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2014

전문가와 비전문가


아들 산이가 찍어놓은 사진이 있길래... ^^


얼마 전 한국 여행 갔을 때 지난 해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타시던 자동차가 아직 있어서 편안하게 다닐 수가 있었다. 집에서 먼 곳으로 외출할 경우는 버스와 지하철을 주로 이용하고 집에서 한 시간 이내의 거리에 있는 곳은 자가용으로 이동했다.

그날도 친구를 만나기 위해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새로 생긴 고속도로라 교통량도 많지 않고, 무엇보다 복잡한 시내를 거치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이라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자주 이용하곤 했다. 터널이 여러 개 연속해서 나오는 구간을 지나가고 있었다. 같은 차선에서 빠르게 저만치 앞서 달리던 자동차의 빨간 브레이크 등이 선명하게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내 차의 속도도 줄이면서 옆 차선을 보니 다른 자동차들은 쌩쌩 달리고 있었다.

뭐지? 차선을 잘못 선택했나 보군, 생각하는 순간 자동차 범퍼 보다는 작은 크기의 디귿 자 모양을 가진 물체가 내 차 앞에 뚝 떨어졌다. 내가 탄 자동차의 왼쪽은 터널 벽이고 옆 차선에는 자동차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었으므로 그 물체를 밟고 지나갈 수 밖에 없다고 순간적으로 판단했다. 오른쪽 앞 바퀴가 그 물체를 타고 넘는 것을 느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찜찜한 기분이 들었고 운전하는 내내 계기판 어딘가에 주황색의 경고 등이 혹시라도 들어오는 지 신경을 써야 했다.

다행히도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동안 자동차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 소심한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문제가 있다가 자동차가 달리는 도중에 탈이 날까 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운전이나 조심스럽게 할 줄 알았지 자동차 구조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서 쪼그리고 앉아 자동차 밑면을 들여다 보았다. ! 자동차 아래로 액체가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에어컨디션을 사용했으니 물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겁이 덜컥 났다.

자동차 수리나 검사를 하는 카센터를 운영하는 P 집사한테 득달같이 전화를 했다(미국에서라면 남편에게 전화 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친분이 있는 전문가에게 문제 상황에 대해 한국말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나 편안하던지…). 상황을 짧고 다급하게 설명을 했다. 집사님은 떨어지는 액체가 투명한 지 색깔이 있는 지 살펴보라고 차분하게 알려주었다. 다시 몸을 구푸려 살펴보니 색깔이 있거나 냄새가 나는 액체가 아니니 물인 것이 분명했다. 집사님의 한 마디에 자동차에 대한 걱정이 싹 날아가버렸다.

P 집사는 남편과 함께 카센터를 운영하면서 자신도 자동차에 대해 전문가가 되어 있는 듯했다. 나중에 이 상황에 대해 다시 말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 전화로 정비 한 건 했어요라고 말하는 집사님 때문에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난다.

자동차에서 떨어지는 액체를 분별하여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가리는 것은 상식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동차 수리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내게는 P 집사의 처방은 전문가의 소견이었다. 나는 상황에 따라 지레짐작 하여 불안했지만 집사님은 차분하고 명료하게 대처했다. 비전문가와 전문가의 차이인가 보다.

그러고 보면 자동차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해서도 난 어리바리 비전문가다. 그래서 삶을 바라보는 시야도 좁고, 생활이 불안하고 만족스럽지 않다고 여기기도 한다. 어느 순간 믿음의 능력이 발휘되기도 하지만 많은 시간 동안 염려를 떨치지 못하기도 한다.

주일 예배 설교 시간에 베드로후서 3장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목사님은 한 사람의 인생도 끝이 있으며 지구를 포함한 모든 별들도 언젠가는 소멸을 겪게 될 것이니, 우리는 하루를 천 년 같이 천 년을 하루 같이 여기며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자고 했다. 그리고 죽음과 소멸은 끝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이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으니 그 약속을 믿고 살자는 것이다.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한 시간이 아니라 평강 가운데 말이다.

신앙인들이 늘 듣는 평이한 설교 같아도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은 나에겐 마음에 찔림을 주는 설교였다. 내 삶의 문제를 진단해주고 기꺼이 고쳐주는 전문가는 성경과, 그 성경을 해석하고 열정적으로 선포하는 일에 헌신하는 지금의 담임목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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