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게 하는 힘



이민 오는 날.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2014 추수감사주일에.


내가 이민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 가서 사는 이민이라는 말은 그저 신문과 뉴스에나 나오는 낱말에 불과했다. 그러니 이민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이민 생활이 어떠한 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살림살이를 싸 가지고 미국에 들어오면서도 아예 살러 오는 것인지 살다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남편이 일할 곳이 미국으로 정해졌으니 늘 그랬던 것처럼 나머지 가족은 그저 따라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들 교육하기에 좋고 장애인에 대한 복지가 잘 되어 있다는 지극히 막연한 인식이 미국행을 결정하는데 보탬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뭘 모르니 용감하게 미국 땅으로 날아온 것이다.

비행기 값을 아끼려고 미국 국적 비행기를 한 번 갈아 타고 애틀랜타에 있는 하츠필드 잭슨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는 지고 어두웠다. 새로운 곳에 대한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피곤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하얀색 형광등과는 달리 공항에 수없이 밝혀져 있는 노란색 등은 이국적이면서도 그 긴장감 마저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다른 나라에서 살려고 찾아온 이방인답게 부피가 큰 이민 가방이 세 개, 크고 작은 여행용 가방도 세 개쯤이었다. 한국에서 부친 이삿짐은 한 달이 걸린다 하니 미국에 도착해서 한 달 동안 사는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압축팩에 담긴 이불과 베개, 옷가지들이 대부분이었다. 성경을 포함하여 몇 권의 책과 노트북도 있었다. 살게 될 곳에 큰 한인 마트가 여럿 있는 줄 몰랐으니 라면도 몇 개 챙겨 왔다.

저녁 때라도 공항은 분주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 가족을 마중 나온 두 분을 만나게 되었다. 앞으로 살게 될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타고 온 15인승 교회 차는 우리 가족과 보따리를 싣고도 넉넉했다. 우리가 다니게 될 교회 가까이 가서는 한국 음식점에서 따뜻한 설렁탕으로 저녁도 먹여 주었다. 두 분 중 한 분 목사님은 지금도 연락이 되는데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씨는 변함이 없다.

애틀랜타에 도착한 날이 수요일이라 저녁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마친 후 생각지 못한 남편의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기 전 그는 봉투를 하나 건네주었다. 300달러가 들어 있었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받은 선물이었다.

어떤 집을 얻어야 할지 집을 구하기 전까지 어디서 머물러야 할지 이 또한 몰랐다. 남편과 동료가 될 한 부목사님은 닷새 정도 머물 수 있는 집으로 우리 가족을 안내했다. 장로님 댁이었다. 장로님의 따님이 다른 주에서 결혼을 하게 되어 며칠 집을 비우시게 되었다. 그 여러 날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리 가족에게 집을 통째로 내어주신 것이다. 주인이 없으니 조심스러우면서도 호텔과는 달리 집이 주는 편안함을 누릴 수 있었다.

애틀랜타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날, 우리 부부는 습관처럼 새벽기도회에 갔다. 자동차가 있을 리 없으니 어느 집사님께 부탁을 드린 것이다. 집사님은 새벽에 학교에 보내야 할 자녀도 있었고 집사님 집에서 우리가 머물던 장로님 댁까지 꽤 먼 거리인데, 자신의 사정을 전혀 내색하지 않으시고 운전을 해주셨다. 미국에 살아보니 내가 새벽(!)기도 가겠다고 다른 사람에게 운전을 부탁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때는 뭘 몰라도 정말 한참을 몰랐다. 집사님은 아이들 학군을 고려하여 살기에 편안하고 좋은 위치에 있는 집을 구하는데도 동행해 주셨다.

닷새 안에 월세 집을 정했다. 담임 목사님께서는 새로 온 부목사네 가정에 아무 물건도 없으니 있는 것들을 나눠 쓰시라, 광고해 주셨다. 부엌에서 쓰는 그릇을 나눠주신 분들, 식탁이 없어 신문지를 깔고 밥을 먹고 있었는데 어찌 알았는지 한국 교자상과 숟가락을 사다 주신 분, 그 밖에 가재도구들도 많이 나눠주셔서 미국 생활의 모양을 잡아 갔다.

그리고 미국에서 3, 5년 살다 보면 영어를 공부하겠다는 마음이 옅어진다며 당장 영어 공부를 시작하라고 조언해주는 집사님이 있었다. 집사님은 적극적으로 지역 안에 있는 학교나 교회에서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곳들을 찾아 그 목록을 전해주었다. 미국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인 지역 도서관을 이용하는 방법도 도서관에 함께 가서 직접 알려주었다. 미국 장애인 단체와 연결해 주기도 했다. 여름성경학교나 한국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집사님은 열정과 리더십이 뛰어나고,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그 집사님처럼 이중언어나 일을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도록 날 늘 자극하였다.

11월은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때이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에게 감사하고. 이 감사의 계절이 되면 처음 미국 생활에 도움을 주었던 분들이 늘 떠오르곤 한다. 아무 조건 없이 같은 신앙공동체의 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을 나눠주신 분들이다. 정말 고맙다. 마음에 고이 간직하련다. 이민 생활 첫 부분에 만난 잊지 못할 고마운 이야기들을 짧은 글로나마 갈무리하는 모양새를 보니 내가 이민자라는 정체성이 이제야 슬슬 생기기 시작하나 보다.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하다. 고백된 감사와 미처 깨닫지 못하여 고백되지 않은 감사가 있을 뿐이다. 감사는 과거를 의미 있게 하고 미래를 소망으로 채우며 현재를 살게 하는 힘이다. 이제는 올 한 해, 애틀랜타가 아닌 이곳에서 만난 고마움들을 되새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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