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14의 게시물 표시

뜻밖의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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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주간 흐리고 비 오는 날이 많았다. 친절하게도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이곳은 따뜻한 지역이라 요즘도 낮 평균 기온이 27도를 넘나든다. 그래도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하여, 싸늘한 공기 어딘가에 이른 벼를 베고 난 들판에서 맡을 수 있는 흙과 지푸라기 냄새가 묻어있지 않을까 찾아 본다. 가을이 되면 방향제가 들어 있는 제품들 가운데 주황색 둥근 호박과 시나몬(계피) 향이 섞인 것들이 많이 나온다. 미국에 오래 살다 보면 호박과 시나몬 향을 가을과 짝지어 추억하게 될 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올해 가을은 갑자기 열매가 한 번에 대여섯 개 달리는 호박이 주는 기쁨으로 시작했다. 호박 줄기들이 가을 첫머리에 내리는 비를 자주 맞더니 연두 빛의 애호박들을 마구 내놓았다. 여름 동안은 물을 매일 주었어도 호박에게는 넉넉하지 않았는지 가끔 하나씩 열매를 맺었었다. 그런데 이번 비에 호박들이 여기저기 쑥쑥 자라 재미를 보았다.




올 봄 남편을 귀찮게 졸라서 담 아래에 손바닥만하게 만든 텃밭이 있다. 땅이 모래가 엄청 많은 흙이라 가게에서 파는 흙과 퇴비를 사다가 섞어주었다.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는데 도움이 될만한 높이로 이랑을 만들었다. 쑥갓 씨도 뿌려 보고, 시금치와 붉은 상추 같은 잎채소도 심었다. 고추는 모종을 내어 심었다. 호박은 구덩이를 파서 거름과 흙을 넉넉히 넣고 여러 날 묵혔다가 거기에 씨를 뿌렸다.
이곳 저곳에서 주워들은 정보로 텃밭의 흉내를 내 본 것이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단순한 생활에 흙이랑 풀 가지고 장난이나 쳐볼 수 있는 코딱지만한 놀이터라 여겼다. 혼자 처음 가꿔보는 텃밭이니 식물들이 잘 자라지 않거나 해도 어쩔 수 없는 실험용 놀이터라 생각하고 가볍게 시작했다.
역시…… 식물들이 초보자를 알아 보는 것 같다. 쑥갓은 싹이 몇 개 나오더니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시금치와 붉은 색 미국 상추는 모종을 사다가 심은 것이다. 그들은 3개월 정도 조그만 잎사귀만 보여주다가 없어졌다. 가지는 두 개의 열…

날마다 부르는 노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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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형, 소리 좀 줄이라고 해!”
둘째 아이, 윤이가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불평하며 소리치는 말이었다. 윤이가 이렇게 소리칠 즈음이면 큰 아이, 산이는 노래에 흠뻑 빠져 도취되어 있는 상태일 것이다. 때로는 얼굴은 벌개가지고 눈물, 콧물 흘리며 울부짖고 있기도 하다.
산이는 CD를 50 여장(올 여름 한국 방문 때 만난 목사님들께서 챙겨주신 8장의 CD가 보태어졌다) 가지고 있다. 대부분이 CCM(Christian Contemporary Music)이고 어릴 적 참여했던 여름성경학교 찬양모음이나 청소년기에 참여했던 여름캠프 찬양모음을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집을 방문했던 친구가 TV 음악 프로그램이었던 “나는 가수다” 첫 번째 시즌에서 10곡을 뽑아 녹음해서 주고 간CD가 한 장 있다. 요즘 즐겨 부르는 다른 또 하나의 음악이 있는데 아이패드에 깔려 있는 새찬송가이다. 그 새찬송가에는 반주도 들어 있고 찬송 부르는 목소리도 들어 있어서 산이가 많이 따라 부르고 있다.
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밤에 잠들기 전까지 많은 시간 노래를 불렀다. 모든 학교를 다 마친 요즘은 노래 부르는 시간이 더 늘어나서, 깨어 있는 시간 가운데 삼분의 일은 산이의 노래 소리로 집안이 가득하다. 레고를 조립하면서도, 컴퓨터로 한글 타이핑 연습을 하면서도, 그리고 밑그림이 복잡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을 색칠하면서도 노래를 부른다. 온전히 노래 부르는 것에만 집중할 때는 항상 두 손에 드럼 스틱이 들려져 있다. 드럼 치는 것을 좋아해 앞에 없는 드럼을 상상하며 치는 것이다. 때로는 밥 먹으러 식탁에 와서도 노래가 끊어지지 않아 “밥 다 먹고 해”, 라는 말을 한두 번 듣고 나서야 멈춘다.
이렇게 오랜 시간 반복해서 노래를 듣다 보니 가사를 잘 외우고 있다. 나는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노래도 산이는 줄줄이 불러댄다. 산이는 기억력이 좋은 것 같다. 아주 어릴 때도 반복해서 불러준 노래와 율동을 잘 따라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도 학년별로 …

정직하고 친절한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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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끔 이용하는 백화점 콜스(KOHL’S)에서 수표(Check) 한 장을 받았다. 나에게 발행된 것이었다. 수표에 적힌 금액은 25달러였다. 수표 아래 쪽에 있는 메모 공간에는 신용카드 잔액을 환불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지난 봄에 콜스에서 뭔가(이 몹쓸 기억력은 올 봄의 사소한 일들을 벌써 거의 잊었다)를 사고 그 백화점에서 발행한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다. 사용한 금액은 그 다음 달에 어김없이 청구되었다. 내가 사용하는 신용카드가 몇 장 되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지불 기일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마감일 보다 몇 일 먼저 결제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하루 이틀 미루다가 콜스 신용카드 마감일 이틀을 남겨두고 온라인 뱅킹으로 결제를 시도했다. 보통은 이 결제가 당일이나 그 다음 날이면 가능하다. 여유롭게 들어간 온라인 뱅킹에서는 이틀이 지나 결제가 가능하다고 표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불 마감일에서 하루 늦게 결제가 되는 것이었다. 우편으로 내 수표를 보낸다 해도 마감일을 넘기기는 마찬가지여서 어쩔 수 없이 온라인 뱅킹의 결제를 허락했다.
그리고 또 한 달 뒤, 그 백화점은 마감일을 넘긴 벌금으로 25달러를 나에게 청구했다. 마감일을 하루 넘긴 잘못은 분명 나에게 있었지만 25달러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고 너무 아까웠다. 난 그 벌금을 결제하기 전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고객 센터에 전화를 했다. 상담원에게 결제가 왜 늦게 되었는지 설명을 한 뒤에, 그 동안 한 번도 마감일을 넘기지 않고 신용을 잘 지켜온 고객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상담원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다시 돌아와, 일단 25달러를 내면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뜻밖에도 너그러이 벌금을 면제해주어 기분이 좋았다.
환불을 어떻게 해 주겠다는 것인지는 말이 없었기에 잊고 지냈다. 한 달이 다시 지나 청구서가 날아왔는데 신용카드 잔액에 25달러를 넣어 놓은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결국은 자기네 신용카드를 다시 사용하도록 해놓았지만 벌…

한국학교에서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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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이민자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학교가 개강을 했다. 지난 학기에 임시 교사로 몇 주 참여한 것이 기회가 되어 이번 학기에 초등학교 3, 4 학년이 된 아이들이 있는 한 반을 맡게 되었다. 새로 만난 우리 반 아이들과 부모님들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특별히 높아 보였다.
학교가 개강하는 날 부모님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 우리 반 학생들 집집마다 전화를 돌렸다. 그러던 중 손주들을 한국학교에 보낸 할머니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큰 아이는 한글을 읽는데 똑같은 기간을 배운 동생은 왜 아직도 읽지를 못하냐며 호통을 치셨다. 나는 할머니의 큰 손주를 맡게 되어 전화 드린 것이라 동생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었다. 나와의 통화가 시원치 않으셨는지 오리엔테이션에 오셔서 교장을 직접 만나 봐야겠다고 하셨다.
아이들의 부모님은 영어권이어서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쉽지 않은 환경인데, 오히려 할머니께서는 손주들에게 한국어를 배우게 하는데 아주 열정적이신 듯했다. 이분은 선생님들 사이에 무서운 할머니로 불린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학교가 시작하는 날 진짜로 찾아오셨다. 나는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맡아서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할머니는 작은 아이를 한국어 수준이 높은 반에 넣기를 원하셨고, 교장 선생님은 결국 큰 아이와 동생을 같은 반으로 배정하셨다. 둘 다 나의 반이 된 것이다. 한 학기 혹은 한 학년이 지나 동생이 글을 읽지 못하면 난 할머니께 혼나게 생겼다.
우리 반의 또 다른 아이는 3 학년인데 세 살부터 한국학교를 꾸준히 다니고 있단다. 또 다른 두 아이의 아버지들은 이사회에 참여하면서 학교를 열심히 돕고 계신다. 한 아이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은 잘 하지만 잊지 않고 더 잘 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러 온다.
학교가 끝나고 아이를 데리러 온 어느 아버님은 숙제가 있느냐고 물어보셨다. 학기 시작하는 첫날에 말이다. 다른 지역 한국학교에서도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