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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좋지는 않아도 봄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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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에 사시는 어머님과 전화 통화를 하던 중 중부 지방에 비가 내리지 않아 봄 가뭄이 심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수리조합에서 관리하는 물이 삼분의 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좀처럼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하셨다. 여긴 비가 많이 와야 댜~, 라는 말씀에 물이 부족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여기 사우스캐롤라이나는 겨울이 우기라서 눈은 거의 오지 않고 비가 자주 내린다. 겨울 내내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비가 오더니, 봄이 지나가고 있는 요즘도 흐린 날이 많고 비도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어머님네는 비가 오길 바라고 있는데 이곳은 비는 그만 오고 따뜻한 햇볕이 나서주길 기다리고 있으니 사는 처지가 참 다르다.
교인 가운데 병원에 입원한 분이 계셔서 병문안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 전날 비가 오기도 하고 기온도 떨어져서 그런지 하늘이 더없이 깨끗하고 파랬다. 높이가 낮은 건물들 덕분에 넓은 하늘이 한눈에 들어오고, 솜 덩어리 같은 뭉게구름도 하늘 한가득 그림 같이 떠 있었다. 이렇게 맑고 포근한 하늘을 몇 달 만에 보는 것 같았다. 기분이 슬슬 좋아졌다. 이왕이면 자동차의 창문을 열고 봄바람도 느껴보고 싶어졌다. 창문을 반쯤 열고 잠시 달렸는데 목이 컥, 하고 막혔다.
꽃가루 때문이었다. 특히 천지에 퍼져 있는 송홧가루. 봄철 동안에는 노란 송홧가루가 건물 밖에는 어디나 날아다닌다. 그래서 꽃가루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은 재채기, 콧물, 눈병, 가려움 따위로 아주 힘들어 한다. 알러지가 없던 사람들도 이곳에 사오 년 살다 보면 알러지가 생긴다고 한다. 사람이 무던한 건지 둔한 건지 나는 아직 꽃가루의 영향을 별로 받고 있지 않다. 그런데 달리는 자동차의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송홧가루에는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청명한 봄하늘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데 꽃가루는 몸을 괴롭게 했다. 모든 것이 마냥 좋을 수는 없는가 보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교회에서 대청소를 했다. 교회 마당에서는 나무와 꽃들 사이에 솔잎을 깔아주었다. 남성 교우들과 아이들이 그 일을 맡아주었…

일상 속의 페이스메이커(Pace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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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사님께서 심장 기능이 안 좋아져서 치료 받으시는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약물로 치료를 하다가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 페이스메이커(Pacemaker)라는 심박조율기를 심장과 연결하게 되었다. 이 조그마한 장치는 집사님의 어깨 아래 피부 속에 심겨졌다. 페이스메이커에서 나온 전선은 심장에 가 닿아 있어서 심장 박동이 정상이 되도록 자극을 주는 기계라고 했다. 이런 기계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 뒤로 연세 드신 어르신들 가운데 페이스메이커의 도움을 받는 분들이 여럿 계심도 알게 되었다. 심장이 자연스레 튼튼하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인공적으로 만든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니 고마운 일이라 여겨졌다.
심장 박동이 느려지면 페이스메이커는 이것을 감지하고 심장을 자극하게 되는데, 가만히 보면 일상 속에서도 안일하거나 게을러진 삶의 태도를 자극하는 여러 일들을 만나곤 한다.
토요일마다 열리는 이곳 한국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로 두 번째 학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 학기에 나의 반이었던 아이들과 새로 등록한 아이들을 만나 한글 낱말들을 익히고 그 낱말들을 이용하여 문장 만들기를 꾸준히 연습하고 있다.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으나 매주 숙제를 내주고 받아쓰기 하는 것은 웬만하면 거르지 않는다. 집에서 쉬고 싶은 토요일에 한국어를 배우러 나온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나름 이 궁리 저 궁리 하여 학습계획안을 작성하기는 하는데, 수업이 다 끝나고 나면 부족함을 종종 느낀다.
수업 일정에는 특별활동 시간도 있어서 만들기나 노래, 소고춤, 장구춤, 그리고 케이팝을 부르며 춤을 추는 반으로 나누어진다. 나의 반 아이들은 장구춤을 추는 반에 모두 들어가 있다. 이번 학기 특별활동에서 배운 것들은 가을에 열리는 한인축제에 나가 공연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래서 활동 내용을 좀 더 확실히 익힐 필요가 생겼고 장구춤반은 내게 맡겨졌다. 장구춤반 아이들은 다른 선생님들과 지지난 학기부터 배워오고 있었고 난 몇 번 지켜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

산이 곁에 있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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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자신이 부목사로 일하던 아틀란타한인교회로 설교를 하러 갔다. 장로님들의 은퇴를 찬하하는 예배라고 들었다. 남편은 애틀랜타에 가기 두 주 전쯤 아들 산이에게 같이 가겠느냐고 물어보았다. 먼 길 오고 가는데 동행이 있으면 덜 피곤하기도 하고, 집에만 있는 아들에게 나들이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이라도 더 주고 싶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산이는 흔쾌히 가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산이가 손꼽아 기다리는 애틀랜타에 가기 일 주일 전, 내가 감기에 걸리더니 며칠 뒤에 작은 아이 윤이에게도 옮겨갔다. 산이에게는 감기에 걸리면 애틀랜타도 못 간다고 내 근처에 오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엄마와 눈이라도 마주치려고 포옹 대신에 엄마 등에 얼굴 한번 비비고, 하이 파이브 대신에 팔을 반으로 접어 팔꿈치라도 부딪친다. 팔꿈치끼리 부딪치는 것은 산이가 가르쳐준 방법이다. 그러면서 엄마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안쓰러움이 가득 담겨 있다. 우리 가족 중에서 제일 연약할 것 같은 산이가 지독한 이번 감기를 요리조리 따돌리고 애틀랜타 가는데 성공했다.
산이가 집에 없으니 조용하다. 산이 곁에는 늘 소리가 있다. 지가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놓은 소리, 레고를 조립하느라 조각들 만지작거리는 소리, 찬송가 부르는 소리, 성경 읽는 소리, 그리고 중얼중얼 누군가와 얘기하는 듯한 소리……
“애틀랜타 갈까? 음. / 그래, 가자! / 감기, 절대 안 돼. 알겠지? / 음. 아빠하고 나하고. / 애틀랜타한인교회 좋아. 김정호 목사님 좋아. / 그래, 가자!”
자신의 일상적인 얘기를 누군가와 미주알고주알 소곤거린다. 표정도 마치 누군가를 바라보듯 다양하게 연출된다. 그만 하라고 지시하지 않으면 한참을 그러고 있기도 한다. 자기 말을 이해하고 들어주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혼자라도 떠드나 싶어 안쓰럽기도 하다가, 보통 사람의 모습은 아니니 그러지 말라고 퉁을 놓기도 한다. 이런 내 생각과는 달리 나의 엄마는 산이의 이런 모습을 보고 그냥 놔두라고 하신다. 말하는 것이 대견하다는…

묻어 둔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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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하나.

지역 도서관에 자유롭게 수다 떠는(free talking) 반이 있어서 다닌 적이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난 오후라 그런지 참여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영어가 모국어여서 각각의 그룹을 이끌어 가는 자원봉사자들이 더 많았다. 난 60대 초반의 백인 부부와 한 그룹이 되었다. 또 다른 참여자가 있기도 했는데 오다가 말다가 하여 내가 수다 떨 수 있는 시간이 더 길어져 좋았다.

대화 상대였던 백인 부부는 아주 꼼꼼해서 틀린 발음들을 잘 고쳐주었다. 특히 아내인 캐시 아줌마는 질문을 하면 간단히 답을 하지 않고 더 많이 가르쳐주려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퀼트를 조금 해 본 적이 있고 관심이 있다고 했다. 캐시 아줌마는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퀼트 모임이 있는데 언제든지 와 보라고 했다. 모임 시간과 교회 위치를 자세히 알려주었다. 교회는 내가 살던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규모가 큰 장로교회였다. 퀼트도 배우고 영어도 더 얻어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겨졌다.
퀼트 모임도 평일 오후 시간이었다. 퀼트 하는 방에 이르자 곧 캐시 아줌마가 도착을 했다. 산소 호흡기를 끼고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로부터 젊은 새댁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책상을 앞에 두고 넓고 크게 둘러 앉아 내 소개를 했다. 회원 몇 명이 그 즈음에 개인적으로 만들고 있는 작품들도 보여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모임이 끝날 때까지 서너 명씩 가까이 앉은 사람들과 소곤거릴뿐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은 없었다.
캐시 아줌마는 그 모임에서 만들었던 작품들을 사진 찍어 모아 놓은 자료집을 보여주었다. 작품의 크기나 만드는 방법이 참으로 다양했다. 완성된 것은 부모 없는 아이들, 환자, 교회에 새로 부임한 부목사 등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이들에게 전달된 사진도 볼 수 있었다. 모임에서는 완성된 퀼트를 누구에게 줄 것인지, 어떤 모양으로 만들 것인지를 정하면 각자가 블록(조각 천을 붙여 만든 하나의 단위)들을 만들어오고, 누군가 그 블록들을 연결하고, 솜을 넣어 누비고………

영화 “로맨틱 레시피(The Hundred-Foot 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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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 걸려 고생을 하던 남편이 영화를 보자고 했다. “로맨틱 레시피(The Hundred-Foot Journey)”라는 영화였다. 한글 제목만 보고서는 남편의 마음이 읽혀졌다. 기침을 하면서도 감기 끄트머리라고 거듭 강조를 하더니 그날 밤은 아내의 품이 그리운 거였다. 그렇다고 재미없는 영화를 억지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 남편은 영화에 대해 반신반의 하는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스티븐 스필버그와 오프라 윈프리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라는 정보를 슬쩍 흘렸다. 남편이 보자고 제안하는 영화가 언제나 재미난 것은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영화들 대부분은 남편이 소개한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특이하고 의미 있는 영화를 만드는데 뛰어난 두 사람이 제작자들이라고 하니 두루두루 믿고 보자는 심정이 되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인도 음악이 흘러 나왔다. 뭔가 신비스러운 영상이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제목이 나오는데 한글 제목과는 전혀 달랐다. The Hundred-Foot Journey. 백 걸음 여행이라는 제목에서는 짧은 거리 안에서 여행이라고 표현할만한 무슨 일이 벌어지나 보다 짐작해 보았다. 제목이 심오하다는 생각도 잠깐 했다. 원제와 한글 제목의 뜻이 너무 다르다는 생각을 했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그 두 제목을 붙인 각각의 이유를 알 듯도 했다.



The Hundred-Foot Journey
인도 뭄바이에서 하산 가족은 음식점을 운영했다. 누군가 정치적인 이유로 하산네 음식점에 불을 지른다.이 불로 요리사인 하산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고 그의 가족은 고국을 떠난다. 어머니가 하시던 영혼이 있는 요리를 하기 위해 정착할 나라를 찾던 중 프랑스에 머물게 된다. 산과 강이 어우러진 프랑스 시골 마을로 이민을 오게 된 것이다.

인도 문명과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하산의 아버지는 그 마을에서 인도 음식점을 열기로 결심한다. 아버지는 이전에 레스토랑으로 사용했던 곳을 찾아낸다. 하지만 백 걸음 앞에는 유명한 레스토랑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인도 음식점과 프랑스 음식…

아빠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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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게 첫아이이면서 첫딸인 나는 사랑을 많이 받았다. 가족들이 전해주는 말에 따르면 식사를 할 때에 아빠는 꼭 나를 먼저 먹이고 나서 나중에 식사를 하셨다고 한다. 외출하실 때에도 마스코트처럼 가능한 한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이야 육아에 엄마 아빠 모두 정성을 들이지만 거의 오십 년 전에는 어른들 앞에서 자기 자식을 드러나게 예뻐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라고 여기던 때였다. 도리에 어긋나면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마구 야단을 치시던 호랑이 할머니와 같이 살았는데, 그런 할머니 앞에서도 꿋꿋하게 딸을 아끼던 요즘 말로 딸바보셨나 보다.
서너 살쯤 되었을까? 무더운 여름이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빠는 자전거를 태워주셨다. 해가 길어서 그랬던지 밀집 모자를 씌워주시곤 했다. 살던 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무지개 빛을 내는 분수대가 있었다. 아빠는 그곳까지 자전거로 달려가 잠시 분수가 뿜어내는 시원한 물을 보여주셨다. 인천 숭의동 로터리에 그 분수대가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어릴 적 기억이지만 참으로 시원하고 환상적인 나들이였다.
아빠는 무척 꼼꼼하고 자상하시다. 말수가 별로 없으신 편인데, 당신이 말재주가 없어 마음이 잘 표현이 안 된다고 안타까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난 아빠의 말재주 없는 면을 닮은 것 같다. 지금도 누군가 말을 재미있게 잘 하거나 유머가 풍부하거나 상황에 딱 떨어지게 대처하여 말하는 것을 들으면 얼마나 신기한지 모른다. 말이 적은 아빠의 오랜 취미는 낚시다. 그 아빠의 딸답게 어려서부터 낚시터에 잘 따라 다녔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소래 낚시터로 망둥이를 잡으러 다녔다. 망둥이를 잡으면 산 채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했다. 어른들은 이걸 먹는 나를 희한하게 보시면서도 재미있어 했다. 재미있어 하시니 나는 신나서 또 먹고……
아빠가 다니시던 회사에 낚시 동우회가 있었다. 낚시 동우회에서는 정기적으로 전국 낚시터를 방문했고 일 년에 두어 번 TV 같은 큰 상품을 주는 대회도 열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큰 낚…

새로운 리듬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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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가까운 곳에 있는 피트니스클럽은 자주 가고 싶은 곳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해에 가족이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등록해 두었는데 일주일에 두 번 정도를 겨우 간다. 해도 바뀌었으니 일주일에 세 번은 가리라 다짐을 해 본다!
지난 여름 동안에는 식구들이 함께 운동하러 갔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운동기구들을 이용해 땀을 내고, 수영으로 개운하게 마무리하곤 했다. 난 수영도 못 하고 귀에 물이 들어가는 것도 싫어 수영장에는 안 들어가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군살이 덕지덕지 붙은 맨살을 드러내는 수영복을 입는 것이 더 싫었다. 그랬더니 이 기회에 수영을 배우면 되지 않겠느냐, 물속에서 걸으면 운동량이 더 많다더라, 며 꼬셔댔다. 수영장을 이미 다니고 있던 남편과 아이는 나보다 몸이 더 좋은 미국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라며 안심(?)하라고 했다. 남편은 아무도 당신에게 관심 없어, 라는 말로 식구들이 함께 수영하자는 의견에 쐐기를 박았다.
여름방학이 끝나기까지 아이들과 어울릴 겸해서 달갑지 않은 수영장에 들락날락했다. 학기가 시작되자 학교에 다니는 녀석은 피트니스클럽에서 하는 운동을 접었다. 가족이 함께 하는 운동시간이 끝난 것이다. 동시에 나도 수영장 가기를 그만 두었다. 내가 잘 할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는 걷기운동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보통 트레드밀을 이용하여 운동할 때 뛰는 사람은 흔하게 본다. 내가 운동하는 곳에서도 나처럼 전혀 뛰지 않고 걷기만 하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내 몸 상태에 맞게 걷는 운동을 선택했지만 트레드밀에 올라선 사람마다 달려가면, 내가 둔해 보이려나, 운동할 줄 모른다고 여기려나 잡생각들이 발걸음을 지치게 하기도 했다. 이럴 땐 아무도 당신에게 관심 없어, 라는 남편의 말이 그런대로 쓸모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걷는 운동만 하는 사람이 점점 눈에 띈다. 운동하는 곳이 익숙해져서 전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상황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트레드밀에 올라가 활기차고 즐겁게 진행되는 아침 뉴스를 볼 수 있도록 TV 채널을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