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쪽으로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주립공원이 있다. 공원의 대부분은 숲이고, 숲 속에 있는 나무들 사이로 걷거나 자전거로 달릴 수 있는 길들이 여러 갈래로 나 있다. 그리고 캠프장, 늘 고요한 호수, 호수에서 탈 수 있는 배를 보관하는 건물, 공원을 관리하는 사무실이 있는 단층 건물 두어 채가 있다. 동네나 상가 입구에 철철이 색과 종류를 달리하여 심겨지는 꽃들을 늘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공원에서는 정문 표지판 근처에 심겨진 몇 그루의 꽃나무를 빼면 인위적으로 심겨진 꽃을 본 기억이 없다. 억지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어림잡아 헤아려 본다. 공원 밖도 마찬가지여서 정문 쪽에 장사가 될까 싶을 정도로 한가해 보이는 햄버거 가게가 하나 있을 뿐이다. 공원 이름을 적어 놓은 표지판이 아니면 그냥 지나쳐 버릴 만큼 밋밋하다. 넓은 공원의 안이나 밖이나 참으로 수수하다.

자칫 지루하게 보일 만큼 조용한 이 공원은 남편과 나에게 치료실 같은 곳이다. 나무 사이로 한 시간 반쯤 걷는 일을 반복하면서 남편의 불편한 허리가 거의 다 나았다. 한국에서보다 움직임이 많이 적어져서 살만 둥실둥실 늘어난 나에겐 그나마 지금 상태를 유지하게 해준다. 또 맘놓고 수다를 떠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면 갈 길 못 찾던 생각들이 가지런히 정리가 되기도 하고, 답답한 문제들은 해소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기도 한다. 남편은 이런 공원이 곁에 있어서 감사하다며 언젠가 공원에 뭐라도 기부해야겠다,고 할 정도였다.

우리는 이 공원에 들어가기 위하여 공원 정문의 반대편에 있는 출입구를 이용했다. 전에 살던 집에서 이차선 도로만 건너면 이 입구가 있기 때문이다. 걸어서도 들어갈 수 있다. 이쪽 입구에 들어서면 발걸음이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옮겨 갈 만큼 익숙해졌다.

그런데 지난해 9월쯤인가, 우리가 다니는 출입구에 표지판이 하나 세워졌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오라는 빨간 글씨의 경고용 안내판이었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좁은 입구가 있는 이곳은 주차장도 있고 숲길을 알려주는 게시판도 있지만 요금을 받는 곳은 없다. 정문 쪽으로 들어갈 때도 요금을 받는 곳이 닫혀 있어서 그냥 들어갔다가 나온 적이 있다. 산책 나온 주민들을 위해 무료로 개방해 놓은 공원인줄 알고 다닌 것이다. 그래서 그냥 편하게 집에서 가까운 출입구를 이용한 것인데 입장료를 내야만 하는 곳이었나 보다.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나 편한 대로 생각한 것이다. 공원 측에서 보면 입장료도 내지 않고 숲을 휘젓고 다니는 뻔뻔한 방문객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도 무슨 배짱인지 몇 번 더 뒤쪽 입구로 다녔으나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았으니 공원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범법자가 되는 것이다. 기분이 찜찜했다. 공원에 갈 때마다 그쪽으로 드나드는 사람도 여럿 만나곤 했는데 사람들 수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았다. 이건 아니다 싶어,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정해진 규칙을 지키기로 마음 먹었다.

정문 매표소를 찾아갔다. 문이 닫혀 있었다. 다음에 다시 매표소 앞에 차를 멈추었다.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하지, 생각하는 순간 매표소 벽에 붙어 있는 안내판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나이에 따른 요금표였다. 매표원이 없으면 방문객이 자율적으로 입장료를 내야 하는 것이다.

몰랐다면 모를까 입장료를 내야만 한다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이 공원의 숲이 주는 편안함을 되찾고 싶었다. 공원 정문 쪽에서 가까운 관리사무실을 찾아갔다. 공원입장료는 방문할 때마다 한 사람당 2달러(65세 이상은 1.25달러, 15세 이하는 무료). 남편과 나는 이렇게 저렇게 계산해본 뒤, 내가 살고 있는 주의 주립공원은 어디든지 일년 동안 무제한으로 입장할 수 있는 75달러짜리(사용범위에 따라 99달러, 50달러짜리도 있다) 입장권을 샀다. 이 입장권을 걸어둔 차량에 타고 있는 사람은 모두 입장이 가능하다.

입장권이 있으니 정문으로 들어가든 뒤쪽으로 들어가든 마음에 거리낌이 전혀 없다. 어느 날 웬일인지 매표소에 연세 많으신 할머니께서 앉아 계셨다. 느낌에 자원봉사자 같았다. 우리는 일 년짜리 입장권을 보란 듯이 자동차 뒷거울에 걸어놓았다. 할머니께서는 얼른 입장권을 확인하시고 들어가도 좋다는 표시를 웃는 얼굴로 보여주셨다. 우리도 상쾌하게 굿모닝인사를 남기고 매표소를 쌩 하니 빠져 나왔다.

정해진 규칙은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자율적으로 지켜서 사회 질서가 원만하게 유지되고 이런 체계에 자부심을 갖는 분위기를 이 나라에서 경험한다. 한편, 규칙을 어긴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금을 물게 하는 엄격함도 함께 경험한다. 숲에게 고마워서 기부하고 싶을 정도였는데, 이 기회에 입장료라도 내게 되어 숲에게 받기만 하는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었다. 작은 규칙이 지켜지고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쪽으로 한 걸음 옮겨갔을 뿐인데 마음이 편하고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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