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14의 게시물 표시

코를 바짝 누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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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의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는 내내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누를 길이 없다. 사건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네의 슬픔과 실종자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마음은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 나의 어느 이웃은 방송을 보고 있으면 울화통이 치밀어 속이 꽉 막히는 바람에 소화제를 먹어야 했고 더 이상 방송을 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 어느 목회자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탐욕과 부패의 고리로 서로 얽히고설켜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명백하다며 침을 튀며 외쳤다. 지금 여기도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놓치지 않으려고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한국 방송을 들쳐보던 중 세계테마기행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타이완 편이 시작되고 있었다. 여행을 직접 하면서 곳곳을 소개하는 해설자는 타이루거 협곡을 소개하면서 협곡을 관통하는 길이 나게 된 사연을 이야기 했다. 그 길은 타이완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것인데, 도로 공사를 하면서 주변에 살던 많은 원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더 깊은 산속으로 옮겨갔다고 했다.
해설자는 원주민 부족 가운데 쩌우족 사람을 만나 그들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문명이 발달하기 전, 불만 있던 때에 어느 새가 부리로 불을 물고 가서 세상 사람들을 구해주었다는 전설을 기억하는 전통 놀이였다. 깜깜한 밤, 산 위에 불이 준비되어 있다. 청소년쯤 된 아이들은 저마다 들고 있는 횃대에 그 불을 나누어 붙이고 산 아래 정해진 곳까지 불을 운반하면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방송을 보면서 불을 소중히 여기는 자신들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른에서 아이로 전수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불을 든 아이들은 한 줄로 서서 산길을 따라 내려왔다. 그러다가 골짜기를 지나게 되었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듯 자기들이 들고 있는 횃불을 한 곳에 모았다. 불이 붙어 있는 횃대의 끝을 서로 서로 맞붙여 불을 커다랗게 만드는 것이었다. 횃불이 …

손이 가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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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봄방학을 해서 일주일 동안 집에서 쉬고 있다. 이렇게 학교를 가지 않는 동안 다른 여행 계획이 없다면, 꼭 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애틀랜타에 다녀 오는 것이다. 자동차로 세 시간 반을 가야 하는 거리이니 하루 나들이 정도는 된다. 애틀랜타는 미국에 와서 처음 삼 년을 산 곳이라 익숙하기도 하고 마음이 편하다.
집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해서 애틀랜타에 도착하면 얼추 점심 시간이다. 점심으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장면을 먹는다. 첫째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고 가족 모두 동의가 되는 메뉴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장 보기다. 애틀랜타에는 큰 한국가게가 여럿 있어서 한국 식료품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쌀이나 라면 같은 주식 거리처럼 덩어리가 큰 것을 먼저 산다. 그리고 때론 순대나 족발 같이 지금 사는 곳에서 사먹기 어려운 음식들을 챙겨오기도 한다. 그리고 애틀랜타에서 하는 또 한 가지는 미용실에 가는 것이다. 집에서 엉성하게 깎은 머리를 여러 달 하고 있다가 모처럼 대도시 미용실에서 전문가의 서비스를 받는다. 엄청 많은 미용실들 가운데 남성 헤어 컷 가격으로 8달러 받는 곳을 찾아냈다. 팁까지 계산해도 십 달러면 되니 부담 없이 머리를 깎고 온다.
이번 봄방학에도 애틀랜타나 하루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과 첫째 아이는 집에서 한 달에 한번 머리를 깎기 때문에 그런대로 머리 길이가 봐 줄만하다. 하지만 꼭 애틀랜타에 있는 미용실에 가길 원하는 둘째 녀석은 1월에 깎은 머리가 어느새 덥수룩하다. 봄방학에 머리를 다듬으면 좋겠다고 나름 속생각을 가지고 있어나 보다. 한국가게에도 들려 장도 볼 겸 애틀랜타에 갈 구실이 두루두루 생긴 것이다.
그런데 봄방학 하기 한 주 전, 남편이 통일위원회 모임을 하러 애틀랜타에 다녀왔다. 집에 돌아오면서 몇 가지 장도 봐 왔다. 애틀랜타에서 하게 될 한 가지 일을 이미 해결한 것이다. 봄방학 동안 애틀랜타를 방문하지 않게 된다면, 첫째 아이에게는 중국집 자장면 대신 짜파게티라는 해결책이 있지만 둘…

나의 놀이터가 될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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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뒤뜰에 손바닥만한 텃밭을 만들었다. 나무 뿌리와 잡초들이 뒤엉킨 땅을 고르고, 흙을 일구어주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돌보겠노라, 며 남편을 보채서 만든 텃밭이다. 아, 그리고 남편이 해야 할 한 가지 일이 더 있긴 하다. 흙을 사다가 이곳의 모래투성이 흙과 섞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식물을 심을 수 있는 터가 준비된다.
여기는 흙을 한 삽만 떠내면 모래가 나온다. 숲 속에도 모래가 깔려 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흙에 왜 이리 모래가 많은지 언제인가 가족들과 얘기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둘째 아이의 말에 따르면 목화를 많이 심었던 곳이라 그렇단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과거에 많은 노예들을 동원해 목화 재배를 주요 산업으로 삼았던 미국에서 대표적인 주였다. 목화는 흙에 있는 좋은 성분을 다 흡수하고 땅을 황폐화하는 작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땅은 모래흙으로 변했다. 목화 재배가 점점 줄어들고 이미 거칠어진 땅에는 그나마 생명력이 질긴 소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곳 주변, 꾸며지지 않은 곳에는 정말로 소나무와 참나무가 엄청 많다. 둘째 아이의 말이 일리가 있는 듯도 하다.
우리가 만들 텃밭의 크기를 어림잡아 흙과 퇴비를 예닐곱 푸대 사고, 몇 십 달러가 계산되었다. 썩 내키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이 돈으로 야채 실컷 사 먹어도 되겠다!” “여보, 내가 일 년 동안 가지고 놀 놀잇감 산 거라고 생각해~”
장보러 가서 야채 값이 조금이라도 비싸다고 여겨지면 나중에 먹으면 되지, 하며 눈길을 돌리곤 한다. 그런 내게도 몇 십 달러는 꽤 가슴 떨리는 액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을 강조하며 그에 비하면 흙 값은 별거 아니라는 쪽으로 얘기를 돌렸다.
집에 돌아와 흙 푸대를 나르려던 남편은 흙이 꽤 무거웠는지 아이들을 불러댄다. 힘 쓰는 일은 결국 자기 손이 가야 되는 것 아니냐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농사 짓는 것을 보고, 돕고 자란 남편은 농사가 쉽지 않은 일임을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