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 가는 사귐




넉 달 전쯤 고춧가루와 곶감이 들어 있는 작은 상자를 우편으로 받았다.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운전하여 이틀이 넘게 걸리는 데 사는 H가 보내준 것이다. 소포를 받기 며칠 전, 요즘 잘 지내느냐며 안부 묻는 전화를 H와 하게 되었다. 페이스북에 가을 고추 말리는 사진을 올려놓은 것이 기억나길래 고추는 잘 말렸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말린 고추를 빻았는데 색깔이 기가 막히게 예쁘다며 선뜻 보내주겠다고 했다. 아무리 고추는 농사 지은 것이 아니고 사 온 것이라 해도 햇볕에 말리고, 거두고, 빻는 수고를 엄청 했을 텐데 안부 인사 한 마디에 그 귀한 고춧가루를 나눠주겠다니, 난 얼른 그만 두라고 했다. H는 다 먹고 살자고 한 일이라며 어서 집 주소나 부르라고 했다.

몇 번이고 사양을 했지만 그럴 때마다 H는 자신의 수고는 뒤로 하고 나눠줄 만한 이유를 덧붙였다. 그이는 멕시코 국경과 가까운 주에 살고 있다. 멕시코는 우리처럼 매운 음식을 즐겨 먹기 때문에 고추도 다양한 품종을 생산하는 모양이다. 고추 밭에 직접 가서 고추를 사면 값도 저렴하고 우리 입맛에 맞는 것을 고를 수 있다고 했다. H는 우선 싼 값에 산 고추이므로 부담 갖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사는 곳은 볕이 좋고 건조하기 때문에 말리는 것도 수월했으니 걱정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라고 대꾸해놓고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주소를 보내주었다.

몇 날이 지나지 않아 H로부터 정성이 가득 담긴 상자가 멀리서 날아왔다. 상자를 열자마자 칼칼한 냄새가 콧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웬걸 이렇게 많이도 보냈는지 고마움과 미안함이 마구 뒤섞였다. 제일 큰 봉투에 담긴 고춧가루는 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참으로 곱고 먹음직스러운 빨간 색이었다. 고추씨만 따로 모아 빻은 가루도 보였다. 덜 맵게 먹고 싶을 때 사용하면 좋다고 보낸 것이다. 게다가 손수 말린 곶감도 여러 봉지 들어 있었다. 이민자로 살다 보니 한국 제품이면 뭐든지 귀하게 여겨진다. H가 만든 것처럼 원재료는 현지의 것이더라도 우리네 입맛에 맞는 고춧가루나 곶감으로 바꿔 놓은 그의 솜씨도 귀하고 대단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어머님께서 만드신 고춧가루는 맛은 있는데 조금 매웠다. 어머님께 쬐끔 죄송하지만 H가 만든 고춧가루의 맵기가 내 입맛에 딱 맞는다. 너무 맵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고. 김치를 해 놓으면 맑은 빨강색이 되어 마치 음식 전문가가 만들어 파는 김치 같다. 곶감은 오랜만에 먹어보는 것이기도 하고 적당히 말라 먹기도 좋아, 아껴가며 하나씩 야금야금 빼 먹었다.

돌이켜 보니 H와의 사귐은 이십 년이 넘었다. 같은 강화 지방에서 목회를 할 때 요한 웨슬레 목사 회심 기념 주간에 남편 목사들끼리 서로 교환 설교를 한 적이 있다. H네는 강화 본도에서 배로 한 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는 섬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다. 강화 본도에서 목회하던 우리가 먼저 H네를 방문했던 것 같다. 그곳에서 들은 내 남편 목사의 설교는 안타깝게도 기억에 하나도 없지만 H가 만들어 주었던 닭조림과 김밥은 생생하다. 또 이후에 H네가 목회를 하게 된 교회가 내가 전도사로 있던 데여서 삶의 한 조각이 또 겹쳐지기도 했다. 거기서 얻어 먹은 오징어볶음과 스파게티도 잊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을 떠올릴 때 함께 나누어 먹었던 음식을 기억하는 것은 그 음식에 배어든 애정이 내 몸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음식을 시원스럽게 잘하는 솜씨 못지않게 H는 기도 생활도 열정적이다. 미국으로 이민 와서 기도 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자책하지만 그녀는 늘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있다는 걸 몇 마디 얘기를 나누다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한인이 많지 않은 작은 도시에서 십여 년 동안 남편과 함께 묵묵히 목회를 감당하는 뒷심은 기도를 통해 얻는 힘이다. 때론 외롭고 때론 경쟁적인 일상에 매몰되려 하지 않고 하나님 뜻을 알려고 늘 애쓰는 모습에서 기도의 모습이 읽혀진다. 자기는 신앙 생활이 엉터리인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H의 얘기를 들으면서 오히려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 신앙 생활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다행이고 감사한 것은 서로 자신은 엉터리라고 하면서, 상대방에 대해서는 작은 열심이나 성실의 흔적이라도 찾아내어 칭찬해 주고 그 에너지를 나눠 받고 싶어한다. 이것이 우리 사귐이 지속되는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에 사는 몇 년 동안 우린 전화 통화만 할 뿐, 사정이 여의치 않아 얼굴을 마주하고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도 전화가 연결되면 늘 만나는 사람마냥 수다를 떤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이런 상황에서는 꼭 맞는 것 같지 않다. 서로를 기억하고, 전화든 편지든 시간을 내어 찾아보고, 입술 끝을 떠나면 곧 공기 중에 흩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영혼 없는 말이 아니라 마음이 담긴 애정 어린 말을 나눠주고, 기도로 영적인 끈을 이어가는 관계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그 사귐이 깊어질 수 있나 보다.

H와 새로운 만남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어찌 하다 보니 비슷한 시기에 둘 다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같은 미국에 살면서 언제나 만나냐, 하며 못 만났는데 결국은 한국에서 만날 기회를 갖게 될 듯하다. 의미 있고 맛있는 사귐의 자리가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북어대가리

친구가 준 졸업 반지

마냥 좋지는 않아도 봄은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