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14의 게시물 표시

깊어 가는 사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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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 달 전쯤 고춧가루와 곶감이 들어 있는 작은 상자를 우편으로 받았다.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운전하여 이틀이 넘게 걸리는 데 사는 H가 보내준 것이다. 소포를 받기 며칠 전, 요즘 잘 지내느냐며 안부 묻는 전화를 H와 하게 되었다. 페이스북에 가을 고추 말리는 사진을 올려놓은 것이 기억나길래 고추는 잘 말렸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말린 고추를 빻았는데 색깔이 기가 막히게 예쁘다며 선뜻 보내주겠다고 했다. 아무리 고추는 농사 지은 것이 아니고 사 온 것이라 해도 햇볕에 말리고, 거두고, 빻는 수고를 엄청 했을 텐데 안부 인사 한 마디에 그 귀한 고춧가루를 나눠주겠다니, 난 얼른 그만 두라고 했다. H는 다 먹고 살자고 한 일이라며 어서 집 주소나 부르라고 했다.
몇 번이고 사양을 했지만 그럴 때마다 H는 자신의 수고는 뒤로 하고 나눠줄 만한 이유를 덧붙였다. 그이는 멕시코 국경과 가까운 주에 살고 있다. 멕시코는 우리처럼 매운 음식을 즐겨 먹기 때문에 고추도 다양한 품종을 생산하는 모양이다. 고추 밭에 직접 가서 고추를 사면 값도 저렴하고 우리 입맛에 맞는 것을 고를 수 있다고 했다. H는 우선 싼 값에 산 고추이므로 부담 갖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사는 곳은 볕이 좋고 건조하기 때문에 말리는 것도 수월했으니 걱정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라고 대꾸해놓고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주소를 보내주었다.
몇 날이 지나지 않아 H로부터 정성이 가득 담긴 상자가 멀리서 날아왔다. 상자를 열자마자 칼칼한 냄새가 콧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웬걸 이렇게 많이도 보냈는지 고마움과 미안함이 마구 뒤섞였다. 제일 큰 봉투에 담긴 고춧가루는 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참으로 곱고 먹음직스러운 빨간 색이었다. 고추씨만 따로 모아 빻은 가루도 보였다. 덜 맵게 먹고 싶을 때 사용하면 좋다고 보낸 것이다. 게다가 손수 말린 곶감도 여러 봉지 들어 있었다. 이민자로 살다 보니 한국 제품이면 뭐든지 귀하게 여겨진다. H가 만든 것처럼 원재료는 현지의 것이더라도 우…

환대하는 선생이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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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교에서 가까운 공원으로 나들이를 갔다. 올해 봄 학기를 마무리함과 동시에 한 학년을 잘 마친 아이들을 격려하는 자리였다. 아이들은 몇 가지 놀이를 신나게 하고 나서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이 준비한 맛있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한국학교에 빠지지 않고 출석했거나 한국어 실력 향상을 위하여 노력한 아이들을 칭찬해주고, 수료한 모든 아이들을 축하해주었다. 
미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학교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한국학교는 타국에 거주하는 동포의 자녀들(유치원생에서 고등학생까지)에게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기관이다. 혹은 한국어에 관심 있는 본토 학생에게도 열려 있어서, 이곳 한국학교에는 두어 명이 수업을 듣고 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미국 안에 있는 한국학교의 수가 생각보다 많았다.
“재미한국학교협의회(NAKS)는 미국 전역 14개 지역협의회로 구성돼 있고 산하에 953개의 한글학교가 있으며 전체 교사 수는 7천 명, 재학생 수는 8만 명에 달하는 조직이다. 이들 한글학교는 주로 교회나 성당, 한인회 등이 주말에 운영한다”(웹진 재외동포의 창, 2012년 8월호).
한국학교에서 가르친 경험이 있는 지인들의 소개로, 나는 애틀랜타에 이어서 이곳 한국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엔 대체교사로 두 번 수업에 참여했다. 그러다 어느 선생님이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어 학기를 마치기까지 남은 4주 동안 한 반을 맡게 되었다. 짧은 기간이라 아이들과 사귐이 깊지 않았지만 가르치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는 즐겁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주택가 한 가운데 자리잡은 한적한 공원에는 우리들뿐이었고 두 모둠으로 나누어진 아이들은 맘껏 뛰놀며 놀이에 참여했다. 놀이가 끝나면 반마다 부모님들과 다른 반 친구들 앞에서 장기자랑을 하나씩 하기로 되어 있었다. 제일 큰 언니 반만 K팝에 맞추어 춤을 추기로 했고 나머지 반은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우리 반은 동요인 “솜사탕”을 부르기로 했다. 다 같이 불러보는 연습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잘 부를 수 있을지 조금 걱…

두려움 없이 기도로 나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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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벽기도 시간에 기도하다 보면 입이 근질근질해진다. 기도 소리가 슬금슬금 닫힌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온다. 종알종알 읊조리다가 어느새 커져버린 내 목소리에 놀라, 다시 기도 소리를 안으로 삼켜버리고 만다. 몇 년간 새벽에 침묵 기도(언제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었다. 미처 떨쳐내지 못한 졸음이나 잡생각에 빠져 있던 적도 꽤 많다)로 일관해 왔다. 그런데 마음에 생긴 갈급함이 소리를 타고 입 밖으로 자꾸 쏟아져 나오려고 한다.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건강하게 믿음을 지켜가도록 지켜주십사 하는 것이다. 여기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주도인 콜럼비아에 한인은 4,000명 정도이고, 한국에서 오는 유학생과 그들의 가족을 빼면 한인들의 인구 이동이 거의 없는 곳이다. 간혹 우리 교회에 새로 등록한 교우들처럼 다른 주에 살던 다문화 군인 가정들이 육군 훈련소와 새로 마련된 국립묘지가 있는 이곳으로 이사를 오기도 한다. 개신교 교회는 12개쯤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USC) 근처에 있는 교회는 150여명으로 제일 많은 교인들이 있고, 너덧 교회의 교인들이 50-70여명쯤 되는 것 같다.
한 6,7년 전에 이 지역 여러 목회자들의 이동이 있었다. 그때는 이곳에 살지 않았으므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교회 안에 문제들이 생겨 결과적으로 목회자들이 바뀌게 되고 교인들도 다른 교회로 수평 이동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요즘 몇몇 교회들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들이 다시 들려오고 있다. 어느 목사는 자신이 속했던 교단을 떠나 남미 선교사로 갔는데, 자신이 목회했던 지역을 방문하여 자신을 따르던 교인들을 따로 모아 여러 날 동안 만나고 갔다는 것이다. 선교비를 부탁하고 갔으며 6개월 후에 다시 오겠다고 했단다. 그 목사의 상식 없는 행동이 새로 부임한 목사와 교인들, 교인과 교인 사이를 껄끄럽게 하고 있다. 어느 교회는 시작할 때부터 이단 시비가 있었고, 이제 다른 한 교회에서도 목사가 이단…

올바른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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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주립공원이 있다. 공원의 대부분은 숲이고, 숲 속에 있는 나무들 사이로 걷거나 자전거로 달릴 수 있는 길들이 여러 갈래로 나 있다. 그리고 캠프장, 늘 고요한 호수, 호수에서 탈 수 있는 배를 보관하는 건물, 공원을 관리하는 사무실이 있는 단층 건물 두어 채가 있다. 동네나 상가 입구에 철철이 색과 종류를 달리하여 심겨지는 꽃들을 늘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공원에서는 정문 표지판 근처에 심겨진 몇 그루의 꽃나무를 빼면 인위적으로 심겨진 꽃을 본 기억이 없다. 억지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어림잡아 헤아려 본다. 공원 밖도 마찬가지여서 정문 쪽에 장사가 될까 싶을 정도로 한가해 보이는 햄버거 가게가 하나 있을 뿐이다. 공원 이름을 적어 놓은 표지판이 아니면 그냥 지나쳐 버릴 만큼 밋밋하다. 넓은 공원의 안이나 밖이나 참으로 수수하다.
자칫 지루하게 보일 만큼 조용한 이 공원은 남편과 나에게 치료실 같은 곳이다. 나무 사이로 한 시간 반쯤 걷는 일을 반복하면서 남편의 불편한 허리가 거의 다 나았다. 한국에서보다 움직임이 많이 적어져서 살만 둥실둥실 늘어난 나에겐 그나마 지금 상태를 유지하게 해준다. 또 맘놓고 수다를 떠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면 갈 길 못 찾던 생각들이 가지런히 정리가 되기도 하고, 답답한 문제들은 해소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기도 한다. 남편은 이런 공원이 곁에 있어서 감사하다며 언젠가 공원에 뭐라도 기부해야겠다,고 할 정도였다.

우리는 이 공원에 들어가기 위하여 공원 정문의 반대편에 있는 출입구를 이용했다. 전에 살던 집에서 이차선 도로만 건너면 이 입구가 있기 때문이다. 걸어서도 들어갈 수 있다. 이쪽 입구에 들어서면 발걸음이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옮겨 갈 만큼 익숙해졌다.

그런데 지난해 9월쯤인가, 우리가 다니는 출입구에 표지판이 하나 세워졌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오라는 빨간 글씨의 경고용 안내판이었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좁은 입구가 있는 이곳은 주차장도 있고 숲길을 알려주는 …

가시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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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집은 여태 살아본 집 가운데 꽤 넓은 앞뒤 뜰을 가지고 있다. 뜰이 넓다는 것은 잔디를 관리하는데 그만큼 힘이 든다는 것이기도 하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농부들이 논의 상태를 서로 비교하며 그 집의 형편을 가늠하듯이 미국 사람들은 잔디가 얼마나 잘 관리되고 있는가를 서로 비교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은 윤구병 님의 『잡초는 없다』나 황대권 님의 『야생초 편지』의 글처럼 사람이 그렇듯 풀도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자기 자리에서 자라고 있으려니 했다. 풀과 나는  다양하게 자라는 모습을 호기심 있게 바라봐 주는 그저 그런 사이였다. 그런데 남편이 하는 말을 듣고 나니 잔디보다 훨씬 잘 자라서 눈에 잘 띄는 풀은 그 순간부터 잡초가 되었다.
잡초를 그냥 놔둘 수가 없었다. 잡초도 관리 안 하는 게으른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지난 이태 동안 봄이 시작되면 잔디 사이사이로 올라온 잡초를 뽑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잡초를 제거하는 화학 약품을 쓰고 싶지 않아서 시간이 날 때마다 손으로 열심히 뽑아 젖혔다. 남편도 양 옆집의 잔디에 뒤지지 않게 우리 뜰도 반듯하게 깎아 놓곤 했다. 손으로 잡초를 골라내는 수고가 헛되지 않아 처음보다는 잡초의 수가 많이 줄었다.
이른 봄, 잡초들이 슬슬 올라오려고 준비하는 낌새가 보였다. 올해는 왕성한 번식력을 가진 고것들을 어찌하나 일찍이 결정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쭈그리고 앉아서 풀 뽑는 모습이 동네 사람들 보기에 어떨까 싶기도 하고, 손마디에 약한 통증이 생긴 것을 고려했다. 언젠가 광고지에서 잡초를 통제하는 제품을 본 것이 기억났다. 가게에 가보니 잔디에 뿌리면 잡초가 제거되는 가루가 있었다. 정원관리 업체에서 사용하는 농약 같은 극단의 조치는 아니지만 화학 약품을 선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잡초가 다른 해보다는 훨씬 덜 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난 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잡초들이 생겨났다. 뒤뜰 한가운데에는 찔레같이 생긴 가시가 많은 넝쿨도 자리를 잡았다.
처음 그 가시 넝쿨을 봤을 때 어이가 없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