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하고 느슨한 성탄축하예배


2012 성탄축하예배






추수감사절이 지나자마자 라디오에서는 캐럴을, 텔레비전에서는 성탄이 소재가 되는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듣고 보게 된다. 어떤 채널에서는 이런 것들을 하루 종일(!) 듣거나 볼 수도 있다. 내가 사는 미국 동남부, 특히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눈을 거의 볼 수 없고 기온이 낮아져 서리가 내리면 겨울철인가 보다 할 정도의 날씨다. 그렇다 보니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카푸치노가 담긴 컵에 손을 녹이며, 커다란 창 밖으로 내리는 함박눈 속에서 바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을 친근한 눈길로 바라보며, 아련히 들려오는 캐럴이 성탄절기를 보내고 있으며 곧 한 해가 마무리 될 것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모습은 영화 속에나 등장할 법하다. 같은 동부인데도 북쪽은 요즘 눈 폭풍이 휩쓸고 있고 정부가 셧다운할 정도라고 하니, 눈이 마냥 낭만적이지 않고 재해인 곳도 있어 안타깝기도 하다. 하여튼 추운 계절에 듣는 캐럴은 기분을 달뜨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지난해에도 올해처럼 캐럴을 즐겨 들으며 성탄 장식이 자주 보이는 미국 영화도 가끔 찾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시골 교회에서 성탄절 연극(?)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내레이터가 성경 본문을 읽으면 교인들이 그걸 몸으로 표현했다. 말은 필요치 않았다. 아주 소박해 보이는 성탄극이었다. 하지만 극에 참여하고 있는 교인들은 저마다의 역할에 맞는 의상을 그럴듯하게 차려 입었고 소품도 아기자기 하게 여러 가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연극이라는 것이 대사를 외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대사가 없는 연극이라니 우리 교회에서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성탄을 기뻐하는 마음을 담아, 성경 말씀을 몸으로 표현해보자는 의미를 두고 진행이 되었다. 목사님은 성탄과 관련된 성경 본문을 찾아 시간의 흐름대로 나열하여 이야기를 만들었다. 셀별로 이야기를 나누어 맡았다. 영화에서처럼 대부분 내레이터가 본문을 그대로 읽어주면 셀원들은 몸으로 본문을 표현했다. 때로 이야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주 간단한 대사가 들어가기도 했다.

몸으로 표현하는 성탄이라는 의미를 계속 강조했으나 성탄 때마다 들어온 말씀을 그대로 읽고 표현하다보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성극인데 잘 참여하시려나 아주 조금 걱정했다. 그런데 성극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60 , 70 세 넘으신 분들이 맡은 역할을 잘 표현하기 위해 서로 조언해주며 하하 호호 즐겁게 극을 꾸며갔다. 96 세나 되신 할머니 권사님께서도 참여하셨다. 와우! 극중 의상도 솜씨 좋은 분들은 만들기도 하고, 언젠가 성극할 때 입었던 옷을 찾아오신 분도 있고, 이집트 여행할 때 사두었던 옷을 가지고 오신 분고 계셨다. 성극에 참여하지 않는 교인들은 대부분 찬양이나 연주 등으로 준비를 했다.

성탄주일 예배는 우리가 준비한 모든 것을 발표하는 것으로 드려졌다. 무대 의상을 입은 채로 예배를 드리다가 자기 순서가 되면 무대에 나가서 자기가 준비한 것을 보여주었다. 연습한 시간도 길지 않았고 대사도 없는 성극은 예상대로 어설펐다. 무대 위에 올라가 서로의 자리를 정하느라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내레이터 맡으신 어느 집사님은 평상시에도 혼자 잘 웃으시는데, 이 날 어떤 장면에 눈길이 가셨는지 웃음을 참지 못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셨다. 교인들 모두가 미소를 머금은 채 예배를 드리는 동안 성탄의 기쁨이 슬그머니 그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는 듯 했다. 이 날 성탄예배는 엉성하고 느슨하면서도, 화목한 분위기로 드려졌다.

올해 성탄축하예배는 지난해와 구성은 비슷하나 성극이 대사가 많아졌다. 이번에도 주인공들은 60 대 중반 되신 권사님들이다. 지난해보다는 각자 좀 더 열심히 준비 중이신데 서로 만나서 연습하는 시간이 적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어느 권사님은 대사를 못 외우면 극본을 보고 하면 되고, 틀리면 그게 더 재미있는 거라고 하신다. 연세 많으신 권사님들이 성탄 축하에 기꺼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성탄예배가 좀 엉성하고 느슨하면 어떤가! 그 엉성하고 느슨한 빈 틈을 따라 아기 예수님이 누워 계신 곳으로 인도할 유난히 밝고 시린 별빛이 흘러 들어오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 별빛을 따라 거친 들판을 걸어가는 목자들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한 걸음 내딛는 사람들이 여기에도 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북어대가리

친구가 준 졸업 반지

마냥 좋지는 않아도 봄은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