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설거지 짝꿍




우리 교회 주일 점심 식사는 늘 푸짐하다. 반찬이 항상 열 가지가 넘는다. 와우! 후식도 떡과 빵이 늘 있다. 교인들이 각자 알아서 해 온 음식들이다. 대부분 한국 사람 입맛에 맞는 음식들이다. 각자 집에서 늘 해 먹던 음식이 아닌 다양한 것들을 먹는 즐거움이 있다. 다문화 가정의 미국 교인들도 한국 음식을 잘 드신다. 미국 남편과 사시는 교인들은 집에서 한국 음식을 요리할 기회가 아무래도 적다 보니, 그들 또한 주일 점심 식사에 대한 기대가 있는 듯하다. 예배를 드리며 영적인 갈망을 채우는 것만큼 음식에 대한 욕망을 맘껏 채우는 시간이다.

음식은 정해진 순서 없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사람이 알아서 준비하고,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는 당번을 정하여 돌아가면서 한다. 두 사람이 한 조다. 젊은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연세 드신 교인들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설거지에 동참하고 계신다.

나와도 한 조를 이룬 사람이 있었다. 그분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함께 설거지 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도 다른 교회로 가버리는 바람에 당번인 주일에 혼자 설거지를 했다. 물론 정말 혼자 한 것은 아니다. 언제나 다른 집사님들이 도와주셨다.

그런데 나에게 다시 설거지 짝꿍이 생겼다. 우리 교회에 나오신 지 얼마 안 된 분이다. 어느 집사님이 내 설거지 짝이 없는 걸 아시고 그분께 설거지를 권유하셨나 보다. 그 분은 흔쾌히 내 설거지 짝꿍이 되어 주셨다. 나도 좋아서 그분께 다가가 저와 설거지 같이 하시는 거예요!” 했다. 그분은 그래유~” 하면서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요청하셨다. 설거지 하자는데 뭘 이렇게 기뻐하시나 싶었다. 그분은 언제가 당번인지를 물어오셨다. 나는 11월 마지막 주쯤 될 거라고 알려드렸다. 주일에도 한 주 건너마다 직장에 나가셔야 하기 때문에 미리 계획을 짜두셔야 했다. 그 뒤에도 설거지하는 날짜를 계속 확인하셨다.

설거지 당번인 주일. “설거지 할까요?” 했더니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채 또 그래유하셨다. 마음이 넉넉해 보이던 첫인상 그대로였다. 갈아 입을 옷과 앞치마까지 준비해 오셨다. 그릇을 세제로 깨끗하게 닦아서 헹구고, 종이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그릇 주인이 찾아갈 수 있도록 죽 늘어놓았다. 처음이라 뭘 해야 될 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도 손은 계속 움직이셨다. 짝꿍이 있으니 얘기도 나누고, 일도 하는 것 같지 않게 빨리 끝난 것 같았다.

그분과 짧은 시간 동안 설거지를 같이 하면서 마음이 흥분되었다. 설거지는 누가 보아도 궂은 일인데 기꺼이 즐겁게 일하는 그 마음이 내게도 전하여지는 듯했다. 교회 안에 특별히 친한 사람도 없지만 교인들도 목사 아내와 조금이라도 가까운 티를 내지 않으려 한다. 그들에겐 교인들끼리의 관계가 우선인 것이다. 한 지역에서 평생을 같이 부대끼며 살아야 하기에 도드라지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을 자주 느끼곤 한다. 그런데 짝꿍에게서는 그런 마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설거지를 마치고 짝꿍은 흰 설탕도 여러 봉지 나누어 주셨다. 사실 그 설탕은 거의 매주 떡을 해 오시는 집사님에게 드리려고 가져오신 것이다. 그런데 그 집사님이 설탕을 쓰지 않으신다고 하여 나에게 흰 설탕을 먹냐고 물어오셨다. 나도 흰 설탕을 먹지는 않지만 효소 담글 때 쓰기는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나중에 효소 담그는 방법을 자기에게도 알려 달라며 자동차에서 설탕 몇 봉지를 꺼내 주셨다. 거저 받는 설탕 무게만큼이나 설거지하면서 느끼던 설렘도 더해졌다.  

꽤 무거운 설탕 봉지들을 끌어 앉고 내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설탕을 땅 위에 내려놓고 트렁크를 열어 문을 높이 올렸다. 허리를 굽혀 설탕을 들어올리는데 머리카락이 앞으로 흘러내려 시야를 가렸다. 두 손은 설탕을 들어올리느라 머리카락을 뒤로 넘길 손이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설탕을 들어올림과 동시에 트렁크 안으로 밀어 넣는데, 으악! 속으로 비명을 삼켰다. 트렁크 문이 스르르 반쯤 내려와 있었나 보다. 눈과 눈 사이에 있는 높지도 않은 콧등을 트렁크 문 모서리에 힘차게 들이댄 것이다.

아무도 주차장에 없길 바라며 뒤로 돌아섰는데 짝꿍이 그대로 서서 지켜보고 계셨다. “괜찮아요?” 물어보시길래 하며 멋쩍게 콧등을 쓸어 내렸다. , 만지지 말 걸…… 가로로 움푹 패인 것이 손을 댈 수 없게 아팠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짝꿍과 헤어졌다.

설거지하면서 그리고 설탕을 받으면서 설레었던 마음이 한 순간에 가라앉았다. 콧등이 욱신거릴 때마다 교인들을 대하는 평정을 잃지 말며 거저 받는 것 너무 좋아하지 말라는 신호 같았다. 새로 온 교인과 함께 설거지하며 설렌 마음을 차분히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더욱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길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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