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셨을 때 찍은 사진 가운데 어머님 얼굴이 제일 밝은 사진으로 골라봤어요. 큰 아들이 곁에 있어서 좋아서 그러신 것 같은데요! ^^>
<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일곱번째)
그 이듬해 봄에 차가 한 대 서고 아줌마들이 댓 분 내리더니 계세요, 하고 문을 노크한다. 남편과 같이 왔던 신림동 권사님이다. 창후리 “마라의 쓴 물” 목욕탕에 왔다가 들렸다고 한다. 어떻게 오셨느냐, 하였다. 어느 분이 아기를 갖기 위해 기도를 원했다. 딸이 일곱 살 되었는데 동생이 안 생겨서 기도 받겠다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주님 이런 사람을 왜 보냈나요, 했다. 하지만 오신 분들에게 우리 예배 드리고 기도합시다, 하고 간증도 하고 기도를 해주었다. 내일 또 오겠다는 것을, 본 제단에서 목사님께 안수 받고 본인이 새벽기도 나가시고 하세요. 구하면 주신다고 하셨으니 구하세요, 했다. 다들 돌아갔다.
사흘 후에 그 엄마와 딸이 왔다. 한 번 더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간절히 주님께 기도 드렸다. 믿으세요, 믿음 달라고 기도하세요, 부탁했다.
3 개월이 지나서 그 교회 집사님들이 왔다. 기도 받고 간 그 엄마가 임신을 했다고 하면서, 또 다른 집사님이 자기도 아기를 원한다고 기도해 달라고 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이 집사님은 딸이 둘이고 둘째가 일곱 살인데 아기를 가지려고 해도 안 들어선다며 아들을 낳아야 된다고 하였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들을 기다리니 아들 낳게 기도해 달라고 했다. 나는 그 집사님에게 주님께 매달리세요. 나는 아픈 사람 위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며 만류했다. 하지만 먼저 집사님은 해주셨으면서 왜 그러세요, 야단들이다. 나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지요. “이 집사님은 아들을 꼭 나야 된답니다.”
기도를 끝마치고 그 집사님에게 말했다. “하나님에게는 아들이나 딸이나 다 귀중한 생명인데 왜 그러세요?” 그 집사님 하는 말이,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성공회에 나가시는데 감리교로 나오시라고 해도 성공회는 큰 집이다 하시면서 마음을 안 바꾸신다는 것이다. 이번에 아들을 주셔야 담대하게 시부모님께 말씀드릴 거라며 기도해 주세요 했다. 자기는 세 번 기도 받기로 했다고 하며 또 온다고 하면서 갔다. 일 주일 있다가 또 왔다. 또 기도를 했다. 삼 일 있다가 또 왔다. 우리들은 합심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간증하고 서로 헤어졌다.
가을이었다. 그 교회 권사님이 마라의 쓴 물에 목욕하러 왔다가 또 들렸다고 하면서 소식을 전해주었다. 나중 온 엄마도 임신했고 둘 다 아들이라고 하면서 우리 하나님이 이렇게 좋으신 분이라고 하면서 열심히 신앙 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이듬해 아기를 낳아서 백일이 지나 데리고 왔는데 이름을 에녹이라 지었다고 한다. 딸 둘 하고 남편하고 같이 인삼액을 사가지고 왔다. 나는 주님께 감사해야지 사람한테 하면 안 돼요, 하였더니 교회에도 뜨겁게 감사했다고 해서 받았다.
“먼저 아기 엄마는 오셨나요” 물으니 “아니요. 그 아기는 걸어 다니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열심히 신앙 생활 잘 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주님께 감사합니다.” 한다.
어느 날 3시쯤 되어 한 청년이 왔다. 초면이었다. 어디서 오셨느냐고 물으니 빙그레 웃기만 하고 말을 안 한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그는 기도를 원했다. 어데가 아프냐고 해도 말을 안 하면서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나는 무슨 사연인지 몰라 가슴 심장을 만져 손을 얹고, 주님 이 청년의 사정을 아시오니 원하는 것을 들어주세요, 간절히 기도하는데 눈물이 나왔다. 기도를 마치고 대화도 없이 그 청년은 안녕히 계세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가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까운 이웃 동네에서 온 청년인데 폐결핵으로 아파서 온 것이다. 기도하던 그 때 가슴이 뜨거웠다고 하면서 병이 나아 신학교에 가서 목사님이 되었다고 하였다.
찬송 405장
1.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음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3.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4.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아멘
우리 집 옆에 경상도에서 이사온 아주 가난한 부부가 딸 하나 데리고 움막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 가정을 전도 대상으로 정하고 기도했다. 애기 아빠는 술에 취하면 주사가 있어서 싸움을 하고 동네를 시끄럽게 하면 부인은 어쩔줄 몰라 속을 끓이며 살고 있었다. 아기 엄마는 어머니가 무당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집을 위해 큰 도움은 못 주었지만 불쌍히 여기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같이 염려하고, 음식이랑 옷이랑 변변치 않지만 서로 의지하면서 나누어 먹고 사랑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아기 아빠가 우리도 교회 나가자고 하면서 교회에 출석하여 세례도 받고 술도 끊고 신앙 생활을 잘했다. 그러다가 이 가정이 저 아래 지방 평택으로 이사를 갔는데 나라에서 개간한 땅을 얻어 농사를 많이 경작하게 되었다.
3년이 지나 봄이 되어 수리조합을 통해 물이 풍부하여 모내기를 마쳤는데 여기서 이사간 사람들이 사는 평택 지역은 이제 모내기가 시작되어 우리 동네에서 그 지역으로 모내기를 하러 간다고 하였다. 남편에게 나도 간다고 하니 못 가게 하여 포기하고 있었는데, 가는 날 아침 새벽기도회가 마친 후 불시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남편을 잘 설득하여 여럿이 그 집을 향해 갔다.
서로 반갑게 만나 저녁에는 이야기들로 밤이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 하다가 그 엄마가 시험이 들어 교회를 쉬고 있다고 해서 권면했다. 새벽 종도 치고 열심히 신앙 생활 했는데 마음에 상처를 받아 일 년이 넘게 신앙 생활을 멈추게 되었고, 그만 병이 들어 음식도 못 먹고 몸이 바싹 마른 상태였다. 동네 분들이 경* 엄마를 위해 기도 좀 해 주라고 하여, 낮에는 모내기 하고 밤에는 기도를 사흘 저녁 했다. 우리는 친정 어머니 무당 마귀가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것을 알아 간절히 주님께 기도 드렸더니, 주님께서 결박했던 사탄이를 풀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나는 주님 감사합니다. 이 경* 엄마를 위해 갑자기 아침에 모내기 하러 갈 마음을 주신 것이 정말 감사했다.
닷새 만에 집에 오는 날 차를 타려고 차 종점에서 기다리는데 가게집 아줌마가 나오더니 우리들에게 어데서 왔느냐고 물었다. 강화에서 왔다고 하니 그러세요, 하면서 얼굴을 살피더니 나를 향해, 저 아주머니는 은혜를 많이 받았구먼, 하는 것이다. 나는 미소 지으며 가만히 있는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네. 맞아요, 하니까 자기도 전에 신앙 생활 하면서 은혜 많이 받았다고 하면서 울먹이더니 안으로 들어 가는 것이다. 나는 이상하여 차도 아직 안 오고 하여 안으로 들어가니 그 아줌마는 고개를 푹 땅에 박고 훌쩍 훌쩍 우는 것이다. 왜 그러세요, 물었다.
그 아줌마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목사님과의 관계에서 상처가 있어서 교회를 쉬고 있고 남편과 함께 온 가정이 열심 하였다는 것이다. 어느 날 시간이 늦어 목사님이 설교 하실 때 헐레벌떡 들어 갔는데 말씀으로 만민 중에 무안을 주시면서 책망하셔서 교회도 안 나가게 되었다고 하였다. “아주머니 안 돼요. 그 시험에서 이기세요. 저도 그런 과거가 있었지만 이기고 나왔더니 주님이 영적으로 더 크게 역사하셨지요.”
이야기를 하는데 차 온다고 하면서 어서 오라고 하여 차를 타고 강화로 오게 되었다. 나는 그 아줌마에게 더 자세히 권면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 묵상하며 기도하는데 지혜로 생각나게 하시는 것이, 그래 집에 가서 편지로 권면하자, 하고 마음으로 위로 받았다. 집에 오는 중 이웃 아줌마들이 한권사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수근수근 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진심으로 주님께 이 못난 딸을 평택까지 보내신 것이 너무 고마워 눈물의 감사 기도가 나왔다.
집에 와서 편지를 써 보냈다. 만리장성으로 어데서 생각이 나는지 나도 놀랬다. 나중에 답장이 왔다. 나는 기뻤다. 교회에 나간다니 말이다.
큰 집 사춘네가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우리가 경작을 하게 되었다. 3년을 했다. 기계화가 되어 옛날 같이 힘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 손이 많이 갔다. 우리 부부는 열심히 일했다. 두 아들 대학, 대학원 다니는 것 뒤드는데 잘 감당이 됐다. 그래도 늘 감사한 것은 지금까지 남의 집에 돈 꾸러 간 적은 없으니까요. 신앙 생활 하면서 빛 되게 살지도 못하고 주님 앞에 늘 죄송한 마음으로 살면서 어려운 일 만날 때마다 기도하면 또 용서해 주시고, 항상 기도 무릎은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감사하며 살고 있다. 이른 새벽 세 시만 되면 뒤척거리다가 잠이 깨어 주님 앞에 나가서 기도하는 것이 취미가 됐지요.
2000년, 그 해도 모내기를 다 마치고 두 번째 주는 비료도 다 주고 앞으로 농약이나 줄 때가 되면 하면 된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서 쉬고 있는데 이상하게 몸에 힘이 없고 몸살난 것 같이 아팠다. 남편이 병원 가서 보혈주사(? 포도당 링거)나 맞자고 하여 맞았지만, 힘이 없어서 그런지 소화가 안 되고 약방에 가서 약을 사먹어도 낫지 않았다. 강화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찍었는데 의사와 남편이 말을 주고 받더니 CT 좀 찍자고 하여 찍었더니 큰 병원에 가라고 하여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는 빙그레 웃으며 아닙니다. 간단합니다. 수술만 하면 됩니다, 안위시키길래 안심했다.
집에 와서 누웠는데 남편이 전화를 하는데 밖에 나가서 광으로 쓰는 방에 들어가 하는 거예요. 나는 수상해서 나가서 물었다. 아니야, 하면서 아이들에게 큰 병원을 알아보라는 거다. 작은 아들은 특수 교사다. 마침 학부형을 만나 이야기 하는 중에 병원을 알아보던 형수 전화를 받은 것이다. 작은 아들은 선생님들에게 알아보겠다고 하니 듣고 있던 학부형이 “집안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어머니가 큰 병원을 찾습니다.” 했단다. 그 분이 “염려 마십시오. 저는 아산병원(서울 잠실) 약 대주는 사람입니다. 내일 11시에 병원에서 만나시죠.”, 연락이 되었다. 남편과 나와 큰 아들 목사와 함께 그 분을 만나니 그 분이 다 알아서 입원실도 즉시로 알선해 주고, 다시 진찰을 하니 대장암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나는 마음이 암담했다. ‘암이라니, 주님 딴 병도 아니고 암이라니요.’ 속으로 중얼거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남편과 두 아들도 어이가 없는 듯 침묵하더니, 두 아들이 하는 말, “어머니 걱정 마세요. 지금은 의학이 발달되어 암도 많이 나아요.” 위로했지만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울음이 쏟아졌다.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길래 이렇게 큰 아픔을 줍니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남의 병을 위해서 기도하는 자가 암에 걸리다니요. 세상 사람들에게 빛이 됩니까, 주님. 주님.”
한참을 울고 나서 “주님 제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깨닫게 해 주세요. 제가 기도한다고 교만했습니까? 항상 부족함을, 나는 주님의 도구일 뿐이다. 자랑치도 않고, 간증도 자랑이 될까봐 조심 조심 했잖아요. 제가 물질을 탐냈습니까? 누가 감사헌금 내면 가서 본제단에 바치라고 가르쳐주고, 물질 때문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 말씀 속에 항상 조심했는데요. 기도해 주고 식사까지 대접하면 남편은 기도해 주었으면 됐지 하며 핍박도 많이 받았는데요.”
울음은 한이 없고 가슴이 아팠다. 울음이 진정되더니 과거가 생각났다. 지난 날 아플 때를 더듬어 보았다. 그 때 기도하기를, 주님 저에게 히스기야 왕처럼 15년만 연장시켜 주면 큰 아들도 작은 아들도 성장하여 어머니의 사명도 조금 하고 가지 않겠습니까, 했다. 그로부터 연 수를 따져보니 15년 살게 해주시고 8년 6개월을 더 살게 해주신 것을 알게 되니 23년 6개월을 더 살게 해주셨다. 나는 양심에 더 살게 해달라는 기도가 나오지 않았다.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주님 뜻이겠지, 하며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했다. 마음이 안정되면서 이 병으로 주님 부르신 거지. 뜻대로 하옵소서, 했다.
찬송 431장
1.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은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3.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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