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9/2014

뜻밖의 은총






지난 두 주간 흐리고 비 오는 날이 많았다. 친절하게도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이곳은 따뜻한 지역이라 요즘도 낮 평균 기온이 27도를 넘나든다. 그래도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하여, 싸늘한 공기 어딘가에 이른 벼를 베고 난 들판에서 맡을 수 있는 흙과 지푸라기 냄새가 묻어있지 않을까 찾아 본다. 가을이 되면 방향제가 들어 있는 제품들 가운데 주황색 둥근 호박과 시나몬(계피) 향이 섞인 것들이 많이 나온다. 미국에 오래 살다 보면 호박과 시나몬 향을 가을과 짝지어 추억하게 될 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올해 가을은 갑자기 열매가 한 번에 대여섯 개 달리는 호박이 주는 기쁨으로 시작했다. 호박 줄기들이 가을 첫머리에 내리는 비를 자주 맞더니 연두 빛의 애호박들을 마구 내놓았다. 여름 동안은 물을 매일 주었어도 호박에게는 넉넉하지 않았는지 가끔 하나씩 열매를 맺었었다. 그런데 이번 비에 호박들이 여기저기 쑥쑥 자라 재미를 보았다.





올 봄 남편을 귀찮게 졸라서 담 아래에 손바닥만하게 만든 텃밭이 있다. 땅이 모래가 엄청 많은 흙이라 가게에서 파는 흙과 퇴비를 사다가 섞어주었다.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는데 도움이 될만한 높이로 이랑을 만들었다. 쑥갓 씨도 뿌려 보고, 시금치와 붉은 상추 같은 잎채소도 심었다. 고추는 모종을 내어 심었다. 호박은 구덩이를 파서 거름과 흙을 넉넉히 넣고 여러 날 묵혔다가 거기에 씨를 뿌렸다.

이곳 저곳에서 주워들은 정보로 텃밭의 흉내를 내 본 것이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단순한 생활에 흙이랑 풀 가지고 장난이나 쳐볼 수 있는 코딱지만한 놀이터라 여겼다. 혼자 처음 가꿔보는 텃밭이니 식물들이 잘 자라지 않거나 해도 어쩔 수 없는 실험용 놀이터라 생각하고 가볍게 시작했다.

역시…… 식물들이 초보자를 알아 보는 것 같다. 쑥갓은 싹이 몇 개 나오더니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시금치와 붉은 색 미국 상추는 모종을 사다가 심은 것이다. 그들은 3개월 정도 조그만 잎사귀만 보여주다가 없어졌다. 가지는 두 개의 열매를 주고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그나마 지금까지 살아 있는 고추나무와 호박 몇 줄기가 텃밭을 처음 시도해본 나를 위로하고 있다. 우리 집 고추는 미국 이민 오셔서 몇 십 년 내내 텃밭을 가꾼 할머니 권사님네서 봤던 고추나무와는 비교도 안 되게 키가 작다. 열매도 권사님네 것은 길쭉하고 통통했는데 우리 것은 모양이 짧거나 구불거린다. 우리 고추나무 모종낼 때 할머니 권사님이 주신 씨로 한 건데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호박도 어설프긴 마찬가지이다. 두 구덩이에 씨를 심었는데 심은 씨의 개수대로 싹이 다 나고 처음부터 하루가 다르게 잎(!)이 잘 자라 재미있었다. 똑같이 구덩이를 만들고 물도 주었는데 한 구덩이에서 나온 줄기는 점점 노랗게 마르다 없어졌다. 그나마 다른 한 구덩이는 잘 살아 잎이 무성하고 호박꽃도 군데군데 피어 있어 멀리서 봐도 풍성해 보인다. 호박 열매가 별로 없어도 말이다.

그렇게 나의 처음 텃밭은 미숙하게 끝나나 보다 했다. 그런데!!! 가을을 알리는 몇 번의 비가 내리는 동안 고추와 호박이 마구 열린 것이다. 고추도 미끈하게 쭉쭉 뻗은 녀석들이 가지마다 가득하고, 호박도 줄기마다 꽃을 피우더니 통통하게 여물어 갔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많은 열매가 맺힌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에 비하면 신통방통하기가 짝이 없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똑같이 물을 주어도 힘 없이 시들어가는 식물들을 볼 때는 안타까웠다. 물 주고 풀 뽑아주며 그저 생명이 붙어있는 식물들 바라보는 것도 즐거웠다. 가끔 어줍잖은 열매를 얻을 때도 기분 좋았다. 식물들이 초짜의 손에 키워지면서도 열매를 내어줄 때는 고맙기까지 했다. 호박 몇 개를 다른 이들과 나눌 때는 쑥스러우면서도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이런 저런 맛에 텃밭을 하나 보다. 나의 아빠는 텃밭을 하는 이유가 열매를 거두어 엄마에게 가져다 주면 어머!” 하며 놀라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손수 가꾸는 수고가 담긴 열매가 주는 기쁨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편 초가을에 문득 찾아온 텃밭의 열매들처럼 기대하지 않았던 기분 좋은 결과들이 주어지는 것은 나의 수고가 아닌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더 이상의 열매가 없을 거라는 엉성하고 허술한 내 생각의 한계 위에 촉촉하게 대지를 적시는 가을비처럼 부드럽게 내려앉는 뜻밖의 은총이다

9/22/2014

날마다 부르는 노래가




엄마! , 소리 좀 줄이라고 해!”

둘째 아이, 윤이가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불평하며 소리치는 말이었다. 윤이가 이렇게 소리칠 즈음이면 큰 아이, 산이는 노래에 흠뻑 빠져 도취되어 있는 상태일 것이다. 때로는 얼굴은 벌개가지고 눈물, 콧물 흘리며 울부짖고 있기도 하다.

산이는 CD50 여장(올 여름 한국 방문 때 만난 목사님들께서 챙겨주신 8장의 CD가 보태어졌다) 가지고 있다. 대부분이 CCM(Christian Contemporary Music)이고 어릴 적 참여했던 여름성경학교 찬양모음이나 청소년기에 참여했던 여름캠프 찬양모음을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집을 방문했던 친구가 TV 음악 프로그램이었던 나는 가수다첫 번째 시즌에서 10곡을 뽑아 녹음해서 주고 간CD가 한 장 있다. 요즘 즐겨 부르는 다른 또 하나의 음악이 있는데 아이패드에 깔려 있는 새찬송가이다. 그 새찬송가에는 반주도 들어 있고 찬송 부르는 목소리도 들어 있어서 산이가 많이 따라 부르고 있다.

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밤에 잠들기 전까지 많은 시간 노래를 불렀다. 모든 학교를 다 마친 요즘은 노래 부르는 시간이 더 늘어나서, 깨어 있는 시간 가운데 삼분의 일은 산이의 노래 소리로 집안이 가득하다. 레고를 조립하면서도, 컴퓨터로 한글 타이핑 연습을 하면서도, 그리고 밑그림이 복잡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을 색칠하면서도 노래를 부른다. 온전히 노래 부르는 것에만 집중할 때는 항상 두 손에 드럼 스틱이 들려져 있다. 드럼 치는 것을 좋아해 앞에 없는 드럼을 상상하며 치는 것이다. 때로는 밥 먹으러 식탁에 와서도 노래가 끊어지지 않아 밥 다 먹고 해”, 라는 말을 한두 번 듣고 나서야 멈춘다.

이렇게 오랜 시간 반복해서 노래를 듣다 보니 가사를 잘 외우고 있다. 나는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노래도 산이는 줄줄이 불러댄다. 산이는 기억력이 좋은 것 같다. 아주 어릴 때도 반복해서 불러준 노래와 율동을 잘 따라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도 학년별로 단체무용을 할 때 특수학급 선생님들은 산이를 꼭 참석시키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단체무용을 훌륭히 해냈다. 그래서 산이를 아는 사람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애틀랜타 밀알선교회에 다닐 때는 장애가 있는 여러 친구들과 함께 수어 찬양을 예쁘게 하기도 했었다. 가사나 무용을 잘 기억하는 것은 산이가 음악을 좋아하고, 현재도 계속 반복해서 듣고 따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때로 무슨 노래를 하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다. 귀를 기울여 보지만 단번에 어떤 노래인지 알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산이가 부르는 것을 들어보면 음의 높낮이가 많지 않고 발음도 어눌하다. 굵은 저음으로 부르다가 음이 높이 올라가거나 곡의 절정이다 싶은 곳에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래도 가만히 들어보면 노래의 가락이나 가사를 따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또 예배 시간에 아는 찬양이나 찬송이 나오면 앗싸혹은 나 저거 알아하며 좋아한다. 가끔 회중 가운데 저 혼자 손 들고 찬양하기도 한다. 주먹을 꼭 쥐고 팔에 힘을 주어가며 부르기도 하고 박자에 맞추어 온 몸을 흔들며 부르기도 한다.

사실 산이가 어떤 마음과 감정으로 노래를 부르는지 다 헤아릴 길이 없다. 다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날마다 노래 부르는 것이 계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산이의 그칠 줄 모르는 노래 부르기는 주변 사람들과 자기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산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동생이 집에 같이 있을 때는 노래 부르는 소리의 강약을 조절하려고 한다. 동생도 형이 집 밖까지 들리도록 소리를 높여 노래를 해도 조용히 하라고 불평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 교회에서는 예배 시간에 스크린에 비춰지는 파워포인트의 화면을 순서대로 띄우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산이에게 기회를 주신 것이다. 와우! 아직은 서툴어서 실수가 있기는 해도 제법 잘 해내고 있다. 또 예배가 끝나고 이렇게 말씀해주신 집사님도 계셨다.

내가 오늘 무척 힘든 상태에서 교회에 왔거든요. 그런데 예배 시간에 산이가 찬송을 열심히 부르는 모습을 보고 내가 힘이 생겼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삶이 되기도 한다. 산이가 좋아하는 노래 부르기와 꼼꼼한 성격(레고나 퍼즐 조립을 좋아하는 걸로 봐서)이 잘 발휘되는 행복한 삶이 펼쳐져 가고 있음을 주님께 감사한다

9/15/2014

정직하고 친절한 기업들




얼마 전, 가끔 이용하는 백화점 콜스(KOHL’S)에서 수표(Check) 한 장을 받았다. 나에게 발행된 것이었다. 수표에 적힌 금액은 25달러였다. 수표 아래 쪽에 있는 메모 공간에는 신용카드 잔액을 환불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지난 봄에 콜스에서 뭔가(이 몹쓸 기억력은 올 봄의 사소한 일들을 벌써 거의 잊었다)를 사고 그 백화점에서 발행한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다. 사용한 금액은 그 다음 달에 어김없이 청구되었다. 내가 사용하는 신용카드가 몇 장 되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지불 기일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마감일 보다 몇 일 먼저 결제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하루 이틀 미루다가 콜스 신용카드 마감일 이틀을 남겨두고 온라인 뱅킹으로 결제를 시도했다. 보통은 이 결제가 당일이나 그 다음 날이면 가능하다. 여유롭게 들어간 온라인 뱅킹에서는 이틀이 지나 결제가 가능하다고 표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불 마감일에서 하루 늦게 결제가 되는 것이었다. 우편으로 내 수표를 보낸다 해도 마감일을 넘기기는 마찬가지여서 어쩔 수 없이 온라인 뱅킹의 결제를 허락했다.

그리고 또 한 달 뒤, 그 백화점은 마감일을 넘긴 벌금으로 25달러를 나에게 청구했다. 마감일을 하루 넘긴 잘못은 분명 나에게 있었지만 25달러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고 너무 아까웠다. 난 그 벌금을 결제하기 전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고객 센터에 전화를 했다. 상담원에게 결제가 왜 늦게 되었는지 설명을 한 뒤에, 그 동안 한 번도 마감일을 넘기지 않고 신용을 잘 지켜온 고객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상담원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다시 돌아와, 일단 25달러를 내면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뜻밖에도 너그러이 벌금을 면제해주어 기분이 좋았다.

환불을 어떻게 해 주겠다는 것인지는 말이 없었기에 잊고 지냈다. 한 달이 다시 지나 청구서가 날아왔는데 신용카드 잔액에 25달러를 넣어 놓은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결국은 자기네 신용카드를 다시 사용하도록 해놓았지만 벌금을 받지 않고 돌려주어 고맙게 여겼다. 언젠가 콜스에서 그 잔액을 사용할 일이 있겠지 하고 넘겼다.

바쁘게 올 여름이 지나갔다.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아도 매달 보내주는 청구서에는 25달러가 남아있음을 계속 알려주었다. 어서 사용하라고 재촉하는 듯하여 꼭 사야 할 생필품 가운데 25달러가 넘는 것을 찾고 있었다. 드디어 아이들 운동화가 필요했고 운동화 사는데 보태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이어서 받은 청구서에는 그 25달러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에구구, 빨리 사용할 걸…… 그래도 그렇지 줬다 빼앗는 건 또 뭐람! ‘

조금 아쉬웠으나 콜스 쪽에서도 고객에 대해 자기들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을 보여주었다 여기기로 했다.

이렇게 몇 개월 동안의 해프닝이 마무리되었나 싶었는데 콜스에서 수표가 우편으로 온 것이다. 25달러를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수표로 말이다. ,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살짝 감동 받았다.

이웃 블로거(http://oldman-james.blogspot.com)에게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코스트코(Costco)에서 5월에 복숭아를 샀단다. 그는 얼마 전 이 복숭아에 박테리아 감염우려가 있어 리콜을 한다며 코스트코에 와서 환불을 받으라는 편지를 받았다.

이 복숭아는 이미 다 먹은 지 오래 전이고, 영수증도 없고 해서 환불 받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다 나처럼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코스트코를 방문하는 길에 점원에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고 한다. 점원은 그의 멤버십카드로 거래 기록을 조회하더니 $7.87를 현금으로 손에 쥐어주더라는 것이다.

이웃 블로거는 많은 손실이 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감염 가능성의 사실을 판매상인 Costco에 알린 복숭아 과수원지기 혹은 중간 유통회사의 정직함, 몇 불 안 하는 복숭아 한 박스 구입자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 알리고 찾아 온 손님들에게 군소리 한마디 없이 돈을 내주는 Costco라는 회사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직하다고 적고 있다.

적어도 이웃 블로거나 내가 경험한 기업들이 정직과 친절한 태도로 고객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기업들에게 신뢰가 가고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정직과 친절은 신뢰의 관계를 쌓아가는데 중요한 덕목들인 것이 분명하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이러한 덕목들을 실천한다. 하물며 이윤창출 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진, 진리를 추구하는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이웃과 더불어 정직하고 친절한 삶을 살아야 할 텐데…… 도와주시길 하나님께 빌어본다

9/08/2014

한국학교에서 배우기




한인 이민자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학교가 개강을 했다. 지난 학기에 임시 교사로 몇 주 참여한 것이 기회가 되어 이번 학기에 초등학교 3, 4 학년이 된 아이들이 있는 한 반을 맡게 되었다. 새로 만난 우리 반 아이들과 부모님들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특별히 높아 보였다.

학교가 개강하는 날 부모님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 우리 반 학생들 집집마다 전화를 돌렸다. 그러던 중 손주들을 한국학교에 보낸 할머니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큰 아이는 한글을 읽는데 똑같은 기간을 배운 동생은 왜 아직도 읽지를 못하냐며 호통을 치셨다. 나는 할머니의 큰 손주를 맡게 되어 전화 드린 것이라 동생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었다. 나와의 통화가 시원치 않으셨는지 오리엔테이션에 오셔서 교장을 직접 만나 봐야겠다고 하셨다.

아이들의 부모님은 영어권이어서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쉽지 않은 환경인데, 오히려 할머니께서는 손주들에게 한국어를 배우게 하는데 아주 열정적이신 듯했다. 이분은 선생님들 사이에 무서운 할머니로 불린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학교가 시작하는 날 진짜로 찾아오셨다. 나는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맡아서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할머니는 작은 아이를 한국어 수준이 높은 반에 넣기를 원하셨고, 교장 선생님은 결국 큰 아이와 동생을 같은 반으로 배정하셨다. 둘 다 나의 반이 된 것이다. 한 학기 혹은 한 학년이 지나 동생이 글을 읽지 못하면 난 할머니께 혼나게 생겼다.

우리 반의 또 다른 아이는 3 학년인데 세 살부터 한국학교를 꾸준히 다니고 있단다. 또 다른 두 아이의 아버지들은 이사회에 참여하면서 학교를 열심히 돕고 계신다. 한 아이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은 잘 하지만 잊지 않고 더 잘 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러 온다.

학교가 끝나고 아이를 데리러 온 어느 아버님은 숙제가 있느냐고 물어보셨다. 학기 시작하는 첫날에 말이다. 다른 지역 한국학교에서도 가르쳐 봤지만 숙제를 내줬는지 물어본 학부모님은 처음이었다. 한 학기 학습 계획을 만들면서 숙제를 내주어야겠다고 이미 마음 먹고 있었다. 그래도 첫날부터는 아니였는데…… 아이들은 숙제 있다고 하면 엄청 싫어하겠지만 그래도 난 마음을 정했다. 학교 행사가 있어서 수업이 없어도 숙제는 빠트리지 않고 꼭 내주는 걸로!

또 이곳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 이외의 많은 시간을 한국학교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에게서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한인 이민자가 많이 살고 있는 지역에는 수백 명씩 모이는 한국학교가 여럿 있다. 주로 한인회나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들이다. 규모가 큰 학교는 운영하는데 필요한 인력과 재정이 넉넉해서, 운영을 책임지는 선생님들과 특별활동 선생님들이 따로 있고 교사들은 보통 자기 반 수업만 충실히 준비하면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한인 인구가 4,000 명쯤 되는 곳으로, 한인회 아래에 한국학교가 하나 있다. 30 명 안팎쯤 되는 학생들과 너덧 명의 선생님들이 작은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다. 학생 수가 많든 적든 한국학교는 한국어, 문화와 역사를 가르치고 경험하게 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 보니 이곳 학교의 선생님들은 학교 운영, 수업, 특별활동 등등을 거의 같이 감당하고 있다. 그리고 더 잘 가르치기 위한 방법들을 찾으려고 애쓴다. 선생님들과 사귄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내게는 그들이 학교를 위해 기쁘고 즐겁게 일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한국학교를 아끼는 마음이 느껴진다.

난 그들에게서 자신들의 시간과 선생으로써의 능력을 기꺼이 나누며 봉사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배울 수 있다면, 나는 그들과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선생님들에게는 지치지 않는 봉사의 마음과 가르치는데 필요한 지혜를, 학생들에게는 한국어를 잘 깨달아 배워갈 수 있는 지혜를, 학교 생활이 즐겁고 안전하기를,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정이 넉넉히 채워지도록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마음을 나누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