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ock City에서. 호호호 ***
어머님이 써주신 글을 옮겨 적다보니 8주가 지나갔습니다.
어머님 글을 타이핑하고, 교정하고, 블로그에 올려놓고 다시 읽어보는 시간 동안 그 글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어머님의 신앙 열정을 다시 한번 엿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글을 써야 하는 에너지를 조금 아낄 수 있기도 했습니다.
그 아낀 에너지를 요즘 영어책(???) 들여다 보는데 사용했거든요.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언어와 문화를 익혀야 잘 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영어와 친해져 보려고 다시 애쓰는 중이랍니다.
또 한편으로는 모임이나 볼만한 것들을 찾아 다니면서 자꾸 경험해보려고 합니다.
성탄절 밤을 보내고 있는 지금, 지난해를 떠올려보니 그 때보다 생활이나 마음이나 관계에 있어서 훨씬 넉넉한 성탄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첫 해는 긴장 속에 살았던 것 같고, 두 번째 해는 쉽지는 않았어도 여유가 조금 생겼고, 이제 또 한 해를 살면 이곳 삶에 더욱 익숙해지리라 기대해 봅니다.
더 나아가서는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더 깊어지도록 하고 싶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찌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립보서3:12-16)
12/25/2009
12/18/2009
어머님이 만난 하나님 - 마지막
<아기 예수님이 오신 의미를 되새기며 모두 모두 기쁘고 행복한 성탄절 보내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마지막)
2000년도에는 병원마다 파업이었다. 의사들이 거리에 나가 병원이 텅 비었다. 예약 수술 환자도 다 집으로 돌려보내고 기별하면 다시 오라는 것이다. 병원 안에 예배 장소가 있었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서, 수술을 안 받겠다고 하니 작은 아들이 쓸데없는 말씀한다고 야단이다.
의사와 상의하여 수술 날짜를 겨우 6월 19일로 잡았는데, 앞에 환자가 수술이 잘 되어야 내 차례가 오지만 앞에 환자가 늦어지면 내 수술이 없다는 것이다. 마취과 의사가 다 거리로 나가서 수술이 계속 없다. 나는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기도뿐이었다.
수술 날짜가 되어 남편과 큰 아들이 올라왔다. 오후 1시쯤 되니 간호사가 와서 아주머니 수술하게 되었습니다. 어서 준비합시다, 하였다. 나는 두려움도 무서움도 없이 주님께 이 몸을 맡깁니다, 하였다. 1995년도에 치질 수술을 간단하게 한 적이 있었고 대수술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수술하고, 마취 깨고 하는 시간이 7 시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대장암 말기라고 했다. 딴 데 전이되지는 않았고 한 군데 주먹만한 것이 있었다고 하였다.
입원실로 돌아왔다. 언니와 동생이 나를 보호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리니 내 머리 속에 복음성가 “주만 바라볼찌라”가 머리에 입력된 것을 알았다. 완전히 가사는 못 외워도 곡조는 좀 알았다. 가사를 더듬어 보았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이 가사를 머리에 떠올리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가사를 다시 생각하며 오, 주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구나, 막 가슴이 미어지면서 눈물이 억제할 수 없이 터져 나왔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만 바라볼께요.”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말씀이 생각나면서 주만 바라볼찌라, 주만 바라볼찌라, 그 찬송 구절만 부르게 되었지요.
나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이 솟구쳤다. 의사가 무조건 운동해야 하니 걸어 다니라고 하여 병원 복도를 다니며 그 찬송만 했다. 보름 후에 상처가 아물었다. 퇴원하고 20일 후에 항암치료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사람들 말에 의하면 항암치료 받는 것이 아주 힘들다고 하는데 그 고비를 어떻게 넘어야 하나, 걱정이 되어 항암치료를 안 받겠다고 했다. 남편이랑, 아들들, 형제들까지도 받아야 한다고 야단들이다.
집에 돌아왔다. 새벽예배에 나갔는데 목사님이 찬송을 선택하시는데 462장을 부르게 되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옛날에 어려운 일에 부닥쳤을 때 462장 찬송을 주셔서 위로 받았는데, 그 때도 성령님이 나에게 위로주심을 감사 드렸다. 찬송 462장 후렴 “나 두렴 없네 두렴 없도다 /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 저 영원한 나라에 이르리라” 목사님, 사모님, 여선교회 회원들이 심방 오셨다. 병원에도 많이들 오셨는데 나 같은 것이 무엇이길래… 자꾸만 눈물이 났다.
날짜가 되어 항암주사를 닷새를 맞고 집에 돌아왔다. 일 주일이 지나니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는 것이다. 입술이 다 헤어지고 음식도 못 먹고 너무 힘들었다. 너무 힘들어 강화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 있는데 두 여자 권사님이 방문했다.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피를 믿으라고 한다. 나는 기가 막혔다. 보혈의 피를 믿습니다, 하며 따라 하라는 것이다. 나는 따라 하며 웃었다. 그들은 돌아갔다. 이렇게 아프니까 나의 믿음을 영적으로 무시하는 것으로 들렸다. 나는 이 권사님들만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나를 저울질 하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일 주일 있다가 퇴원하고 다시 집으로 왔다. 사모님이 머리 빠진 모습이 안 되었는지 밤을 세워 모자를 떠 오셨다. 사모님 고맙습니다. 가끔 밥을 못 먹으니 죽도 쑤어 오셨다. 나는 성도들의 사랑을 너무 받았다. 이 사람, 저 사람을 통해 음식을 갖다줄 때마다 너무도 죄송하고 미안했다. 어떤 권사님은 권사님이 살아야지. 안 믿는 자에게 전도문이 막힌다, 는 것이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분들이 많았다. 정식으로 항암주사를 맞지 못했다. 너무 힘들어서 웬만치 넘어갔다. 2001년 2월에 다 끝났다.
전에 우리 교회 계셨던 은혜 받았던 양목사님께 전화 드렸다. 목사님 저 아팠어요, 하니 깜짝 놀라신다. 어데가 아팠냐고 하시어 말씀 드렸더니 수술 했으면 됐어, 하시면서 “야채 스프와 현미차” 해서 먹는 법을 복사해서 보내주셨다. 3년을 거르지 않고 정성껏 복용했다.
몸은 1년이 되니 건강하여 농사 일도 전과 같이 열심히 했다. 주님 은혜로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나에게 또 생명을 연장시켜주신 주님께 감사 드렸다. 이 못난 것 아직 쓰시려고 이 땅에 생명을 남겨두신 것을 생각하며, 남은 여생 주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이른 새벽에 교회에 나가 기도를 시작하면서 제단을 위해, 몸이 아픈 자를 위해서, 목회하는 아들 목사 가정을 위해서, 특수교사 하는 작은 아들 내외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지방 여선교회 계삭회가 12월 강화제일교회에서 열렸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다. 이번에 연합회장을 하라는 것이다. 부족한 나였기에 그들에게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말라고. 그러면 계삭회에 안 간다고 했다. 권사님들이 계삭회에 가자고 왔다. 우리 교회에 회장이 안 가면 되냐고 어서 가자고 하여 마지못해 갔다. 총회를 하는데 연합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나는 어깨가 무거웠다. 전에도 몇 번 회장될 기회가 있었지만 앞장설 자격이 못 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주님이 왜 나를 세우셨을까, 이른 새벽에 나가 기도 드렸다. 마음 속에 뜨거운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나를 살려준 주님께 뜨거운 헌신을 보여주어야 할 사명이 있음을 알았다.
첫 번째 계삭회를 우리 교회에서 하기로 했다. 시험이 왔다. 계삭회 날짜와 동네 청장년 관광 가는 날과 한 날이다. 기도 드렸다. 주님 어떡합니까. 감리사 직인 아래 공문도 띄우고 했는데 그냥 밀고 나가야 합니다. 목사님은 계삭회 날을 다른 날로 정해도 된다고 한다. 권사님들은 관광을 많이들 가기 때문에 계삭회 때 누가 음식을 장만하냐는 것이다. 나는 감리사님께 관광 가는 문제로 계삭회 날짜를 물린다는 것이 떳떳하지 못해 그냥 밀고 나갔다. 관광갈 사람은 다들 가시고 전날 와서 음식 준비 좀 해놓고 다들 가라고 했다. 손을 꼽아보니 12명쯤 남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편이 말을 도왔다. 하나님은 다 할 수 있어. 염려 마라, 하는 것이다. 너무도 힘들었다. 왜 그리 말이 많은지. 어느 한 사람 와서 위로하는 자가 없었다.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꿈을 꾸었다. 담대했다. 주님 도우심을 확신했다.
계삭회 날이 왔다. 어쩌면 전날도 바람이 불고 했는데 계삭회 날 아침부터 햇빛이 찬란하며 날이 잔잔하고 따뜻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각 교회에서 많이들 참여하게 해주세요. 각 교회 여선교회 회원님들이 많이 왔다. 음식도 잘 대접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장로님 사모님이 미국에 있는 아들네 갔다가 계삭회 전날 온 것이다. 병원에 있던 권사님도 오고, 행사 치르는 사람이 많았다. 주님의 도우심을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꼈다.
2년 동안 사랑의 쌀도 배나 모아지고, 자금도 넉넉히 돌아가고, 임원들도 잘 협조하여 많은 일을 했다. 협조가 잘 되니 재미 있고 신났다. 나는 회원들에게 짧은 간증을 했다. “죽음의 문턱에 서보셨습니까? 저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습니다. 그 때 나의 마음 속 깊이 떠오르는 생각은 건강했을 때 더 뜨겁게 헌신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지요. 이제 남은 생은 주님께 헌신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건강할 때 최선을 다 합시다. 후회 없는 생애가 되도록 우리 열심히 합시다. 제단에 기도의 불씨가 되어 기도의 불을 붙이며 하나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여선교회 회원들이 됩시다.” 회원들이 아멘, 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목사님이 새로 오셨다. 지목사님이 우리 집에 처음 대심방이 되어 오시게 되었다. 누구든지 처음 오신 목사님은 우리 가정 상황에 대해 모르시니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이 처음에 무슨 말씀을 주실까 기대하고 있는데 욥기서를 읽어주시면서 고난을 극복한 욥은 나중에 영육에 더 큰 복이 왔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목사님께 저희 집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했다. 목사님은 부임한 지 몇 일 됐다고 압니까, 하셨다. 주님이 목사님께 말씀 주신 것을 감사하며 새 힘이 났다.
고난은 축복의 열쇠라는 것을,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잠시 잊었었나 보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다시금 큰 웅덩이에 넣으셨다가 살 수 없는 상황에서 건져주시어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다시금 알게 해주신 것 같아 깊은 감사를 드렸다.
기도의 제목, 나의 소원. 첫 아들 주님께 바치면서 이 시대에 진실한 사랑의 종, 능력의 종, 기도의 종, 말씀의 종이 되기를 소원하며 주님 장중에 붙잡힌 쓰임 받는 도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지요. 아들 목사님도 많은 체험 주셨고,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역사하시고 도우시는 주님의 섭리를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말을 들을 때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작은 아들 내외도 특수교사로, 연약한 장애인들에게 친구가 되고, 선생님이 되고, 보람 있는 생애가 된 것 같아 감사했지요. 진심으로 모든 영광 주님께 돌립니다.
찬송 404장
1. 그 크신 하나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2. 괴로운 시절 지나가고 땅 위의 영화 쇠할 때
주 믿지 않던 영혼들은 큰 소리 외쳐 울어도
주 믿는 성도들에게 큰 사랑 베푸사
우리의 죄 사했으니 그 은혜 잊을까
3.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후렴)
하나님의 크신 사랑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 윗 글이 끝나고 제 블로그에 첫 번째로 올린 어머님 글이 덧붙어 있었습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마지막)
2000년도에는 병원마다 파업이었다. 의사들이 거리에 나가 병원이 텅 비었다. 예약 수술 환자도 다 집으로 돌려보내고 기별하면 다시 오라는 것이다. 병원 안에 예배 장소가 있었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서, 수술을 안 받겠다고 하니 작은 아들이 쓸데없는 말씀한다고 야단이다.
의사와 상의하여 수술 날짜를 겨우 6월 19일로 잡았는데, 앞에 환자가 수술이 잘 되어야 내 차례가 오지만 앞에 환자가 늦어지면 내 수술이 없다는 것이다. 마취과 의사가 다 거리로 나가서 수술이 계속 없다. 나는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기도뿐이었다.
수술 날짜가 되어 남편과 큰 아들이 올라왔다. 오후 1시쯤 되니 간호사가 와서 아주머니 수술하게 되었습니다. 어서 준비합시다, 하였다. 나는 두려움도 무서움도 없이 주님께 이 몸을 맡깁니다, 하였다. 1995년도에 치질 수술을 간단하게 한 적이 있었고 대수술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수술하고, 마취 깨고 하는 시간이 7 시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대장암 말기라고 했다. 딴 데 전이되지는 않았고 한 군데 주먹만한 것이 있었다고 하였다.
입원실로 돌아왔다. 언니와 동생이 나를 보호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리니 내 머리 속에 복음성가 “주만 바라볼찌라”가 머리에 입력된 것을 알았다. 완전히 가사는 못 외워도 곡조는 좀 알았다. 가사를 더듬어 보았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이 가사를 머리에 떠올리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가사를 다시 생각하며 오, 주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구나, 막 가슴이 미어지면서 눈물이 억제할 수 없이 터져 나왔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만 바라볼께요.”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말씀이 생각나면서 주만 바라볼찌라, 주만 바라볼찌라, 그 찬송 구절만 부르게 되었지요.
나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이 솟구쳤다. 의사가 무조건 운동해야 하니 걸어 다니라고 하여 병원 복도를 다니며 그 찬송만 했다. 보름 후에 상처가 아물었다. 퇴원하고 20일 후에 항암치료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사람들 말에 의하면 항암치료 받는 것이 아주 힘들다고 하는데 그 고비를 어떻게 넘어야 하나, 걱정이 되어 항암치료를 안 받겠다고 했다. 남편이랑, 아들들, 형제들까지도 받아야 한다고 야단들이다.
집에 돌아왔다. 새벽예배에 나갔는데 목사님이 찬송을 선택하시는데 462장을 부르게 되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옛날에 어려운 일에 부닥쳤을 때 462장 찬송을 주셔서 위로 받았는데, 그 때도 성령님이 나에게 위로주심을 감사 드렸다. 찬송 462장 후렴 “나 두렴 없네 두렴 없도다 /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 저 영원한 나라에 이르리라” 목사님, 사모님, 여선교회 회원들이 심방 오셨다. 병원에도 많이들 오셨는데 나 같은 것이 무엇이길래… 자꾸만 눈물이 났다.
날짜가 되어 항암주사를 닷새를 맞고 집에 돌아왔다. 일 주일이 지나니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는 것이다. 입술이 다 헤어지고 음식도 못 먹고 너무 힘들었다. 너무 힘들어 강화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 있는데 두 여자 권사님이 방문했다.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피를 믿으라고 한다. 나는 기가 막혔다. 보혈의 피를 믿습니다, 하며 따라 하라는 것이다. 나는 따라 하며 웃었다. 그들은 돌아갔다. 이렇게 아프니까 나의 믿음을 영적으로 무시하는 것으로 들렸다. 나는 이 권사님들만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나를 저울질 하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일 주일 있다가 퇴원하고 다시 집으로 왔다. 사모님이 머리 빠진 모습이 안 되었는지 밤을 세워 모자를 떠 오셨다. 사모님 고맙습니다. 가끔 밥을 못 먹으니 죽도 쑤어 오셨다. 나는 성도들의 사랑을 너무 받았다. 이 사람, 저 사람을 통해 음식을 갖다줄 때마다 너무도 죄송하고 미안했다. 어떤 권사님은 권사님이 살아야지. 안 믿는 자에게 전도문이 막힌다, 는 것이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분들이 많았다. 정식으로 항암주사를 맞지 못했다. 너무 힘들어서 웬만치 넘어갔다. 2001년 2월에 다 끝났다.
전에 우리 교회 계셨던 은혜 받았던 양목사님께 전화 드렸다. 목사님 저 아팠어요, 하니 깜짝 놀라신다. 어데가 아팠냐고 하시어 말씀 드렸더니 수술 했으면 됐어, 하시면서 “야채 스프와 현미차” 해서 먹는 법을 복사해서 보내주셨다. 3년을 거르지 않고 정성껏 복용했다.
몸은 1년이 되니 건강하여 농사 일도 전과 같이 열심히 했다. 주님 은혜로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나에게 또 생명을 연장시켜주신 주님께 감사 드렸다. 이 못난 것 아직 쓰시려고 이 땅에 생명을 남겨두신 것을 생각하며, 남은 여생 주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이른 새벽에 교회에 나가 기도를 시작하면서 제단을 위해, 몸이 아픈 자를 위해서, 목회하는 아들 목사 가정을 위해서, 특수교사 하는 작은 아들 내외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지방 여선교회 계삭회가 12월 강화제일교회에서 열렸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다. 이번에 연합회장을 하라는 것이다. 부족한 나였기에 그들에게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말라고. 그러면 계삭회에 안 간다고 했다. 권사님들이 계삭회에 가자고 왔다. 우리 교회에 회장이 안 가면 되냐고 어서 가자고 하여 마지못해 갔다. 총회를 하는데 연합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나는 어깨가 무거웠다. 전에도 몇 번 회장될 기회가 있었지만 앞장설 자격이 못 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주님이 왜 나를 세우셨을까, 이른 새벽에 나가 기도 드렸다. 마음 속에 뜨거운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나를 살려준 주님께 뜨거운 헌신을 보여주어야 할 사명이 있음을 알았다.
첫 번째 계삭회를 우리 교회에서 하기로 했다. 시험이 왔다. 계삭회 날짜와 동네 청장년 관광 가는 날과 한 날이다. 기도 드렸다. 주님 어떡합니까. 감리사 직인 아래 공문도 띄우고 했는데 그냥 밀고 나가야 합니다. 목사님은 계삭회 날을 다른 날로 정해도 된다고 한다. 권사님들은 관광을 많이들 가기 때문에 계삭회 때 누가 음식을 장만하냐는 것이다. 나는 감리사님께 관광 가는 문제로 계삭회 날짜를 물린다는 것이 떳떳하지 못해 그냥 밀고 나갔다. 관광갈 사람은 다들 가시고 전날 와서 음식 준비 좀 해놓고 다들 가라고 했다. 손을 꼽아보니 12명쯤 남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편이 말을 도왔다. 하나님은 다 할 수 있어. 염려 마라, 하는 것이다. 너무도 힘들었다. 왜 그리 말이 많은지. 어느 한 사람 와서 위로하는 자가 없었다.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꿈을 꾸었다. 담대했다. 주님 도우심을 확신했다.
계삭회 날이 왔다. 어쩌면 전날도 바람이 불고 했는데 계삭회 날 아침부터 햇빛이 찬란하며 날이 잔잔하고 따뜻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각 교회에서 많이들 참여하게 해주세요. 각 교회 여선교회 회원님들이 많이 왔다. 음식도 잘 대접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장로님 사모님이 미국에 있는 아들네 갔다가 계삭회 전날 온 것이다. 병원에 있던 권사님도 오고, 행사 치르는 사람이 많았다. 주님의 도우심을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꼈다.
2년 동안 사랑의 쌀도 배나 모아지고, 자금도 넉넉히 돌아가고, 임원들도 잘 협조하여 많은 일을 했다. 협조가 잘 되니 재미 있고 신났다. 나는 회원들에게 짧은 간증을 했다. “죽음의 문턱에 서보셨습니까? 저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습니다. 그 때 나의 마음 속 깊이 떠오르는 생각은 건강했을 때 더 뜨겁게 헌신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지요. 이제 남은 생은 주님께 헌신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건강할 때 최선을 다 합시다. 후회 없는 생애가 되도록 우리 열심히 합시다. 제단에 기도의 불씨가 되어 기도의 불을 붙이며 하나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여선교회 회원들이 됩시다.” 회원들이 아멘, 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목사님이 새로 오셨다. 지목사님이 우리 집에 처음 대심방이 되어 오시게 되었다. 누구든지 처음 오신 목사님은 우리 가정 상황에 대해 모르시니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이 처음에 무슨 말씀을 주실까 기대하고 있는데 욥기서를 읽어주시면서 고난을 극복한 욥은 나중에 영육에 더 큰 복이 왔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목사님께 저희 집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했다. 목사님은 부임한 지 몇 일 됐다고 압니까, 하셨다. 주님이 목사님께 말씀 주신 것을 감사하며 새 힘이 났다.
고난은 축복의 열쇠라는 것을,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잠시 잊었었나 보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다시금 큰 웅덩이에 넣으셨다가 살 수 없는 상황에서 건져주시어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다시금 알게 해주신 것 같아 깊은 감사를 드렸다.
기도의 제목, 나의 소원. 첫 아들 주님께 바치면서 이 시대에 진실한 사랑의 종, 능력의 종, 기도의 종, 말씀의 종이 되기를 소원하며 주님 장중에 붙잡힌 쓰임 받는 도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지요. 아들 목사님도 많은 체험 주셨고,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역사하시고 도우시는 주님의 섭리를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말을 들을 때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작은 아들 내외도 특수교사로, 연약한 장애인들에게 친구가 되고, 선생님이 되고, 보람 있는 생애가 된 것 같아 감사했지요. 진심으로 모든 영광 주님께 돌립니다.
찬송 404장
1. 그 크신 하나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2. 괴로운 시절 지나가고 땅 위의 영화 쇠할 때
주 믿지 않던 영혼들은 큰 소리 외쳐 울어도
주 믿는 성도들에게 큰 사랑 베푸사
우리의 죄 사했으니 그 은혜 잊을까
3.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후렴)
하나님의 크신 사랑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 윗 글이 끝나고 제 블로그에 첫 번째로 올린 어머님 글이 덧붙어 있었습니다.
12/11/2009
어머님이 만난 하나님 7
<미국 오셨을 때 찍은 사진 가운데 어머님 얼굴이 제일 밝은 사진으로 골라봤어요. 큰 아들이 곁에 있어서 좋아서 그러신 것 같은데요! ^^>
<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일곱번째)
그 이듬해 봄에 차가 한 대 서고 아줌마들이 댓 분 내리더니 계세요, 하고 문을 노크한다. 남편과 같이 왔던 신림동 권사님이다. 창후리 “마라의 쓴 물” 목욕탕에 왔다가 들렸다고 한다. 어떻게 오셨느냐, 하였다. 어느 분이 아기를 갖기 위해 기도를 원했다. 딸이 일곱 살 되었는데 동생이 안 생겨서 기도 받겠다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주님 이런 사람을 왜 보냈나요, 했다. 하지만 오신 분들에게 우리 예배 드리고 기도합시다, 하고 간증도 하고 기도를 해주었다. 내일 또 오겠다는 것을, 본 제단에서 목사님께 안수 받고 본인이 새벽기도 나가시고 하세요. 구하면 주신다고 하셨으니 구하세요, 했다. 다들 돌아갔다.
사흘 후에 그 엄마와 딸이 왔다. 한 번 더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간절히 주님께 기도 드렸다. 믿으세요, 믿음 달라고 기도하세요, 부탁했다.
3 개월이 지나서 그 교회 집사님들이 왔다. 기도 받고 간 그 엄마가 임신을 했다고 하면서, 또 다른 집사님이 자기도 아기를 원한다고 기도해 달라고 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이 집사님은 딸이 둘이고 둘째가 일곱 살인데 아기를 가지려고 해도 안 들어선다며 아들을 낳아야 된다고 하였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들을 기다리니 아들 낳게 기도해 달라고 했다. 나는 그 집사님에게 주님께 매달리세요. 나는 아픈 사람 위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며 만류했다. 하지만 먼저 집사님은 해주셨으면서 왜 그러세요, 야단들이다. 나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지요. “이 집사님은 아들을 꼭 나야 된답니다.”
기도를 끝마치고 그 집사님에게 말했다. “하나님에게는 아들이나 딸이나 다 귀중한 생명인데 왜 그러세요?” 그 집사님 하는 말이,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성공회에 나가시는데 감리교로 나오시라고 해도 성공회는 큰 집이다 하시면서 마음을 안 바꾸신다는 것이다. 이번에 아들을 주셔야 담대하게 시부모님께 말씀드릴 거라며 기도해 주세요 했다. 자기는 세 번 기도 받기로 했다고 하며 또 온다고 하면서 갔다. 일 주일 있다가 또 왔다. 또 기도를 했다. 삼 일 있다가 또 왔다. 우리들은 합심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간증하고 서로 헤어졌다.
가을이었다. 그 교회 권사님이 마라의 쓴 물에 목욕하러 왔다가 또 들렸다고 하면서 소식을 전해주었다. 나중 온 엄마도 임신했고 둘 다 아들이라고 하면서 우리 하나님이 이렇게 좋으신 분이라고 하면서 열심히 신앙 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이듬해 아기를 낳아서 백일이 지나 데리고 왔는데 이름을 에녹이라 지었다고 한다. 딸 둘 하고 남편하고 같이 인삼액을 사가지고 왔다. 나는 주님께 감사해야지 사람한테 하면 안 돼요, 하였더니 교회에도 뜨겁게 감사했다고 해서 받았다.
“먼저 아기 엄마는 오셨나요” 물으니 “아니요. 그 아기는 걸어 다니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열심히 신앙 생활 잘 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주님께 감사합니다.” 한다.
어느 날 3시쯤 되어 한 청년이 왔다. 초면이었다. 어디서 오셨느냐고 물으니 빙그레 웃기만 하고 말을 안 한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그는 기도를 원했다. 어데가 아프냐고 해도 말을 안 하면서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나는 무슨 사연인지 몰라 가슴 심장을 만져 손을 얹고, 주님 이 청년의 사정을 아시오니 원하는 것을 들어주세요, 간절히 기도하는데 눈물이 나왔다. 기도를 마치고 대화도 없이 그 청년은 안녕히 계세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가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까운 이웃 동네에서 온 청년인데 폐결핵으로 아파서 온 것이다. 기도하던 그 때 가슴이 뜨거웠다고 하면서 병이 나아 신학교에 가서 목사님이 되었다고 하였다.
찬송 405장
1.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음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3.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4.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아멘
우리 집 옆에 경상도에서 이사온 아주 가난한 부부가 딸 하나 데리고 움막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 가정을 전도 대상으로 정하고 기도했다. 애기 아빠는 술에 취하면 주사가 있어서 싸움을 하고 동네를 시끄럽게 하면 부인은 어쩔줄 몰라 속을 끓이며 살고 있었다. 아기 엄마는 어머니가 무당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집을 위해 큰 도움은 못 주었지만 불쌍히 여기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같이 염려하고, 음식이랑 옷이랑 변변치 않지만 서로 의지하면서 나누어 먹고 사랑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아기 아빠가 우리도 교회 나가자고 하면서 교회에 출석하여 세례도 받고 술도 끊고 신앙 생활을 잘했다. 그러다가 이 가정이 저 아래 지방 평택으로 이사를 갔는데 나라에서 개간한 땅을 얻어 농사를 많이 경작하게 되었다.
3년이 지나 봄이 되어 수리조합을 통해 물이 풍부하여 모내기를 마쳤는데 여기서 이사간 사람들이 사는 평택 지역은 이제 모내기가 시작되어 우리 동네에서 그 지역으로 모내기를 하러 간다고 하였다. 남편에게 나도 간다고 하니 못 가게 하여 포기하고 있었는데, 가는 날 아침 새벽기도회가 마친 후 불시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남편을 잘 설득하여 여럿이 그 집을 향해 갔다.
서로 반갑게 만나 저녁에는 이야기들로 밤이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 하다가 그 엄마가 시험이 들어 교회를 쉬고 있다고 해서 권면했다. 새벽 종도 치고 열심히 신앙 생활 했는데 마음에 상처를 받아 일 년이 넘게 신앙 생활을 멈추게 되었고, 그만 병이 들어 음식도 못 먹고 몸이 바싹 마른 상태였다. 동네 분들이 경* 엄마를 위해 기도 좀 해 주라고 하여, 낮에는 모내기 하고 밤에는 기도를 사흘 저녁 했다. 우리는 친정 어머니 무당 마귀가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것을 알아 간절히 주님께 기도 드렸더니, 주님께서 결박했던 사탄이를 풀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나는 주님 감사합니다. 이 경* 엄마를 위해 갑자기 아침에 모내기 하러 갈 마음을 주신 것이 정말 감사했다.
닷새 만에 집에 오는 날 차를 타려고 차 종점에서 기다리는데 가게집 아줌마가 나오더니 우리들에게 어데서 왔느냐고 물었다. 강화에서 왔다고 하니 그러세요, 하면서 얼굴을 살피더니 나를 향해, 저 아주머니는 은혜를 많이 받았구먼, 하는 것이다. 나는 미소 지으며 가만히 있는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네. 맞아요, 하니까 자기도 전에 신앙 생활 하면서 은혜 많이 받았다고 하면서 울먹이더니 안으로 들어 가는 것이다. 나는 이상하여 차도 아직 안 오고 하여 안으로 들어가니 그 아줌마는 고개를 푹 땅에 박고 훌쩍 훌쩍 우는 것이다. 왜 그러세요, 물었다.
그 아줌마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목사님과의 관계에서 상처가 있어서 교회를 쉬고 있고 남편과 함께 온 가정이 열심 하였다는 것이다. 어느 날 시간이 늦어 목사님이 설교 하실 때 헐레벌떡 들어 갔는데 말씀으로 만민 중에 무안을 주시면서 책망하셔서 교회도 안 나가게 되었다고 하였다. “아주머니 안 돼요. 그 시험에서 이기세요. 저도 그런 과거가 있었지만 이기고 나왔더니 주님이 영적으로 더 크게 역사하셨지요.”
이야기를 하는데 차 온다고 하면서 어서 오라고 하여 차를 타고 강화로 오게 되었다. 나는 그 아줌마에게 더 자세히 권면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 묵상하며 기도하는데 지혜로 생각나게 하시는 것이, 그래 집에 가서 편지로 권면하자, 하고 마음으로 위로 받았다. 집에 오는 중 이웃 아줌마들이 한권사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수근수근 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진심으로 주님께 이 못난 딸을 평택까지 보내신 것이 너무 고마워 눈물의 감사 기도가 나왔다.
집에 와서 편지를 써 보냈다. 만리장성으로 어데서 생각이 나는지 나도 놀랬다. 나중에 답장이 왔다. 나는 기뻤다. 교회에 나간다니 말이다.
큰 집 사춘네가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우리가 경작을 하게 되었다. 3년을 했다. 기계화가 되어 옛날 같이 힘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 손이 많이 갔다. 우리 부부는 열심히 일했다. 두 아들 대학, 대학원 다니는 것 뒤드는데 잘 감당이 됐다. 그래도 늘 감사한 것은 지금까지 남의 집에 돈 꾸러 간 적은 없으니까요. 신앙 생활 하면서 빛 되게 살지도 못하고 주님 앞에 늘 죄송한 마음으로 살면서 어려운 일 만날 때마다 기도하면 또 용서해 주시고, 항상 기도 무릎은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감사하며 살고 있다. 이른 새벽 세 시만 되면 뒤척거리다가 잠이 깨어 주님 앞에 나가서 기도하는 것이 취미가 됐지요.
2000년, 그 해도 모내기를 다 마치고 두 번째 주는 비료도 다 주고 앞으로 농약이나 줄 때가 되면 하면 된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서 쉬고 있는데 이상하게 몸에 힘이 없고 몸살난 것 같이 아팠다. 남편이 병원 가서 보혈주사(? 포도당 링거)나 맞자고 하여 맞았지만, 힘이 없어서 그런지 소화가 안 되고 약방에 가서 약을 사먹어도 낫지 않았다. 강화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찍었는데 의사와 남편이 말을 주고 받더니 CT 좀 찍자고 하여 찍었더니 큰 병원에 가라고 하여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는 빙그레 웃으며 아닙니다. 간단합니다. 수술만 하면 됩니다, 안위시키길래 안심했다.
집에 와서 누웠는데 남편이 전화를 하는데 밖에 나가서 광으로 쓰는 방에 들어가 하는 거예요. 나는 수상해서 나가서 물었다. 아니야, 하면서 아이들에게 큰 병원을 알아보라는 거다. 작은 아들은 특수 교사다. 마침 학부형을 만나 이야기 하는 중에 병원을 알아보던 형수 전화를 받은 것이다. 작은 아들은 선생님들에게 알아보겠다고 하니 듣고 있던 학부형이 “집안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어머니가 큰 병원을 찾습니다.” 했단다. 그 분이 “염려 마십시오. 저는 아산병원(서울 잠실) 약 대주는 사람입니다. 내일 11시에 병원에서 만나시죠.”, 연락이 되었다. 남편과 나와 큰 아들 목사와 함께 그 분을 만나니 그 분이 다 알아서 입원실도 즉시로 알선해 주고, 다시 진찰을 하니 대장암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나는 마음이 암담했다. ‘암이라니, 주님 딴 병도 아니고 암이라니요.’ 속으로 중얼거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남편과 두 아들도 어이가 없는 듯 침묵하더니, 두 아들이 하는 말, “어머니 걱정 마세요. 지금은 의학이 발달되어 암도 많이 나아요.” 위로했지만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울음이 쏟아졌다.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길래 이렇게 큰 아픔을 줍니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남의 병을 위해서 기도하는 자가 암에 걸리다니요. 세상 사람들에게 빛이 됩니까, 주님. 주님.”
한참을 울고 나서 “주님 제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깨닫게 해 주세요. 제가 기도한다고 교만했습니까? 항상 부족함을, 나는 주님의 도구일 뿐이다. 자랑치도 않고, 간증도 자랑이 될까봐 조심 조심 했잖아요. 제가 물질을 탐냈습니까? 누가 감사헌금 내면 가서 본제단에 바치라고 가르쳐주고, 물질 때문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 말씀 속에 항상 조심했는데요. 기도해 주고 식사까지 대접하면 남편은 기도해 주었으면 됐지 하며 핍박도 많이 받았는데요.”
울음은 한이 없고 가슴이 아팠다. 울음이 진정되더니 과거가 생각났다. 지난 날 아플 때를 더듬어 보았다. 그 때 기도하기를, 주님 저에게 히스기야 왕처럼 15년만 연장시켜 주면 큰 아들도 작은 아들도 성장하여 어머니의 사명도 조금 하고 가지 않겠습니까, 했다. 그로부터 연 수를 따져보니 15년 살게 해주시고 8년 6개월을 더 살게 해주신 것을 알게 되니 23년 6개월을 더 살게 해주셨다. 나는 양심에 더 살게 해달라는 기도가 나오지 않았다.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주님 뜻이겠지, 하며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했다. 마음이 안정되면서 이 병으로 주님 부르신 거지. 뜻대로 하옵소서, 했다.
찬송 431장
1.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은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3.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아멘
<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일곱번째)
그 이듬해 봄에 차가 한 대 서고 아줌마들이 댓 분 내리더니 계세요, 하고 문을 노크한다. 남편과 같이 왔던 신림동 권사님이다. 창후리 “마라의 쓴 물” 목욕탕에 왔다가 들렸다고 한다. 어떻게 오셨느냐, 하였다. 어느 분이 아기를 갖기 위해 기도를 원했다. 딸이 일곱 살 되었는데 동생이 안 생겨서 기도 받겠다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주님 이런 사람을 왜 보냈나요, 했다. 하지만 오신 분들에게 우리 예배 드리고 기도합시다, 하고 간증도 하고 기도를 해주었다. 내일 또 오겠다는 것을, 본 제단에서 목사님께 안수 받고 본인이 새벽기도 나가시고 하세요. 구하면 주신다고 하셨으니 구하세요, 했다. 다들 돌아갔다.
사흘 후에 그 엄마와 딸이 왔다. 한 번 더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간절히 주님께 기도 드렸다. 믿으세요, 믿음 달라고 기도하세요, 부탁했다.
3 개월이 지나서 그 교회 집사님들이 왔다. 기도 받고 간 그 엄마가 임신을 했다고 하면서, 또 다른 집사님이 자기도 아기를 원한다고 기도해 달라고 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이 집사님은 딸이 둘이고 둘째가 일곱 살인데 아기를 가지려고 해도 안 들어선다며 아들을 낳아야 된다고 하였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들을 기다리니 아들 낳게 기도해 달라고 했다. 나는 그 집사님에게 주님께 매달리세요. 나는 아픈 사람 위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며 만류했다. 하지만 먼저 집사님은 해주셨으면서 왜 그러세요, 야단들이다. 나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지요. “이 집사님은 아들을 꼭 나야 된답니다.”
기도를 끝마치고 그 집사님에게 말했다. “하나님에게는 아들이나 딸이나 다 귀중한 생명인데 왜 그러세요?” 그 집사님 하는 말이,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성공회에 나가시는데 감리교로 나오시라고 해도 성공회는 큰 집이다 하시면서 마음을 안 바꾸신다는 것이다. 이번에 아들을 주셔야 담대하게 시부모님께 말씀드릴 거라며 기도해 주세요 했다. 자기는 세 번 기도 받기로 했다고 하며 또 온다고 하면서 갔다. 일 주일 있다가 또 왔다. 또 기도를 했다. 삼 일 있다가 또 왔다. 우리들은 합심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간증하고 서로 헤어졌다.
가을이었다. 그 교회 권사님이 마라의 쓴 물에 목욕하러 왔다가 또 들렸다고 하면서 소식을 전해주었다. 나중 온 엄마도 임신했고 둘 다 아들이라고 하면서 우리 하나님이 이렇게 좋으신 분이라고 하면서 열심히 신앙 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이듬해 아기를 낳아서 백일이 지나 데리고 왔는데 이름을 에녹이라 지었다고 한다. 딸 둘 하고 남편하고 같이 인삼액을 사가지고 왔다. 나는 주님께 감사해야지 사람한테 하면 안 돼요, 하였더니 교회에도 뜨겁게 감사했다고 해서 받았다.
“먼저 아기 엄마는 오셨나요” 물으니 “아니요. 그 아기는 걸어 다니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열심히 신앙 생활 잘 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주님께 감사합니다.” 한다.
어느 날 3시쯤 되어 한 청년이 왔다. 초면이었다. 어디서 오셨느냐고 물으니 빙그레 웃기만 하고 말을 안 한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그는 기도를 원했다. 어데가 아프냐고 해도 말을 안 하면서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나는 무슨 사연인지 몰라 가슴 심장을 만져 손을 얹고, 주님 이 청년의 사정을 아시오니 원하는 것을 들어주세요, 간절히 기도하는데 눈물이 나왔다. 기도를 마치고 대화도 없이 그 청년은 안녕히 계세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가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까운 이웃 동네에서 온 청년인데 폐결핵으로 아파서 온 것이다. 기도하던 그 때 가슴이 뜨거웠다고 하면서 병이 나아 신학교에 가서 목사님이 되었다고 하였다.
찬송 405장
1.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음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3.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4.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아멘
우리 집 옆에 경상도에서 이사온 아주 가난한 부부가 딸 하나 데리고 움막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 가정을 전도 대상으로 정하고 기도했다. 애기 아빠는 술에 취하면 주사가 있어서 싸움을 하고 동네를 시끄럽게 하면 부인은 어쩔줄 몰라 속을 끓이며 살고 있었다. 아기 엄마는 어머니가 무당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집을 위해 큰 도움은 못 주었지만 불쌍히 여기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같이 염려하고, 음식이랑 옷이랑 변변치 않지만 서로 의지하면서 나누어 먹고 사랑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아기 아빠가 우리도 교회 나가자고 하면서 교회에 출석하여 세례도 받고 술도 끊고 신앙 생활을 잘했다. 그러다가 이 가정이 저 아래 지방 평택으로 이사를 갔는데 나라에서 개간한 땅을 얻어 농사를 많이 경작하게 되었다.
3년이 지나 봄이 되어 수리조합을 통해 물이 풍부하여 모내기를 마쳤는데 여기서 이사간 사람들이 사는 평택 지역은 이제 모내기가 시작되어 우리 동네에서 그 지역으로 모내기를 하러 간다고 하였다. 남편에게 나도 간다고 하니 못 가게 하여 포기하고 있었는데, 가는 날 아침 새벽기도회가 마친 후 불시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남편을 잘 설득하여 여럿이 그 집을 향해 갔다.
서로 반갑게 만나 저녁에는 이야기들로 밤이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 하다가 그 엄마가 시험이 들어 교회를 쉬고 있다고 해서 권면했다. 새벽 종도 치고 열심히 신앙 생활 했는데 마음에 상처를 받아 일 년이 넘게 신앙 생활을 멈추게 되었고, 그만 병이 들어 음식도 못 먹고 몸이 바싹 마른 상태였다. 동네 분들이 경* 엄마를 위해 기도 좀 해 주라고 하여, 낮에는 모내기 하고 밤에는 기도를 사흘 저녁 했다. 우리는 친정 어머니 무당 마귀가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것을 알아 간절히 주님께 기도 드렸더니, 주님께서 결박했던 사탄이를 풀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나는 주님 감사합니다. 이 경* 엄마를 위해 갑자기 아침에 모내기 하러 갈 마음을 주신 것이 정말 감사했다.
닷새 만에 집에 오는 날 차를 타려고 차 종점에서 기다리는데 가게집 아줌마가 나오더니 우리들에게 어데서 왔느냐고 물었다. 강화에서 왔다고 하니 그러세요, 하면서 얼굴을 살피더니 나를 향해, 저 아주머니는 은혜를 많이 받았구먼, 하는 것이다. 나는 미소 지으며 가만히 있는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네. 맞아요, 하니까 자기도 전에 신앙 생활 하면서 은혜 많이 받았다고 하면서 울먹이더니 안으로 들어 가는 것이다. 나는 이상하여 차도 아직 안 오고 하여 안으로 들어가니 그 아줌마는 고개를 푹 땅에 박고 훌쩍 훌쩍 우는 것이다. 왜 그러세요, 물었다.
그 아줌마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목사님과의 관계에서 상처가 있어서 교회를 쉬고 있고 남편과 함께 온 가정이 열심 하였다는 것이다. 어느 날 시간이 늦어 목사님이 설교 하실 때 헐레벌떡 들어 갔는데 말씀으로 만민 중에 무안을 주시면서 책망하셔서 교회도 안 나가게 되었다고 하였다. “아주머니 안 돼요. 그 시험에서 이기세요. 저도 그런 과거가 있었지만 이기고 나왔더니 주님이 영적으로 더 크게 역사하셨지요.”
이야기를 하는데 차 온다고 하면서 어서 오라고 하여 차를 타고 강화로 오게 되었다. 나는 그 아줌마에게 더 자세히 권면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 묵상하며 기도하는데 지혜로 생각나게 하시는 것이, 그래 집에 가서 편지로 권면하자, 하고 마음으로 위로 받았다. 집에 오는 중 이웃 아줌마들이 한권사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수근수근 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진심으로 주님께 이 못난 딸을 평택까지 보내신 것이 너무 고마워 눈물의 감사 기도가 나왔다.
집에 와서 편지를 써 보냈다. 만리장성으로 어데서 생각이 나는지 나도 놀랬다. 나중에 답장이 왔다. 나는 기뻤다. 교회에 나간다니 말이다.
큰 집 사춘네가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우리가 경작을 하게 되었다. 3년을 했다. 기계화가 되어 옛날 같이 힘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 손이 많이 갔다. 우리 부부는 열심히 일했다. 두 아들 대학, 대학원 다니는 것 뒤드는데 잘 감당이 됐다. 그래도 늘 감사한 것은 지금까지 남의 집에 돈 꾸러 간 적은 없으니까요. 신앙 생활 하면서 빛 되게 살지도 못하고 주님 앞에 늘 죄송한 마음으로 살면서 어려운 일 만날 때마다 기도하면 또 용서해 주시고, 항상 기도 무릎은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감사하며 살고 있다. 이른 새벽 세 시만 되면 뒤척거리다가 잠이 깨어 주님 앞에 나가서 기도하는 것이 취미가 됐지요.
2000년, 그 해도 모내기를 다 마치고 두 번째 주는 비료도 다 주고 앞으로 농약이나 줄 때가 되면 하면 된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서 쉬고 있는데 이상하게 몸에 힘이 없고 몸살난 것 같이 아팠다. 남편이 병원 가서 보혈주사(? 포도당 링거)나 맞자고 하여 맞았지만, 힘이 없어서 그런지 소화가 안 되고 약방에 가서 약을 사먹어도 낫지 않았다. 강화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찍었는데 의사와 남편이 말을 주고 받더니 CT 좀 찍자고 하여 찍었더니 큰 병원에 가라고 하여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는 빙그레 웃으며 아닙니다. 간단합니다. 수술만 하면 됩니다, 안위시키길래 안심했다.
집에 와서 누웠는데 남편이 전화를 하는데 밖에 나가서 광으로 쓰는 방에 들어가 하는 거예요. 나는 수상해서 나가서 물었다. 아니야, 하면서 아이들에게 큰 병원을 알아보라는 거다. 작은 아들은 특수 교사다. 마침 학부형을 만나 이야기 하는 중에 병원을 알아보던 형수 전화를 받은 것이다. 작은 아들은 선생님들에게 알아보겠다고 하니 듣고 있던 학부형이 “집안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어머니가 큰 병원을 찾습니다.” 했단다. 그 분이 “염려 마십시오. 저는 아산병원(서울 잠실) 약 대주는 사람입니다. 내일 11시에 병원에서 만나시죠.”, 연락이 되었다. 남편과 나와 큰 아들 목사와 함께 그 분을 만나니 그 분이 다 알아서 입원실도 즉시로 알선해 주고, 다시 진찰을 하니 대장암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나는 마음이 암담했다. ‘암이라니, 주님 딴 병도 아니고 암이라니요.’ 속으로 중얼거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남편과 두 아들도 어이가 없는 듯 침묵하더니, 두 아들이 하는 말, “어머니 걱정 마세요. 지금은 의학이 발달되어 암도 많이 나아요.” 위로했지만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울음이 쏟아졌다.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길래 이렇게 큰 아픔을 줍니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남의 병을 위해서 기도하는 자가 암에 걸리다니요. 세상 사람들에게 빛이 됩니까, 주님. 주님.”
한참을 울고 나서 “주님 제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깨닫게 해 주세요. 제가 기도한다고 교만했습니까? 항상 부족함을, 나는 주님의 도구일 뿐이다. 자랑치도 않고, 간증도 자랑이 될까봐 조심 조심 했잖아요. 제가 물질을 탐냈습니까? 누가 감사헌금 내면 가서 본제단에 바치라고 가르쳐주고, 물질 때문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 말씀 속에 항상 조심했는데요. 기도해 주고 식사까지 대접하면 남편은 기도해 주었으면 됐지 하며 핍박도 많이 받았는데요.”
울음은 한이 없고 가슴이 아팠다. 울음이 진정되더니 과거가 생각났다. 지난 날 아플 때를 더듬어 보았다. 그 때 기도하기를, 주님 저에게 히스기야 왕처럼 15년만 연장시켜 주면 큰 아들도 작은 아들도 성장하여 어머니의 사명도 조금 하고 가지 않겠습니까, 했다. 그로부터 연 수를 따져보니 15년 살게 해주시고 8년 6개월을 더 살게 해주신 것을 알게 되니 23년 6개월을 더 살게 해주셨다. 나는 양심에 더 살게 해달라는 기도가 나오지 않았다.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주님 뜻이겠지, 하며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했다. 마음이 안정되면서 이 병으로 주님 부르신 거지. 뜻대로 하옵소서, 했다.
찬송 431장
1.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은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3.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아멘
12/04/2009
어머님이 만난 하나님 6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보라색으로 열매 맺은 나무가 있네요. *^^*>
<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여섯번째)
초가을이었다. 이른 찰벼 타작을 하는 날이라 분주하게 일꾼들 식사를 준비하는데 승용차가 마당으로 온다. 젊은 부부(50대)의 아들이 운전하고 온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즉 천주교회에 나가는 분들이었다. 남편이 아파서 온 것이다. 혈압도 있지만 병 이름을 몰라 병원에 가고 해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회사에서는 과장이었는데 회사도 쉬고 해서, 화도면 남쪽에 선산이 있어 벌초를 하러 왔다가 형님이 기도를 받으라고 해서 찾아온 것이다.
나는 천주교인은 처음이었다. 부인의 믿음은 좋은 것 같았다. 간신히 시간을 내어 기도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주머니에 담배가 있는 것이다. 나는 말했다. 담배를 끊으시고 정성을 쏟으십시다, 하니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부인에게 주며 쓰레기통에 넣으라고 하였다. 그리하고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했다. 주님이 간절함을 주시길래 기도하고, 속으로 주님 알아서 하세요, 하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분들은 갔다.
한 달쯤 지났을까. 강화읍에 갈 일이 있어 남편과 함께 갔다 왔는데 거실에 들어가니 사과 한 짝이 보인다. 누가 우리 집에 왔었을까 궁금하였다. 우리 교회 목사님이 전화를 하셨다. 한달 전에 아들과 함께 공항에서 와서 남편이 기도 받고 갔는데, 감사하여 찾아왔다가 아무도 없어서 목사님께 찾아왔었다는 것이다. 남편이 나아서 회사에 복직했다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갔노라 일러주라고 했다고 하셨다. 또 12월 25일 성탄날, 조그만 선물을 우체부가 주고 가길래 뜯어보니 가죽장갑이었다. 누가 했을까 궁금했다. 저녁에 전화가 와서 받으니 이분들이었다. 나는 전화번호를 몰라서, 먼저 우리 집에 오셨다 가신 것을 인사도 못했노라고 하니, 그분은 남편이 나아 너무 감사하고 한권사님하고 자기 이름하고 같다고 권**이라고 했다. 평생 잊지 못할 일이라고 하며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고 하였다. 나는 속으로 천주교인도 기적을 주시는구나, 하면서 주님께 감사 드렸다.
그 이듬해 여름, 모를 다 내고 삼밭에서 마늘 밭을 매는데, 두 분이 차에서 내리더니 여기가 한권사님네인가요, 한다. 해가 뜨거워 수건을 쓰고 얼굴에는 땀 범벅이었다. 누구신가요, 물으니, 지나간 가을에 고모님이 여기 오셨다가 남편이 나으셔서 권사님을 찾아가라고 하여 왔다고 하였다. 나는 얼른 가서 세수를 하고 부끄럽습니다, 인사를 하니, 서울 신림동에서 왔다고 한다. 부인은 큰 교회 성가대 지휘자이고, 남편은 연세대학교 나오고, 남편이 너무나 믿음이 없어서 기도도 받고 간증도 듣기 위해 찾아왔다고 한다. 들어가시자고 하였다. 나는 마음 속으로, 주님 저런 분들을 보내면 어떡해요. 저는 무식쟁이인데 저 사람들에게 무슨 말씀을 드려요, 부담이 갔다.
예배를 드렸다. 기도를 드렸다. 예배가 끝나고 음료수를 내면서 간증을 했다. 그들은 진지하게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말주변도 없는데 그들은 재미있게 듣는다. 나도 모른다. 이상하게 말도 잘 나왔다. 그들은 은혜 받았다고 하면서 이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하며 서로 헤어졌다.
그 여름에 아들 목사네를 가서 자게 되었다. 집에서 남편이 전화를 했다. 저번에 신림동에서 왔다간 분이 나를 대접하고 싶어 모시러 온다고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우리 집사람은 그런 대접 받는 것 절대 싫어한다고, 집에 없다고 하니, 어데 가셨냐고 하여 아들 목사네 갔다고 하니, 또 어데냐고 물어서 신림동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 분은 잘 됐습니다. 가까운데 있으니 대접하라고 하셨다,면서 목사네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여 대주었다고 했다. 나는 무어라 가르쳐주었냐고 했다. 조금 있으니 전화가 오길래 안 받았다. 며느리 사모더러 전화 받고 없다고 하라고 했더니, 사모가 나의 말을 듣지 않고 전화 바꾸라고 한다고 받으세요, 하였다. 나는 그분에게 싫습니다.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 대접 받은거나 다름 없습니다, 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가 어데쯤 되느냐고 묻길래 나는 모른다고 하니, 사모한테 전화를 바꾸라고 하여 사모가 알려주었다. 그는 아들네로 찾아와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음식을 장만하여 다 준비해놓아 대접을 잘 받았다. 그 집에 들어가니 집도 좋고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마음 속으로 주님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 주세요, 기도 드렸다.
찬송 409장
1. 목마른 내영혼 주가 이미 허락한 그 귀한 영생수 주여 갈망합니다
그 약속 따라서 힘써 간구하오니 오 주여 내기도 어서 들어주소서
2. 주내게 약속한 큰비 내려주시려 은혜의 저구름 건너편에 떠올라
그 귀한 징조가 내게 밝히보이니 나 힘을 다하여 주께 간구합니다
3. 은혜의 소낙비 지금 흡족히 내려 구원의 큰강물 흘러 차고넘쳐서
내 추한 모든죄 모두 씻어버리니 나 지금 은혜를 충만하게 받았네
4. 그 차고 넘치는 주의 은혜의 물결 힘차게 밀려와 내게 만족하오니
오 할렐루야로 주를 찬송하오니 내 맘에 기쁨이 항상 충만함이라
(후렴)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 바다 물결같이 내게 임하니
영광의 물결에 온전히 싸여서 내영혼의 기쁨 한량없도다
여름이었다. 웬 오토바이가 집으로 온다. 남자 분이다. 누구세요, 물으니 강화중앙교회 박** 장로님이시란다. 기도 좀 받고 싶어서 왔다고 하시길래 사양했다. 안 됩니다. 어떻게 장로님을. 안 됩니다, 하니 몸이 아프시다는 것이다. 속이 아프고 약도 썼지만 치료가 안 돼서 오셨다는 것이다. 나는 부담이 갔다. 나의 부족을 먼저 주님께 아뢰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 드렸다.
그 분은 가셨다. 며칠 후에 또 오셨다. 아직 편찮으시냐고 하니, 어데 좀 같이 가자고 하시면서 오토바이에 타라는 것이다. 싫습니다, 거절했지만 그 분을 이길 수가 없었다.
강화읍 인항차부 사장네라고 하면서 장로교 집사님이었다. 사장이 늑막염에 걸렸는데, 믿음은 없고 병에 짓눌려 바싹 말라 있었다. 집은 잘 사는 것 같은데 사장의 교만이 눈에 보이게 심령이 메마른 것을 느꼈다. “마음 문 열고 주님 모시어 드리세요.” 계속 전도하며 간증을 했다. “하늘을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땅에 떨어진다고 성경에 있습니다. 주님께 진심으로 회개하시고 예수님 영접하세요.”
내일 또 읍으로 들어오라고 장로님이 간곡히 부탁을 하여 들어갔다. 여전히 마음은 깨어지지 않았다. 나는 깨달았다. 회개할 마음도 그 영혼이 주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는 자에게 주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튿날 또 들어오라는 것을 가지 않았다. 며칠 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분은 육체가 사는 것만 바라보고 영혼이 구원 받는 것을 모른다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한의원 하는 권사님이다. 옛날에 망월에서 살던 분인데 강화읍에서 한의원을 하시는 분이다. 그 여자 권사님에게 전화가 왔다. 강화읍에 들어오면 자기네 집에 들르라고 하였다. 나는 마음에 부담이 갔다.
그 권사님네 옆집 권사님네 기도 갔는데 한의원 사모님이 오시더니 나를 무조건 끌고 갔다. 말씀을 들으니 한의원 권사님이 술에 취해 있어 항상 가정이 불만이다. 여자 권사님 말씀이 맑은 정신으로 환자들의 약을 지어 주어야 하는데 늘 술에 취해 있어서, 술 좀 끓게 기도 좀 부탁하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권사님쯤 되면 술도 끊을 줄 알아야지 별난 일도 있네, 하면서 마음에 싫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했다. 나도 처음 있는 일이다. 기도 중에 술을 끊지 않으면 한방으로 다스릴 수 없는 일이 온다고 하였다. 나는 기도를 해놓고도, 말이 헛 나간다. 큰일났네, 속으로 걱정을 했다. 음료수를 대접 받고 있는데, 한의원 권사님은 아까 기도 중에 가슴이 후끈 달아올랐다고 하면서 처음 체험하노라고 하면서 기뻐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하는데 전화가 온다. 한의원 권사님이다.
“권사님, 아까 기도 중에 술을 안 끊으면 한약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고 하셨죠.”
“죄송해요, 권사님. 제가 실수했어요, 용서하세요.” 전화에 대고 빌었다.
“아닙니다. 저는 은혜 받았습니다. 술을 끊어야지요. 감사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 달이 지났을 때이다. 부인 권사님을 만났는데 내 손을 꽉 잡으면서 말씀하신다.
“남편이 술을 끊었다가 요즘은 환자들이 대접한다고 술을 사주면 손님 대접하느라 반잔 밖에 안 먹어요. 그것만으로도 난 좋습니다. 술 때문에 부부싸움 하면서 이혼 말까지 나오곤 했는데 지금은 가정 천국이에요. 감사합니다.”
“반 잔도 안 되는데요. 반 잔이 씨앗이 되어 안 되죠. 주님은 아주 안 드시는 것을 좋아하실텐데요.”
“그러면 좋은데 이것만으로도 감사해요.”
부인 권사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서로 인사하고 헤어졌다.
3년이 흘렀다. 여름 7월쯤에 전화가 왔다. 한의원 부인 권사님 전화였다. 전화를 받은즉,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였다고 하며 남편 권사님이 권사님 한번 들어오시라고 한다고 사정을 했다. 어데가 아프시냐고 하니, 간염으로 눈까지 노랗고 황달 끼가 있고, 자기가 약을 지어 먹어도 효험이 없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한의원에 잘 부탁을 해서 약을 지어 먹어도 낫지 않아 권사님이 3년 전에 와서 기도할 때 한 이야기가 생각나서 오시라고 한다는 것이다.
강화읍 종합병원 특실을 찾아갔다. 부인 권사님이 반겨 맞아주시면서 고맙다고 하셨다. 나는 한의원 권사님에게 하나님은 권사님을 사랑하셔서 깨닫게 하신 거지요, 말했다. 요한1서 5장 3절 말씀을 읽어 드리고 간절히 기도 드렸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후에 전화가 왔다. 권사님이 눈에 황달도 없어지고 퇴원하셨다고 했다.
몇 년이 지났다. 여름이었다. 한의원 권사님 친구가 망월에 사시는데, 그 분이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나는 혼자 마음 속으로 술을 또 드셨나 보다 생각했다. 어떤 사람은 영혼구원과 함께 육체구원까지 받는 분이 있고, 어떤 분은 영혼구원만 받는 분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찬송 403장
1. 나 위하여 십자가의 중한고통 받으사
대신 죽은 주예수의 사랑하신 은혜여
보배로운 피를 흘려 영영 죽을 죄에서
구속함을 얻은 우리 어찌 찬양 안할까
2. 예수 안에 있는 우리 한량없이 즐겁고
주 성령의 위로함이 마음 속에 차도다
천국음악 소리 같은 은혜로운 그말씀
끊임없이 듣는 우리 어찌 찬양 안할까
3. 이 세상의 모든 풍파 쉬지않고 불어도
주님 안에 보호받는 우리 마음 편하다
늘 깨어서 기도하고 저 천국을 바라며
주님만을 기다리니 어찌 찬양 안할까
저녁을 먹고 남편과 함께 있는데 전화가 왔다. 옆에 오상교회 남자 권사님이었다(조**권사). 부인은 나와 친구이다. 망월서 시집을 갔다. 전화를 받으니 남편이 허리가 아파서 일어나지 못하고 소대변 받아내고 한다고 오라는 것이다. 나는 거절했다. 거기 교회 목사님도 어렵고 친구 남편이어서 더욱 거절했다. 한 번만 와 달라는 것이다. 안 가겠다고 하니 친구가 울먹거리며 하는 말이 친구 남편 문병도 올 텐데 서운하다고 한다. 그땐 거기 교회 목사님이 어려워서 싫다고 하니, 밤에 몰래 왔다가 가라는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저렇게 울먹이면서 하니 어떡하냐고, 하여 가기로 했다.
밤에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 누가 볼세라 조심조심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니 남편이 누워 일어나지를 못한다. 언제부터 그러느냐고 하니 한 보름 되었다고 하며 약을 지어 먹어도 안 낫는다고 한다. 우리는 합심하여 찬송 부르며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돌아왔다.
또 전화가 왔다. 오라는 것이다. 나는 거절했다. 모낼 준비하려고 논도 쓸고 바쁘다고 핑계를 하니, 자기가 망월에 동생이 사니까 망월 가서 있으면 저녁에만 와서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나는 지금 고단해서 밤에 못해, 하지만 그 친구는 내일 간다, 그러면 좋은 거지, 하며 전화를 끊는다.
그 이튿날 저녁에 동생네 왔다고 저녁 먹고 오라는 것이다. 나는 부담이 갔다. 주님 어떡해요, 하는데 말씀을 주셨다. “너는 가기만 하라.” 담대해졌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반가이 맞는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만 가서 기도하는데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일주일을 하니 앉아 있게 되었다. 점점 차도가 보이니 친구는 염치 없이 매어 달린다. 또 일주일을 했다. 이제는 나아서 밖에 나가 다니게 되었다. 15일만에 문제가 해결되어 토요일에 돌아갔다. 영육이 힘들었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낫게 되니 감사할 뿐이다. 지금도 그 친구를 만나면 그 때를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비밀은 없다. 그 소문이 났다. 그 이웃에 있는 분들이 속이 아픈 사람, 허리 아픈 사람, 다리 아픈 사람, 목사님 몰래 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목사님께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겨울이었다. 그 마을 산 너머 가난한 할머니가 아셨나 보다. 저녁에 오라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둘이 사시는 분이다. 조그마한 초가집에 마음이 아팠다. 불쌍한 마음에 기도하는데 눈물이 나왔다. “주님은 이러한 분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죠. 고쳐주세요.” 할머니도 같이 우셨다. 그래서인지 간절히 기도를 했다. 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 돌아오느라 추웠지만 마음은 흐뭇했다. 주님 알아서 하시겠지. 나중에 그 할머니가 나으셨다는 말을 듣고 전심으로 주님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앞에 감사 기도가 끊어지지 않았다.
찬송 516장
1. 맘 가난한 사람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들의 천국이요
애통을 하는 이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으리라
2.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 땅이 기업이 될것이요
의 사모하는 이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로다
3. 긍휼히 여기면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김을 받으리라
맘 청결한 사람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 볼것이라
4. 화평케 하는 이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 아들이요
핍박을 받는 이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들의 것임이라
5. 주 위해 욕보면 복이 있나니 하늘의 큰 상을 받으리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영광 영원히 돌리세 할렐루야 (아멘)
<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여섯번째)
초가을이었다. 이른 찰벼 타작을 하는 날이라 분주하게 일꾼들 식사를 준비하는데 승용차가 마당으로 온다. 젊은 부부(50대)의 아들이 운전하고 온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즉 천주교회에 나가는 분들이었다. 남편이 아파서 온 것이다. 혈압도 있지만 병 이름을 몰라 병원에 가고 해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회사에서는 과장이었는데 회사도 쉬고 해서, 화도면 남쪽에 선산이 있어 벌초를 하러 왔다가 형님이 기도를 받으라고 해서 찾아온 것이다.
나는 천주교인은 처음이었다. 부인의 믿음은 좋은 것 같았다. 간신히 시간을 내어 기도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주머니에 담배가 있는 것이다. 나는 말했다. 담배를 끊으시고 정성을 쏟으십시다, 하니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부인에게 주며 쓰레기통에 넣으라고 하였다. 그리하고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했다. 주님이 간절함을 주시길래 기도하고, 속으로 주님 알아서 하세요, 하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분들은 갔다.
한 달쯤 지났을까. 강화읍에 갈 일이 있어 남편과 함께 갔다 왔는데 거실에 들어가니 사과 한 짝이 보인다. 누가 우리 집에 왔었을까 궁금하였다. 우리 교회 목사님이 전화를 하셨다. 한달 전에 아들과 함께 공항에서 와서 남편이 기도 받고 갔는데, 감사하여 찾아왔다가 아무도 없어서 목사님께 찾아왔었다는 것이다. 남편이 나아서 회사에 복직했다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갔노라 일러주라고 했다고 하셨다. 또 12월 25일 성탄날, 조그만 선물을 우체부가 주고 가길래 뜯어보니 가죽장갑이었다. 누가 했을까 궁금했다. 저녁에 전화가 와서 받으니 이분들이었다. 나는 전화번호를 몰라서, 먼저 우리 집에 오셨다 가신 것을 인사도 못했노라고 하니, 그분은 남편이 나아 너무 감사하고 한권사님하고 자기 이름하고 같다고 권**이라고 했다. 평생 잊지 못할 일이라고 하며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고 하였다. 나는 속으로 천주교인도 기적을 주시는구나, 하면서 주님께 감사 드렸다.
그 이듬해 여름, 모를 다 내고 삼밭에서 마늘 밭을 매는데, 두 분이 차에서 내리더니 여기가 한권사님네인가요, 한다. 해가 뜨거워 수건을 쓰고 얼굴에는 땀 범벅이었다. 누구신가요, 물으니, 지나간 가을에 고모님이 여기 오셨다가 남편이 나으셔서 권사님을 찾아가라고 하여 왔다고 하였다. 나는 얼른 가서 세수를 하고 부끄럽습니다, 인사를 하니, 서울 신림동에서 왔다고 한다. 부인은 큰 교회 성가대 지휘자이고, 남편은 연세대학교 나오고, 남편이 너무나 믿음이 없어서 기도도 받고 간증도 듣기 위해 찾아왔다고 한다. 들어가시자고 하였다. 나는 마음 속으로, 주님 저런 분들을 보내면 어떡해요. 저는 무식쟁이인데 저 사람들에게 무슨 말씀을 드려요, 부담이 갔다.
예배를 드렸다. 기도를 드렸다. 예배가 끝나고 음료수를 내면서 간증을 했다. 그들은 진지하게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말주변도 없는데 그들은 재미있게 듣는다. 나도 모른다. 이상하게 말도 잘 나왔다. 그들은 은혜 받았다고 하면서 이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하며 서로 헤어졌다.
그 여름에 아들 목사네를 가서 자게 되었다. 집에서 남편이 전화를 했다. 저번에 신림동에서 왔다간 분이 나를 대접하고 싶어 모시러 온다고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우리 집사람은 그런 대접 받는 것 절대 싫어한다고, 집에 없다고 하니, 어데 가셨냐고 하여 아들 목사네 갔다고 하니, 또 어데냐고 물어서 신림동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 분은 잘 됐습니다. 가까운데 있으니 대접하라고 하셨다,면서 목사네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여 대주었다고 했다. 나는 무어라 가르쳐주었냐고 했다. 조금 있으니 전화가 오길래 안 받았다. 며느리 사모더러 전화 받고 없다고 하라고 했더니, 사모가 나의 말을 듣지 않고 전화 바꾸라고 한다고 받으세요, 하였다. 나는 그분에게 싫습니다.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 대접 받은거나 다름 없습니다, 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가 어데쯤 되느냐고 묻길래 나는 모른다고 하니, 사모한테 전화를 바꾸라고 하여 사모가 알려주었다. 그는 아들네로 찾아와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음식을 장만하여 다 준비해놓아 대접을 잘 받았다. 그 집에 들어가니 집도 좋고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마음 속으로 주님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 주세요, 기도 드렸다.
찬송 409장
1. 목마른 내영혼 주가 이미 허락한 그 귀한 영생수 주여 갈망합니다
그 약속 따라서 힘써 간구하오니 오 주여 내기도 어서 들어주소서
2. 주내게 약속한 큰비 내려주시려 은혜의 저구름 건너편에 떠올라
그 귀한 징조가 내게 밝히보이니 나 힘을 다하여 주께 간구합니다
3. 은혜의 소낙비 지금 흡족히 내려 구원의 큰강물 흘러 차고넘쳐서
내 추한 모든죄 모두 씻어버리니 나 지금 은혜를 충만하게 받았네
4. 그 차고 넘치는 주의 은혜의 물결 힘차게 밀려와 내게 만족하오니
오 할렐루야로 주를 찬송하오니 내 맘에 기쁨이 항상 충만함이라
(후렴)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 바다 물결같이 내게 임하니
영광의 물결에 온전히 싸여서 내영혼의 기쁨 한량없도다
여름이었다. 웬 오토바이가 집으로 온다. 남자 분이다. 누구세요, 물으니 강화중앙교회 박** 장로님이시란다. 기도 좀 받고 싶어서 왔다고 하시길래 사양했다. 안 됩니다. 어떻게 장로님을. 안 됩니다, 하니 몸이 아프시다는 것이다. 속이 아프고 약도 썼지만 치료가 안 돼서 오셨다는 것이다. 나는 부담이 갔다. 나의 부족을 먼저 주님께 아뢰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 드렸다.
그 분은 가셨다. 며칠 후에 또 오셨다. 아직 편찮으시냐고 하니, 어데 좀 같이 가자고 하시면서 오토바이에 타라는 것이다. 싫습니다, 거절했지만 그 분을 이길 수가 없었다.
강화읍 인항차부 사장네라고 하면서 장로교 집사님이었다. 사장이 늑막염에 걸렸는데, 믿음은 없고 병에 짓눌려 바싹 말라 있었다. 집은 잘 사는 것 같은데 사장의 교만이 눈에 보이게 심령이 메마른 것을 느꼈다. “마음 문 열고 주님 모시어 드리세요.” 계속 전도하며 간증을 했다. “하늘을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땅에 떨어진다고 성경에 있습니다. 주님께 진심으로 회개하시고 예수님 영접하세요.”
내일 또 읍으로 들어오라고 장로님이 간곡히 부탁을 하여 들어갔다. 여전히 마음은 깨어지지 않았다. 나는 깨달았다. 회개할 마음도 그 영혼이 주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는 자에게 주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튿날 또 들어오라는 것을 가지 않았다. 며칠 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분은 육체가 사는 것만 바라보고 영혼이 구원 받는 것을 모른다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한의원 하는 권사님이다. 옛날에 망월에서 살던 분인데 강화읍에서 한의원을 하시는 분이다. 그 여자 권사님에게 전화가 왔다. 강화읍에 들어오면 자기네 집에 들르라고 하였다. 나는 마음에 부담이 갔다.
그 권사님네 옆집 권사님네 기도 갔는데 한의원 사모님이 오시더니 나를 무조건 끌고 갔다. 말씀을 들으니 한의원 권사님이 술에 취해 있어 항상 가정이 불만이다. 여자 권사님 말씀이 맑은 정신으로 환자들의 약을 지어 주어야 하는데 늘 술에 취해 있어서, 술 좀 끓게 기도 좀 부탁하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권사님쯤 되면 술도 끊을 줄 알아야지 별난 일도 있네, 하면서 마음에 싫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했다. 나도 처음 있는 일이다. 기도 중에 술을 끊지 않으면 한방으로 다스릴 수 없는 일이 온다고 하였다. 나는 기도를 해놓고도, 말이 헛 나간다. 큰일났네, 속으로 걱정을 했다. 음료수를 대접 받고 있는데, 한의원 권사님은 아까 기도 중에 가슴이 후끈 달아올랐다고 하면서 처음 체험하노라고 하면서 기뻐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하는데 전화가 온다. 한의원 권사님이다.
“권사님, 아까 기도 중에 술을 안 끊으면 한약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고 하셨죠.”
“죄송해요, 권사님. 제가 실수했어요, 용서하세요.” 전화에 대고 빌었다.
“아닙니다. 저는 은혜 받았습니다. 술을 끊어야지요. 감사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 달이 지났을 때이다. 부인 권사님을 만났는데 내 손을 꽉 잡으면서 말씀하신다.
“남편이 술을 끊었다가 요즘은 환자들이 대접한다고 술을 사주면 손님 대접하느라 반잔 밖에 안 먹어요. 그것만으로도 난 좋습니다. 술 때문에 부부싸움 하면서 이혼 말까지 나오곤 했는데 지금은 가정 천국이에요. 감사합니다.”
“반 잔도 안 되는데요. 반 잔이 씨앗이 되어 안 되죠. 주님은 아주 안 드시는 것을 좋아하실텐데요.”
“그러면 좋은데 이것만으로도 감사해요.”
부인 권사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서로 인사하고 헤어졌다.
3년이 흘렀다. 여름 7월쯤에 전화가 왔다. 한의원 부인 권사님 전화였다. 전화를 받은즉,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였다고 하며 남편 권사님이 권사님 한번 들어오시라고 한다고 사정을 했다. 어데가 아프시냐고 하니, 간염으로 눈까지 노랗고 황달 끼가 있고, 자기가 약을 지어 먹어도 효험이 없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한의원에 잘 부탁을 해서 약을 지어 먹어도 낫지 않아 권사님이 3년 전에 와서 기도할 때 한 이야기가 생각나서 오시라고 한다는 것이다.
강화읍 종합병원 특실을 찾아갔다. 부인 권사님이 반겨 맞아주시면서 고맙다고 하셨다. 나는 한의원 권사님에게 하나님은 권사님을 사랑하셔서 깨닫게 하신 거지요, 말했다. 요한1서 5장 3절 말씀을 읽어 드리고 간절히 기도 드렸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후에 전화가 왔다. 권사님이 눈에 황달도 없어지고 퇴원하셨다고 했다.
몇 년이 지났다. 여름이었다. 한의원 권사님 친구가 망월에 사시는데, 그 분이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나는 혼자 마음 속으로 술을 또 드셨나 보다 생각했다. 어떤 사람은 영혼구원과 함께 육체구원까지 받는 분이 있고, 어떤 분은 영혼구원만 받는 분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찬송 403장
1. 나 위하여 십자가의 중한고통 받으사
대신 죽은 주예수의 사랑하신 은혜여
보배로운 피를 흘려 영영 죽을 죄에서
구속함을 얻은 우리 어찌 찬양 안할까
2. 예수 안에 있는 우리 한량없이 즐겁고
주 성령의 위로함이 마음 속에 차도다
천국음악 소리 같은 은혜로운 그말씀
끊임없이 듣는 우리 어찌 찬양 안할까
3. 이 세상의 모든 풍파 쉬지않고 불어도
주님 안에 보호받는 우리 마음 편하다
늘 깨어서 기도하고 저 천국을 바라며
주님만을 기다리니 어찌 찬양 안할까
저녁을 먹고 남편과 함께 있는데 전화가 왔다. 옆에 오상교회 남자 권사님이었다(조**권사). 부인은 나와 친구이다. 망월서 시집을 갔다. 전화를 받으니 남편이 허리가 아파서 일어나지 못하고 소대변 받아내고 한다고 오라는 것이다. 나는 거절했다. 거기 교회 목사님도 어렵고 친구 남편이어서 더욱 거절했다. 한 번만 와 달라는 것이다. 안 가겠다고 하니 친구가 울먹거리며 하는 말이 친구 남편 문병도 올 텐데 서운하다고 한다. 그땐 거기 교회 목사님이 어려워서 싫다고 하니, 밤에 몰래 왔다가 가라는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저렇게 울먹이면서 하니 어떡하냐고, 하여 가기로 했다.
밤에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 누가 볼세라 조심조심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니 남편이 누워 일어나지를 못한다. 언제부터 그러느냐고 하니 한 보름 되었다고 하며 약을 지어 먹어도 안 낫는다고 한다. 우리는 합심하여 찬송 부르며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돌아왔다.
또 전화가 왔다. 오라는 것이다. 나는 거절했다. 모낼 준비하려고 논도 쓸고 바쁘다고 핑계를 하니, 자기가 망월에 동생이 사니까 망월 가서 있으면 저녁에만 와서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나는 지금 고단해서 밤에 못해, 하지만 그 친구는 내일 간다, 그러면 좋은 거지, 하며 전화를 끊는다.
그 이튿날 저녁에 동생네 왔다고 저녁 먹고 오라는 것이다. 나는 부담이 갔다. 주님 어떡해요, 하는데 말씀을 주셨다. “너는 가기만 하라.” 담대해졌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반가이 맞는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만 가서 기도하는데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일주일을 하니 앉아 있게 되었다. 점점 차도가 보이니 친구는 염치 없이 매어 달린다. 또 일주일을 했다. 이제는 나아서 밖에 나가 다니게 되었다. 15일만에 문제가 해결되어 토요일에 돌아갔다. 영육이 힘들었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낫게 되니 감사할 뿐이다. 지금도 그 친구를 만나면 그 때를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비밀은 없다. 그 소문이 났다. 그 이웃에 있는 분들이 속이 아픈 사람, 허리 아픈 사람, 다리 아픈 사람, 목사님 몰래 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목사님께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겨울이었다. 그 마을 산 너머 가난한 할머니가 아셨나 보다. 저녁에 오라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둘이 사시는 분이다. 조그마한 초가집에 마음이 아팠다. 불쌍한 마음에 기도하는데 눈물이 나왔다. “주님은 이러한 분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죠. 고쳐주세요.” 할머니도 같이 우셨다. 그래서인지 간절히 기도를 했다. 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 돌아오느라 추웠지만 마음은 흐뭇했다. 주님 알아서 하시겠지. 나중에 그 할머니가 나으셨다는 말을 듣고 전심으로 주님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앞에 감사 기도가 끊어지지 않았다.
찬송 516장
1. 맘 가난한 사람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들의 천국이요
애통을 하는 이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으리라
2.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 땅이 기업이 될것이요
의 사모하는 이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로다
3. 긍휼히 여기면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김을 받으리라
맘 청결한 사람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 볼것이라
4. 화평케 하는 이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 아들이요
핍박을 받는 이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들의 것임이라
5. 주 위해 욕보면 복이 있나니 하늘의 큰 상을 받으리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영광 영원히 돌리세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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