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14의 게시물 표시

부러진 나무, 구부러진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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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좀처럼 따뜻해지질 않는다. 올해 첫머리에 기온이 뚝 떨어져 이곳에선 흔하지 않은 눈도 보고 좋다고 했더니, 그 추위가 쉽게 사라지지 않아 실내를 따뜻하게 하기 위한 전기요금이 엄청 불어나고 바깥 운동을 하지 못하는 찌뿌둥함도 쌓여 있다. 기온이 조금 오른 날에도 운동 삼아 하는 숲 속 걷기를 아침에는 추워서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오후에 햇볕이 한참 풀렸다 싶을 때 나갔다 온다. 걷는 운동도 그나마 일 주일에 한 번 하면 다행이다.
모처럼 날씨도 좋고 시간도 나서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늘 가던 길을 잡아 걷기 시작했다. 춥다 춥다 해도 세상 만물이 제 역할을 하며 움직이고 있듯이 아직도 칙칙한 겨울 색깔을 벗겨내지 못한 나무에도 새순이 제법 올라와 있다. 새 생명을 세상 밖으로 기꺼이 밀어내고 있는 나무들이 대견하다. 그들이 내어놓는 새순을 바라보면 경이롭고 앙증맞고 귀하다.
그 모양과 색도 가지각색이어서 오래 두고 볼 요량으로 늘 가지고 다니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거의 실패다. 핸드폰으로 어떤 대상을 가까이 찍으면 흐릿하게 나온다(요즘 스마트폰에 근접 촬영 기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 것은 아이폰이다). 사진이 선명하게 찍히지 않는 줄 알면서도 자꾸 버튼을 눌러대는 이유는 새순을 볼 수 있는 시간은 한 때, 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다, 고 혹시라도 제대로 찍힌 사진이 하나 걸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보이는 새순마다 찍어댔다.
그렇게 숲길을 걷다가 길을 가로질러 쓰러져 있는 소나무를 만났다. 세찬 바람이 불거나 큰 비가 온 다음에 숲을 찾아가면 쓰러져 있는 나무들을 가끔 보게 된다. 나무가 늙었거나 병들었거나 약해서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 같다. 제 삶을 다한 나무가 안쓰러워 한 번 더 살펴보게 된다. 하지만 덩치가 큰 나무는 쓰러져 있어도 그 기운이 당당하여 근처에 가는 것이 망설여지기도 한다. 이번에 만난 소나무는 그다지 굵지도 않았고 밑동을 보니 튼실해 보이지도 않았다. 올 겨…

더 진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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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첫 주간에 재의 수요일을 보내고 사순절 기간을 살고 있다. 재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으며,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지어다, 는 말씀을 들었다. 짧은 의식이지만 뭔가 모르게 숙연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올해 재의 수요일에서는 그 잔잔한 속삭임의 의미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잿물이 너무 질척하게 개어진 탓에 이마와 콧등을 간질이며 흘러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와 섞여서 흘러내리는 올리브유를 닦아낼 휴지를 가지러 화장실로 달려가야만 했다. 예배가 끝남과 동시에 여러 사람이 휴지를 찾아 허둥지둥 댔다.
어쩌나…… 난 그런 웃음 나는 상황이 싫지 않으니 말이다. 예수님이 겪으신 십자가의 고난, 예수님 때문에 어떤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나, 우리를 온전히 사랑하시는 예수님처럼 살고 있나, 이런 거창한 주제들은 흘러내리지 않는 재를 이마에 바르고 있을 지라도 음미할 여유가 없다. 수요일 저녁예배가 끝나고 빨리 집에 가서 씻어야지, 하는 마음뿐이다. 그런데 얼굴 위로 줄줄 흘러내리던 비실비실한 잿물에 대한 기억 덕분에, 재의 수요일은 진작 지났어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한 번 더 묵상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렇게 사순절은 이미 시작되었는데 남편은 그제서야 금식 얘기를 꺼냈다. 교회 친교실과 교실을 늘리는 것이 간절히 필요하다면 하루에 한 끼, 금식한 끼니만큼 헌금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한 끼에 들어가는 식사 비용을 금식한 끼니 수대로 모아 건축에 필요한 헌금으로 드리자는 내용이었다. 교우들과 이러한 생각을 나누면 어떨까 물어왔다. 밥 굶는 것도 힘든데 굶은 만큼 헌금을 하라니, 난 관두라고 했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에게 금식하라고 하면 힘들어서 일 못 한다, 이미 하루에 두 번만 식사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무엇보다 나처럼 저혈압인 사람은 끼니를 거르면 까부라져서 안 된다, 며 오지랖 넓은 걱정을 쏟아냈다. 남편은 무엇인가 생각을 해 보는 표정이었다.
‘내 말이 그렇게 일리가 있었나?’
그러고 나서 돌아온 사순절 첫 번째 주일 예배 …

우리 교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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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금요일이다. 금요일 저녁에는 성경공부 모임이 있다. 그 모임에서 성경구절을 암송해야 하는데 아직도 외우지 못했다.
수요일 저녁 예배 때, 몇몇 교우들이 성경을 얼마나 외웠는지 서로 확인하며 이번에 외워야 할 구절은 잘 외워지지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느 권사님이 외운 것을 큰 목소리로 암송해 보이셨다. 아직 완전히 외워지지가 않으셨는지 중간 중간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옆에 계시던 다른 교우들이 틀린 부분을 고쳐주기도 하고,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대신 외워주기도 하셨다. 모두가 비슷하게 암송을 어려워하는 모습에 깔깔깔 호호호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눈치를 가만히 보니 모두들 거의 다 외우신 듯 하였다. 부끄럽게도 나만 그때까지 성경을 들쳐보지도 않은 것이다.
2월에 시작된 이번 성경공부에 참여한 교우들은 한 주 한 주 시간이 흐를수록 신선한 감동을 나눠주고 계신다. 성경과 성경공부 교재를 넣는 예쁜 책가방을 서너 분이 마련하셨다. 그 다음에는 연필 서너 자루를 담은 필통을 몇 분이 보여주셨다. 성경암송이 시작되자 인덱스카드에 성경구절을 적어가지고 다니면서 외우시는 분, 종이에 적어서 냉장고에 붙여놓고 오고 가며 외우시는 분, 성경구절을 복사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시며 직장에서도 외우시는 분, 종이에 여러 번 쓰며 외우시는 분…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성경공부를 여러 번 경험해 보신 분들도 있고, 처음이신 분들도 있다.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이 그저 좋은 분들도 있고, 하나님 · 예수님에 대해 새로 알게 되는 부분이 있어 좋다고 고백하시는 분들도 있다. 이렇게 성경공부에 열심을 내시는 분들은 어느 집사님과 나를 빼고는 모두 6,70대의 집사님, 권사님들이시다. 그리고 암송 숙제를 잊어버리거나 제일 늦게 외우는 뺀질이는 나 뿐이다.
우리 교회는 창립 17주년을 얼마 전에 보냈다. 교회가 창립된 지 17년 동안 열 명에 가까운 목회자가 바뀌었다. 그 시간 동안 그렇게 많은 목회자가 바뀌었다는 것은 교회 안에 불편하고 불안정한 일들이 많았…

아이들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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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이들보다 나이가 아래인 어린 아이들을 보면 참 귀엽다. 나의 아들들은 미국 나이로 치면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곧 졸업할 나이다. 아들들을 그 나이만큼 키워봐서 그런지 그보다 어린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조금 여유가 생긴다. 아들만 키워봤으니 딸이나, 저마다 다른 성격의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적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아이들을 보면 그냥 귀엽다는 느낌이 먼저 들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이 성가대를 다시 시작했다. 그 동안 아이를 키우는데 더 집중하다가 기회가 되어 성가대에 합류하셨다. 집사님과 아이는 주일 예배 때 적어도 성가대 찬양 시간이 지나기까지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예배 시작하기 전이나 끝난 다음에 하는 성가 연습 시간에도 아이는 엄마를 찾지 않는다. 어느새 아이가 꽤 자라서 엄마와 분리되어 잘 지내는 듯하다.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의 시간을 가질 줄 알게 되었고, 그만큼 엄마에게도 엄마만의 시간이 주어지는 때가 되었나 보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예배를 드렸을 아이는 “아멘”이라고 말하는 타이밍을 아주 잘 안다. 찬송 부를 때 마지막 절을 어떻게 아는지, 마무리 되는 부분에서 맑고 힘찬 목소리로 “아~멘~”을 음 높이에 맞추어 부른다. 또 기도가 끝나는 시점에서도 역시 티 없이 맑은 아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아이의 깨끗한 “아멘”은 자주 들을 수는 없다. 아이는 예배실 밖에서 엄마와 다른 아기 엄마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다. 가끔 그 아이의 아멘 소리를 들을 때면, 처음 듣는 곡조의 특별 찬양을 한 곡 들은 것처럼 신선하다.
이번 주일에는 점심 먹고 성가 연습을 하는데 엄마 곁에서 슬그머니 잠드는 그 아이를 보았다. 자기를 돌보지 않고 성가 연습만 하려는 엄마에게 잠투정을 할만도 한데 말이다. 이불도 없이 딱딱한 긴 의자 위에서 어느새 잠든 아이의 모습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또 다른 젊은 집사님은 주일 예배 때 몇 주 동안 신시사이저를 연주하게 되었다. 집사님에게는 어린 자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