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4/2013

서로의 머리를 매만지는 것은


 
 
한국 여행에서 돌아오기 바로 전에 머리에 염색을 했으니까 두 달이 조금 더 지났다. 새치는 머리카락이 자라는 만큼 자라는 것인가 보다. 아닌가? 머리카락의 길이는 그다지 길어진 것 같지 않은데, 새치는 진한 갈색 머리카락을 뚝 잘라먹고 4 센티미터쯤 흰색으로 띠를 두른 듯 자라 있다. 세상 구경하겠다고 쑥쑥 자라나오는 이 새치들을 그냥 보아 넘길 수 있는 기간은 두 달 남짓이다. 염색하는데 사용되는 약품 냄새가 싫어(요즘은 그 냄새가 많이 약해지거나 거의 나지 않는 상품들도 나오는 것 같다) 그 기간을 늘려볼까 했지만 참아지지가 않는다. 머리가 온통 하얗게 되도록 놔두려면 모를까 머리카락 뿌리 부분만 허얘지는 것을 견디는 내 인내심의 한도는 육, 칠십 일 안팎이다. 새치가 새로 나오기 시작할 때도 두피가 가렵거니와 어찌된 일인지 염색하고 두 달쯤 지나면 그때도 또 가렵기 시작한다. 이래저래 내 몸과 마음이 염색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를 주는 것 같다.

30 대 중, 후반부터 나기 시작한 새치는 혼자 염색이 가능했다. 앞머리, 옆머리, 그리고 정수리까지 거울 보고 염색을 하면 새치가 어느 정도 가려졌다. 전체 염색은 아주 가~끔 미용실이나 엄마의 도움을 받았다.

엄마는 20 대부터 새치가 나기 시작해서 염색하는 것이 눈 건강에도 좋지 않고, 귀찮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하도 염색을 해서 도사가 되었다며 어떤 색이 자연스러운지, 어디부터 염색약을 발라야 좋은지 가르쳐주시기도 했다. 염색 전문가가 된 엄마한테 내 머리의 염색을 맡기고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모른다. 빠른 시간 안에, 꼼꼼하게, 얼굴 피부에 염색약이 닿는 것을 허용치 않는 깔끔함에, 마음이 느긋해지니 몸도 나른해지고 그러다 졸기 까지 한 적도 두어 번 있다. 엄마가 염색을 해주던 초반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쫌 더 있다 나지 벌써 나니.”
그러시더니 이번 한국 갔을 때도 혼잣말을 하신다.
온통 하야네. 이거 어쩜 좋아!”
  돋보기를 쓰고 머릿속 여기저기를 안타까운 듯 헤집어보시는 엄마의 손길과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생기는 새치인데 그 새치가 많아지는 딸을 염려해주는 엄마의 말소리는 아무런 세상 근심 없이 부모님의 보호 아래 살던 유년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언제부턴가 머리털 염색을 하고 두 달이 지나면 하얀 색 머리카락이 너무 많아져서 부분 염색으로 가려지지가 않는다. 거울로 보이지 않는 뒷머리까지 나 혼자 염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미용실의 헤어 디자이너나 엄마 대신 남편이 내 머리 염색 담당이 되었다.

남편은 처음엔 길지도 않았던 내 머리카락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몰라 허둥댔었다. 아마도 여성의 머리카락에 어떤 처치를 하기 위해 몇 십 분씩 만지작거려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또 염색약을 바르는 시간이 어찌나 긴 지, 머릿결이 상하는 것은 둘째 치고 약을 바르는 사이에 색이 다 들어버릴 지경이었다. 그리고 염색을 해줄 즈음에 나에게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머리털을 세게 잡아당기면서 빗질을 한다(아마도 남편은 그런 적이 없다고 발뺌을 할 것이 분명하다). 정말 치사하지만 염색이 시작된 이상 참아야 한다. 두어 번 그런 일을 당하고는 꾀가 생겨서 별 탈 없이 잘 지낼 때에 염색을 부탁하곤 한다.

요즘에는 남편에게 염색해 달라고 요청하면 군소리 없이 잘 해준다. 이곳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로 이사온 뒤로 더욱 솜씨 있게 염색을 해준다. 그 동안 염색해본 경험이 쌓여서 그렇기도 할 테고, 우리 교회 교인들의 경우를 많이 보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교인들 중에는 부부끼리, 가족끼리 파마를 해주시는 분도 있고, 머리를 깎아주거나 염색해주는 분들도 여럿 계신다. 우리 교회 교인들은 이민 생활을 삼, 사십 년씩 오래 하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예전에는 편하게 다닐 수 있는 한인이 운영하는 미용실도 거의 없었을 테고(지금은 서너 군데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발과 미용을 가족이 서로 챙겨주는 것이 익숙해지셨나 보다. 또 그렇게 하면 미용실 가는 비용이나 시간을 아낄 수도 있어서 괜찮은 것 같다. 우리 가족도 비슷한 이유로 서로 머리를 깎아주고, 염색해주고 있다.

염색이 시작되면 남편에게 상기시켜주는 것들이 있다. 이마 위 앞머리부터 약을 바르기 시작하고, 머리카락을 염색솔로 너무 세게 문지르지 말고, 빨리 하고 끝내자, 이다. 엄마가 가르쳐주었던 것들이다. 엄마가 염색해줄 때처럼 남편을 믿거라 하는 마음은 아니지만 염색약이 묻은 머리가 얼굴 쪽으로 휙 넘어와 얼굴 어딘가에 닿을 때를 빼고는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제는 아내의 머리칼 물들이기에도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남편의 성정대로 성실한 손놀림이 느껴진다. 남편은 나의 머리를 염색해주고 나는 남편의 머리를 깎아주며, 이런 작은 일상 속에서 서로의 필요를 더욱 느끼고, 감사하고, 의지하며 살게 되나 보다.

가을에 느낄 수 있는 선선한 아침 공기와 상쾌한 바람을 놓치고 싶지 않아 집 근처 숲길을 남편과 함께 걸었다.
여보, 내일 아침에 염색하자.”
내일이 되었고, 남편은 손에 익은 듯 머리를 요리조리 들춰가며 염색을 마쳤다.

잠깐. 뒤에서 사진 한 장 찍어봐.”
교회에 간다며 서둘러 나서는 남편을 불러세워 염색한 나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염색한 머리의 뒷모습이 뭐 특별한 것이 있겠어, 하며 좀 전에 찍어준 사진을 열어보았다. 염색한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지 않게 고무줄로 단정하게 묶여 있다(고무줄로 묶어놓는 것도 엄마가 가르쳐주신 것이다). 두 달 만에 내 머리털이 고르게 새로운 색을 입어 좋고, 단정하게 마무리된 뒷모습에 더욱 기분이 좋아진다.

엄마는 자신의 뒷머리 염색을 어떻게 하지?’
문득 궁금해진다. 어쩜 이다지도 엄마에게 무덤덤했을까. 다음에 한국에 가게 되면, 염색을 받은(?) 내 기분처럼 엄마의 기분도 좋아지게 엄마 머리 염색하는 것을 내가 한 번 해 봐야겠다. 하도 멀리 떨어져 살아 기회가 많지 않을 테니까 잊지 않게 스마트 폰 노트의 한국에 가서 할 일자리에 적어두어야겠다.

댓글 2개:

  1. 어느덧 나의 머리에도 혼자 하기에는 벅찬 흰머리카락이 4~6주 간격으로 나의 손길을 기다리더라구...
    은주야~~잘 지내고 있지??
    연락이 늦었다. 계속 뭔가가 마음이 뒤숭숭 했거든..
    자주 놀러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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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글
    1. 오! 화선아. 반가워~
      어쩐 일로 마음이 뒤숭숭 했니? 잘 풀려가고 있는 거지?
      친구에게 기쁜 일이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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