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2014

서설(瑞雪)





아이들이 이틀 동안 집에서 쉬다가 학교에 갔다. 등교도 보통 때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했다. 휴일도 아닌데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간 것은 그제 밤에 내린 눈과 낮은 기온 때문이다.

그저께 일기예보에서는 오후 늦게나 눈이 올 것이라고 했지만, 교육구에서는 아예 수업이 없는 것으로 전날 저녁에 이미 알려주었다. 교육구나 학교에서는 공지사항이 있으면 학부모에게 안내 전화를 한다. 궂은 날씨나 비상상황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을 경우는 학부모 전화, 교육구 홈페이지, 그리고 지역 TV나 라디오 방송 채널에서도 안내해준다.

그날 볼일은 오전 중에 마치고 오후가 되어서는 하늘을 살피며 눈이 오기만 기다렸다. 정말 이제나저제나 하는 마음으로 창 밖을 살폈다.

곧 올 텐데, 뭘 그래?”

남편은 눈 오길 간절히 기다리는 내 모습을 보고 픽 웃는다. 나도 우습다. 한국에 있을 때는 겨울마다 보던 눈인데, 살아가는 환경이 바뀌니 눈 오는 걸 보는 것마저 귀하고 그립다.

저녁 8시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집 앞에 서있는 가로등 불빛을 휘감으며 힘차게 내렸다. 눈발이 굵어지고 잔디 위에 조금씩 쌓이기까지 한참을 지켜보았다. 눈을 기다리던 마음 같아서는 뒤뜰에 쌓이는 눈을 밤새 감상할 것 같았는데, 몸은 벌써 잠 자리에 들어가 있었다. 내일 아침에도 눈을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늘 청춘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낭만적인 감성을 위로하며 잠을 청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주도인 콜럼비아로 이사온 지 4년차에 이렇게 많은 눈을 보게 되다니 기분 좋은 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얼추 2인치(5cm)쯤 쌓여있다. 학교를 쉴 정도의 눈은 5년 전쯤에도 왔었나 보다. 우리 교회 어느 권사님은 이렇게 많은 눈은 20년 만이라고 하셨다. 이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눈 내린 풍경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새롭고 흥분된다. 여느 아침과는 달리 바깥이 더욱 환하다. 눈에서 나오는 하얀 색 때문이다. 구름 사이 사이로 비추이는 햇살에 반사된 눈빛이 반짝거린다. 화사하다.

온화한 기후를 가지고 있는 미국 남동부에 눈 폭풍이 온 것은 뉴스에 나올만하다. 눈이 잘 오지 않으니 제설장비가 제대로 있을 리 없다. 부족한 제설장비와 재해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주지사나 시장을 향한 질책은 예상할 수 있는 뉴스거리들이다. 애틀랜타에서 처음 겨울을 맞이할 때부터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애틀랜타에서는 이번에 내린 눈이 미북부 지역에 비하면 많지도 않은 양인데, 그에 대한 행정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실망이 큰가 보다.

이곳, 콜럼비아는 안전하게 학교도 일찍 문을 닫았고, 교우들끼리도 안부를 물으며 서로 챙겨주었다. 하루, 이틀 먹을 물과 식료품은 준비되어 있는지 물어오는 교우도 있었다. 모두 감사한 일이다.

한국은 설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음력으로 새해를 다시 한번 시작하는 날이다. 미국에서는 음력 설을 쇠지는 않지만, 한국인인 나와 우리 가족, 교우들에게 이번에 온 눈은 새해에 복되고 좋은 일이 많으리라,고 알려주는 서설(瑞雪) 같다


때마침 무리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만났어요.
잘 안보이나요???  ^^

댓글 2개:

  1. 안녕하세요, 실례를 무릅쓰고 포스팅에 댓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곧 콜럼비아로 이사를 가게 될 젊은 부부인데요, 우연히 웹서핑을 하다 블로그를 찾게 되었습니다. 현지 정보와 관련해서 여쭙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이메일이나 연락처를 찾기가 힘들게 되어있네요~
    괜찮으시다면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포스팅을 쭉 읽어보았는데 같은 기독교인이신 것 같아 더 반가운 마음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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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곳으로 이사오신다니 반갑습니다. 제 이메일 주소는 eunjoolee08@gmail.com 입니다. 궁금하신 것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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