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높고 푸른 사다리』를 읽고


 
 
전자책으로 한 권의 책을 완독했다. 처음이다. 전자책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도 나는 종이책이 더 좋다. 종이가 주는 느낌이나 냄새도 좋고, 맘에 드는 구절은 연필로 삐뚤삐뚤 줄을 긋거나 동그라미를 쳐 놓을 수도 있고, 책 내용과 관련되어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놓기도 하고, 그래서 종이책이 좋다. 전자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든 기기나 일부 앱들의 기능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 종이책을 읽으면서 하는 줄긋기, 메모, 북마크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하는 내용을 찾아주는 검색 기능도 있어 편리하기도 하다. 그래도 아직 나는 손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읽는 종이책이 익숙하고 정겹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 책을 구입할 수 없는 이곳에서  빨리 읽고 싶은 마음에 전자책 구매를 하자는 남편의 의견에 동의를 했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 값을 결제하면 바로 내려 받아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처음 구입한 전자책은 공지영 작가의 새로운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작가의 소설은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그런 점이 공지영 작가의 글을 자꾸 읽게 한다.

높고 푸른 사다리』에서도 감동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1950 12월에 있었던 흥남 부두 철수사건과 관련된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 잔잔한 배경이 되어 자리잡고 있다. 전쟁에 필요한 연료를 전달하기 위해 흥남 부두를 향해 미국 국적의 배 한 척이 항해를 한다. 북쪽 흥남 부두에 도착했을 때 중공군의 개입으로 대대적인 철수가 이루어지고 있는 때였다. 피난을 떠나려는 많은 사람들은 부두에 모여 어떻게 해서든 배를 타기 위해 몸부림을 치기도 하고 승선이 허락될 배를 조용히 기다리기도 한다. 이것을 본 연료 운반선의 선장은 열 두 명이 정원인 배에 무려 1 4000 명을 태운다. 배가 가라앉거나 바닷속 지뢰가 터질 위험을 감수한 결정이었다. 사흘 동안 바다를 달려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무사히 거제도에 도착한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한 선장은 종적을 감춘다. 이 사건의 자세한 내용과 그 후 선장이 어찌되었는지 소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소설에서는 사랑이라고 꼬집어 말하지는 않으나 여러 가지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한 미국인 선장의 피난민을 향한 사랑, 북한에서 선교하다가 죽거나 살아서도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남한에서 평생을 수도하는 외국인 수사들의 우리나라 사랑, 철탑에 올라가 있는 여성과 그녀의 가난한 아이들을 보듬는 어느 수사의 사랑, 친구들끼리의 사랑, 신부 서품을 앞두고 한 여성과 사랑하게 되어 신부가 되려는 것도 다 버리겠노라 하는 주인공 수사의 열렬한 사랑……

동시에, 사랑하기에 견뎌내야 하는 아픔과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을 겪으며 하나님께 도대체, ?” 라는 물음을 계속 묻는다. 이러한 물음과 톨스토이가 물었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대답은 같다.  공지영 작가는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 지상에 머문다고 표현한다.

높고 푸른 사다리』의 현실적인 배경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과 거기서 노동하며 기도하는 수사와 신부들이다. 그들은 나와 교단은 다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 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신앙인이라는 동질감이 생겨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읽었다. 내 생각이나 욕심과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늘 갈등하면서 그래도 하나님의 뜻을 묻고 따르려고 애쓰며살아가는 나의 마음에 남는 글귀가 있어 적어본다. 주인공인 요한 수사는 소설의 끝부분에서 미국에 살고 있는 노년이 된 연료운반선의 선장을 극적으로 만난다. 이 선장님이 요한 수사에게 한 말이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날 배를 운전한 것은 제가 아니었습니다. 당신 자신을 그대로 놓아주세요. 힘을 빼고 즐거워하세요. 그러면 어떤 항구에 도착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절대 미리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가르쳐주셨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고통을 통해서만 우리는 성장한다는 것을요.”

댓글

  1. 최근 저도 읽은 책이랍니다. 가까운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으로 등극한 것이지요. 지금까지 살면서 하나님을 향한 나의 지속적이고 반복되는 질문을 그녀가 하고 있더군요. 가볍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끝을 향해가며 정신없이 몰입하게 된 책입니다. 사상의 경계선에 걸쳐진 듯한 작가라는 느낌은 여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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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슷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으신 분이 계시다니 반갑습니다. ^^
      살아가는 공간은 달라도 같은 마음으로 이 시대를 사는 분들이 있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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