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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남는 것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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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는 가족과 함께 장거리 여행을 했다. 시카고 근처에 사는 몇몇 친구들을 만나고 오는 일정이었다. 이 여행이 실행되기를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빼고 자동차로만 열두세 시간이 걸리는 긴 여행을 아이들과 함께 해 보고 싶었고, 아직 미국 중북부를 가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그곳의 풍광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오래된 친구들이 있으니 기회만 되면 그들에게로 달려가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이 여행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기 전, 둘째 아이는 성탄절 즈음에 친구네 가족을 따라 스키장에 가도 되느냐고 했다. 우리 가족은 딱히 계획이 없었던 지라 아이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허락했었다. 아이는 방학이 가까워지자 스키장에서의 구체적인 일정을 점검하고 있었다. 스키장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는 홈페이지도 보여 주었다. 거기엔 스키복과 스키 장비를 빌리는데 드는 비용도 잘 정리되어 있었다. 아이는 맨몸으로 가서 모든 장비를 빌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빠르게 속셈을 해보니 그것들을 하루만 빌린다 해도 몇 백 달러가 필요했다. 이거 너무 비싸다, 했더니 안 되겠지, 라는 대답이 바로 이어서 나왔다. 렌트 비용을 미리 살펴본 눈치였다. 아이와 이런 짧은 대화가 오고 간 다음날 남편은 시카고 여행을 제안했다. 중북부를 여행할 기회가 바로 이때라고 판단되었나 보다.
가족 여행 계획이 친구와 스키장을 가지 못한 아이의 아쉬움을 얼마나 채워줬는지는 모르겠다. 남편은 친구들과 연락을 하여 적극적으로 일정을 잡았다. 남편의 그런 모습은 참으로 오래간만이었다. 방학 동안 심심해 할 아이들을 위해서도, 단순한 일상 속에 묻혀 있는 아내를 위해서도, 그리고 친구들이 몹시 그리운 자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여행이라 여겨졌는지 일을 진행하는 모습에 파드닥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 100세가 가까워 오시는 권사님께서 성탄주일이 되기 일주일 전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날마다 병문안을…

그 플러그(pl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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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감았다. 머리를 감고 나면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준비가 된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집안에서일을 하든, 사람을 만나거나 교회에 가는 일 따위로 외출을 하든 말이다. 머리를 감은 후에 급하게 집 밖을 나갈 일이 아니라면 헤어 드라이어를 쓰지 않고 젖은 머리가 자연스럽게 마르도록 나둔다. 헤어 드라이어에서 나오는 열기로부터 머리카락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이다.
헤어 드라이어의 열기를 때로 피했다 하더라도 또 다른 열로 머리 모양을 잡아주는 플랫 아이론(flat iron)을 사용해야 하는 단계가 남아 있다. 플랫 아이론은 직사각형 모양을 한 넙적한 판이 마주보고 달린 고데기 같은 도구이다. 머리카락에 남아 있는 물기가 마르는 동안 부스스해지고 이리저리 삐친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펴주는데 아주 쓸모 있는 도구이다. 이 플랫 아이론의 열이 머리카락을 더 손상시킬지도 모르지만 지난 몇 년 전부터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플랫 아이론은 미용실 원장님이 쓰던 것을 받아온 것이다. 원장님이 내 머리에 퍼머를 해주었는데 잘못되어 머리카락이 거의 다 타버렸었다. 뜨거운 압축기로 눌러놓은 것처럼 머리카락이 작은 지그재그 모양으로 구부려졌다. 그걸 만지면 바사삭 바스러질 것처럼 건조하고 거칠기가 이를 데 없었다. 머리를 묶지 않고 풀러 놓으면 가발을 쓴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머리를 삭발하기 전에는 해결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냥 괴상한 머리카락을 달고 그냥저냥 시간이 가서 머리카락이 자라는 대로 조금씩 잘라내며 상태가 나아지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머리카락 때문에 참담함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원장님은 미안한 마음에 다시 퍼머도 해주고(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자기가 쓰던 플랫 아이론과 고데기도 주었다. 그렇게 플랫 아이론은 머리카락을 일시적으로 진정시켜주는 도구로 나와 친해졌다.
얼마 전, 머리를 감고 다 마르도록 그냥 놔두었다. 하던 일이 마무리 되어 머리를 마저 정리하기 위해 플랫 아이론이 있는 화장실로 갔다. 플랫 아이론의 플러그를 찾아 …

새로운 설거지 짝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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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주일 점심 식사는 늘 푸짐하다. 반찬이 항상 열 가지가 넘는다. 와우! 후식도 떡과 빵이 늘 있다. 교인들이 각자 알아서 해 온 음식들이다. 대부분 한국 사람 입맛에 맞는 음식들이다. 각자 집에서 늘 해 먹던 음식이 아닌 다양한 것들을 먹는 즐거움이 있다. 다문화 가정의 미국 교인들도 한국 음식을 잘 드신다. 미국 남편과 사시는 교인들은 집에서 한국 음식을 요리할 기회가 아무래도 적다 보니, 그들 또한 주일 점심 식사에 대한 기대가 있는 듯하다. 예배를 드리며 영적인 갈망을 채우는 것만큼 음식에 대한 욕망을 맘껏 채우는 시간이다.
음식은 정해진 순서 없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사람이 알아서 준비하고,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는 당번을 정하여 돌아가면서 한다. 두 사람이 한 조다. 젊은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연세 드신 교인들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설거지에 동참하고 계신다.
나와도 한 조를 이룬 사람이 있었다. 그분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함께 설거지 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도 다른 교회로 가버리는 바람에 당번인 주일에 혼자 설거지를 했다. 물론 정말 혼자 한 것은 아니다. 언제나 다른 집사님들이 도와주셨다.
그런데 나에게 다시 설거지 짝꿍이 생겼다. 우리 교회에 나오신 지 얼마 안 된 분이다. 어느 집사님이 내 설거지 짝이 없는 걸 아시고 그분께 설거지를 권유하셨나 보다. 그 분은 흔쾌히 내 설거지 짝꿍이 되어 주셨다. 나도 좋아서 그분께 다가가 “저와 설거지 같이 하시는 거예요!” 했다. 그분은 “그래유~” 하면서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요청하셨다. 설거지 하자는데 뭘 이렇게 기뻐하시나 싶었다. 그분은 언제가 당번인지를 물어오셨다. 나는 11월 마지막 주쯤 될 거라고 알려드렸다. 주일에도 한 주 건너마다 직장에 나가셔야 하기 때문에 미리 계획을 짜두셔야 했다. 그 뒤에도 설거지하는 날짜를 계속 확인하셨다.
설거지 당번인 주일. “설거지 할까요?” 했더니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채 또 “그래유” 하셨다. 마음이 넉넉해 보이던 첫인상 그대로였다…

두 권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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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계신 두 권사님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기질도 다르고 각각 다니는 교회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꽤 많다.
우선, 70대의 여성분들로 삶이 곧 신앙생활 그 자체다. 하루의 시작과 끝은 기도이며, 일상 속에서도 예수님을 의지하는 마음은 그들의 태도나 언어에 배어 있다. 주일을 반드시 지키는 것은 물론이요(중병으로 수술을 해도 병원에 마련되어 있는 예배실에서 주일을 지킨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나 모임에 빠지지 않으신다. 헌금도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여 드린다.
두 분은 이웃과 나눌 수 있는 것들을 쌓아두는 법이 없다. 그러면 이웃들은 이 권사님들께 무엇인가를 다시 나눈다. 그들의 나눔은 계속 순환되기도 하고 혹은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 그걸로 만족하기도 한다. 권사님들은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살고 계신다.
개인적인 성품으로는 부지런하여 일을 미뤄두지 못하는 성격이시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당장 끝장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몸이 지치기도 하는데, 입술에 물집이 여러 개 생기면서 부르트는 모습도 비슷하셨다. 두 분 모두 일을 하시다가 지독한 감기 몸살에 걸리셨다. 몸살 치료하려고 병원에 가셨다가 14년, 12년 전에 대장암을 진단받기도 하셨다.
그때만 해도 대장암 수술이 큰 수술이어서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맡기겠노라, 그래도 살려주시면 신앙생활 더 잘 하겠노라 기도하시고 들어가셨다. 두 분의 수술은 잘 되었다. 그 뒤로 혹독한 항암치료를 견뎌내셨고 5년 동안 정기적으로 몸 상태를 살펴야 했다.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 살려두셨을 거라며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욱’ 이웃과 나누는 생활을 이어가고 계신다.
두 권사님은 감리교인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게 엄청 규칙쟁이다. 먼저 수술 받은 권사님은 입원했던 병실에서 만난 어느 환우로부터 야채 스프와 현미차에 대하여 소개를 받으셨다. 권사님은 퇴원하신 다음 야채 스프와 현미차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5년 이상을 만들어 드셨다. 뒤이어 같은 암에 걸린 다른 권사님은 친분이 깊던 앞…

살아가게 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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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민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 가서 사는 ‘이민’이라는 말은 그저 신문과 뉴스에나 나오는 낱말에 불과했다. 그러니 이민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이민 생활이 어떠한 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살림살이를 싸 가지고 미국에 들어오면서도 아예 살러 오는 것인지 살다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남편이 일할 곳이 미국으로 정해졌으니 늘 그랬던 것처럼 나머지 가족은 그저 따라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들 교육하기에 좋고 장애인에 대한 복지가 잘 되어 있다는 지극히 막연한 인식이 미국행을 결정하는데 보탬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뭘 모르니 용감하게 미국 땅으로 날아온 것이다.
비행기 값을 아끼려고 미국 국적 비행기를 한 번 갈아 타고 애틀랜타에 있는 하츠필드 잭슨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는 지고 어두웠다. 새로운 곳에 대한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피곤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하얀색 형광등과는 달리 공항에 수없이 밝혀져 있는 노란색 등은 이국적이면서도 그 긴장감 마저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다른 나라에서 살려고 찾아온 이방인답게 부피가 큰 이민 가방이 세 개, 크고 작은 여행용 가방도 세 개쯤이었다. 한국에서 부친 이삿짐은 한 달이 걸린다 하니 미국에 도착해서 한 달 동안 사는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압축팩에 담긴 이불과 베개, 옷가지들이 대부분이었다. 성경을 포함하여 몇 권의 책과 노트북도 있었다. 살게 될 곳에 큰 한인 마트가 여럿 있는 줄 몰랐으니 라면도 몇 개 챙겨 왔다.
저녁 때라도 공항은 분주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 가족을 마중 나온 두 분을 만나게 되었다. 앞으로 살게 될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타고 온 15인승 교회 차는 우리 가족과 보따리를 싣고도 넉넉했다. 우리가 다니게 될 교회 가까이 가서는 한국 음식점에서 따뜻한 설렁탕으로 저녁도 먹여 주었다. 두 분 중 한 분 목사님은 지금도 연락이 되…

숲길을 걸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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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걷기에 좋은 주립공원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가깝다. 숲 속과 호수 둘레를 따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도록 여러 갈래 길이 나 있다. 숲에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많다. 호수에는 몇 마리 오리가 떠다니거나 휴일이면 공원에서 빌려주는 노 젓는 배를 가끔 볼 수 있다. 그밖에 철마다 바뀌는 화려한 꽃이나 신나는 놀이 기구나 기암괴석 같은 것은 전혀 없는 조용하고 수수한 공원이다.
운동 삼아 공원을 자주 가던 어느 해 봄이 시작될 무렵의 일이다. 남편과 나는 늘 다니던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숲에 가면 넓은 공간이 주는 자유로움 때문인지 집 안에서는 꺼내지 않았던 얘기들이 술술 풀려 나오곤 한다. 그날도 새로운 얘깃거리가 시작되려는 때였다. 남편이 갑자기 한 발을 공중에 들고는 “으아아~~” 하는 것이었다. 처음 들어 보는 음색의 그 짧고 낮은 비명 소리는 두려움을 짙게 담고 있었다. 겁이 많은 나는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고 남편의 팔에 매달리며 “왜 그래?” 다급하게 물었다.
잘 놀라는 아내를 배려한 것인지 잠깐 숨을 돌린 다음 “뱀” 이라고 대답했다. 뱀이라는 말에 남편 팔에 올라서기라도 할 것처럼 있는 힘껏 끌어 안고는 “어디?” 라고 말하면서 눈은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남편은 말없이 숲 쪽을 가리켰다. 제법 굵고 길며 까만 뱀이 낙엽 위를 마치 헤엄을 치듯이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빠르게 달아나고 있었다. 뱀이 그렇게 날렵한지 처음 알았다. 그것도 우리 때문에 놀란 모양이었다.
또 한 번은 다른 도시에 사는 지인을 이 공원에서 만났다. 걷기에 좋은 곳이라고 소개했더니 만남 장소를 공원으로 정한 것이다. 산책로의 중간쯤에 이르러 화장실에 들렸다가 나머지 남은 길을 가기로 했다. 둘 다 볼일을 보고 내가 먼저 화장실 건물을 나섰다.
화장실 입구 쪽 희고 넓은 벽에 검고 길쭉한 무엇이 움직이고 있었다. 뱀! 하고는 얼른 그것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졌다. 지난번 일을 사람들과 나누던 중 이곳에서는 까만색 뱀은 독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

솔잎을 긁어 모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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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에서 떨어진 잎들이 뒤뜰에 온통 흩어져 있다. 소나무는 사시사철 초록 잎을 달고만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 집 소나무는 가을이면 누런색의 잎을 떨구어 낸다.
담장 가까이에 엄청 키가 큰 소나무 세 그루가 있다. 어림 잡아도 15미터(49피트)가 넘을 것 같다. 나무의 키도 크려니와 나무 껍질을 보면 두툼하고 쩍쩍 갈라진 것이 나이가 꽤 들어 보인다. 나무의 아래 절반에는 가지가 없고 위쪽에는 가지가 흐느적 흐느적 달려 있다. 또 나무 기둥에서 뻗어 나온 가지를 보면 가지 끝으로 갈수록 초록 솔잎이 손바닥을 힘껏 편 것처럼 달려 있다.
봄이 되면 가지 끝에는 노란색 송화도 피고 여린 연두색 솔잎도 나온다. 그렇게 새로 나온 잎들은 더우나 추우나 오랫동안 초록빛을 간직한다. 그러니까 가지 끝으로 갈수록 세상에 나온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잎들이다. 낙엽은 항상 가지 끝에서 떨어지는 줄로만 알았는데 집 가까이에 사는 소나무 덕에 그렇지 않은 나무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을이 되면 가지 제일 안쪽에 있는 나이든 솔잎들이 누런색 옷으로 갈아 입고 나무 아래 땅으로 내려 앉는다. 누런 솔잎은 나무에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그 안에 생명은 없으나 여전히 솔잎이라는 이름으로 땅에서도 오랫동안 머무른다.

지난해, 소나무에서 떨어진 솔잎이 뒤뜰에 가득하길래 아이들에게 솔잎을 긁어 모으라고 시켰다. 모아진 솔잎은 소나무 아래에 다시 뿌려줄 생각이었다. 둘째 녀석은 일 시킨다고 구시렁거리면서도 꼼꼼하게 모아놓은 솔잎을 보니 꽤 많은 양이었다. 일부는 뒤뜰 쪽 집 벽 아래를 덮는데 쓰고도 남을 것 같았다. 집 둘레의 세 벽면은 동네 관리하는 회사에서 이미 새로 갈아놓은 상태였다.
사람이나 자동차가 드나드는 길을 빼고는 집을 삥 돌아가면서 7센티미터(3인치) 이상 되는 두께로 솔잎을 깔아 놓는다. 검고 탁한 색으로 변한 묵은 솔잎 위에 누렇지만 싱싱한 솔잎이 얹어진다. 집 앞쪽 심겨진 나무들 아래에도 솔잎이 풍성하게 깔려 있다. 집 양 옆으로는 나무가 있든 없든…

엉뚱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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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방송되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몇 개를 찾아서 보고 있는데 참 재미있다. 한국에 살 때는 언제든 볼 수 있어서 그랬는지 TV에 연연해 하지 않았다. 때론 TV를 보지 않고도 살았다. 그런데 미국에 살고 있는 지금은 한국 TV 방송 가운데 몇몇 프로그램이 주는 즐거움이 대단하여 잘 챙겨서 보곤 한다.
요즘 몇 주는 어느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송되는 “더 지니어스”라는 리얼리티 쇼를 보았다. 정해진 참가자들은 매회마다 새로운 게임을 풀게 되고, 게임 결과에 따라 한 명씩 탈락한다. 여러 회에 걸쳐 마지막에는 남은 한 사람은 자신이 모아놓은 점수대로 상금을 타게 되는 오락 프로그램이다. 게임의 내용은 상당한 이해력과 지능, 사람의 심리를 잘 읽거나 리더십이 필요해 보이는 어려운(난 문제를 이해하는 데도 한참 걸린다) 과제가 매주 새롭게 제시된다. 어리바리인 나는 게임을 즐기면서 시청하기는커녕 방송을 보는 내내 어쩜 저렇게 머리가 좋을까, 똑똑한 사람이 참 많구나, 감탄하느라 정신이 없다.
참가자들은 직장인, 학생, 방송인 따위로 직업이 다양하다. 모두 게임을 잘 하는 사람들이 출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격은 저마다 달라서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따라 가는 사람이 있다. 과제를 급하게 풀어가는 사람과 상황을 지켜보며 시간을 끄는 사람이 있다. 자기 편을 분명히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어떤 이는 눈치껏 자기에게 유리한 편으로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어쨌든 모든 참가자들은 게임을 잘 통과해서 마지막 우승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게임 자체에 대한 이해도 잘 안 되는 쇼가 나에겐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다른 식구들이 시청을 하니까 같이 보게 될 뿐이다. 그런데 최근 방송에서 두 사람 가운데 탈락자 한 사람을 가리는 카드게임이 인상에 남았다. 한 사람은 승부욕이 강하고 게임도 능동적으로 풀어가는 사람이다. 다른 한 사람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편이고 속마음을 잘 숨기지 못하기도 한다. 그날 방송의 흐름으로 볼…

성친식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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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는 성찬식을 매월 첫 주 주일예배 때에 한다. 지금은 시월 성찬식에 참여했고 다음 달 성찬식이 오기 전, 그 중간쯤에서 살고 있다. 다른 교회의 성찬식과 비교해서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평범한 우리 교회 성찬식이다. 그런데 비슷하게 반복되는 우리 교회 성찬식이 언제부턴가 좋아졌다.
한 덩어리의 빵과 한 잔의 포도 주스(포도주가 아니다)가 준비된다. 어느 권사님이 성찬을 자신이 준비하기로 마음에 정하신 바가 있어 그 분이 때마다 마련하신다. 소박하면서도 정성이 들어간 성찬 빵과 포도 주스다.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해 내어주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기 위한 예식임을 목사님은 선포하신다. 그리고 세례 받은 자는 물론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로 작정한 모든 교우들은 성찬식에 초대된다. 우리 교회는 어린 아이로부터 연세가 아흔여덟 되신 권사님까지 모든 교우들이 성찬식에 참여한다. 때로 방문한 분들도 자유롭게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다.
성찬식을 위하여 준비된 빵과 포도 주스 앞에 교우들은 한 줄로 길게 늘어선다. 교우들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순서를 기다리는 교우들은 늘 느긋하고 평화롭다. 연로하신 분들은 부축하여 나오시고, 노부부는 서로를 의지하여 손잡고 나오시고, 줄 서는 자리를 서로 여유 있게 양보하기도 한다.
예배실 안에 찬송가 반주 소리와 드문드문 목사님께서 성경 구절 낭송하시는 목소리만 들리다가 교회학교 어린이들과 선생님들이 예배실에 들어서면 성찬식은 즐겁기까지 하다. 갓난 아이는 부모님 품에 안겨 들어오고, 조금 더 자라면서부터는 제 스스로 예식에 참여한다. 아이들이 자라고 있음을 한 눈에 알아챌 수 있는 시간이다. 아이들도 이미 성찬식에 익숙해서 성찬식의 흐름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빵을 처음으로 찢는 사람은 목사님이시다. 그 다음은 성찬 나누는 것을 도와주시는 권사님들, 그리고 교우들이 빵 한 덩이에서 원하는 만큼 쪼개어 갖는다. 보통은 한 입에 들어가도록 조금 작은듯한 크기로 조심스럽게 뜯어 낸다.
그런데 한번은 개구…

영화 “안녕, 헤이즐(The Fault in Our Stars)”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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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녕 헤이즐(The Fault in Our Stars)”을 보았다. 점점 부드러워지는 햇빛을 온몸으로 느끼며 가을을 타고 있는 남편의 권유로 보게 되었다. 제목만 봐서는 어떤 내용의 영화인지 알 수 없었다. 재미가 있든 없든 같이 영화 보자는 남편의 기분을 맞춰 주고 싶었다.
영화 시작부터 장면이 낯설지 않았다. 코에 튜브를 걸고 산소공급기를 가지고 다니는 헤이즐은 우리 교회 어느 교우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헤이즐은 갑상선 암이 폐까지 전이되었고 임상 실험용 약을 먹고 있는 암 말기 환자다. 곧이어 등장하는 순박한 청년 어거스터스도 골육종이라는 암에 걸려 무릎 아래 다리를 절단했고 다행히도 일 년 넘게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열 여덟 살의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암환자 모임에서 만나 친구가 된다. 두 사람은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서로에게 소개하면서 더욱 가까워진다. 헤이즐은 어거스터스에게 소개한 “거대한 아픔”이라는 소설을 쓴 작가를 엄청 만나고 싶어한다. 어거스터스는 헤이즐의 이런 마음을 헤아리고는 자선 단체를 통해 여행을 갈 수 있도록 애를 쓴다.



두 사람의 몸은 불편하지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작가를 만나고 오는 여행을 하게 된다. 두 사람과 더불어 암스테르담의 풍경을 잠시나마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풋풋하고 애틋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삶과 죽음, 현재와 영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십대 청년들이다. 청춘을 누리지도 못하고 지독한 병에 걸린 그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올해 하반기에 들어 암이 발견되어 투병하고 있는 우리 교회 교우들이 있다. 육, 칠십 대에 이른 분들이지만 영화의 젊은 주인공들만큼이나 안타깝고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한 집사님은 오래 전에 폐에 있던 작은 종양이 온 몸에 퍼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사들은 그에게 남아 있는 삶이 삼 개월에서 육 개월이라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교우들은 황당해 했다. 하지만 그…

뜻밖의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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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주간 흐리고 비 오는 날이 많았다. 친절하게도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이곳은 따뜻한 지역이라 요즘도 낮 평균 기온이 27도를 넘나든다. 그래도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하여, 싸늘한 공기 어딘가에 이른 벼를 베고 난 들판에서 맡을 수 있는 흙과 지푸라기 냄새가 묻어있지 않을까 찾아 본다. 가을이 되면 방향제가 들어 있는 제품들 가운데 주황색 둥근 호박과 시나몬(계피) 향이 섞인 것들이 많이 나온다. 미국에 오래 살다 보면 호박과 시나몬 향을 가을과 짝지어 추억하게 될 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올해 가을은 갑자기 열매가 한 번에 대여섯 개 달리는 호박이 주는 기쁨으로 시작했다. 호박 줄기들이 가을 첫머리에 내리는 비를 자주 맞더니 연두 빛의 애호박들을 마구 내놓았다. 여름 동안은 물을 매일 주었어도 호박에게는 넉넉하지 않았는지 가끔 하나씩 열매를 맺었었다. 그런데 이번 비에 호박들이 여기저기 쑥쑥 자라 재미를 보았다.




올 봄 남편을 귀찮게 졸라서 담 아래에 손바닥만하게 만든 텃밭이 있다. 땅이 모래가 엄청 많은 흙이라 가게에서 파는 흙과 퇴비를 사다가 섞어주었다.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는데 도움이 될만한 높이로 이랑을 만들었다. 쑥갓 씨도 뿌려 보고, 시금치와 붉은 상추 같은 잎채소도 심었다. 고추는 모종을 내어 심었다. 호박은 구덩이를 파서 거름과 흙을 넉넉히 넣고 여러 날 묵혔다가 거기에 씨를 뿌렸다.
이곳 저곳에서 주워들은 정보로 텃밭의 흉내를 내 본 것이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단순한 생활에 흙이랑 풀 가지고 장난이나 쳐볼 수 있는 코딱지만한 놀이터라 여겼다. 혼자 처음 가꿔보는 텃밭이니 식물들이 잘 자라지 않거나 해도 어쩔 수 없는 실험용 놀이터라 생각하고 가볍게 시작했다.
역시…… 식물들이 초보자를 알아 보는 것 같다. 쑥갓은 싹이 몇 개 나오더니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시금치와 붉은 색 미국 상추는 모종을 사다가 심은 것이다. 그들은 3개월 정도 조그만 잎사귀만 보여주다가 없어졌다. 가지는 두 개의 열…

날마다 부르는 노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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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형, 소리 좀 줄이라고 해!”
둘째 아이, 윤이가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불평하며 소리치는 말이었다. 윤이가 이렇게 소리칠 즈음이면 큰 아이, 산이는 노래에 흠뻑 빠져 도취되어 있는 상태일 것이다. 때로는 얼굴은 벌개가지고 눈물, 콧물 흘리며 울부짖고 있기도 하다.
산이는 CD를 50 여장(올 여름 한국 방문 때 만난 목사님들께서 챙겨주신 8장의 CD가 보태어졌다) 가지고 있다. 대부분이 CCM(Christian Contemporary Music)이고 어릴 적 참여했던 여름성경학교 찬양모음이나 청소년기에 참여했던 여름캠프 찬양모음을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집을 방문했던 친구가 TV 음악 프로그램이었던 “나는 가수다” 첫 번째 시즌에서 10곡을 뽑아 녹음해서 주고 간CD가 한 장 있다. 요즘 즐겨 부르는 다른 또 하나의 음악이 있는데 아이패드에 깔려 있는 새찬송가이다. 그 새찬송가에는 반주도 들어 있고 찬송 부르는 목소리도 들어 있어서 산이가 많이 따라 부르고 있다.
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밤에 잠들기 전까지 많은 시간 노래를 불렀다. 모든 학교를 다 마친 요즘은 노래 부르는 시간이 더 늘어나서, 깨어 있는 시간 가운데 삼분의 일은 산이의 노래 소리로 집안이 가득하다. 레고를 조립하면서도, 컴퓨터로 한글 타이핑 연습을 하면서도, 그리고 밑그림이 복잡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을 색칠하면서도 노래를 부른다. 온전히 노래 부르는 것에만 집중할 때는 항상 두 손에 드럼 스틱이 들려져 있다. 드럼 치는 것을 좋아해 앞에 없는 드럼을 상상하며 치는 것이다. 때로는 밥 먹으러 식탁에 와서도 노래가 끊어지지 않아 “밥 다 먹고 해”, 라는 말을 한두 번 듣고 나서야 멈춘다.
이렇게 오랜 시간 반복해서 노래를 듣다 보니 가사를 잘 외우고 있다. 나는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노래도 산이는 줄줄이 불러댄다. 산이는 기억력이 좋은 것 같다. 아주 어릴 때도 반복해서 불러준 노래와 율동을 잘 따라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도 학년별로 …

정직하고 친절한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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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끔 이용하는 백화점 콜스(KOHL’S)에서 수표(Check) 한 장을 받았다. 나에게 발행된 것이었다. 수표에 적힌 금액은 25달러였다. 수표 아래 쪽에 있는 메모 공간에는 신용카드 잔액을 환불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지난 봄에 콜스에서 뭔가(이 몹쓸 기억력은 올 봄의 사소한 일들을 벌써 거의 잊었다)를 사고 그 백화점에서 발행한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다. 사용한 금액은 그 다음 달에 어김없이 청구되었다. 내가 사용하는 신용카드가 몇 장 되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지불 기일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마감일 보다 몇 일 먼저 결제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하루 이틀 미루다가 콜스 신용카드 마감일 이틀을 남겨두고 온라인 뱅킹으로 결제를 시도했다. 보통은 이 결제가 당일이나 그 다음 날이면 가능하다. 여유롭게 들어간 온라인 뱅킹에서는 이틀이 지나 결제가 가능하다고 표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불 마감일에서 하루 늦게 결제가 되는 것이었다. 우편으로 내 수표를 보낸다 해도 마감일을 넘기기는 마찬가지여서 어쩔 수 없이 온라인 뱅킹의 결제를 허락했다.
그리고 또 한 달 뒤, 그 백화점은 마감일을 넘긴 벌금으로 25달러를 나에게 청구했다. 마감일을 하루 넘긴 잘못은 분명 나에게 있었지만 25달러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고 너무 아까웠다. 난 그 벌금을 결제하기 전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고객 센터에 전화를 했다. 상담원에게 결제가 왜 늦게 되었는지 설명을 한 뒤에, 그 동안 한 번도 마감일을 넘기지 않고 신용을 잘 지켜온 고객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상담원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다시 돌아와, 일단 25달러를 내면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뜻밖에도 너그러이 벌금을 면제해주어 기분이 좋았다.
환불을 어떻게 해 주겠다는 것인지는 말이 없었기에 잊고 지냈다. 한 달이 다시 지나 청구서가 날아왔는데 신용카드 잔액에 25달러를 넣어 놓은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결국은 자기네 신용카드를 다시 사용하도록 해놓았지만 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