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13의 게시물 표시

IEP (1)

이미지



IEP는 Individualized Education Program 혹은 Individual Education Plan(개별교육프로그램)의 준말이다. 나의 첫째 아들 강산이 같이 장애가 있는 학생(student with special needs-장애인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로는 the handicapped, the disabled, 그리고 special needs 따위가 있다. 그 가운데 special needs가 제일 맘에 든다)은 일 년에 한 번씩 IEP를 검토, 수정, 보완하기 위한 모임을 갖는다.
보통은 일 년을 주기로 IEP 모임을 갖지만 일 년이 되지 않았을 때에도 장애학생을 교육하는데 IEP 모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부모나 교사는 언제고 모임을 요청할 수 있다. IEP 모임 일정은 학교측에서 한 달 전, 그리고 적어도 5일 전, 이렇게 두 번 알려주도록 되어있다. 한 달 여유를 두고 모임 날짜를 알려주지만 사정이 생기면 날짜와 시간을 형편에 맞게 조정할 수도 있다.
이 회의에는 학생, 부모, 특수학급 교사, 일반학급 교사는 꼭 참석하고 IEP를 결정해야 하는 사항에 따라 학교 심리학자, 과도기 전문가(transition specialist), 상급학교 교사, 학교 사회복지사(school social worker) 등이 참석하기도 한다. 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부모는 통역사를 요청할 수도 있다. 그리고 부모 입장에서 교사들에게 내 아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학교 밖에서의 생활을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을 초청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교회학교 교사나 과외활동 지도교사 등이다. 이런 경우에 부모와 함께 동행하는 사람에 대하여 학교에 미리 알리는 것이 예의인 것 같다.
IEP 모임에 대해 알고 있는 일반적인 규칙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미국에서 아이를 어려서부터 키운 부모나 이민 생활이 오래된 부모들은 IEP에 대한 경험이 많을 터이니 여기에 덧붙일 것들이 더 있을 지도 모르겠다.
강산이는 현재 공립학교의 과도기 학급(transition cl…

아버님, 편안히 가세요

이미지
한국에 계신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는데 나와 아이들은 그냥 여기, 미국에 있다. 마음이 아주 불편하다. 이렇게 기분이 싱숭생숭하고 쓸쓸할 지 몰랐다.
올해 2월 간암 수술과 6월 뇌종양 수술을 받고 집에서 투병하시던 아버님께서 음식을 전혀 못 드시고 호흡이 아주 거칠어지는 등 건강 상태가 아주 많이 안 좋아지셨다. 가까이서 아버님을 돌보시는 어머님은 첫째 아들인 남편이 한국으로 빨리 와주길 바라셨고 남편도 서둘러 비행기편을 알아보고 고향집으로 날아갔다. 아버님의 병과 수술, 그 후 건강이 악화되는 과정을 함께 겪으신 어머님과 뇌종양 수술 후 병원에 머무르며 아버님 상태를 잘 알고 있던 남편은 아버님에게 닥칠 무엇인가를 감지하고 있던 것 같다.
아버님은 화요일 저녁 늦게 한국에 도착한 남편과 하룻밤을 보내셨다. 한국이 아침 식사 시간이 되었을 즈음에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둘째 아이 윤이와 나는 전화로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그 동안 할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하던 강산이는 할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얘기를 하면 자꾸 울어서 전화 통화하도록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그 동안 고마웠어. 할아버지가 있어서 좋았고, 할아버지가 곁에 없어도 우리 마음에 있을 거야. 하늘 나라에 가서 편안히 계셔. 할아버지, 사랑해.”
아무 대꾸도, 소리도 내지 못하시는 할아버지께 윤이는 차분하게 자신의 마음 전했다. 나는 말보다 울음이 앞서 제대로 말을 못했다. 그리고 나서 그날, 10월 16일 수요일 낮 1시 30분(한국 시간)에 편안히 숨을 거두셨다.
아버님은 성실하고, 약간의 유머가 있으시고, 곧은 소리 잘하시고, 볼멘소리 하시면서도 어머님을 잘 도와주시고, 손주들에게는 무뚝뚝한 분이셨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권장하던 시기에 마을 이장 하시면서 솔선수범해야 한다며 아들 둘만 낳고 그만두신 결단력 있는 분이다. 그리고 두 아들을 대학까지 보내기 위해 아주 열심히 농사 지으셨다…

빨랫줄

이미지
밤이 점점 길어지는 시기라 그런지 해 뜨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거기에 일광절약(daylight saving) 기간이라, 한 시간이 빠르므로 오전 9 시쯤 되어야 햇살이 밝게 펴진다. 가을의 곱고 보드라운 햇살은 한낮이 되면 화씨 80 도(섭씨 26.7 도) 정도의 좀더 진하고 강한 빛으로 바뀌는데 그래도 여전히 부드럽다. 다만 해가 지고 나면 기온이 뚝 떨어져 아침 저녁으로 서늘해지는 날씨에 감기 걸리지 않도록 잠 자리 이불을 따스한 것으로 바꾸고, 덮었던 것은 깨끗하게 빨아 햇빛에 뽀송뽀송 말리면 좋을 때다.
미국에 와서 사는 동안 운 좋게 뒷마당이 있는 집들에서 살고 있다. 지금 사는 집은 뒷마당이 넓어 잔디를 돌보아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지만 답답하지 않아 좋다. 이불 같은 큰 빨래를 할 때면 건물로 가려지지 않은 한적한 뒷마당 한 가운데에 빨래틀을 펴놓고 따사로운 햇빛과 솔솔 부는 바람에 말려보고 싶은 마음이 늘 든다. 그런데 여태 한 번도 그렇게 해 보질 못했다. 가만히 눈치를 보니 집 밖에 빨래를 너는 집이 없다. 송화 가루나 꽃가루가 너무 많이 날리는 시기에는 어쩔 수 없다 해도 그렇지 않은 때에도 다른 집 마당에 빨래가 널린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불 하나 빨 것이 생겼는데 세탁기에 넣어 돌려놓고 궁금한 것이 생기면 찾아가는 곳, 인터넷을 찾아가 빨랫줄 사용에 대해 물어보았다.
주로 2008 년을 이후로 나온 글들이 많았는데, 빨랫줄 사용 운동이 전개되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운동이 벌어지는 것은 빨랫줄금지법에 반대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재미있는 법이다. 이 법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빨래를 집 밖에 널어 놓으면 가난한 모습으로 보여 보기에 좋지 않다는 것과 빨래건조기를 만드는 가전제품회사나 건조기에 사용되는 전기를 공급하는 전력회사의 정치권과의 막후교섭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8년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빨래를 실외에 널지 말라는 요구를 무시하던 남성이 총에 맞아 죽기까지 했다는 것이다(연합뉴스 10.8.2010).
조금 다…

서로의 머리를 매만지는 것은

이미지
한국 여행에서 돌아오기 바로 전에 머리에 염색을 했으니까 두 달이 조금 더 지났다. 새치는 머리카락이 자라는 만큼 자라는 것인가 보다. 아닌가? 머리카락의 길이는 그다지 길어진 것 같지 않은데, 새치는 진한 갈색 머리카락을 뚝 잘라먹고 4 센티미터쯤 흰색으로 띠를 두른 듯 자라 있다. 세상 구경하겠다고 쑥쑥 자라나오는 이 새치들을 그냥 보아 넘길 수 있는 기간은 두 달 남짓이다. 염색하는데 사용되는 약품 냄새가 싫어(요즘은 그 냄새가 많이 약해지거나 거의 나지 않는 상품들도 나오는 것 같다) 그 기간을 늘려볼까 했지만 참아지지가 않는다. 머리가 온통 하얗게 되도록 놔두려면 모를까 머리카락 뿌리 부분만 허얘지는 것을 견디는 내 인내심의 한도는 육, 칠십 일 안팎이다. 새치가 새로 나오기 시작할 때도 두피가 가렵거니와 어찌된 일인지 염색하고 두 달쯤 지나면 그때도 또 가렵기 시작한다. 이래저래 내 몸과 마음이 염색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를 주는 것 같다.
30 대 중, 후반부터 나기 시작한 새치는 혼자 염색이 가능했다. 앞머리, 옆머리, 그리고 정수리까지 거울 보고 염색을 하면 새치가 어느 정도 가려졌다. 전체 염색은 아주 가~끔 미용실이나 엄마의 도움을 받았다.
엄마는 20 대부터 새치가 나기 시작해서 염색하는 것이 눈 건강에도 좋지 않고, 귀찮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하도 염색을 해서 도사가 되었다며 어떤 색이 자연스러운지, 어디부터 염색약을 발라야 좋은지 가르쳐주시기도 했다. 염색 전문가가 된 엄마한테 내 머리의 염색을 맡기고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모른다. 빠른 시간 안에, 꼼꼼하게, 얼굴 피부에 염색약이 닿는 것을 허용치 않는 깔끔함에, 마음이 느긋해지니 몸도 나른해지고 그러다 졸기 까지 한 적도 두어 번 있다. 엄마가 염색을 해주던 초반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쫌 더 있다 나지 벌써 나니.” 그러시더니 이번 한국 갔을 때도 혼잣말을 하신다. “온통 하야네. 이거 어쩜 좋아!”   돋보기를 쓰고 머릿속 여기저기를 안타까운 듯 헤집어보시는 엄마의 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