주 동안 사도행전을 공부해서 그 내용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었기에 더욱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바이블루트』 DVD를 함께 보려는 마음에 아이들이 잠자러 가기 한 시간 전쯤 틀어 놓았습니다.
큰 녀석한테 예수님이 살았던 나라래, 했더니 두 말이 필요 없이 영상을 보기 시작합니다.
둘째 녀석은 헤드폰을 쓰고 컴퓨터 게임 하느라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일부러 큰 소리로 야, 홍해가 저렇게 생겼구나, 하면 힐끔 곁눈질만 하고는 저 하던 것을 계속 합니다.
엄마가 저하고 같이 보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 텐데, 고얀 놈….
시간도 늦고 DVD 나머지는 둘째와도 같이 보고 싶은 마음에 중간에 껐습니다.
성스러운 곳에 대한 감동 보다는 촬영이 참 어려운 곳이었나, 라는 생각이 남았습니다.
오히려 마음 속에 남는 것은 글 속에서 반복하여 나왔던 구절들이었습니다.
“믿음 없이 걸을 수 없는 길, 광야. 믿음은 이처럼 불가능한 것을 가능토록 하니, …믿음이란 이처럼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없는 은혜인 것이다.” (26쪽)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능력은 언제나 믿음 안에서만 행해졌음이다.” (홍해-39쪽)
“구원은 율법이 아닌 진정한 믿음이라고 여긴 바울.” (206쪽)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교리나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접근하고 있어요. 틀에 박힌 신앙생활보다는 ‘믿음’ 그 자체에 중점을 두니까 조금씩 마음을 움직이더군요. 역시 이방 선교에서는 바울의 길을 따라가는 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집시선교-213쪽)
“광대하신 하나님은 믿음의 진정이 있는 곳이면 언제든 어디서든 함께 하셨고, 그곳을 당신의 성전으로 여기신다고 하셨다. 우리가 초대교회를 바라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243쪽)
또 모세, 예수님, 바울 기념교회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흔적이 있을 것으로 ‘추정’ 되는 곳에 세워졌다는 표현을 본 것 같습니다.
덧붙여 사실 여부를 떠나 순례자들은 성지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영적 교감을 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내 “믿음”은 어떤 것일까 묻게 되었습니다.
호호호, 지금 발견했는데 『바이블루트』의 부제가 “성서의 역사와 전파 경로를 따라가는 믿음의 여정”이네요.
<어느 나라에선가 실제 크기의 노아 방주를 만들었다고 지인이 지난해에 보내준 사진입니다.>
지난 수요일에는 인하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이경호 집사님, 교수님(^^)이 노아의 대홍수와 방주의 비밀에 대한 창조과학회의 연구 결과를 나누어주셨습니다.
대홍수에 대한 실제적인 증거, 노아가 만든 방주가 얼마나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방주인지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증명된 많은 결과물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여기서 잠깐!
방주(Ark)는 자체 동력이 없고, 방향을 잡는 키가 없는 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집사님은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의 지혜와 설계였다고 몇 번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자신이 설명하는 것이 모두 꽝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믿어지는 것을 감사하라고.
한 주간 동안 믿음이라는 낱말을 붙잡고 있다가, 제 믿음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그만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곳까지 인도해주신 분이 하나님인데, 이것저것 불만스러워 하며 앞으로 살아갈 것을 두고 걱정하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특히 누군가와 비교하여 제 자신을 볼 때는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몇몇 지인들과 인터넷 신문(미주중앙일보, 5.10.2010) 에서 보았던 기사에 대해 아주 잠깐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연봉 분석기관인 페이스케일(payscale.com)이 연봉이 낮은 전공 순위에 대해 최근 조사,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위 사회복지학, 2위 초등교육학, 3위 신학… 이랍니다.
그것을 들은 그들은-신학 전공자들이 많았죠, 아마- 낮은 연봉이지만 의미 있게 살려는 노력들이라고 평가했습니다. ^^
보다 의미 있는 삶,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삶을 선택했고, 깊은 수렁에 빠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한결 같이 돌보시고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분을 경험했으면서도, 욕심을 부릴 때는 마음이 자갈밭이 됩니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 자갈들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잠들어 버렸습니다.
세상은 공평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라고 말이죠.
이렇게 믿으면 하나님이 이뻐하실까 싶어서요.
너무 억지인가요.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시편 40:1-5)
5/14/2010
Mountain Laurel
지난 주 제 블로그에 글이나 그림을 올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한 주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변변치 않은 블로그이기는 하나, 그저 일 주일에 한 번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삼으려는 저와의 약속을 지키는 곳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 블로그를 찾아야할 그 때쯤, 분주한 일이 있어 시간을 낼 마음의 여유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또 어디를 갔다 와야 했기에 제 딴에는 작은 아들에게 성경 한 장을 타이핑해서 블로그에 올려달라고 부탁하리라 생각하고, 성경을 뒤적이다 잠언 16장에 눈길이 머물길래 그것을 마음에 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탁한다는 것마저도 깜빡 잊고 말았습니다.
어쨌거나 그로부터 또 한 주가 지났습니다.
요즘 시간 가는 걸 보면 한국에 있을 때보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정말 휙휙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니까 그런가 싶었는데, 교회 어느 청년과 얘기하다 보니 그이도 미국에서의 시간이 더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답니다.
그래서 그이에게 하나님이 이곳의 시계를 한국보다 더 빨리 돌리시는 것은 아닐까 했더니, 그러게요 해서, 한번 웃었습니다.
공원을 걷다가 예쁜 꽃을 발견했습니다.
꽃은 다 예쁜 것 같습니다.
전에 종이접기를 배운 적이 있는데 그때 접었던 어떤 꽃과 똑같이 생긴 진짜 꽃이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그 공원에는 유난히 그 꽃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한 시간 정도 걷고 나서 공원을 소개하는 건물을 통과해 나오는데 그 꽃을 사진으로 찍어 전시해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꽃 이름이 Mountain Laurel 이랍니다.
로렐?
한국에서 유명한 제화회사의 구두 이름 가운데 하나였던 것 같은데…. ㅋㅋㅋ
집에 돌아와서 꽃 이름을 인터넷 검색창에 쳤더니 많지 않은 정보가 떠올랐습니다.
철쭉과에 속하고 미국 동부에서 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철쭉과 닮은 구석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요즘은 단순한 하루 하루를 살다 보니 작은 발견이나 깨달음도 오랜 여운을 가지고 제 곁에 남아있습니다.
로렐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왔다가 떠나고, 또 왔다가 떠나갑니다.
어떤 시험에서, 주제를 주면 자신의 생각을 써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요즘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건강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육체적인 건강과 영적인 건강의 조화를 결론으로 정하고 글을 썼습니다.
같은 시험에서 또 한번은, 다른 나라로 이사를 갔을 때 그곳의 새로운 문화와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문화를 어떻게 하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또, 새로운 문화를 존중하고 배워가되 자신의 문화도 소중히 여기는 조화로움을 결론으로 설정하고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두 번 모두 “조화” “어울림”을 글을 펼치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글 쓰기 편한 구조인가요??? *^^*
이번에는 로렐 꽃을 생각하면서도, 눈에 잘 띄고 보기에 좋은 꽃과 어울려 있는 다른 것들에 마음이 갔습니다.
큰 나무들에서 떨어진 잎사귀들이 쌓여 썩은 푹신한 이불 같은 거름, 누군가 나무 밑에 정성스레 덮어준 나무 조각들(woodchips), 꽃을 받쳐주는 벌레 먹은 잎사귀, 곤충들, 주변의 나무들, 신선한 공기와 바람과 하늘, 그 곁을 편안한 얼굴로 지나쳐가는 사람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그 꽃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레 접혔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어울림에 대한 물음들이 생깁니다.
나는 주변과 잘 어울리는 사람인가?
둘러싼 환경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로새서 3:15)
피드 구독하기:
글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