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되는 사이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버지니아 주를 향하여 내달렸다. 지난 주에 내린 눈 때문에 도로 사정이 좋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이곳에서 버지니아 주 북쪽에 이를 때까지 고속도로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친구네 집 가까이 가서야 길가로 밀어내어 쌓아놓은 두꺼운 눈 더미를 볼 수 있었다.

자동차로 장거리 여행을 나서면 운전은 거의 남편이 맡는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남편에게 말도 걸어주고, 먹을 거리도 챙겨주고, 피곤해진 남편의 등도 두드려준다. 그리고 졸릴 때는 별 수 없이 잔다. 운전하고 있는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지만 눈꺼풀을 내리누르는 잠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남편을 두고 편안한 마음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잠을 콜콜 자는 나를 남편은 때론 얄미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남편의 태도가 달라졌다.

피곤하면 먼저 자. 의자도 뒤로 더 젖히고.”

남편이 부드러워지고 상냥해졌다. 중년 남성의 호르몬 변화 때문이든 책이나 드라마 따위를 통해 여성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 까닭이든 괜찮은 변화다. 남편은 다음 말을 잇는다.

그리고 운전 교대하자.”
“……”

오랜 시간 여행을 하자면 으레 번갈아 가며 운전을 해야 덜 피곤하리라. 그런 당연하면서도 친절한 말을 듣고 더 푹 잘 수 있을 텐데 이상하게도 잠이 달아나고 만다. 운전하랴 아내 챙기랴 바쁜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런지, 자고 나서 운전을 교대하기 싫어서 그런지 모르겠다(난 운전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그저 필요에 따라 한다). 사실 둘이 번갈아 운전을 한 적은 몇 번 되지 않는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나면 남편이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난 그저 웃음 한 번으로 미안함을 때우고 만다.

이번 여행에서 남편은 7시간을 혼자 운전했다. 나에게 운전을 부탁하지도 않았다. 휴게소에서도 짧게 쉬었다. 저녁도 간단한 음식으로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해결했다. 나도 왠지 잠이 오지 않았다. 우리는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내내 수다도 엄청 떨었다. 친구들에게 점점 가까워질수록 정신은 맑아지고 피곤한 기색을 찾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을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친구들은 대학교 다닐 때부터 사귐이 있던 이들이다. 서로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언니나 오빠로 부르기도 한다. 어느 날 나보다 선배인 오빠가 내 이름을 불렀다. 옆에 계시던 한참 선배이신 분이 이젠 다른 사람의 아내인데 이름을 부르는 것은 좀 그렇잖아!” 하셨다. 그때는 딱히 틀린 말씀도 아닌 것 같아 어찌 불러야 할지 몰라 어색해졌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자연스럽게 이름을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어르신들 앞에서는 조심하면 될 터이고.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촌수에는 맞지 않지만 이모나 삼촌으로 부른다. 아이들도 버지니아 주에 사는 삼촌네 가는 걸 좋아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냥 편한가 보다(이것이 정말 특별한 이유다).

첫째 아이는 이 삼촌네가 좋은 이유가 하나 더 있기는 하다. 삼촌 집에 놀러 갔을 때 두어 번 방문했던 워싱턴 D.C. 때문이다. TV나 영화에서 워싱턴 D.C.가 나오면 첫째 아이는 꼭 이 도시 이름을 외치며 즐거워한다. 언젠가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 버스 드라이버 있잖아~ 이름이 뭔지 알아?”
엄마는 모르지. 이름이 뭔데?”
워싱턴 D.C.”

요즘엔 아이들이 학교 버스를 타지 않기에 운전하는 분의 이름을 모른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가면 특수학급 학생들을 위한 버스 운전 기사도 여러 분이 계시고, 아이들이 버스에 타는지 부모의 차에 타는지 확인하는 분도 계신다. 아마도 그 분들 가운데 워싱턴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있는가 보다. 첫째 아이에게 워싱턴이라는 단어는 워싱턴 D.C.”여야 맞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워싱턴 D.C.에 대한 남다른 기억을 갖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이번 여행에서도 그 곳을 방문했다.

친구들을 만나 밥을 같이 먹으며 그 동안 지내온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다. 누군가 얘기하면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들어주고 인정해준다. 서로 잘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이다. 또 한국과 미국을 오고 가며 나라를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을, 또는 안타까운 마음을 쏟아 놓는다. 서로 사귀어 온 30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그나마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시간이다.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친구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길을 나섰다. 친구들이 사는 동네는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큰 한인 사회가 있는 도시의 극장에서는 한국 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 친구들이 사는 동네를 벗어나기 전에 친구들은 이미 보았다던 한국 영화 변호인을 보았다. 친구들은 눈물이 났다고 했던가,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던가…… 

       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날 사람도 없건만 굳이 눈 화장을 했다. 울음이 나면 눈에 화장한 것이 번지는 것을 핑계로 참아 보려고 말이다. 안타까움에 울기보다는 연약한 사람을 사랑하고 바르게 살려는 마음을 더 굳건히 하고 싶었다.

친구들에게서 받은 공감과 위로와 격려를 잔뜩 안고, 친구들에게 달려갔던 길을 되짚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댓글

  1. 그곳에도 눈이 많이 왔었다니 우리가 너무 무심했네요. 방학하고 학교 연수로 홍콩과 싱가폴, 마카오를 진짜 군대 행군하듯이 다녀왔어요. 너무 힘들어 뭘 보고 왔는지도 모를정도랍니다. 먼 타국에서 가족같은 친구와 이웃이 있어 다행이네요. 항상 건강 조심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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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방학 동안 쉴 틈도 없었던 것 아니야? 곧 새 학기 시작할텐데... 정오기를 담임선생님으로 만나는 아이들은 복되도다!
    식구들 모두 잘 있지? 늘 건강하고 평안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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