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4/2014

살아가게 하는 힘



이민 오는 날.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2014 추수감사주일에.


내가 이민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 가서 사는 이민이라는 말은 그저 신문과 뉴스에나 나오는 낱말에 불과했다. 그러니 이민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이민 생활이 어떠한 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살림살이를 싸 가지고 미국에 들어오면서도 아예 살러 오는 것인지 살다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남편이 일할 곳이 미국으로 정해졌으니 늘 그랬던 것처럼 나머지 가족은 그저 따라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들 교육하기에 좋고 장애인에 대한 복지가 잘 되어 있다는 지극히 막연한 인식이 미국행을 결정하는데 보탬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뭘 모르니 용감하게 미국 땅으로 날아온 것이다.

비행기 값을 아끼려고 미국 국적 비행기를 한 번 갈아 타고 애틀랜타에 있는 하츠필드 잭슨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는 지고 어두웠다. 새로운 곳에 대한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피곤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하얀색 형광등과는 달리 공항에 수없이 밝혀져 있는 노란색 등은 이국적이면서도 그 긴장감 마저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다른 나라에서 살려고 찾아온 이방인답게 부피가 큰 이민 가방이 세 개, 크고 작은 여행용 가방도 세 개쯤이었다. 한국에서 부친 이삿짐은 한 달이 걸린다 하니 미국에 도착해서 한 달 동안 사는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압축팩에 담긴 이불과 베개, 옷가지들이 대부분이었다. 성경을 포함하여 몇 권의 책과 노트북도 있었다. 살게 될 곳에 큰 한인 마트가 여럿 있는 줄 몰랐으니 라면도 몇 개 챙겨 왔다.

저녁 때라도 공항은 분주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 가족을 마중 나온 두 분을 만나게 되었다. 앞으로 살게 될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타고 온 15인승 교회 차는 우리 가족과 보따리를 싣고도 넉넉했다. 우리가 다니게 될 교회 가까이 가서는 한국 음식점에서 따뜻한 설렁탕으로 저녁도 먹여 주었다. 두 분 중 한 분 목사님은 지금도 연락이 되는데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씨는 변함이 없다.

애틀랜타에 도착한 날이 수요일이라 저녁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마친 후 생각지 못한 남편의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기 전 그는 봉투를 하나 건네주었다. 300달러가 들어 있었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받은 선물이었다.

어떤 집을 얻어야 할지 집을 구하기 전까지 어디서 머물러야 할지 이 또한 몰랐다. 남편과 동료가 될 한 부목사님은 닷새 정도 머물 수 있는 집으로 우리 가족을 안내했다. 장로님 댁이었다. 장로님의 따님이 다른 주에서 결혼을 하게 되어 며칠 집을 비우시게 되었다. 그 여러 날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리 가족에게 집을 통째로 내어주신 것이다. 주인이 없으니 조심스러우면서도 호텔과는 달리 집이 주는 편안함을 누릴 수 있었다.

애틀랜타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날, 우리 부부는 습관처럼 새벽기도회에 갔다. 자동차가 있을 리 없으니 어느 집사님께 부탁을 드린 것이다. 집사님은 새벽에 학교에 보내야 할 자녀도 있었고 집사님 집에서 우리가 머물던 장로님 댁까지 꽤 먼 거리인데, 자신의 사정을 전혀 내색하지 않으시고 운전을 해주셨다. 미국에 살아보니 내가 새벽(!)기도 가겠다고 다른 사람에게 운전을 부탁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때는 뭘 몰라도 정말 한참을 몰랐다. 집사님은 아이들 학군을 고려하여 살기에 편안하고 좋은 위치에 있는 집을 구하는데도 동행해 주셨다.

닷새 안에 월세 집을 정했다. 담임 목사님께서는 새로 온 부목사네 가정에 아무 물건도 없으니 있는 것들을 나눠 쓰시라, 광고해 주셨다. 부엌에서 쓰는 그릇을 나눠주신 분들, 식탁이 없어 신문지를 깔고 밥을 먹고 있었는데 어찌 알았는지 한국 교자상과 숟가락을 사다 주신 분, 그 밖에 가재도구들도 많이 나눠주셔서 미국 생활의 모양을 잡아 갔다.

그리고 미국에서 3, 5년 살다 보면 영어를 공부하겠다는 마음이 옅어진다며 당장 영어 공부를 시작하라고 조언해주는 집사님이 있었다. 집사님은 적극적으로 지역 안에 있는 학교나 교회에서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곳들을 찾아 그 목록을 전해주었다. 미국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인 지역 도서관을 이용하는 방법도 도서관에 함께 가서 직접 알려주었다. 미국 장애인 단체와 연결해 주기도 했다. 여름성경학교나 한국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집사님은 열정과 리더십이 뛰어나고,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그 집사님처럼 이중언어나 일을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도록 날 늘 자극하였다.

11월은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때이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에게 감사하고. 이 감사의 계절이 되면 처음 미국 생활에 도움을 주었던 분들이 늘 떠오르곤 한다. 아무 조건 없이 같은 신앙공동체의 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을 나눠주신 분들이다. 정말 고맙다. 마음에 고이 간직하련다. 이민 생활 첫 부분에 만난 잊지 못할 고마운 이야기들을 짧은 글로나마 갈무리하는 모양새를 보니 내가 이민자라는 정체성이 이제야 슬슬 생기기 시작하나 보다.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하다. 고백된 감사와 미처 깨닫지 못하여 고백되지 않은 감사가 있을 뿐이다. 감사는 과거를 의미 있게 하고 미래를 소망으로 채우며 현재를 살게 하는 힘이다. 이제는 올 한 해, 애틀랜타가 아닌 이곳에서 만난 고마움들을 되새겨보려 한다.

11/10/2014

숲길을 걸을 때




슬슬 걷기에 좋은 주립공원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가깝다. 숲 속과 호수 둘레를 따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도록 여러 갈래 길이 나 있다. 숲에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많다. 호수에는 몇 마리 오리가 떠다니거나 휴일이면 공원에서 빌려주는 노 젓는 배를 가끔 볼 수 있다. 그밖에 철마다 바뀌는 화려한 꽃이나 신나는 놀이 기구나 기암괴석 같은 것은 전혀 없는 조용하고 수수한 공원이다.

운동 삼아 공원을 자주 가던 어느 해 봄이 시작될 무렵의 일이다. 남편과 나는 늘 다니던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숲에 가면 넓은 공간이 주는 자유로움 때문인지 집 안에서는 꺼내지 않았던 얘기들이 술술 풀려 나오곤 한다. 그날도 새로운 얘깃거리가 시작되려는 때였다. 남편이 갑자기 한 발을 공중에 들고는 으아아~~” 하는 것이었다. 처음 들어 보는 음색의 그 짧고 낮은 비명 소리는 두려움을 짙게 담고 있었다. 겁이 많은 나는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고 남편의 팔에 매달리며 왜 그래?” 다급하게 물었다.

잘 놀라는 아내를 배려한 것인지 잠깐 숨을 돌린 다음 이라고 대답했다. 뱀이라는 말에 남편 팔에 올라서기라도 할 것처럼 있는 힘껏 끌어 안고는 어디?” 라고 말하면서 눈은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남편은 말없이 숲 쪽을 가리켰다. 제법 굵고 길며 까만 뱀이 낙엽 위를 마치 헤엄을 치듯이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빠르게 달아나고 있었다. 뱀이 그렇게 날렵한지 처음 알았다. 그것도 우리 때문에 놀란 모양이었다.

또 한 번은 다른 도시에 사는 지인을 이 공원에서 만났다. 걷기에 좋은 곳이라고 소개했더니 만남 장소를 공원으로 정한 것이다. 산책로의 중간쯤에 이르러 화장실에 들렸다가 나머지 남은 길을 가기로 했다. 둘 다 볼일을 보고 내가 먼저 화장실 건물을 나섰다.

화장실 입구 쪽 희고 넓은 벽에 검고 길쭉한 무엇이 움직이고 있었다. ! 하고는 얼른 그것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졌다. 지난번 일을 사람들과 나누던 중 이곳에서는 까만색 뱀은 독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지인은 아직 화장실 안에 있었고 의지할 아무 것도 없으니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곧이어 화장실을 빠져 나오는 지인에게 저기, 하고 가르쳐주었다. 지인은 그쪽을 돌아보고는 오리가 날개를 푸드덕 대듯이 양손을 마구 저으며 두 발을 땅에 대지 않으려는 듯 겅중겅중 달려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성격이 엄청 차분하고 말소리도 엄청 작은 사람이 그런 모양으로 달아나니 웃음이 났다.

이번엔 개를 만난 일이다. 공원에 있는 표지판들 가운데 개를 묶어서 데리고 다녀야만 한다는 안내문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호수 둘레 길처럼 한 눈에 들어오는 길에서는 이 규칙이 잘 지켜진다. 그런데 인적이 드문 숲길에서는 열에 일곱, 여덟은 개들이 묶여 있지 않다.

개를 키우는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는 숲길에서는 개들을 자유롭게 다니도록 풀어주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숲길을 걸을 때가 있으며 그러다 그런 개들을 만나기도 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나마 훈련이 잘 된 개는 멈추라는 지시를 잘 따르고, 더 친절한 주인은 개를 그 순간에 줄로 묶어 좁은 숲 길 바깥으로 물러나서 우리가 지나가도록 기다린다. 이런 주인과 개를 만나면 그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만 고마운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는 숲 속에서 낙엽이 바스락대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들개처럼 생긴 누런 세 마리 개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그 가운데 한 마리의 이마에는 꼭지점이 네 개인 별 모양 문신 같은 것이 있었다. 이 개들은 무슨 먹이를 포위한 짐승처럼 남편과 나를 세 면에서 둘러싸고 이빨을 들어내며 짖어댔다. 정신이 황망하고 어이가 없었다. 주변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벗어날 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개들은 계속 의기양양하게 짖어대고 난 최대한 개들에게 적의나 두려움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몇 분이 흘렀는지 몰라도 꽤 긴 시간 같았다. 갑자기 남편이 멀리 보이는 주차장(공원 밖 어느 축구장의 주차장이 보이는 곳이었다)을 향해 손으로 가리키면서 고우(Go)!” 라고 외쳤다. 그러자 개들은 지들이 언제 짖었냐는 듯이 깨갱거리며 눈에 힘을 뺐다. 그러더니 주차장 쪽으로 우리에게 왔던 것처럼 달려갔다.

개를 방치한 주인에게 화가 났다. 그 못된 주인과 개들 때문에 매우 언짢았지만 그날 걷기로 한 길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남은 숲길을 걸으며 여태껏 살아오면서 해보지 못한 욕을 그 들과 주인을 생각하며 몽땅 몰아 했다.

숲을 걸을 때 이 밖에도 우리가 호흡하며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좋아하는 쬐끔한 날 것들이나 곤충들이 귀찮게 하기도 한다. 송화 가루가 날리는 철에는 운동화나 바지가 노란 가루로 범벅이 되기도 한다. 꽃가루 알러지가 있는 사람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갑자기 비를 만나 길이 질척해지면 거기에 빠지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피해서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숲은 공기 중에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기도 하고 피톤치드(식물이 해충, 곰팡이에 저항하려고 분비하는 물질)를 내뿜어, 그것들을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도 이루어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계절에 따라 변하는 숲의 모습을 보며 시간의 흐름과 나와 우리의 삶따위를 생각하도록 이끌어주기도 한다. 반면 숲에서는 뱀이나 정신 없는 개들과 그 주인처럼 두렵고 화나는 일을 만나기도 한다. 그래도 숲은 여전히 사람에게 유익하다. 숲길을 걷고 또 걸으며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만나게 될 터이다.

11/03/2014

솔잎을 긁어 모으며





소나무에서 떨어진 잎들이 뒤뜰에 온통 흩어져 있다. 소나무는 사시사철 초록 잎을 달고만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 집 소나무는 가을이면 누런색의 잎을 떨구어 낸다.

담장 가까이에 엄청 키가 큰 소나무 세 그루가 있다. 어림 잡아도 15미터(49피트)가 넘을 것 같다. 나무의 키도 크려니와 나무 껍질을 보면 두툼하고 쩍쩍 갈라진 것이 나이가 꽤 들어 보인다. 나무의 아래 절반에는 가지가 없고 위쪽에는 가지가 흐느적 흐느적 달려 있다. 또 나무 기둥에서 뻗어 나온 가지를 보면 가지 끝으로 갈수록 초록 솔잎이 손바닥을 힘껏 편 것처럼 달려 있다.

봄이 되면 가지 끝에는 노란색 송화도 피고 여린 연두색 솔잎도 나온다. 그렇게 새로 나온 잎들은 더우나 추우나 오랫동안 초록빛을 간직한다. 그러니까 가지 끝으로 갈수록 세상에 나온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잎들이다. 낙엽은 항상 가지 끝에서 떨어지는 줄로만 알았는데 집 가까이에 사는 소나무 덕에 그렇지 않은 나무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을이 되면 가지 제일 안쪽에 있는 나이든 솔잎들이 누런색 옷으로 갈아 입고 나무 아래 땅으로 내려 앉는다. 누런 솔잎은 나무에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그 안에 생명은 없으나 여전히 솔잎이라는 이름으로 땅에서도 오랫동안 머무른다.

솔잎을 모으고, 나르는 아이들. 어느새 일 년 전 그림이 되었네요.

지난해, 소나무에서 떨어진 솔잎이 뒤뜰에 가득하길래 아이들에게 솔잎을 긁어 모으라고 시켰다. 모아진 솔잎은 소나무 아래에 다시 뿌려줄 생각이었다. 둘째 녀석은 일 시킨다고 구시렁거리면서도 꼼꼼하게 모아놓은 솔잎을 보니 꽤 많은 양이었다. 일부는 뒤뜰 쪽 집 벽 아래를 덮는데 쓰고도 남을 것 같았다. 집 둘레의 세 벽면은 동네 관리하는 회사에서 이미 새로 갈아놓은 상태였다.

사람이나 자동차가 드나드는 길을 빼고는 집을 삥 돌아가면서 7센티미터(3인치) 이상 되는 두께로 솔잎을 깔아 놓는다. 검고 탁한 색으로 변한 묵은 솔잎 위에 누렇지만 싱싱한 솔잎이 얹어진다. 집 앞쪽 심겨진 나무들 아래에도 솔잎이 풍성하게 깔려 있다. 집 양 옆으로는 나무가 있든 없든 솔잎이 가지런히 깔려 있는데, 여기까지는 관리 회사에서 해마다 두 번씩 솔잎을 덮어준다.

뒤뜰 쪽은 개인이 알아서 관리한다. 솔잎이 필요하면 가게에 가서 사다가 깔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 집에 살고 있는 키 큰 소나무가 솔잎을 넉넉하게 내어주는 바람에 솔잎을 사오는 비용과 수고를 덜어주었다. 솔잎은 두껍고 길수록 좋다고 한다. 가게에서 파는 보통 솔잎은 23센티미터(9인치) 정도이고 아주 좋은 솔잎은 35센티미터(14인치) 이상이다. 와우! 우리 집 솔잎의 길이를 재보니 어느 솔잎이나 고르게 28센티미터(11인치) 쯤 되었다. 꽤 괜찮은 솔잎인가 보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집 둘레에 솔잎이 깔려 있는 모습은 아늑해 보이기도 하고 자연과 더 친밀한 느낌을 주어서 좋다. 게다가 큰 비가 내려도 흙이 쓸려 내려가지 않는다. 꽃밭과 나무 주변을 덮고 있는 솔잎은 장식하기 위한 목적도 있고 기온 변화로부터 식물과 흙을 보호하기도 한다. 솔잎을 두껍게 깔수록 그 안은 빛이 차단되어 잡초가 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집을 갉아먹는 흰개미는 향 때문인지 솔잎을 싫어한다고 한다. 그러니 흰개미의 침입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을 것 같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떨어진 솔잎을 모아 집 뒤쪽에 깔아주었다. 이번엔 남편이 수고를 했고 큰 아이가 나르는 것을 조금 도왔다.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솔잎은 다시 모아서 소나무들 아래로 보내려고 한다.

무뚝뚝하게만 보이는 소나무가 우리 집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을 이제야 해본다. 생명을 다한 솔잎마저도 쓸모가 있다니 참 고마운 나무다. 오래 전에 떨어진 솔잎은 썩어서 흙에게 좋은 영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거기서 다시 식물들이 건강하게 자라날 것이고. 소나무가 자연이 순환하는데 한결 같이 기여하는 모습이 부럽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