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2018

콜럼비아 누들에 담긴 이야기





콜럼비아 짜장면은,

산이에게 무엇이 먹고 싶은 지 물어보는 한국 고촌교회 박정훈 목사님 부부의 배려입니다.

산이에겐 한국이 떠오르는 음식이고 아빠가 잘 만드는 음식입니다.

감리교의 설립자 존과 찰스 웨슬리의 흔적을 따라 찾아간 조지아주 세인트 시몬스 섬에서는 맛볼 수 없는 아쉬움입니다.

콜럼비아 집에 저녁 때쯤 도착하면 요리해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여독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산이 아빠와 더불어 박정훈 목사님, 박 목사님의 사위가 다시 시작하는 도전입니다.

정성으로 만들어져 입에서 마음에서 맛보는 놀라움과 기쁨입니다.

산이네와 박정훈 목사님네 가족이 담긴 추억입니다.








콜럼비아 냉면은,

여름이면 교우에게 대접하고 싶은 자 제임스 장로님의 배려입니다.

교우에겐 콜럼비아가 떠오르는 음식이고 자 장로님이 잘 만드는 음식입니다.

미국 어느 곳을 가도, 심지어 한국을 방문해서도 그런 맛을 볼 수 없는 아쉬움입니다.

8월이면 장로님네를 한 주 동안 방문하는 시동생네를 바쁘게 접대하면서도 요리해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주일예배 후에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을 뒤로한 채 장로님과 더불어 성가대원들이 다시 시작하는 도전입니다.

정성으로 만들어져 입에서 마음에서 맛보는 놀라움과 기쁨입니다.

자 장로님네와 콜럼비아 제일교회가 담긴 추억입니다.

8/12/2018

여름을 함께 보낸 바질

<바질 꽃>




타주에 사는 친구는 식물이 예쁘고 쓸모 있게 자라도록 보살피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초여름, 그이 집에 놀러 갔을 전에 받아 씨로 싹을 틔운 것이라며 바질 모종을 한 움큼 싸주었다



비교적 사계절이 뚜렷한 환경에서 자란 것들이라 더위가 길고 심한 이곳에서 자랄지 궁금했다
그런데 바질이 자라주었다
이파리는 때때로 따서 먹기도 하고 생선 구울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바질 페스토라는 파스타 요리를 하면 좋겠지만 나만 먹을 분명하여 그만두었다.



겨울 동안 사용할 바질도 말리고 있다
꽃이 피기 직전의 잎이 가장 향이 좋다고 한다
꽃이 피는 중에라도 가벼운 바람만 스쳐도 제 향기를 감추지 못한다.
베인 풀에서 나는 풀 향이 응축된 ... 
산이는 치과 냄새가 난단다.



키는 80-90센티미터쯤 되고 꽃도 계속 피고 진다
꽃이 엄청 작은데도 벌들이 제법 날아든다
친구에게 그러했듯이 나에게도 씨를 내어 주려나, 기다리고 있다

8/06/2018

13년의 간격을 이어주는 추억


 

엄마!!!”

누가 부른 듯하여 귀에 꽂은 이어폰을 빼면서 고개를 들었다. 둘째 아들 윤이의 입 모양이 ~’를 아직 끝내지 못해서 둥글게 벌어져 있었다. 우리 집 다른 두 사내의 눈길도 나를 향해 모아져 있었다. 다 늦은 저녁에 뭐 그리 애타게 엄마를 찾아댈 일이 있냐는 시큰둥한 얼굴로 그들을 죽 둘러 보았다.

내일 인크레더블 투(2) 보러 가자.”
싫어.”

요 몇 달 동안 영화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그러니 보러 가고 싶은 것도 있을 리 없다. 그렇더라도 너무 매정하게 대답을 했나 보다.

아빠하고 같이 가.”

형 산이랑은 당연히 같이 가는 거니까, 엄마 대신 아빠를 끼워 넣는 것이 적당했다.

아빠가 싫대!”

영화 구경에 대한 내 의사보다 아빠의 대답이 벌써 있었던 모양이다. 이어폰을 끼고 대중매체의 충실한 수신자 역할을 담당하느라 그들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그럼 형이랑 둘이 가라, 고 성의 없는 두 번째 제안을 했다. 윤이는 무척 실망스러운지 두툼한 아랫입술이 비죽이 내밀어졌다. 다 큰 놈이 부모랑 영화 보러 가자고 하질 않나, 싫다니까 서운해하다니 별일이다 싶었다. 이번엔 거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 극장 입장료를 내주겠다며 달랬다. 그랬더니 관두란다.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며. 세 번째 제안은 대학 마지막 학년을 남겨 두고 있는 청년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린 것 같았다.

내 기억에는 처음으로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본 게 인크레더블이야. 인크레더블 투가 개봉한 지는 꽤 됐지만 그냥 같이 가서 볼려구 그랬더니….”

윤이는 주절주절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아빠나 엄마의 결정이 바뀔 것 같지 않다고 짐작한 듯이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 기억에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어지간하면 아이들이 보고자 하는 영화의 내용이 궁금해서라도-그래야 얘기 거리도 더 생길 테니- 같이 가겠다고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럴 맘이 통 생기질 않아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윤이가 며칠 집에 머무르는 동안 가만 보니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어깨가 더 넓어졌다. 애틀랜타한인교회 여름캠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중고등부 수련회에서 카운슬러를 하고 오더니 생각이 깊어진 것도 같다. 타인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슬쩍 엿보였다. 집에 온 첫 날에는 이번 여름에 경험한 것들을 세 시간 넘게 꼼짝 않고 풀어놓았다. 성실한 교회 오빠의 냄새가 폴폴 났다. 집에서는 아직 어린 애 같이 스스로 알아서 하지 않으려 하고 툴툴대는 말투도 여전하지만 말이다.

그 녀석이 영화 보자고 제안하기 전 날에는 책장 앞에서 누워 뒹굴뒹굴 하다가 책장 맨 아래칸에 있는 폴더를 하나씩 꺼내 들쳐본 것을 알고 있다. 애기 적부터 자질구레한 것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거기서 영화 인크레더블홍보 전단지와 전단지에 쓰여 있는 2005 1월이라는 날짜를 발견하고는 옛날 추억이 떠오른 모양이다. 그때도 엄마랑 같이 가서 봤다고 했다. 윤이가 나중에 얘기해주었다.

다음 날 새벽 기도가 끝나고 남편과 함께 교회 주차장을 걸으며 영화관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얼른 그러라고 답했다. 남편은 자신이 생각하는 삶과 신앙의 원칙을 깨뜨리는 일이 아니라면 뭐든 하라고 격려한다. 그 원칙은 분명해서 영역이 그다지 넓지는 않다. 내가 하려는 대부분의 것들을 하도록 부추기기까지 하는 편이다. 그래서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다.

어쨌든 아침 식사를 같이 하자고 아이들을 깨웠다. 잠 자리에 있던 아이들은 뭔 일인지 몰라 눈을 뜨지 않았다. 이불을 더 끌어당겨 얼굴을 덮길래 이번엔 내가 주절댔다.

아들, 엄마도 영화 보러 갈 거야. 영화비도 줄일 겸 오전 꺼 보면 어때? 점심은 아빠랑 같이 밖에서 먹자! 우리가 안 가봤던 식당 트라이(try) 해보자고 했잖아. 아침 먹게 빨리 일어나~.”

내가 식탁에 이르기도 전에 뒤따라 나오는 아들들. 이럴 땐 이십 대 청년이 아니라 애기들이다. 두 아들은 아침에 잠을 깨울 때 나를 성가시게 한 적이 없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일어나라한 마디만 하면 되었다. 산이가 씻고 나갈 준비하는데 느릿느릿 해서 그렇지 잠투정은 도통 없다. 고맙게 여긴다.

우리는 편안하고 여유롭게 인크레더블 투를 관람했다. 평점이 꽤 높은 영화인데 앞부분은 지루했다. 다만 히어로도 여성이고 악당도 여성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산이는 재미있다며 이 영화 DVD를 사고 싶다고 했다. 윤이는 추억 쌓기 한 거지, 라고 애늙은이 같이 말했다. 윤이 말처럼 영화 하나로 한국과 미국에서, 13년의 간격을 이어주는 추억이 생겼다.

네 식구가 다 모인 점심 시간도 즐거웠다. 집 근처 쇼핑센터 초입에 있는 퓨전식당인데 콜럼비아에 8년째 살고 있으면서 우리 세 사나이들은 처음 가 보았다. 난 전에 한국학교 선생님들과 두 번 간 적이 있어서 오늘의 식당으로 추천한 것이었다. 영화를 같이 보지 않은 남편은 따로 식당을 찾아왔다. 식당은 자주 다니는 길 가에 있다. 남편은 운전해 오면서 식당 주변이 이렇게 좋았나, 새삼 느꼈다고 했다. 남편은 맛의 기준이 하도 높아서 비~싼 궁중요리를 먹으면 모를까 맛난 추억은 아니더라도 새로운 느낌의 장소가 한 곳 더해진 것 같긴 하다.

요즘 비가 자주 와서 그런지 날이 맑을 때 나온 햇빛은 유난히 깨끗하고 반짝거린다. 극장 앞도 식당 주변도 생기 넘치는 빛들로 가득한 한 나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