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2014

코를 바짝 누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종자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하는 단원고 촛불기도회(출처:뉴시스)


고국의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는 내내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누를 길이 없다. 사건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네의 슬픔과 실종자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 나의 어느 이웃은 방송을 보고 있으면 울화통이 치밀어 속이 꽉 막히는 바람에 소화제를 먹어야 했고 더 이상 방송을 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 어느 목회자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탐욕과 부패의 고리로 서로 얽히고설켜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명백하다며 침을 튀며 외쳤다. 지금 여기도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놓치지 않으려고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한국 방송을 들쳐보던 중 세계테마기행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타이완 편이 시작되고 있었다. 여행을 직접 하면서 곳곳을 소개하는 해설자는 타이루거 협곡을 소개하면서 협곡을 관통하는 길이 나게 된 사연을 이야기 했다. 그 길은 타이완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것인데, 도로 공사를 하면서 주변에 살던 많은 원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더 깊은 산속으로 옮겨갔다고 했다.

해설자는 원주민 부족 가운데 쩌우족 사람을 만나 그들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문명이 발달하기 전, 불만 있던 때에 어느 새가 부리로 불을 물고 가서 세상 사람들을 구해주었다는 전설을 기억하는 전통 놀이였다. 깜깜한 밤, 산 위에 불이 준비되어 있다. 청소년쯤 된 아이들은 저마다 들고 있는 횃대에 그 불을 나누어 붙이고 산 아래 정해진 곳까지 불을 운반하면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방송을 보면서 불을 소중히 여기는 자신들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른에서 아이로 전수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불을 든 아이들은 한 줄로 서서 산길을 따라 내려왔다. 그러다가 골짜기를 지나게 되었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듯 자기들이 들고 있는 횃불을 한 곳에 모았다. 불이 붙어 있는 횃대의 끝을 서로 서로 맞붙여 불을 커다랗게 만드는 것이었다. 횃불이 홀로 있으면 골짜기를 타고 불어오는 산바람에 불이 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횃불을 여럿이 함께 모아서 골짜기를 빠져 나오는 동안 좁은 산길을 걷는 아이들은 기꺼이 불편을 견디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한 사람도 불을 꺼트리지 않고 성공적으로 산 밑으로 가져왔다. 불을 들고 옮기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놀이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불을 잘 옮겨놓은 후에야 아이들 얼굴에서 웃음꽃이 피어났다.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세찬 바람이 불 때 옆에 있는 친구들과 힘을 모으니까 불도 지켜내고 친구도, 소수 민족인 자신들의 공동체도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를 쓰린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각성의 소리가 마음을 때린다. 이런 울림이 있는 이들의 각성의 횃불을 한 곳에 모아야 할 때다. 부정과 부패와 탐욕으로 가득 찬 어둠이 몰려와도 함께 모아 만든 환한 불빛 앞에선 어림도 없다. 이 각성의 불꽃을 꺼트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길을 찾아야 한다. 생명을 살리는 길, 진리로 나아가는 길(요한복음 14:6) 말이다. 그래야 내가 살고 나라도 산다.

내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결혼식을 올리는 전날까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중간에 잠시 떨어져 산 적도 있지만 그다지 길지 않았다. 할머니께서는 첫 손녀인 나를 엄청 귀하게 여겨주셨다.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 자랑스러운 보물로 대해주셨다. 그래서 학생으로 지내는 동안은 집안 일을 도통 시키지 않으셨다. 결혼하면 싫어도 다 하게 될 일인데 벌써부터 할 필요 없다며 손에 물을 묻히게 하지 않으셨다(할머니가 말씀하신 대로 결혼해 살다보니 빨래도 하고 김치도 가끔 해 먹고 산다. 그런데 썩 잘 하지 못하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새하얗게 빨래하는 것과 맛난 김치 담그는 솜씨가 생길 것 같지가 않다).

그런데 나에게 한없이 넓은 품을 가진 할머니가 화를 내실 때가 있다. 할머니께서 뭘 찾아오라고 시키셨는데 못 찾아 올 때다. 나도 아이들을 시켜봐서 안다. 물건을 둔 나는 어디에 있는지 훤히 보이지만 아이들은 코 앞에 두고도 못 찾을 때가 많다. 할머니는 일을 건성건성 하는 것을 싫어하셨다. 일을 시작했으면 똑 부러지게 하고 끝을 맺어야 한다고 하셨다. 심부름 시킨 물건을 찾아오지 못하면 할머니 눈에는 대충 살펴보고 온 것으로 보이셨나 보다. 그러면 할머니는 다시 가서 찾아보라며 말씀하신다.

코를 바짝 누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집중해서 찾아보라는 뜻으로 그리 말씀하셨던 것 같다. 어릴 적에는 정말로 코를 바짝 누르고 물건을 찾아내기도 했다. 물론 찾아내지 못하고 할머니의 꾸중을 들을 때도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를 지휘, 감독하는 정부 관리들은 코를 바짝 누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의 무능과 무책임과 부패를 보길 바란다. 바닷물 속에 들어가 실종자를 찾고 있는 잠수부들은 코를 바짝 누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애쓰고 있으리라 믿어보겠다. 그리고 이런 부정과 부패, 탐욕으로 가득 찬 세상, 이대로는 절대 안 돼, 라고 깨닫고 있는 사람들은 코를 바짝 누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생명의 길, 진리의 길로 나서야 한다. 반드시, 멈추지 말고 말이다.

4/18/2014

손이 가는 대로





아이들이 봄방학을 해서 일주일 동안 집에서 쉬고 있다. 이렇게 학교를 가지 않는 동안 다른 여행 계획이 없다면, 꼭 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애틀랜타에 다녀 오는 것이다. 자동차로 세 시간 반을 가야 하는 거리이니 하루 나들이 정도는 된다. 애틀랜타는 미국에 와서 처음 삼 년을 산 곳이라 익숙하기도 하고 마음이 편하다.

집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해서 애틀랜타에 도착하면 얼추 점심 시간이다. 점심으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장면을 먹는다. 첫째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고 가족 모두 동의가 되는 메뉴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장 보기다. 애틀랜타에는 큰 한국가게가 여럿 있어서 한국 식료품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쌀이나 라면 같은 주식 거리처럼 덩어리가 큰 것을 먼저 산다. 그리고 때론 순대나 족발 같이 지금 사는 곳에서 사먹기 어려운 음식들을 챙겨오기도 한다. 그리고 애틀랜타에서 하는 또 한 가지는 미용실에 가는 것이다. 집에서 엉성하게 깎은 머리를 여러 달 하고 있다가 모처럼 대도시 미용실에서 전문가의 서비스를 받는다. 엄청 많은 미용실들 가운데 남성 헤어 컷 가격으로 8달러 받는 곳을 찾아냈다. 팁까지 계산해도 십 달러면 되니 부담 없이 머리를 깎고 온다.

이번 봄방학에도 애틀랜타나 하루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과 첫째 아이는 집에서 한 달에 한번 머리를 깎기 때문에 그런대로 머리 길이가 봐 줄만하다. 하지만 꼭 애틀랜타에 있는 미용실에 가길 원하는 둘째 녀석은 1월에 깎은 머리가 어느새 덥수룩하다. 봄방학에 머리를 다듬으면 좋겠다고 나름 속생각을 가지고 있어나 보다. 한국가게에도 들려 장도 볼 겸 애틀랜타에 갈 구실이 두루두루 생긴 것이다.

그런데 봄방학 하기 한 주 전, 남편이 통일위원회 모임을 하러 애틀랜타에 다녀왔다. 집에 돌아오면서 몇 가지 장도 봐 왔다. 애틀랜타에서 하게 될 한 가지 일을 이미 해결한 것이다. 봄방학 동안 애틀랜타를 방문하지 않게 된다면, 첫째 아이에게는 중국집 자장면 대신 짜파게티라는 해결책이 있지만 둘째 아이 머리는 어쩌나머리 깎자고 왕복 일곱 시간을 운전해서 갔다 오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다. 둘째도 자기 하나 때문에 먼 길 나서길 원하지 않았다. 여름방학이 시작될 때까지 견디겠노라 했다.

고난주간과 겹친 봄방학을 심드렁하게 보내다가 부활주일 맞이 머리 단장을 하기로 했다. 첫째 아이에게 말했다.

이번 주일이 부활주일이잖아. 머리 깨끗하게 깎고 가면 좋겠다,” 그지?”
~”

입술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옆으로 구부리며 귀여운 표정으로 웃는 걸 보니 좋다는 뜻이다. 토요일에 잠자리에 들 때도, 내일은 교회 가자. 잘 자, 하면 꼭 환하게 웃는다. 스물 한 살 된 청년 아이는 주일에 교회 가는 것이 좋은가 보다.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바리깡 사용은 남편이, 가위질은 주로 내가 손이 가는 대로 정성을 다해 모양을 낸다. 뒷머리와 옆머리는 짧게, 앞머리는 이마 위로 가지런히 내리면 된다. 집에서 머리를 깎을 때마다 언제나 같은 헤어스타일이다머리카락의 자른 면이 일정하지도 않고, 오른쪽과 왼쪽 머리 모양이 다르기도 하고, 바가지를 엎어 놓고 자른 것 같은 모양이기도 하지만 괜찮다. 한 눈에 보아 깔끔하게 느껴지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첫째 아이의 머리 깎기가 마무리되어 갈 무렵 남편은 자기도 깎으려는 눈치다. 계획에 없던 일이다.

당신도 깎을 거야?”
그럼!”

남편은 머리 숱이 점점 없어지는 터라 머리 깎는 시간이 아이보다 훨씬 적게 걸린다. 남편의 머리 깎기는 온전히 내 몫이다. 머리를 깎아 놓고 자꾸 웃음이 나면 그건 잘못 깎았다는 뜻이다. 남편의 짧아진 머리 모양이 산뜻해 보이니 그런 대로 안심이다.

 두 사람 머리 깎기를 마치자 둘째 녀석도 머리를 디민다. 사춘기 청소년 치고는 수더분한 편이다. 멋 내는데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저 몇 달에 한 번 머리 깎는 것만 자기 마음에 드는 미용실에 가려고 하는 정도다. 나의 머리 깎는 솜씨가 우스운 것을 알기에 자기 머리를 맡기려고 하지 않았었다. 여름방학 때 애틀랜타에 갈 때까지 참는다고 하더니 무슨 마음인지 자기 머리도 깎아달라고 한다. 나 또한 열 여덟 살 고등학생의 머리 깎기에 대한 깜냥도 없이 그러자고 했다.

인터넷에서 요즘 잘나가는 남자 배우 김수현의 이미지를 검색했다. 그나마 젊은 청년의 헤어 스타일을 살펴볼 생각이 난 것이 다행이다. 뒷머리와 옆머리는 짧지만 머릿속 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길이이고, 앞머리는 조금 길어서 이마가 보이게 넘어갈 정도라는 것을 되뇌며 머리 손질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다듬고 나니 웃음이 자꾸 실실 나온다. 앞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낸 것 같다. 아이가 실망할까 봐 대놓고 웃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던 남편이 바리깡을 들고 나섰다. 요즘은 짧은 머리가 유행이라며 머리를 점점 짧게 자른다. 어찌 어찌 이발을 마쳤다.

머리를 감으러 가는 둘째에게 헤어젤을 발라 앞머리를 뒤로 넘겨보라고 했다. 머리를 감고 머리 손질을 하고 나온 아이에게 괜찮네, 하며 바람을 잡았다. 둘째도 큰 불평이 없다. 보통 때보다 짧아진 머리가 아주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렇게 한 나절 동안 우리 집 세 남성의 부활주일 맞이 머리 손질 행사를 마쳤다. 올해 부활주일은 깔끔하고 산뜻한 모습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앞으로 둘째 녀석의 머리를 깎아줄 기회가 얼마나 더 있을 지 모르겠다. 부모에게 머리 깎아달라고 부탁을 하는 아들, 내 아들이 멋있길 바라는 마음을 실은 손이 가는 대로 아이의 머리를 요리조리 만지는 부모. 서로를 의지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엄마, 아빠가 깎아준 어설픈 머리 모양을 하고 다니던 때가 부활주일 즈음이었음을 기억해주길……

***고국에서 들려온 여객선 세월호의 침몰 소식에 마음 한 켠이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다. 이 소식을 함께 나눈 이민자들도 함께 울고 함께 당황스러워 했다. 갑작스런 사고로 희생된 이들과 그 유가족에게 멀리서나마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실종자들도 하루 속히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한다

4/11/2014

나의 놀이터가 될 텃밭





드디어 뒤뜰에 손바닥만한 텃밭을 만들었다. 나무 뿌리와 잡초들이 뒤엉킨 땅을 고르고, 흙을 일구어주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돌보겠노라, 며 남편을 보채서 만든 텃밭이다. , 그리고 남편이 해야 할 한 가지 일이 더 있긴 하다. 흙을 사다가 이곳의 모래투성이 흙과 섞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식물을 심을 수 있는 터가 준비된다.

여기는 흙을 한 삽만 떠내면 모래가 나온다. 숲 속에도 모래가 깔려 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흙에 왜 이리 모래가 많은지 언제인가 가족들과 얘기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둘째 아이의 말에 따르면 목화를 많이 심었던 곳이라 그렇단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과거에 많은 노예들을 동원해 목화 재배를 주요 산업으로 삼았던 미국에서 대표적인 주였다. 목화는 흙에 있는 좋은 성분을 다 흡수하고 땅을 황폐화하는 작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땅은 모래흙으로 변했다. 목화 재배가 점점 줄어들고 이미 거칠어진 땅에는 그나마 생명력이 질긴 소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곳 주변, 꾸며지지 않은 곳에는 정말로 소나무와 참나무가 엄청 많다. 둘째 아이의 말이 일리가 있는 듯도 하다.

우리가 만들 텃밭의 크기를 어림잡아 흙과 퇴비를 예닐곱 푸대 사고, 몇 십 달러가 계산되었다. 썩 내키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이 돈으로 야채 실컷 사 먹어도 되겠다!”
여보, 내가 일 년 동안 가지고 놀 놀잇감 산 거라고 생각해~”

장보러 가서 야채 값이 조금이라도 비싸다고 여겨지면 나중에 먹으면 되지, 하며 눈길을 돌리곤 한다. 그런 내게도 몇 십 달러는 꽤 가슴 떨리는 액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을 강조하며 그에 비하면 흙 값은 별거 아니라는 쪽으로 얘기를 돌렸다.

집에 돌아와 흙 푸대를 나르려던 남편은 흙이 꽤 무거웠는지 아이들을 불러댄다. 힘 쓰는 일은 결국 자기 손이 가야 되는 것 아니냐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농사 짓는 것을 보고, 돕고 자란 남편은 농사가 쉽지 않은 일임을 너무도 자세히 알고 있어서 그런지 작은 텃밭일지라도 섣불리 시작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그리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 지난 여름, 멀지 않은 미래에 식량을 자급자족 해야 되는 때가 올 것이고 그 방법으로는 자연과 인간을 다같이 살리는 자연농법이어야 할 거라며, 자연농법과 관련된 책들에 푹 빠져 있던 남편이다. 하지만 지금은 목회와 내실을 다지는데 더 집중해야 할 때라고 여긴다. 그렇다 보니 텃밭이 정신을 분산시키는 자질구레한 일로만 여겨지는 것이다.

텃밭에 대해 이유 있는 거부를 하고 있는 남편과는 달리 나는 그저 주어진 자투리 공간에 텃밭을 한번 해 보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이다. 이번에는 나의 단순한 고집이 남편의 고상한 이유들을 이겼다. 아니면 텃밭 만들기에 대해 계속 나 몰라라 했다가는 일 년 내내 잔소리를 들을 것 같아 입막음 하기 위해 져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어느 날인가 담장 아래 잔디가 깔리지 않은 땅(미국 사람들은 이런 공간에 보통 나무를 심는 것 같다)을 깔끔하게 골라 놓았다. 그리고 가게에서 사가지고 온 흙과 퇴비를 섞어 고랑을 만드는 일은 둘째 아이와 힘을 합쳐서 남편의 할 일을 마무리 했다.

나는 텃밭에 제일 먼저 쑥갓 씨를 뿌렸다. 고것이 어느새 코딱지 만하게 새싹을 내놓았다. 상추, 가지, 시금치와 방울 토마토는 모종을 사다가 조금씩 심어놓았다. 고추는 지금도 모종을 키우는 중인데, 모종 시작하는 시기를 잘 몰라 너무 늦어 버렸다. 잘 자란 모종을 사다가 심어볼까도 했지만 그냥 내 모종이 자라는 대로 실험 삼아 심어 보련다. 퇴비를 듬뿍 넣은 구덩이에는 호박씨도 심어두었다. 모두들 부디 잘 자라주기를 부탁하며 날마다 물도 정성껏 뿌려주고 있다.

사람들이 텃밭을 가꾸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자연과 친해지기 위해서, 생명의 소중함을 가까이서 느끼기 위해서, 건강한 먹거리를 얻기 위해서…… 나는 그냥 거기 빈 땅이 있어서, 그리고 이민 생활의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놀이터가 될 듯하여 텃밭을 갖는 즐거움을 누리려 한다.

그리고 호박이 잘 자라면 올해 연세가 98세이신 S 권사님께 보여드리고 싶다. 권사님은 이민 오신 뒤로 오랫동안 집 주변에 텃밭을 만들어 온갖 야채를 키우셨다. 그 연세가 되셨는데도 고추, 오이, 호박이나 고춧잎, 깻잎 따위를 얼마나 잘 가꾸시는지 우리 교회 교우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권사님의 열매를 나눠 받았다. 처음 딴 열매는 황송하게도 목사네 집에 주셨다.

지난해까지 권사님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오이와 호박을 얻어 먹었는데, 올해는 권사님의 손에서 키워진 열매들을 나눠주실는지 아직 모르겠다. 권사님은 얼마 전 많이 편찮으셨고 지금도 기운이 무척 없으시다. 권사님께서 다행히도 무기력과 가족들의 만류를 떨치고 텃밭을 가꾸셔서 호박을 우리에게 나눠주시면 못이기는 척 받아 챙겨야지. 올해는 권사님이 잘 드시는 호박을 내가 좀 나눠드릴 수 있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