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2015

영화 “로맨틱 레시피(The Hundred-Foot Journey)”




감기에 걸려 고생을 하던 남편이 영화를 보자고 했다. “로맨틱 레시피(The Hundred-Foot Journey)”라는 영화였다. 한글 제목만 보고서는 남편의 마음이 읽혀졌다. 기침을 하면서도 감기 끄트머리라고 거듭 강조를 하더니 그날 밤은 아내의 품이 그리운 거였다. 그렇다고 재미없는 영화를 억지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 남편은 영화에 대해 반신반의 하는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스티븐 스필버그와 오프라 윈프리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라는 정보를 슬쩍 흘렸다. 남편이 보자고 제안하는 영화가 언제나 재미난 것은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영화들 대부분은 남편이 소개한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특이하고 의미 있는 영화를 만드는데 뛰어난 두 사람이 제작자들이라고 하니 두루두루 믿고 보자는 심정이 되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인도 음악이 흘러 나왔다. 뭔가 신비스러운 영상이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제목이 나오는데 한글 제목과는 전혀 달랐다. The Hundred-Foot Journey. 백 걸음 여행이라는 제목에서는 짧은 거리 안에서 여행이라고 표현할만한 무슨 일이 벌어지나 보다 짐작해 보았다. 제목이 심오하다는 생각도 잠깐 했다. 원제와 한글 제목의 뜻이 너무 다르다는 생각을 했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그 두 제목을 붙인 각각의 이유를 알 듯도 했다.




The Hundred-Foot Journey

인도 뭄바이에서 하산 가족은 음식점을 운영했다. 누군가 정치적인 이유로 하산네 음식점에 불을 지른다.이 불로 요리사인 하산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고 그의 가족은 고국을 떠난다. 어머니가 하시던 영혼이 있는 요리를 하기 위해 정착할 나라를 찾던 중 프랑스에 머물게 된다. 산과 강이 어우러진 프랑스 시골 마을로 이민을 오게 된 것이다.

인도 문명과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하산의 아버지는 그 마을에서 인도 음식점을 열기로 결심한다. 아버지는 이전에 레스토랑으로 사용했던 곳을 찾아낸다. 하지만 백 걸음 앞에는 유명한 레스토랑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인도 음식점과 프랑스 음식점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프랑스 음식점을 운영하는 마담 말로리는 자신의 기득권을 이용하여 음식 재료를 먼저 차지한다든지 이런 저런 이유로 민원을 넣는다. 어느 날 밤, 말로리 음식점에서 일하는 셰프가 하산네 음식점에 불을 지른다. 인도에서의 불은 하산네가 인도를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면 프랑스에서의 불은 그 마을에 정착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말로리 부인은 불을 지른 셰프를 해고하고 하산을 요리사로 데리고 온다. 말로리는 하산에게 엄청난 요리 실력이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두 음식점 간의 전쟁은 끝이 나고 하산은 백 걸음의 여행을 시작한다.

백 걸음이면 길 하나 건너는 길이인가 보다. 여행은 멀리 떠나는 것뿐 아니라 낯설고 새로운 곳을 보고 싶고, 알고 싶어 찾아 떠나는 것이리라. 경험해 보지 못한 문화로의 여행, 말 한마디 건넨 적 없는 이웃집으로의 여행, 자기만의 공간에서 가족 모두를 만날 수 있는 거실로의 여행, 차가운 머리에서 따뜻한 마음으로의 여행…… 마음만 먹으면 이해와 화해 속으로 날마다 여행을 떠나는 다채로운 삶을 살 수도 있겠구나 싶다.




로맨틱 레시피

하산은 말로리 음식점에서 요리 실력을 인정받고 파리로 진출하게 된다. 파리에서도 그의 천재성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스타 셰프가 된다. 하산은 프랑스에서 점점 더 유명해지지만 그럴수록 그의 얼굴은 점점 공허해 보인다.

말로리 음식점에서 일하는 요리사 마거리트는 하산의 마음에 담긴 연인이다. 하산은 마거리트에게 그물버섯 라비올리 레시피에 대해 묻는 메시지를 보낸다. “양파를 오일로 구웠나요 버터로 구웠나요? 당신과 함께 만들었던 그 맛이 안 나요.” 마거리트는 양파를 굽는 방법보단 버섯이 더 중요해요. 그물버섯은 여기서 나는 게 최고죠라고 답장을 보낸다.

하산의 외로움이 더해가던 어느 날, 인도 출신 동료 요리사가 도시락을 먹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도시락에는 동료 요리사의 아내가 싸준 인도 전통 음식들로 가득했다. 음식에 사용된 향신료에 대해 묻자 고향에서 보내준 것들이라고 동료는 대답한다. 하산은 도시락의 음식을 먹으며 울음을 참지 못한다. 하산은 자신의 명성을 뒤로 하고 가족과 연인이 있는 시골 마을로 다시 내려온다.

하산은 타고난 재능으로만 만들어내는 요리가 아닌 사랑으로 만들어내는 요리를 선택한 것이다. 레스토랑이 있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들로 만드는 요리 말이다. 영화 바베트의 만찬에서도 사랑이 담긴 요리가 마을 사람들을 화해케 하고 감동시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사랑은 어디에 넣어도 어울리는 지상 최고의 음식 재료인 것이 분명하다. 신경하 감독님과 사모님께서 미국 여행 중에 주일 설교도 해주시고 우리 집도 방문해주셨다. 내가 할 수 있는 음식은 김치찌개와 고추장돼지불고기였다. 거기에 감사와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함께 넣어 대접하였다. 두 분께서 맛있다, 말씀해주셔서 행복했다

1/12/2015

아빠와 딸


 




아빠에게 첫아이이면서 첫딸인 나는 사랑을 많이 받았다. 가족들이 전해주는 말에 따르면 식사를 할 때에 아빠는 꼭 나를 먼저 먹이고 나서 나중에 식사를 하셨다고 한다. 외출하실 때에도 마스코트처럼 가능한 한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이야 육아에 엄마 아빠 모두 정성을 들이지만 거의 오십 년 전에는 어른들 앞에서 자기 자식을 드러나게 예뻐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라고 여기던 때였다. 도리에 어긋나면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마구 야단을 치시던 호랑이 할머니와 같이 살았는데, 그런 할머니 앞에서도 꿋꿋하게 딸을 아끼던 요즘 말로 딸바보셨나 보다.

서너 살쯤 되었을까? 무더운 여름이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빠는 자전거를 태워주셨다. 해가 길어서 그랬던지 밀집 모자를 씌워주시곤 했다. 살던 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무지개 빛을 내는 분수대가 있었다. 아빠는 그곳까지 자전거로 달려가 잠시 분수가 뿜어내는 시원한 물을 보여주셨다. 인천 숭의동 로터리에 그 분수대가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어릴 적 기억이지만 참으로 시원하고 환상적인 나들이였다.

아빠는 무척 꼼꼼하고 자상하시다. 말수가 별로 없으신 편인데, 당신이 말재주가 없어 마음이 잘 표현이 안 된다고 안타까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난 아빠의 말재주 없는 면을 닮은 것 같다. 지금도 누군가 말을 재미있게 잘 하거나 유머가 풍부하거나 상황에 딱 떨어지게 대처하여 말하는 것을 들으면 얼마나 신기한지 모른다. 말이 적은 아빠의 오랜 취미는 낚시다. 그 아빠의 딸답게 어려서부터 낚시터에 잘 따라 다녔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소래 낚시터로 망둥이를 잡으러 다녔다. 망둥이를 잡으면 산 채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했다. 어른들은 이걸 먹는 나를 희한하게 보시면서도 재미있어 했다. 재미있어 하시니 나는 신나서 또 먹고……

아빠가 다니시던 회사에 낚시 동우회가 있었다. 낚시 동우회에서는 정기적으로 전국 낚시터를 방문했고 일 년에 두어 번 TV 같은 큰 상품을 주는 대회도 열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큰 낚시대회에 따라 간 적이 있었다. 밤낚시를 하고 다음 날 점심 전에 마무리하는 일정이었다. 45인승 관광버스 서너 대가 함께 갔으니 참가자가 꽤 많은 대회였다. 낚시터에 도착하자 아빠는 쫓아간 딸이 춥지 않도록 바람을 막아줄 둔덕이 있는 곳을 찾아 작은 사이즈의 텐트를 치셨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은 고기가 잘 잡힐 것 같은 포인트로 빠르게 흩어졌다.

여기저기서 조용히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빠는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하셨다. 낚시하시다가 괜히 우리 라면 끓여 먹자, 며 시간을 보내셨다. 내가 심심해 할까 봐 마음이 쓰이셨던 것 같다. 낚시 마감 시간이 다가오도록 별 소득이 없었다. 이번엔 안 되겠다며 낚싯대를 접으려는데 뭔가 걸렸다. 일단 물고기 길이가 30cm(12인치)가 넘으면 다른 이들과 겨루어볼 수 있는 자격이 되었다. 건져보니 36cm쯤 되는 놈이었다. 그놈으로 아빠는 장려상인가를 타셨다. 아빠의 취미 생활에 동행한 딸을 기특하게 여기셨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빠 낚시터에 따라오는 독특한 고등학생이거나 그 밖에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여학생이었지만 아빠에겐 그저 자랑스런 딸이었다.

그런데 그 딸이 늘 아빠의 기대를 만족시켜 드리지는 못했다. 신학대학에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는 말씀을 드린 순간부터 아빠는 나와의 대화를 중단하셨다. 그 당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없던 아빠는 여자가 신학대학에 간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으셨다. 아빠가 어찌어찌 정신을 가다듬고 상상할 수 있었던 딸의 모습은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옆구리에 성경을 끼고 다니는 전도부인이었다. 학교를 다 마치도록 아빠는 딸을 잃었고 딸은 아빠를 잃었었다. 난 가고 싶은 길을 갔지만 가족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가족은 내 삶의 울타리일 뿐 멀어진 사이가 좁혀지지 않는 듯했다. 나는 한 술 더 떠 신학대학원을 진학했고 거기서 목사가 될 남편을 만나 결혼하였다.

아빠는 소박하면서도 정겹게 목회 하는 모습, 장애를 가진 아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 장기수 같이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좋은 세상 만들어 보려는 애씀, 어려운 교회에 부임하여 교회 건축을 하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딸네 모습을 죽 지켜보셨다. 그러시던 중에 정말 감사하게도 아빠는 하나님을 믿게 되셨다. 더불어 잃었던 아빠와 딸의 관계도 다시 회복되었다.

이젠 더 이상 아빠와 딸 사이에 걸릴 것이 없었다.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빠는 다시 얻은 딸과 또 멀어지게 되었다. 출국 날짜를 받아놓고 아빠에게 낚시를 가자고 했다. 1월 한겨울, 얼음 낚시였다. 강화 교동도 고구리 저수지로 낚시를 갔다. 저수지는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는 아빠와 나 둘뿐이었지만 이번엔 아빠와 엄마, 그리고 딸과 사위와 손자들이 함께 간 낚시였다. 아빠는 얼음 낚시에 필요한 도구들을 꺼내와 손자들에게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주셨다. 엄청 추워서 얼음 위에 서 있기조차 어려웠다. 난 얼음 위와 땅 위를 왔다 갔다 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아빠는 손자들이 얼음 구멍에 낚싯줄을 담그고 놀도록 도와주셨고 얼음 위에서 내려오지도 않으셨다. 아빠는 집에 돌아오도록 말도 없으셨고 웃지도 않으셨다.

미국 집에는 두 번 다녀 가셨다. 이곳에 오시면 함께 낚시도 가자고 했었는데 그런 여유가 잘 생기지 않았다. 같이 낚시할 날이 다시 있을 지 모르겠다.

지난 주 북극에서 몰려온 한파가 이곳 미국 동남부까지 이르러 무척 추웠다.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곳인데 영하 7.7 ℃(18)까지 내려갔었다. 눈은 오지 않았지만 바람이 몹시 차가웠다. 교회에 갔다가 설핏 옷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에 몸이 순간 경직되었다. 문득 온통 얼어버린 고구리 저수지에서 맞았던 바람 같았다. 아빠가 보고 싶었다

1/05/2015

새로운 리듬을 타고




동네 가까운 곳에 있는 피트니스클럽은 자주 가고 싶은 곳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해에 가족이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등록해 두었는데 일주일에 두 번 정도를 겨우 간다. 해도 바뀌었으니 일주일에 세 번은 가리라 다짐을 해 본다!

지난 여름 동안에는 식구들이 함께 운동하러 갔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운동기구들을 이용해 땀을 내고, 수영으로 개운하게 마무리하곤 했다. 난 수영도 못 하고 귀에 물이 들어가는 것도 싫어 수영장에는 안 들어가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군살이 덕지덕지 붙은 맨살을 드러내는 수영복을 입는 것이 더 싫었다. 그랬더니 이 기회에 수영을 배우면 되지 않겠느냐, 물속에서 걸으면 운동량이 더 많다더라, 며 꼬셔댔다. 수영장을 이미 다니고 있던 남편과 아이는 나보다 몸이 더 좋은 미국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라며 안심(?)하라고 했다. 남편은 아무도 당신에게 관심 없어, 라는 말로 식구들이 함께 수영하자는 의견에 쐐기를 박았다.

여름방학이 끝나기까지 아이들과 어울릴 겸해서 달갑지 않은 수영장에 들락날락했다. 학기가 시작되자 학교에 다니는 녀석은 피트니스클럽에서 하는 운동을 접었다. 가족이 함께 하는 운동시간이 끝난 것이다. 동시에 나도 수영장 가기를 그만 두었다. 내가 잘 할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는 걷기운동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보통 트레드밀을 이용하여 운동할 때 뛰는 사람은 흔하게 본다. 내가 운동하는 곳에서도 나처럼 전혀 뛰지 않고 걷기만 하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내 몸 상태에 맞게 걷는 운동을 선택했지만 트레드밀에 올라선 사람마다 달려가면, 내가 둔해 보이려나, 운동할 줄 모른다고 여기려나 잡생각들이 발걸음을 지치게 하기도 했다. 이럴 땐 아무도 당신에게 관심 없어, 라는 남편의 말이 그런대로 쓸모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걷는 운동만 하는 사람이 점점 눈에 띈다. 운동하는 곳이 익숙해져서 전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상황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트레드밀에 올라가 활기차고 즐겁게 진행되는 아침 뉴스를 볼 수 있도록 TV 채널을 찾아놓는다. TV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이어폰을 연결한 다음 슬슬 걷기 시작한다. 몸이 풀렸다 싶으면 속도를 조금 더 올려 발걸음을 빠르게 한다. 속도가 높아진 얼마 동안은 숨도 차고 정강이에 힘이 들어가 발걸음이 무겁기도 하다. 아침 식사 때 마신 커피 탓인지 화장실에 가고 싶은 느낌이 들어, 화장실에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잠시 고민하기도 한다. 아마도 이때가 체육학에서 말하는 데드 포인트(Dead point). 운동의 강도를 높였을 때 곧 괴로운 상태에 이르게 되는 지점이다.

이런 몸과 마음의 상태를 눈치채면 차분히 살피고 달래준다. 어깨에 들어간 힘을 풀고, 뒤로 젖혀진 목을 바로 세워 살짝 앞으로 잡아 당기고, 숨을 더 깊게 들이 마시고 내뱉는다. 건강한 몸을 위하여 운동하기로 정한 시간만큼 기쁘게 채우고 흐뭇한 마음으로 이 건물을 나서자고 나에게 부탁한다. 그러다 보면 속도가 빨라진 트레드밀에 몸이 익숙해져서 발걸음도 가볍고 호흡도 편해져 있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느낌도 사라지고 없다. 걷는 것을 멈추지 않고 걷고 또 걷는 동안 몸은 새로운 리듬을 만든다. 세컨드 윈드(Second wind) 상태에 이른 것이다.

세컨드 윈드란 격렬한 운동에 대해서 모든 신체기능이 동원되어 새로운 평형 상태가 성립된 시기이고, 신체 활동에 적응하도록 각종 내분비선과 기타 장기의 작용이 조정되어 세컨드 윈드가 되도록 돕는다고 친절한 이웃(^^)인 네이버 지식백과가 잘 알려준다.

새해 새로운 마음으로 하지 않던 일을 하려 하거나 하던 일의 강도를 높이는 경우라면 곧 데드 포인트에 이를 확률이 높다. 긍정적이고 자발적인 자극이 몸을 잠시 괴롭게도 하지만, 잘 이기고 나아가면 더 건강해지도록 돕는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일주일에 세 번, 즐겁게 걸어야겠다. 운동이 몸에 새로운 리듬을 주듯 다시 주어진 한 해의 시간을 정성스레 걷는 동안 삶도 새로운 리듬을 타고 신나게 노래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