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2014

부러진 나무, 구부러진 나무





날씨가 좀처럼 따뜻해지질 않는다. 올해 첫머리에 기온이 뚝 떨어져 이곳에선 흔하지 않은 눈도 보고 좋다고 했더니, 그 추위가 쉽게 사라지지 않아 실내를 따뜻하게 하기 위한 전기요금이 엄청 불어나고 바깥 운동을 하지 못하는 찌뿌둥함도 쌓여 있다. 기온이 조금 오른 날에도 운동 삼아 하는 숲 속 걷기를 아침에는 추워서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오후에 햇볕이 한참 풀렸다 싶을 때 나갔다 온다. 걷는 운동도 그나마 일 주일에 한 번 하면 다행이다.

모처럼 날씨도 좋고 시간도 나서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늘 가던 길을 잡아 걷기 시작했다. 춥다 춥다 해도 세상 만물이 제 역할을 하며 움직이고 있듯이 아직도 칙칙한 겨울 색깔을 벗겨내지 못한 나무에도 새순이 제법 올라와 있다. 새 생명을 세상 밖으로 기꺼이 밀어내고 있는 나무들이 대견하다. 그들이 내어놓는 새순을 바라보면 경이롭고 앙증맞고 귀하다.

그 모양과 색도 가지각색이어서 오래 두고 볼 요량으로 늘 가지고 다니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거의 실패다. 핸드폰으로 어떤 대상을 가까이 찍으면 흐릿하게 나온다(요즘 스마트폰에 근접 촬영 기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 것은 아이폰이다). 사진이 선명하게 찍히지 않는 줄 알면서도 자꾸 버튼을 눌러대는 이유는 새순을 볼 수 있는 시간은 한 때, 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다, 고 혹시라도 제대로 찍힌 사진이 하나 걸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보이는 새순마다 찍어댔다.

그렇게 숲길을 걷다가 길을 가로질러 쓰러져 있는 소나무를 만났다. 세찬 바람이 불거나 큰 비가 온 다음에 숲을 찾아가면 쓰러져 있는 나무들을 가끔 보게 된다. 나무가 늙었거나 병들었거나 약해서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 같다. 제 삶을 다한 나무가 안쓰러워 한 번 더 살펴보게 된다. 하지만 덩치가 큰 나무는 쓰러져 있어도 그 기운이 당당하여 근처에 가는 것이 망설여지기도 한다. 이번에 만난 소나무는 그다지 굵지도 않았고 밑동을 보니 튼실해 보이지도 않았다. 올 겨울 추위와 바람은 그 소나무에게 숲 속 다른 나무와 동물들을 위해 거름이 되어달라고 부탁했고, 그 나무는 기꺼이 순응을 한 것인지……

공원 관리인들이 어떤 절차에 따라 쓰러진 나무를 치우는지 모르겠다. 쓰러진 나무는 그렇게 길을 가로 막은 채 몇 개월이고 그대로 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자리에 가보면 톱으로 잘려져 길을 다시 터 놓는다. 잘려진 나무 토막들은 숲 속에 그대로 둔다. 다시 흙으로 돌아가라는 배려인 듯싶다.





죽은 나무를 뒤로 하고 다시 숲길을 걸었다. 이번엔 늘 다니던 길에서 일 년도 훨씬 전에 쓰러진 또 다른 나무에 다다랐다. 이 나무는 참나무의 일종으로, 쓰러지기는 했어도 아직까지 나무 밑동에 연결되어 있다. 이 나무 밑을 지나려면 고개를 살짝 숙여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은 내려서 지나가야 한다. 길을 가로질러 낮게 쓰러져 있어서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만 아직 생명이 붙어 있어서 그런지 공원 측에서는 이 나무를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쓰러져서 구부러진 모습이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똑바로 서 있는 다른 나무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으나 여전히 새싹과 줄기를 내며 생명 활동을 하고 있는 이 나무가 다시 보였다. 세상에! 다른 나무의 새싹은 조그맣게 열리고 있는데 이 나무는 새 줄기가 쭉쭉 뻗어 나와 새로 나온 잎들도 잔뜩 달고 있었다. 대단한 생명력이다. 그 나무 아래로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왕성한 기운을 나눠주며 좋아라, 하는 것만 같았다.

나무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뿌리가 달린 밑동에서 떨어져 나간 소나무는 초록 솔잎이 달려 있었지만 누가 봐도 죽은 나무다. 그런데 구부러져 있을지언정 밑동에 붙어 있는 나무에서는 생명을 보는구나, 생각했다. 구부러진 나무가 있는 길을 벗어나는데 금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첫번째로 암송했던 성경 구절이 문뜩 떠올랐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5)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님께만 붙어 있으면 산다는 말씀이다. 난 이 말씀을 굳게 믿는다. 어둠이 나를 삼킬 듯이 덤벼들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을 겨우겨우 혹은 억지로라도 붙잡고 있으면 된다. 힘든 때를 벗어나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소심한 몸짓으로 허우적거려도 괜찮다. 하늘을 바라볼 수만 있으면 된다. 말라빠져 죽은 가지처럼 보여도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꼬~옥 붙어 있으면 된다. 그러면 언젠가 가지에 물이 오르고 새싹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난 그렇게 믿는다.

숲 속에서 만난 나무들에게 고마움을 남기고 공원을 총총히 떠났다.

3/21/2014

더 진지하게




3월 첫 주간에 재의 수요일을 보내고 사순절 기간을 살고 있다. 재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으며,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지어다, 는 말씀을 들었다. 짧은 의식이지만 뭔가 모르게 숙연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올해 재의 수요일에서는 그 잔잔한 속삭임의 의미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잿물이 너무 질척하게 개어진 탓에 이마와 콧등을 간질이며 흘러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와 섞여서 흘러내리는 올리브유를 닦아낼 휴지를 가지러 화장실로 달려가야만 했다. 예배가 끝남과 동시에 여러 사람이 휴지를 찾아 허둥지둥 댔다.

어쩌나…… 난 그런 웃음 나는 상황이 싫지 않으니 말이다. 예수님이 겪으신 십자가의 고난, 예수님 때문에 어떤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나, 우리를 온전히 사랑하시는 예수님처럼 살고 있나, 이런 거창한 주제들은 흘러내리지 않는 재를 이마에 바르고 있을 지라도 음미할 여유가 없다. 수요일 저녁예배가 끝나고 빨리 집에 가서 씻어야지, 하는 마음뿐이다. 그런데 얼굴 위로 줄줄 흘러내리던 비실비실한 잿물에 대한 기억 덕분에, 재의 수요일은 진작 지났어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한 번 더 묵상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렇게 사순절은 이미 시작되었는데 남편은 그제서야 금식 얘기를 꺼냈다. 교회 친교실과 교실을 늘리는 것이 간절히 필요하다면 하루에 한 끼, 금식한 끼니만큼 헌금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한 끼에 들어가는 식사 비용을 금식한 끼니 수대로 모아 건축에 필요한 헌금으로 드리자는 내용이었다. 교우들과 이러한 생각을 나누면 어떨까 물어왔다. 밥 굶는 것도 힘든데 굶은 만큼 헌금을 하라니, 난 관두라고 했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에게 금식하라고 하면 힘들어서 일 못 한다, 이미 하루에 두 번만 식사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무엇보다 나처럼 저혈압인 사람은 끼니를 거르면 까부라져서 안 된다, 며 오지랖 넓은 걱정을 쏟아냈다. 남편은 무엇인가 생각을 해 보는 표정이었다.

내 말이 그렇게 일리가 있었나?’

그러고 나서 돌아온 사순절 첫 번째 주일 예배 때, 남편은 금식에 대한 성경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했다. 얄미운 남편. 차라리 물어보지나 말고 설교를 하던지. 금식은 꿈에서라도 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금식이라는 말에 걱정부터 한 보따리 풀어놓는 믿음 없는 사람을 만들어 놓았다(남편에게는 이런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안다. 나 혼자 찔려서…).

금식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설교했다.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 뜻을 분별하는 금식이 될 거라고 했다. 금식 기도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기도하는 것이기에 그 간절함이 더 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남은 사순절 기간 동안 자기를 위해, 교회를 위해 금식 하자고 설교를 했다.

금식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 알려주었다. 예수님처럼 사십 일 금식(이건 아무나 할 수 없다고 단단히 일러주었다), 다니엘처럼 물과 채식만 하는 열흘 금식, 에스더 같이 삼 일 금식, 그리고 몸 비우기 운동에서 하는 일 주일 금식도 예로 들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금식하는 기색을 내지 말고,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는 마태복음 6장의 말씀도 함께 전해주었다. 본인은 하루 한 끼 금식을 해보련다고 했다.

남편은 점심을 먹지 않기로 했다. 그럼 나는 어쩐다…… 내 자신을 위한 금식이라면 꾸준히 밥 잘 먹으면서 기도하면 된다고 했을 것이다. 한편, 교회를 위해서라고 하면 조금 더 간절해지는 마음이 있긴 하다. 그래서 다니엘처럼 점심을 채식으로 하리라 마음 먹었다. 평소에 육류를 워낙 좋아하는지라 그걸 절제하되 굶지는 않겠다는 속셈으로 채식을 선택한 것이다.

점심 때가 되면 혼자 먹을 거리를 야무지게 준비한다. 아침에 먹다 남은 과일 조각에 어린 시금치 잎이나 양상추를 보탠다. 그 위에 그리크 요거트 두 숟가락과 마른 크랜베리 한 꼬집을 올린다. 말이 절제지 푸짐한 샐러드 한 접시가 된다. 이건 틀림없이 금식과 상관 없이 한 끼를 해결하는 모양새다.

, 꼭 만나야 할 사람과 약속이 생겨서 점심을 먹게 되면 맛있게 먹을 작정이다. 사람을 만나 삶을 나누다 보면 홀로 조용히 샐러드 한 접시를 마주할 때와는 다른 은혜를 경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순절 동안 조~금 절제하는 한 끼 식사를 하겠다는 다짐은 상황에 따라 바뀔 가능성이 많은 나와의 약속 같지 않은 약속인 것이다.

사순절 기간 동안만이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절제하면서 예수님의 고난을 조금이라도 경험해보자는 차원에서 여러 가지 제안을 하기도 한다. 커피 안 마시기, TV 드라마 안 보기, 아이스크림 안 먹기(어느 어린이의 결심), 쇼핑 덜 하기, 낮잠 안 자기 따위다. 여기에 이번에 실행하고 있는 한 끼 곡물과 육류 안 먹기도 추가해 본다. 편리하고 가벼워 보이는 제안들 같아도 사십 일을 지속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러한 제안들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그 순간에는 마음 속에 정한 기도가 떠오르곤 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마음에 정한 기도와 절제하는 삶을 얼마만이라도 살아보는 것이 일상 생활을 유지하며 기도하는 것보단 더 간절함이 있는 것 같다. 절제의 방법으로 선택한 야채 한 접시를 앞에 두고 보니, 한 끼를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남편이 나보다 더 진지하게 여겨지는 마음을 부인할 수 없다

3/14/2014

우리 교회는


봄이 오는 우리 교회 


벌써 금요일이다. 금요일 저녁에는 성경공부 모임이 있다. 그 모임에서 성경구절을 암송해야 하는데 아직도 외우지 못했다.

수요일 저녁 예배 때, 몇몇 교우들이 성경을 얼마나 외웠는지 서로 확인하며 이번에 외워야 할 구절은 잘 외워지지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느 권사님이 외운 것을 큰 목소리로 암송해 보이셨다. 아직 완전히 외워지지가 않으셨는지 중간 중간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옆에 계시던 다른 교우들이 틀린 부분을 고쳐주기도 하고,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대신 외워주기도 하셨다. 모두가 비슷하게 암송을 어려워하는 모습에 깔깔깔 호호호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눈치를 가만히 보니 모두들 거의 다 외우신 듯 하였다. 부끄럽게도 나만 그때까지 성경을 들쳐보지도 않은 것이다.

2월에 시작된 이번 성경공부에 참여한 교우들은 한 주 한 주 시간이 흐를수록 신선한 감동을 나눠주고 계신다. 성경과 성경공부 교재를 넣는 예쁜 책가방을 서너 분이 마련하셨다. 그 다음에는 연필 서너 자루를 담은 필통을 몇 분이 보여주셨다. 성경암송이 시작되자 인덱스카드에 성경구절을 적어가지고 다니면서 외우시는 분, 종이에 적어서 냉장고에 붙여놓고 오고 가며 외우시는 분, 성경구절을 복사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시며 직장에서도 외우시는 분, 종이에 여러 번 쓰며 외우시는 분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성경공부를 여러 번 경험해 보신 분들도 있고, 처음이신 분들도 있다.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이 그저 좋은 분들도 있고, 하나님 · 예수님에 대해 새로 알게 되는 부분이 있어 좋다고 고백하시는 분들도 있다. 이렇게 성경공부에 열심을 내시는 분들은 어느 집사님과 나를 빼고는 모두 6,70대의 집사님, 권사님들이시다. 그리고 암송 숙제를 잊어버리거나 제일 늦게 외우는 뺀질이는 나 뿐이다.

우리 교회는 창립 17주년을 얼마 전에 보냈다. 교회가 창립된 지 17년 동안 열 명에 가까운 목회자가 바뀌었다. 그 시간 동안 그렇게 많은 목회자가 바뀌었다는 것은 교회 안에 불편하고 불안정한 일들이 많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자랑스럽지 않은 이야기들은 너무 가벼워 천 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둥둥 퍼져간다. 이곳 작은 한인 공동체 안에서 우리 교회의 변화무쌍한 사정은 한인들 사이에서 늘 심심풀이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목회자들 모임에 나가보면 애틀랜타나 다른 지역에 있는 목회자들도 우리 교회 소문을 들어 알고 있는 것을 티 내기도 했다.

나의 남편인 목사가 우리 교회에 부임한 후 지난 3 년 동안 교우들과 지역 한인들은 우리 가족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부임한 첫 해에 교우들 집집을 돌며 심방을 했었다. 심방하던 중 미국 남자 집사님은 대놓고 이렇게 물어보셨다.

당신은 이 교회에 얼마 동안 있을 거요?”
글쎄요. 3, 5…… 하나님만 아시겠지요.”

생각지도 않은 질문에 난 얼렁뚱땅 그렇게 대답했다. 그 집사님은 의구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우릴 바라보셨었다.

우리 교회는 김씨네 교회라는 소문도 달고 다닌다. 교우들 가운데 어느 한 가족의 구성원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나아갈 바를 정할 때에 다수인 한 가족의 의견이 힘을 가질 수 있는 구조인 것은 틀림없다. 지난 날 그들의 힘이 교회를 좌지우지 했는지도 모르겠다.

또 우리 교회는 현재 어느 교단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남편이 아틀란타 한인연합감리교회에 부목사로 있었던 인연으로, 아틀란타한인교회의 파트너십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 교회는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분리되어 창립이 되었으나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그 교단에 들어가지 못했다. 기독교대한감리교회에도 잠시 가입을 했었으나 다시 탈퇴를 하였다고 한다.

지난 날 안타까운 역사의 연장선 속에 있는 우리 교회는 부흥되는 데 걸림돌을 많이 갖고 있다. 하지만 교회의 주인이시며 머리 되신 예수님이 계시고, 교회가 교회답게 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믿고 따르는 교우들이 점점 늘어난다면, 과거가 교회 부흥의 발목을 잡을 수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과거의 아픔은 우리의 믿음을 정금과 같이 단련하는 불쏘시개로나 사용하면 된다. 우리에게는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일만 남아 있을 뿐이다.

요즘 우리 교회는 조금씩 밝아지고 꿈틀거리고 있다. 새로운 가정들이 우리 교우가 되었다. 올해부터는 성경공부도 여러 모양으로 하고 있고, 비전세우기 세미나도 하고, 친교실과 교실을 늘리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인 방안들도 찾아보고 있다.

여전히 교우와 목회자가 서로 조심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쁘지 않다. 우리 교회에서 신앙 생활 하면서 교우도 행복하고 목회자와 그의 가정도 행복해서, 그 행복의 물결이 지역 한인들에게도 가 닿기를 기도한다. 이제는 사랑으로 소문난 교회가 되기를 온 교우가 함께 기도하고 있다.

그나저나 금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한 사람씩 돌아가며 외우는 성경구절이 무엇인지 어서 찾아보아야겠다. 성경공부 모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3/07/2014

아이들은 자란다





나의 아이들보다 나이가 아래인 어린 아이들을 보면 참 귀엽다. 나의 아들들은 미국 나이로 치면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곧 졸업할 나이다. 아들들을 그 나이만큼 키워봐서 그런지 그보다 어린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조금 여유가 생긴다. 아들만 키워봤으니 딸이나, 저마다 다른 성격의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적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아이들을 보면 그냥 귀엽다는 느낌이 먼저 들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이 성가대를 다시 시작했다. 그 동안 아이를 키우는데 더 집중하다가 기회가 되어 성가대에 합류하셨다. 집사님과 아이는 주일 예배 때 적어도 성가대 찬양 시간이 지나기까지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예배 시작하기 전이나 끝난 다음에 하는 성가 연습 시간에도 아이는 엄마를 찾지 않는다. 어느새 아이가 꽤 자라서 엄마와 분리되어 잘 지내는 듯하다.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의 시간을 가질 줄 알게 되었고, 그만큼 엄마에게도 엄마만의 시간이 주어지는 때가 되었나 보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예배를 드렸을 아이는 아멘이라고 말하는 타이밍을 아주 잘 안다. 찬송 부를 때 마지막 절을 어떻게 아는지, 마무리 되는 부분에서 맑고 힘찬 목소리로 ~~”을 음 높이에 맞추어 부른다. 또 기도가 끝나는 시점에서도 역시 티 없이 맑은 아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아이의 깨끗한 아멘은 자주 들을 수는 없다. 아이는 예배실 밖에서 엄마와 다른 아기 엄마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다. 가끔 그 아이의 아멘 소리를 들을 때면, 처음 듣는 곡조의 특별 찬양을 한 곡 들은 것처럼 신선하다.

이번 주일에는 점심 먹고 성가 연습을 하는데 엄마 곁에서 슬그머니 잠드는 그 아이를 보았다. 자기를 돌보지 않고 성가 연습만 하려는 엄마에게 잠투정을 할만도 한데 말이다. 이불도 없이 딱딱한 긴 의자 위에서 어느새 잠든 아이의 모습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또 다른 젊은 집사님은 주일 예배 때 몇 주 동안 신시사이저를 연주하게 되었다. 집사님에게는 어린 자녀가 둘이 있다. 아직은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을 제일 편안해 하는 나이라, 아이들이 예배 시간에 엄마와 떨어져 있을 수 있으려나 살짝 긴장하고 있었다.

예배는 시작되어 집사님은 예배실에서 연주를 하고, 아이는 친할머니께서 돌봐주시기로 했다. 예배 시간이 꽤 흘러 집사님이 반주하고 있는데 아이가 엄마를 찾아왔다. 집사님은 아이와 더불어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도록 나에게 기도를 부탁했었다. 그 집사님과 가까운 거리에 앉아 있던 나는 그 모자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일에도 부끄러움을 잘 타는 집사님은 얼굴이 벌써 홍당무가 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오셔서 아이를 데려가려고 하셨지만 아이는 싫다고 했다. 아이는 그저 엄마 옆에 있고 싶은 것 같았다. 집사님은 할머니께 그냥 두시라고 눈짓을 보냈다. 아이는 엄마의 몸에 기대었다. 그 뿐이었다. 자기를 떨어뜨려 놓은 엄마를 원망하며 칭얼거릴 만도 한데 말이다. 그리고 집사님은 예배 끝부분에 있는 결단의 찬송가를 연주하셨다. 허리를 구푸려 엄마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엄마가 연주하는 찬송 소리를 듣는 아이의 모습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만약 아이들이 엄마가 성가대 연습하는 동안 엄마를 찾아대거나, 성가대 자리에 있는 엄마를 찾아 강단 위에 올라오거나, 엄마가 악기를 연주하지 못하게 울거나 한다면……. 그런 아이들이 예배를 소란스럽게 할까 봐 애가 타는 사람은 누구보다 부모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통제하는데 부모만큼 잘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아이들이 더욱 자라서 스스로 예배를 드릴 때까지 부모가 즐거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아이들의 그런 모습들도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나는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낼 것이다. , 예배 드리기를 사모하는 부모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빌 것이다. 예배에 집중하는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나의 아이들도 많이 컸고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린 아기들이 예쁘게 보이는 것이지, 나의 아들들이 어렸을 때는 이렇게까지 마음이 넉넉하지 못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둘째 아이가 여섯 살쯤이었나…… 첫돌을 맞은 아이를 축하하기 위해 교우네 집에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었다. 그 교우 집에는 친척들도 초대하여서 우리 가족을 포함하여 이십 여명이 되었던 것 같다. 생일 축하 예배를 드리려고 넓은(거의 45(?) 아파트) 거실에 둥글게 앉았다.

그런데 둘째 아이가 갑자기 사람들이 앉아 있는 가운데 텅 빈 공간에 드러눕기 시작했다. 웬 장난?, 이라고 생각하면서 누워있는 아이의 발목을 잡아 끌어내었다. 그랬더니 다시 꿈틀꿈틀 등으로 밀어 가운데 빈 공간으로 가는 것이다.

아니, 이 녀석 왜 그래!’

다시 아이의 발목을 잡아 당긴다. 그리고는 가운데로 가지 못하게 꼬옥 끌어 안는다. 그러면 몸부림을 치며 내 팔을 벗어나 또 가운데로 가려고 하는 것이다. 예배는 시작되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장난인지 심술인지, 도저히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아이의 손목을 잡고 집으로 걸어오는 동안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다스리려고 나름 애썼다. 집에 도착하여 아이에게 이유를 물었다. 대답이 없다. 더 어이가 없었다. 말에 화를 실어 야단을 한참 쳤다. 이유도 모르면서 뭐라고 야단을 쳤는지 모르겠다. 예배 드리는데 어찌 그럴 수 있느냐, 뭐 그랬을 것이다.

그 상황이 벌어진 당시의 교회에 부임하기 전에는 도시공동체를 지향하는 교회에서 목회를 했었다. 그 교회에는 우리 아이들과 같은 또래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어른들 예배 시간에 아이들끼리 잘 어울려 놀았다. 그러다가 새로 부임한 작은 교회는 또래 아이들도 별로 없고, 놀 공간도 작았고, 아이들을 따로 돌볼 여력이 없었다.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하는 것은 남편인 목사가 하고, 그 외의 모든 것을 신경 써야 했다. 그렇다 보니 내가 아이들에게 방해 받지 않기 위하여 예배 시간에 조용히 하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

둘째 아이는 무조건 조용히만 하라는 내게 유치원에서 배운 욕을 종이에 써서 주기도 했다(지금도 그 종이를 보관하고 있다. 재미있어서). 또 한 동안은 예배가 시작되려고만 하면 괜한 짜증을 내어서 힘든 때도 있었다. 추측해보건대 아마 돌집에서 벌어진 일도 이런 일련의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힘겨운 시절이 어느새 흘러가고 아빠의 설교에 대해 코멘트도 하고, 무엇이 의미 있는 삶인지 함께 얘기할 만큼 아이들이 자라났다. 큰 아이는 교회 어르신들의 배려로 주일 예배가 끝나면 노트북,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정리하고, 모아진 헌금도 사무실로 나르고, 목사님의 성경과 설교 원고도 정리하여 목사님 방에 갖다 놓는다. 작은 아이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예배 찬송과 성가대 찬양을 돕는다. 작고 어설픈 일이지만 아이들은 기쁘게 감당하고 있다.

우리 교회 어린 아이들도, 내 아들들도 계속 자라면서 부모님과 함께 예배 드리며, 부모님의 신앙을 본받아 믿음의 가문을 이어가길 바란다. 살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만날 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던 부모님의 신앙을 떠올리며 살아갈 힘을 얻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