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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도 기도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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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뒤척이다가 더 이상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일어났다. 아직 어두움이 가득한 거실에 걸려 있는 벽시계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어슴푸레 읽어 보았다. 새벽 4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창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잔 탓에 집안 공기가 후텁지근 했다. 창문 하나를 열어 강화어머님네(나의 시어머님이시다) 집 둘레에 펼쳐진 넓은 들판을 휘젓고 다니던 바람을 불러 들였다. 창문을 열자마자 밀려들어 오는 새벽 공기가 참으로 시원했다. 뒤뜰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는 것 같았다.

어머님은 지난해 가을,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로 주무실 때 문이란 문은 모두 걸어 잠근다고 하셨다. 평생을 모든 것이 익숙한 고향의 한 마을에서 살고 계신 어머님에게서 처음 보는 낯선 모습이었다. 며칠씩 집을 비울 때는 모르겠지만 하루 안에 돌아오는 외출을 하실 때는 현관문도 잠그는 일이 없으셨다. 큰 집에 덩그러니 홀로 남게 되신 어머님이 아직 익숙지 않은 '혼자됨'을 힘들게 겪고 계시는 중임을 알 수 있었다. 강인하고 꾸밈이 없는 성격의 어머님이신지라 더욱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날 새벽 공기가 실어오는 상쾌함과 쓸쓸함을 들이키고 있는데 어머님이 깨어 나오셨다. 초여름이라도 으쓱한(어머님 표현에 따르면) 새벽 공기를 막아줄 얇팍한 긴팔 옷을 챙겨 입으시며 이미 깨어 있는 나에게 같이 새벽기도 가자, 고 하셨다.
 "목사 사모가 와 있는줄 다 알텐데, 왜 새벽기도도 안 나오나 할 거 아냐?" 
오랜만에 들어보는 꾸중 섞인 말씀이다.

어머님네 와서 밤잠을 자게 되는 경우는 주로 명절을 쇠러 올 때다. 명절을 준비하느라 고단하기도 하고, 모처럼 부모님 집에 왔으니 목회 현장에서 떠나 푹 쉬고 싶은 마음이다. 날마다 드리던 새벽기도도 접고 길고 깊은 잠도 자보고 싶다. 그런데 어머님은 새벽기도를 가시면서 잠들어 있는 남편과 나를 보시면 화를 내셨다. 목회자 부부가 새벽기도를 빼먹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셨다. 게다가 목사는 안 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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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돌아다닐 생각하지 말고 조용히 있다가 와."
한국으로 오기 전 남편에게 여러 번 들은 말이다. 두 번째 한국 방문이니 첫 번째만큼 반겨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한 얘기다.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 번은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 것이고, 일 년만에 다시 오게 되었으니 반가움이 덜할 것이라고 쉽게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은 미국에 남아 있으면서 한국 방문을 하는 아내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가 살짝 느껴지기도 하는 말이다. 자신의 아내가 그리 번잡스러운 사람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그런 당부의 말을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도, 한국에 머물고 있는 중에도 툭툭 하니 말이다.

하긴 나도 남편이 며칠 동안 외출을 하게 되면, 여행 가서 좋겠다!, 며 부러운듯한 말을 마구 던진다. 남편의 외출은 거의 교회와 관련된 모임이기에 회의나 교육 받는 시간이 대부분인 것을 안다. 그래도 일상을 떠나 낯선 장소가 주는 신선함이 있고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도 있으니 외출 혹은 여행은 부러움을 살만한 경우들이다.

이럴 때 남편의 반응에 따라 더욱 얄미워지기도 하고 마음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회의만 하는데 뭐가 좋아, 지루하지. 집이 최고야!"
쳇, 아무렴 회의만 할까! 쉬는 시간에 수다도 떨고, 준비된 맛난 식사도 먹을 거면서.
"당신도 같이 가면 좋을텐데... 거기 가 봐서 좋으면 나중에 같이 가자."
경험상 나중에 다시 방문할 기회가 거의 없음을 알면서도 이런 말은 집에 남겨진 사람의 답답함을 어느 정도 가시게도 한다.

어쨌든 이번 한국 여행은 내가 집에 남겨진 남편뿐 아니라 작은아들의 부러움까지도 사게 되었다.

나의 부모님께서는 사는 곳에서 10분쯤 걸어가야 되는 곳에 조그만 텃밭을 가꾸고 계신다. 산책 삼아 나가 돌아보았는데 밭 한쪽이 온통 싱싱한 씀바귀로 가득 차 있었다. 나중에 뿌리째 뽑아 장아찌를 담그려고 키우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밭 주위를 지나 다…

낯설고 강렬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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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번 한국여행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산이의 치아 치료(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치료이고, 치료비용을 감안해 한국에서의 치료를 결정한 것이다)를 위한 여행으로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산이의 치아 상태에 문제가 생겨 급작스레 예정보다 일정이 앞당겨졌다. 큰아들 산이와 나는 감사하게도 갈아타는 번거로움이 없는 한국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게다가 남편은 우리를 비행기가 출발하는 애틀랜타 공항까지 데려다줄 수 있는 여건이 되었고, 한국 국적 비행기이니 여러 가지 면에서 편안한 이동수단이 되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긴 비행기 운항 시간의 지루함을 달래줄 영화 목록을 살펴보았다. 보고 싶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있었다. 갑작스레 정해진 일정이었지만 비행기를 타기까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고 영화도 볼만한 것들이 꽤 있어서 이번 여행에 대한 느낌(느낌은 변화무쌍 하다. 신뢰할만 한 것이 못 된다)이 좋다고 생각했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제목만 봐서는 고풍스러운 배경을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근거 없는 기대가 있었던 영화였다. 비행기가 출발할 때부터 영화에 집중해서 한 시간 반 정도를 훌쩍 보내리라 생각했다. 새벽 일찍이 집을 나선 탓에 비몽사몽 오락가락 하면서 감상했어도 어쨌든 시간이 그럭저럭 흘러갔다.

한국 비행기 기내식의 대표 음식인 비빔밥을 점심으로 먹고, 저녁으로는 불고기와 밥을 먹었다. 당황스러운 사건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얼마 뒤에 시작되었다.

산이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기침이 그치지 않았고 그 소리가 점점 목구멍을 거칠게 훑고 나오는 것처럼 무거워졌다. 이때부터 평온한 여행에 대한 느낌은 쨍, 하고 깨져 버렸다. 산이가 기침을 힘들게 하기 시작하면 겁이 난다. 기침을 하다가 속을 싹싹 다 비울 때까지 토하기 때문이다.

기침한다고 승무원이 와주지 않을 것 같아 얼른 일어나 승무원들이 있는 공간으로 나아갔다. 냅킨을 좀 달라고 했다. 서너 장을 건네 받았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오자 산…

학교 이후의 삶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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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의 “공식적인”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비공식적으로 첫째 아이, 산이는 학교 일정이 마치기 하루 전에, 둘째 아이는 이틀 전부터 방학에 들어갔다. 둘째 아이의 말을 빌리자면, 일 주일 전부터 수업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이 많아 학교 분위기가 싱숭생숭하다고 했다. 학점을 따기 위하여 필요한 시험이나 과제를 다 끝냈고, 출석 일수에 지장이 되지 않으면 결석 처리가 되더라도 등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도 방학하기 이틀 전부터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도 마무리를 잘 해야 되지 않을까, 하며 수업은 빠지지 않아야 된다는 밑도 끝도 없는 고정관념을 가진 나에게 둘째 아이는 대놓고 답답하다고 했다. 다 알아보고 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내 자신이 보편적인 제도나 질서 따위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어서 스스로 고리타분하게 여기는 부분도 적지 않다. 둘째 녀석은 나와 닮은 듯하나 똑같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나보다 훨씬 자유롭고 창조적인 삶을 멋지게 만들어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방학하기 이틀 전 아침, 둘째는 학교를 가든 안 가든 알아서 잘 하겠지, 해놓고 첫째 아이는 학교에 보냈다.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산이한테서는 아무런 정보를 들은 것이 없으므로, 그리고 공교육을 하는 학교에 다닐 날이 더 이상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학교 가려고 나서는 아이를 품에 안고 이마를 맞대고 잘 갔다 와, 하는데 가슴이 짠하다. 그 동안 한국에서 받았던 조기교육(만 4세)부터 미국 고등학교와 과도기 과정(transition class, 만 18-21세)을 마치기까지 겪었던 일들과 감정들이 뒤섞여 왈칵 왈칵 올라오는 것을 지난 주부터 참고 있었다.
지난 주에 산이가 학교 생활을 마치는데 부모의 사인이 필요하다며 학교로 오라고 했다. 이 모임은 산이를 위한 교육에 대해 재평가하는 자리로 두 달 전쯤 모였어야 했다. 하지만 방학을 코앞에 두고 호출하는 것이니 새로운 정보를 나누는 자리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