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5/2009

블랙(b,l,a,c,k)


블랙(Black)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인도에서 만들어진 영화라 낯설지 않을까 했는데, 그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 때문에 오히려 친밀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영화는 인도판 헬렌 켈러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정작 헬렌 켈러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저 들어서 아는 한 두 가지가 있을 뿐입니다.
장애우, 애니 설리번 선생님…
사전 지식 없이 영화 자체를 보아서도 그렇고, 제 삶과 연결 고리가 많아서 그랬는지 감동적으로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8월27일에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입니다.
블랙(Black)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마다 요즘에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라는 것을 꼭 덧붙이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한국 상영관 개봉작이라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저는 한국 상황과 동떨어지는 것이 아직은 낯선가 봅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이번 주 밀알 사역자 모임에서 나누었습니다.
여기에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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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Black, 2005년, 인도)
감독, 각본 - 산제이 릴라 반살리
미셀 맥날리 역(라니 무커르지), 데브라이 사하이 역(아미타브 밧찬)

맥날리 가족을 보며장애를 가진 자녀를 맞이하고 함께 성장해 가는 가족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처음에는 장애를 가진 딸 미셀을 존엄한 한 생명으로 보기 보다는 불쌍하게 여기고 모든 것을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둔다. 그러다 보니 8세까지 멋대로 자란 미셀은 집안에서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를 일으키게 되고 아버지는 미셀을 기관으로 보내려고 한다. 기관에 보내기 전에 마지막 희망으로 특수교사인 사하이 선생님을 초청하게 되고, 미셀이 사하이 선생님과 관계를 형성하고 블랙의 세상에서 빛으로 나아오기까지 부모님은 걱정, 기대, 신뢰, 여유 있는 웃음과 눈물로 그들을 지켜보며, 끝까지 미셀의 곁에 남아 자랑스런 딸로 받아들인다. 동생 사라도 부모의 관심이 온통 언니 미셀에게 가 있어 질투도 하고 외로움도 느끼지만 결혼을 앞두고 미셀이 언니로서 동생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을 알고 화해에 이른다.


데브라이 사하이 선생님을 보며가르침을 주어야 하는 선생님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미셀을 가르치기 위해 부모의 반대에도 소신 있게 헌신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배우지 못한 장애우 미셀을 보며 가슴 아파하며 최선을 다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끌어 간다. 미셀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격려하며, 독립적인 삶을 위하여 공부를 계속하도록 돕고, 실패를 축하할 수 있는 자존감을 심어주어 목적한 것을 이루게 하고, 품격을 잃지 않는 태도로 사랑의 감정도 알게 한다. 사하이 선생님은 오랜 시간 장애우 제자와 함께 하며 그 삶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장애우 미셀 맥날리를 보며자칫 아무 것도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는 블랙의 세상에 갇혀 있을 뻔 했지만 사하이 선생님을 신뢰하면서 자신만의 어둠의 세상을 깨치고 나오는 밝고 씩씩한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파티에서 가수의 입을 손으로 읽으며 춤을 추고, 대학 공부하다가 눈 오는 날 거리에서 좋아라 춤을 추는 모습에서 미셀의 깨끗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느껴지며 괜히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한편 사하이 선생님이 알츠하이머 병으로 기억을 잃게 되자 이제는 선생님의 어둠(블랙)과 싸우는 제자가 되어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갚는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위해 산다는 것이 행복한 것임을 선생님이 알려 주셨다고 생각하는 겸손함도 보여준다.


아쉬운 것들
하나, 미셀의 집안 배경을 보면 계급 사회인 인도에서 꽤나 신분이 높은 것 같다. 성(城) 같은 집, 몇 십년 동안 개인 교사를 둘 정도의 부유함… 인도 영화이고 장애우를 소재로 희망을 얘기하려면 그 정도의 신분이 배경으로 설정 되어야만 했는지 잘 모르겠다. 평범한 혹은 가난한 삶을 사는 장애우를 소재로 했다면 어떤 희망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이미 완성도 있게 만들어진 영화를 두고 쓸데 없는 사족(蛇足) 같은 생각인줄 알면서도 자꾸 물음을 제기하고 싶어진다.
둘, 장애우를 가르치는 이로서 모범 같이 보여지는 사하이 선생님 생각의 한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정규 대학 학장과 만나 미셀을 그 대학에 보내고 싶다고 한다. 그러자 그 학장은 특수학교에서도 많은 것을 가르친다고 대답한다. 이에 대해 사하이 선생님의 응답은 “아침 식사를 만들고 카펫을 터는 거 말이군요”다. 사하이 선생님은 미셀이 시각 장애와 청각 장애가 있을 뿐 정신지체는 아니라고 영화 처음 부분에서 미셀의 부모에게 언급한다. 그렇다면 정신 지체 장애에 대한 사하이의 생각은 어떤 것일지 궁금해진다. 미셀이 대학 교육을 통해 지식을 얻어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다면, 정신 지체 장애우들에게 생활 교육을 통해 아침 식사를 만들고 카펫을 터는 일이 독립적인 삶을 사는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사하이 선생님은 그 중요성의 무게감 측정을 너무 한쪽으로 기울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영화 블랙에서 장애우에게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충분히 전해 받았다. 또 장애우 부모로서, 밀알에서 일하는 이로서 장애우의 가능성을 보고 끈임 없이 헌신하는 자세도 도전 받았다. 블랙을 보고 내가 느끼는 아쉬움은 그저 자격지심(自激之心)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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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찌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디모데후서3:24-25)

9/18/2009

캠프힐(Camphill)을 보고

<아일랜드 벨리토빈 캠프힐>
-캠프힐(Camphill)은 장애우를 위해 만든 생활공동체로, 1940년 슈타이너의 인지학(발도르프 교육으로 알려져 있다)에 깊은 영향을 받은 칼 쾨니히 박사가 영국 스코틀랜드 지방의 애버딘에 처음 설립했고, 지금은 100여 개의 공동체가 세계 각국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캠프힐(Camphill)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틀란타 밀알 선교단이 내년 1월이면 창립 10주년이 됩니다.
저야 지난 해에 밀알을 알게 되었지만 그 동안 밀알과 10년을 함께 해온 분들은 장애우 가운데 어릴 적 만났던 친구들이 어느새 커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고등학교 마지막 12학년을 다니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으로 공교육을 마치게 되면 어떤 선택이 있는지 아직 잘 모르지만 직업을 갖는 친구들도 있고 가정에 머무르는 친구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밀알에서는 지난 날들의 결과물들을 발판으로 새로운 꿈을 꾸어보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성인 장애우를 위한 주간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주간 프로그램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애기를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왠지 “프로그램”이라는 말이 딱딱하게 들리고 형식적인 단어처럼 여겨졌습니다.
성인 장애우들을 위한 것이라면… 활동… 생활… 지속적이고 창조적인 삶… 하며 생각을 이어가다가 캠프힐에 생각이 가 닿았습니다.

게으르기도 하지!
언젠가 밀알 어머니들이 한국 방송에서 장애인 공동체에 대해 방송하는 것을 보았다며 몇 분이 얘기하는 것을 듣기도 하고, 얼마 전 동생과 전화하면서 그 방송 내용이 캠프힐이라는 것을 알았으면서 아직도 찾아보지 않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장애인 공동체에 대한 어렴풋한 꿈을 꾸어보기도 했는데 이곳에 와서는 그런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지 어쨌는지...





90년대에는 같은 대학을 졸업한 선후배 10 가정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고 아이들이 잠든 밤에는 아내들과 남편들이 따로 혹은 같이 정해진 책을 읽어와서 토론하며 밤을 지새곤 했습니다.
토론의 내용은 공동체로 살기, 생명운동과 관련된 것들이었습니다.
그 모임에 함께 하는 가정 가운데 몇 가정은 실제로 농촌에서 여럿이 어울려 일하며 공동체로 살고 있었고-지금도 그들은 그렇게 살고 있고요. 보고 싶다-몇 가정은 도시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보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농촌에 사는 가정은 말할 것도 없고, 도시에 사는 이들도 텃밭을 일구며 유기농으로 먹을 것을 키워보는 경험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옷(특히 생활한복)도 만들어 입어 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집도 지어 거기서 살고 있답니다.
이 모든 생활에 어른과 아이가 함께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엄마들과 함께 놀며 배우는 공동육아도 서너해 동안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캠프힐에 대한 방송을 보면서 그 동안 경험해보고 생각해 왔던 것들이 그 안에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가족 공동체, 자급자족의 생활, 발도르프 교육, 일과 놀이와 배움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삶의 평화로움이 그 방송을 다시 보게 하고 또 다시 보게 하고 그랬습니다.

밀알에서 성인 장애우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는 숙제입니다.

*캠프힐 방송을 볼 수 있는 주소입니다.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597774

*캠프힐 웹사이트(북아메리카와 세계 곳곳에 있는 캠프힐) 주소입니다. http://www.camphill.org/

*한국에서 특수교육 교사였던 분이 스코틀랜드 캠프힐을 방문하고 쓴 책이구요.





내일은 아틀란타 밀알 선교단에서 일일 찻집을 하는 날입니다.
어머니들은 음식 바자회를 위하여 바쁜 하루를 보내셨습니다.
자원봉사자들도 음식 만드는 것, 청소, 테이블 세팅…으로 힘을 보태셨습니다.

요즘 날이 흐리고 비가 많이 오는데, 내일도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를 보았습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분위기 있게 따뜻한 차와 떡 한 조각, 그리고 부침개와 어묵국이 딱 어울릴 것입니다.
해가 나서 맑은 날이라면 시원한 냉커피로 더위를 물리고, 떡볶이로 여름의 끝자락에서 이열치열(以熱治熱)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오늘이 가기 전에 이 글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나만의 원칙(?$@!&%) 때문에 더 이상 생각이 나아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이 원칙 같지 않은 원칙을 핑계로 마무리 해야겠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 또 재산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사도행전2:44-47)

9/11/2009

추억 속의 Sweet Music Man


때가 되면 어김 없이 계절이 바뀌고, 해마다 그것을 경험하면서도 늘 느낌이 새롭습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기 위해 강산이와 스쿨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하루가 다르게 선선한 기운이 짙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문득 “Sweet Music Man“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알던 친구입니다.
지금까지도 그저 알던 친구, 착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가진 아이라는 정도의 생각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 글을 쓰려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감성이 풍부하고 다재다능하며 무엇보다도 아주 잘 사는 집 아이면서도 잘난 척 하지 않던 꽤 괜찮은 녀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자기가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를 건네주었습니다.
그 당시 레코드 테이프나 LP판을 파는 가게에서 자기가 원하는 곡을 뽑아 녹음해 주는 것이 유행이었던 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집에 있는 테이프에서 골라 직접 녹음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녹음 테이프를 받았을 때는 정성이 들어간 선물이라고만 여겼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노래 제목들과 틀린 단어는 뒷장에 “틀릴걸 틀려야지…” 라는 귀여운 한 마디 말과 함께 고쳐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큰 제목을 적는 모서리 한 귀퉁이에는 “오랜 세월 듣기 위해서는 자주 듣는 것을 삼가” 라고 친절하게 적어놨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친구가 고른 노래들은 잘 알려진 팝송들이었고 안목 있는 선곡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팝송에 관심도 없었는데 그 녹음 테이프에 담긴 16곡을 알고 난 다음부터 팝송 한 구절 흥얼거릴 수 있는 문화인(?)이 되었습니다.

한번은 그 친구와 인천 월미도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는 카페들과 횟집만 줄지어 있는 조용하고 차분한 거리였습니다.
길지 않은 거리를 어느 만큼 걷다가 멈추어 바다를 바라보며 얘기하고 있는데 어느 카페에선가 Kenny Rogers의 “Sweet Music Man”이 거리로 크게 흘러나왔습니다.
“어! 저 노래 니가 녹음해준 첫 번째 꺼다” 했습니다.
그 친구가 준 녹음 테이프에 “Sweet Music Man=나” 라고 써 준 것이 기억나면서 그 순간에 그 노래가 그곳에서 들리니 참 신기했습니다.
살짝 유치한 풍경!
그 때는 놀라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혹시 그 녀석의 이벤트가 아니었나’ 하면서 더욱 감미로운 추억으로 각색해 봅니다.
제가 이렇게 미루어 헤아려 보는 까닭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졸업식을 하기도 전에 자기 자동차를 몰고 다녔고, 대학 가서는 자기 소유의 요트를 가지고 인천 송도 어디선가 요트 클럽 활동을 하면서 인천 출신 가수들이나 이벤트 하는 사람들 하고 어울려 지내고 그랬던 걸로 기억합니다.
경제적인 면이나 풍부한 감성, 마음 씀씀이가 넉넉했기에...

제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는 저를 쪼끔 좋아했던 것 같은데 저한테는 밥 잘 사주는 편안한 친구였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세계관이 서로 달라서 더욱 가까워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성품도 좋고 부잣집 아들인데 어떻게 해볼걸 그랬나요?
ㅋㅋㅋ ㅎㅎㅎ


철이 바뀌면서 점점 스산해지는 바람을 느끼며, 그 친구처럼 누군가에게 진실하고 예의 바르고 편안한 모습으로 오래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바람처럼 다가와 “사랑한다” 말씀해주시는 하나님을 더욱 기대하는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저에게 그 친구는 언제나 한결 같은 모습으로 기도하는 인형을 사주었습니다.
그 친구 가족은 신앙 생활을 하려나…
좋은 추억을 남겨준 그 친구를 위하여, 어울려 살아가는 이웃을 위하여, 무엇보다 제 신앙의 견고함을 위하여 주님께 가까이 가렵니다.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먼저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 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서 거두어들이는 열매입니다.”(표준새번역 야고보서 3:16-17)

9/04/2009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는 즐거움


드라마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주간 드라마를 꼭 챙겨보는 모습이 조금 재미있기도 하고, 뭔가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텔레비전 드라마 가운데 두어 개쯤은 늘 시청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기서처럼 “반드시” 보아야만 하루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구요.
오히려 텔레비전 보지 않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도 한국 방송을 신청하면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너무 많이” 볼까 싶어서(ㅎㅎ) 어쩌다 눈에 띄는 드라마 하나 정도 골라 보는 재미를 누리고 있습니다.

요즘은 “선덕여왕”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총 50부작 가운데-62부작으로 늘렸다는 얘기도 있어요- 이번 주에 30회까지 방송을 보았습니다.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이 주연과 조연으로 등장하고, 역사적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야기 대부분이 시청자들의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드라마 한편 한편이 흥미진진하고 다음 내용이 기다려집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아주 짧게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난 둘째 공주(덕만)가 황실에 쌍둥이가 태어나면 남자의 씨가 마른다는 미완성의 예언 때문에, 왕권을 유지하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그렇다고 죽일 수는 없어 시녀의 손에 맡겨져 낯선 나라에서 자신의 신분을 모른 체 자라게 됩니다.
덕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남장을 하고 계림(신라)으로 돌아와 화랑의 낭도가 되어 궁에 들어가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지혜와 용기가 있는 덕만은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자신이 버려진 공주인 것을 알게 되고, 29회 방송에서는 드디어 공주의 신분으로 궁에 돌아오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언제나 선과 악이 공존하듯이 신실한 덕만의 대적으로 미실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미실은 진흥왕, 진지왕, 그리고 덕만의 아버지 진평왕까지 가까이 한 첩(궁주)이었고, 진흥왕이 미실을 아껴 임금의 옥새를 맡겼다 해서 새주라고 불렸다 하니 그 권세가 어떠했는지 드라마에서 한껏 보여주고 있습니다.
귀족과 군사권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격물(과학)을 이용하여 무지한 백성을 속이고 천신황녀라 불리우며 신권도 장악하고 있는 절대 권력자의 모습입니다.
한편 실제 미실의 미모가 어떠했는지 모르겠으나 그 역할을 맡은 배우 고현정의 미모가 보태져 드라마가 정말 볼만합니다.
배우 고현정이 그렇게 잘 생겼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답니다.


궁에 들어와 신분을 회복한 덕만 공주는 미실과 팽팽한 대립을 합니다.
공주로서 첫 번째 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신권을 포기하고, 격물을 이용하여 무지한 백성들을 속여 사익(私益)을 취하는 이가 없도록 첨성대를 세워 백성들에게 하늘의 주기를 스스로 알게 하고자 합니다.
이에 대해 미실은 “백성들은 환상을 원한다. 가뭄에 비를 내리고 흉사를 막아주는 초월적인 존재를 원한다. 그 환상을 만들어야 통치할 수가 있다. 그들에게 안다는 것은 피곤하고 괴로운 일이다”, 라고 합니다.
하지만 덕만은 꿋꿋하게 “희망은 그런 피곤과 고통을 감수하게 한다. 희망과 꿈을 가진 백성은 신국을 부강하게 할 것이다. 그런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 그런 신라를 만들겠다”, 고 합니다.
생각했던 대로 미실은 자신이 최고 실력자 황녀가 되고 싶은 욕구에 머물러 있지만 덕만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진흥왕이 죽으면서 남긴 말은 이 드라마의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고, 천하의 주인이 된다.”
드라마가 30회가 진행되는 동안, 미실의 사람들이 있었으며 덕만의 사람들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미실은 관심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주변의 사람들을 이용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필요 없어지면 생명 거두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하지만 덕만은 신의(信義)와 진실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걸며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살립니다.

지금까지 온갖 고난을 이기고 나아간 평범한 백성 덕만의 삶은 인간 승리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 성골(聖骨)의 신분을 회복한 공주로서,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사람을 얻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선덕여왕이나 고구려 시조 주몽 이야기에 나오는 소서노가 보여주듯이 삼국시대까지, 아마 고려 시대 초반까지 여성의 지위는 조선 시대의 남녀유별(男女有別), 부부유별(夫婦有別)과 같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걸 어떻게 표현하는지 보는 것도 작은 재미가 될 것 같습니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언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