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2014

나의 놀이터가 될 텃밭





드디어 뒤뜰에 손바닥만한 텃밭을 만들었다. 나무 뿌리와 잡초들이 뒤엉킨 땅을 고르고, 흙을 일구어주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돌보겠노라, 며 남편을 보채서 만든 텃밭이다. , 그리고 남편이 해야 할 한 가지 일이 더 있긴 하다. 흙을 사다가 이곳의 모래투성이 흙과 섞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식물을 심을 수 있는 터가 준비된다.

여기는 흙을 한 삽만 떠내면 모래가 나온다. 숲 속에도 모래가 깔려 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흙에 왜 이리 모래가 많은지 언제인가 가족들과 얘기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둘째 아이의 말에 따르면 목화를 많이 심었던 곳이라 그렇단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과거에 많은 노예들을 동원해 목화 재배를 주요 산업으로 삼았던 미국에서 대표적인 주였다. 목화는 흙에 있는 좋은 성분을 다 흡수하고 땅을 황폐화하는 작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땅은 모래흙으로 변했다. 목화 재배가 점점 줄어들고 이미 거칠어진 땅에는 그나마 생명력이 질긴 소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곳 주변, 꾸며지지 않은 곳에는 정말로 소나무와 참나무가 엄청 많다. 둘째 아이의 말이 일리가 있는 듯도 하다.

우리가 만들 텃밭의 크기를 어림잡아 흙과 퇴비를 예닐곱 푸대 사고, 몇 십 달러가 계산되었다. 썩 내키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이 돈으로 야채 실컷 사 먹어도 되겠다!”
여보, 내가 일 년 동안 가지고 놀 놀잇감 산 거라고 생각해~”

장보러 가서 야채 값이 조금이라도 비싸다고 여겨지면 나중에 먹으면 되지, 하며 눈길을 돌리곤 한다. 그런 내게도 몇 십 달러는 꽤 가슴 떨리는 액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을 강조하며 그에 비하면 흙 값은 별거 아니라는 쪽으로 얘기를 돌렸다.

집에 돌아와 흙 푸대를 나르려던 남편은 흙이 꽤 무거웠는지 아이들을 불러댄다. 힘 쓰는 일은 결국 자기 손이 가야 되는 것 아니냐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농사 짓는 것을 보고, 돕고 자란 남편은 농사가 쉽지 않은 일임을 너무도 자세히 알고 있어서 그런지 작은 텃밭일지라도 섣불리 시작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그리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 지난 여름, 멀지 않은 미래에 식량을 자급자족 해야 되는 때가 올 것이고 그 방법으로는 자연과 인간을 다같이 살리는 자연농법이어야 할 거라며, 자연농법과 관련된 책들에 푹 빠져 있던 남편이다. 하지만 지금은 목회와 내실을 다지는데 더 집중해야 할 때라고 여긴다. 그렇다 보니 텃밭이 정신을 분산시키는 자질구레한 일로만 여겨지는 것이다.

텃밭에 대해 이유 있는 거부를 하고 있는 남편과는 달리 나는 그저 주어진 자투리 공간에 텃밭을 한번 해 보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이다. 이번에는 나의 단순한 고집이 남편의 고상한 이유들을 이겼다. 아니면 텃밭 만들기에 대해 계속 나 몰라라 했다가는 일 년 내내 잔소리를 들을 것 같아 입막음 하기 위해 져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어느 날인가 담장 아래 잔디가 깔리지 않은 땅(미국 사람들은 이런 공간에 보통 나무를 심는 것 같다)을 깔끔하게 골라 놓았다. 그리고 가게에서 사가지고 온 흙과 퇴비를 섞어 고랑을 만드는 일은 둘째 아이와 힘을 합쳐서 남편의 할 일을 마무리 했다.

나는 텃밭에 제일 먼저 쑥갓 씨를 뿌렸다. 고것이 어느새 코딱지 만하게 새싹을 내놓았다. 상추, 가지, 시금치와 방울 토마토는 모종을 사다가 조금씩 심어놓았다. 고추는 지금도 모종을 키우는 중인데, 모종 시작하는 시기를 잘 몰라 너무 늦어 버렸다. 잘 자란 모종을 사다가 심어볼까도 했지만 그냥 내 모종이 자라는 대로 실험 삼아 심어 보련다. 퇴비를 듬뿍 넣은 구덩이에는 호박씨도 심어두었다. 모두들 부디 잘 자라주기를 부탁하며 날마다 물도 정성껏 뿌려주고 있다.

사람들이 텃밭을 가꾸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자연과 친해지기 위해서, 생명의 소중함을 가까이서 느끼기 위해서, 건강한 먹거리를 얻기 위해서…… 나는 그냥 거기 빈 땅이 있어서, 그리고 이민 생활의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놀이터가 될 듯하여 텃밭을 갖는 즐거움을 누리려 한다.

그리고 호박이 잘 자라면 올해 연세가 98세이신 S 권사님께 보여드리고 싶다. 권사님은 이민 오신 뒤로 오랫동안 집 주변에 텃밭을 만들어 온갖 야채를 키우셨다. 그 연세가 되셨는데도 고추, 오이, 호박이나 고춧잎, 깻잎 따위를 얼마나 잘 가꾸시는지 우리 교회 교우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권사님의 열매를 나눠 받았다. 처음 딴 열매는 황송하게도 목사네 집에 주셨다.

지난해까지 권사님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오이와 호박을 얻어 먹었는데, 올해는 권사님의 손에서 키워진 열매들을 나눠주실는지 아직 모르겠다. 권사님은 얼마 전 많이 편찮으셨고 지금도 기운이 무척 없으시다. 권사님께서 다행히도 무기력과 가족들의 만류를 떨치고 텃밭을 가꾸셔서 호박을 우리에게 나눠주시면 못이기는 척 받아 챙겨야지. 올해는 권사님이 잘 드시는 호박을 내가 좀 나눠드릴 수 있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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