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의 게시물 표시

멋진 힘 조절

이미지
동남부 한인연합감리교회 목회자 가족 수련회에 갔었다. 2박 3일을 미국에서 고향 같은 애틀랜타에서 보내면서 반가운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새로 얼굴을 익히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수련회 둘째 날, 한인연합감리교회(아래 연감)와 기독교대한감리회(아래 기감) 목회자들의 친선 경기가 아틀란타 한인교회에서 열렸다. 경기 종목은 탁구, 족구와 배구였다. 목회자 아내들은 경기가 열리는 동안 각자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하도록 허용되었다. 덕분에 아틀란타 한인교회 근처에 있는 한인 마트를 어슬렁대다 돌아왔더니 탁구와 족구 경기는 끝나 있었다. 경기 결과는 연감과 기감이 1:1 상황이었다. 마지막 종목인 배구 시합은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구경하기로 맘 먹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친선 경기이니 누가 이겨도 좋겠으나 남편이 연감 쪽 선수로 뛰게 되었으니 당연히 연감을 응원했다.
9명의 선수가 참여하는 9인제 배구가 시작되었다. 배구공이 날아가고 튕겨지는 곳으로 눈길이 바쁘게 따라다녔다. 목사님들이 재주가 많으신지 배구도 잘 하셨다. 그 자리에서 만들어진 팀이니 팀 플레이 보다는 각자가 열심히 경기하는 모습이었고, 그 중에서 좀 더 기술적으로 잘 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빠르고 힘차게 날아온 공을 가볍게 받아서 공격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때론 힘차게 내리꽂거나 때론 살짝 네트를 넘겨 점수를 획득할 때마다 구경꾼들은 환호와 박수로 선수들을 응원했다.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 공을 살려낼 때도, 갑자기 자기 앞으로 날아오는 공을 민첩하게 받아낼 때도 선수들은 박수를 받았다. 선수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3 세트 경기를 했고, 연감이 이겼다. 올해 수련회 친선경기에서는 전체적으로 연감이 이기게 되었다.
구경꾼들은 박수로 선수들을 격려하고 선수들은 물을 마시며 흩어지려고 하는데, 어느 목사님께서 40대, 50대 나눠서 경기해 보자고 제안하셨다. 이 제안은 연감과 기감 목회자들이 섞여서 경기하자는 말씀의 다른 표현이었던 것 같다. 경기가 재미있게 진행되었다. 연령대가 높으신 목사님…

믿고 기다리는 연습

이미지
몇 주 전 아침이었다. 뒤뜰이 내다보이는 창문의 블라인드를 여는데 이상한 조각들이 눈에 띄었다. 뭐지?, 하며 얼굴을 창문 가까이에 대고 좌우로 살펴보았다. 이런! 옆집 J 아주머니네 울타리 일부분이 부서져 있었다. 그 울타리는 왕복 2 차선 도로 쪽에 쳐진 것으로 우리 동네를 둘러싸고 있다. 울타리가 하나로 쭉 연결되어 있으나 집집마다 자기 땅에 해당하는 부분의 울타리를 각각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집이 있는 쪽은 동네를 둘러싼 울타리만 있을 뿐, 집과 집 사이 경계되는 곳에 울타리를 치지 않고 산다. 그래서 뒤뜰에 나가면 옆집 뒤뜰과 다 연결되어 있어 엄청 넓어 보인다. 그래도 남의 집 뒤뜰로 걸어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J 아주머니네 울타리가 부서져 크고 작은 나무 조각들이 우리 뒤뜰에까지 날라온 것이다. 그리 굵지 않아도 제법 잎이 많이 달리던 나무 하나도 부러졌다. 길가 쪽에 서 있는 전봇대 보호판도 부서져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울타리와 나무, 그리고 전봇대 보호판까지 상한 걸 보면 바람에 넘어진 것 같지는 않다. 이곳에 그리 오래 산 것은 아니나 그렇게 심한 바람이 부는 걸 아직 보지 못했다. 남편은 밖에 나갔다 오더니 자동차가 들이받은 것 같다고 했다.
옆집 J 아주머니는 홀로 사시는데 몸이 많이 아프시다. 이웃이 되어 처음 만났을 때 지팡이를 많이 의지하고 계셨고 말소리에도 힘이 없으셨다. 그런데 요즘에는 몸이 더 안 좋아지셨는지 간호보조사들이 돌아가면서 거의 24 시간 아주머니를 돌보고 있다. 병원도 자주 가시는 듯 하다. 그런데 집 울타리까지 말썽이다. 아주머니가 많이 속상하실 것 같았다. 경찰이나 보험회사 직원들도 만나야 할 테고…… 아니면 아프신 분이니 누군가 돕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한국 생활이 몸에 베인 내가 느끼기에 미국 사람들은 일을 서둘러 하지 않는 것 같다. 일을 처리 하는 기간이 명시된 것은 그 시간을 잘 지키는 편이다. 별 거 아닌 일로 판단하고 일찍 일이 해결될 거라고 기대했다가는 속만 태우기 …

엉성하고 느슨한 성탄축하예배

이미지
추수감사절이 지나자마자 라디오에서는 캐럴을, 텔레비전에서는 성탄이 소재가 되는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듣고 보게 된다. 어떤 채널에서는 이런 것들을 하루 종일(!) 듣거나 볼 수도 있다. 내가 사는 미국 동남부, 특히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눈을 거의 볼 수 없고 기온이 낮아져 서리가 내리면 겨울철인가 보다 할 정도의 날씨다. 그렇다 보니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카푸치노가 담긴 컵에 손을 녹이며, 커다란 창 밖으로 내리는 함박눈 속에서 바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을 친근한 눈길로 바라보며, 아련히 들려오는 캐럴이 성탄절기를 보내고 있으며 곧 한 해가 마무리 될 것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모습은 영화 속에나 등장할 법하다. 같은 동부인데도 북쪽은 요즘 눈 폭풍이 휩쓸고 있고 정부가 셧다운할 정도라고 하니, 눈이 마냥 낭만적이지 않고 재해인 곳도 있어 안타깝기도 하다. 하여튼 추운 계절에 듣는 캐럴은 기분을 달뜨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지난해에도 올해처럼 캐럴을 즐겨 들으며 성탄 장식이 자주 보이는 미국 영화도 가끔 찾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시골 교회에서 성탄절 연극(?)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내레이터가 성경 본문을 읽으면 교인들이 그걸 몸으로 표현했다. 말은 필요치 않았다. 아주 소박해 보이는 성탄극이었다. 하지만 극에 참여하고 있는 교인들은 저마다의 역할에 맞는 의상을 그럴듯하게 차려 입었고 소품도 아기자기 하게 여러 가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연극이라는 것이 대사를 외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대사가 없는 연극이라니 우리 교회에서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성탄을 기뻐하는 마음을 담아, 성경 말씀을 몸으로 표현해보자는 의미를 두고 진행이 되었다. 목사님은 성탄과 관련된 성경 본문을 찾아 시간의 흐름대로 나열하여 이야기를 만들었다. 셀별로 이야기를 나누어 맡았다. 영화에서처럼 대부분 내레이터가 본문을 그대로 읽어주면 셀원들은 몸으로 본문을 표현했다. 때로 이야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주 간단한 대사가 들어가기도 했다.
몸…

영혼의 불꽃을 일으킨 한 단어, 순수

이미지
어려서부터 교회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주일에 교회를 거의 안 빠지고 예배에 참석했다. 교회 선생님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잘 따라 했다. 성경 구절을 외우라면 외우고, 찬양을 예쁘게 부르라고 하면 그렇게 하려고 애썼다. 교회 선생님들은 나를 많이 귀여워해 주셨고 나는 더 열심히 선생님들의 말씀을 잘 듣고 따랐다. 어린 나에게 교회는 유익하고 즐거운 놀이터였다.
교회 선생님으로부터 성경 말씀과 그들의 신앙 태도를 여전히 배우면서, 중학교 2 학년 때부터 나도 교회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나의 모교회는 작은 교회가 아니어서 청년들도 많았는데 어린 나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어찌 일이 그렇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고 그 맡겨진 일을 얼마나 잘 감당했을까, 돌아보니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늘 흥분되고 도전이 되었다. 아마도 교회는 나에게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꿈을 꾸게 해준 곳이었던 것 같다.
교회 안에는 지금이나 그때나 남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귀찮은 일들이 있다. 행사준비, 청소, 식사준비, 설거지, 예배 후 뒷정리…… 난 무슨 생각이었는지 집에서는 손도 까딱하지 않으면서 교회에서는 그런 일들이 마치 나의 일인 양 참 잘도 했다. 그때의 마음을 기억해보면 칭찬을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생색을 내려고 한 것은 더 더욱 아니었다. 그냥 남들이 잘 안 하려고 하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되는 것이고 그런 자리에 내가 있었을 뿐이었다. 개신교와 천주교, 뭐 이런 개념이 없던 어린 시절에는 난 수녀가 되어야 하나 보다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이 밖에도 나의 모교회는 내 삶의 태도나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고등학교 3 학년이 되어 가고 싶은 대학을 고르기 전까지 신학대학이라는 학교가 있는 줄 몰랐다. 난 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세상 지식을 가르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신학대학이라는 존재를 알고 나서 어떤 길이 하나님을 위해 더 잘 일할 수 있는지, 일 년 동안 밤 9 시만 되면…

소설『높고 푸른 사다리』를 읽고

이미지
전자책으로 한 권의 책을 완독했다. 처음이다. 전자책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도 나는 종이책이 더 좋다. 종이가 주는 느낌이나 냄새도 좋고, 맘에 드는 구절은 연필로 삐뚤삐뚤 줄을 긋거나 동그라미를 쳐 놓을 수도 있고, 책 내용과 관련되어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놓기도 하고, 그래서 종이책이 좋다. 전자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든 기기나 일부 앱들의 기능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 종이책을 읽으면서 하는 줄긋기, 메모, 북마크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하는 내용을 찾아주는 검색 기능도 있어 편리하기도 하다. 그래도 아직 나는 손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읽는 종이책이 익숙하고 정겹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 책을 구입할 수 없는 이곳에서  빨리 읽고 싶은 마음에 전자책 구매를 하자는 남편의 의견에 동의를 했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 값을 결제하면 바로 내려 받아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처음 구입한 전자책은 공지영 작가의 새로운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다. 공지영 작가의 소설은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그런 점이 공지영 작가의 글을 자꾸 읽게 한다.
『높고 푸른 사다리』에서도 감동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1950년 12월에 있었던 흥남 부두 철수사건과 관련된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 잔잔한 배경이 되어 자리잡고 있다. 전쟁에 필요한 연료를 전달하기 위해 흥남 부두를 향해 미국 국적의 배 한 척이 항해를 한다. 북쪽 흥남 부두에 도착했을 때 중공군의 개입으로 대대적인 철수가 이루어지고 있는 때였다. 피난을 떠나려는 많은 사람들은 부두에 모여 어떻게 해서든 배를 타기 위해 몸부림을 치기도 하고 승선이 허락될 배를 조용히 기다리기도 한다. 이것을 본 연료 운반선의 선장은 열 두 명이 정원인 배에 무려 1만 4000 명을 태운다. 배가 가라앉거나 바닷속 지뢰가 터질 위험을 감수한 결정이었다. 사흘 동안 바다를 달려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무사히 거제도에 도착한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한 선장은 종적을 감춘다. …

포옹

이미지
둘째 아들 윤이가 싸놓은 도시락을 챙겨 학교에 가기 위해 주방 쪽으로 온다. 그러면 나는 가방 앞 쪽에 도시락을 편안하게 자리잡아 넣는 아이를 옆에 서서 지켜본다. 아이는 가방의 지퍼를 밀어 잠그고 나를 향해 돌아선다.
“엄마, 나 갔다 올게.”
“그래, 잘 갔다 와~.”
우리는 서로 꼭 끌어안는다. 그리고 이어서 나 보다 키가 훨씬 큰 윤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뺨을 어루만져 주며 한 마디 빼놓지 않고 덧붙인다.
“축복합니다.”
나는 엄마로서 윤이에게 아주 미안한 몇 가지 잊지 못할 일들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윤이가 새로운 생명으로 우리에게 찾아왔을 때이다. 첫째 아이 강산이를 얻은 이후로 임신이 되었을 때 마냥 기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강산이의 다운증후군 장애를 검사했던 병원에서 다음 아이를 갖게 되어도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주변 사람들은 물론 가족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조용히 검사를 받았다(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이런 태도로 새로운 생명을 맞이했는지 제발 묻지 말아달라. 겨우 감추고 사는, 그래도 잘 감추어지지 않지만, 나의 어리석음과 부족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용기가 아직은 없다). 검사 결과, 정말 정말 감사하게도 건강한 아이였다. 하지만 검사 결과가 나오기 까지 임신 기간의 절반은 걱정 속에서 보내야만 했다. 태아가 가장 잘 느끼는 감정이 두려움이라는데 윤이가 의식하지 못한다 해도 두려움 속에서 그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무엇으로도 갚을 길이 없는 미안함이다.
두 번째는 아이들을 더욱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한 것이다. 서울에서 살 때의 일이다. 한 전셋집에서 다른 전셋집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짐을 싸고 있었다. 이사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이삿짐 센터에 맡기지 않고 남편과 둘이서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있었다. 미리미리 조금씩 짐을 싸두었다 해도 이사 전 날에 싸야 할 짐이 제일 많았다. 우리 부부는 짐 싸는데 온통 정신을 쏟고 있었고, 아이들은 현관 앞에 있는 정말 손바닥만한 화단에서 흙 장난…

IEP (2)

이미지
앞으로 두 번 정도 남은 IEP 미팅이라도 잘 해보자는 생각으로 일 년 전 받았던 IEP 서류를 꺼내 다시 훑어보았다. 모든 학교 생활이 끝나면 부모와 같이 산다고 하더라도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전자레인지를 이용하여 간단한 음식 조리해 먹기, 식기세척기나 세탁기 사용하기, 시계보고 시간 알기, 동전과 지폐의 가치 알고 헤아리기, 일터에서 다른 사람의 건설적인 비판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기…… 이러한 목표들을 학교에서, 집에서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 묻고 답하게 될 것이다.
다음은 직업훈련과 관련된 질문을 적어보기 위해 강산이가 그 동안 일했던 곳과 맡겨진 일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살펴보았다.
여기 지역 과도기 학급(transition class, 만 18-21 세)의 직업훈련은 기본적으로 다니던 고등학교에 출석하면서, 학교 안에서 일하는 것(school-based work experience)과 지역사회에서 일하는 것(community-based work experience)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참고로 전에 살았던 곳에서는 직업훈련이 ADAPT(Assisting Developing Adults with Productive Transitions)와 STRIVE (Supported Training and Rehabilitative Instruction In Vocational Education) 프로그램으로 나뉘어 있다. ADPAT는 다니던 고등학교에 계속 머무르면서 학교와 지역사회를 경험하는 프로그램이다. STRIVE는 교육 시간 내내 일터로 직접 나가서 직업 훈련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이것 역시 공교육 과정에 들어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4 년을 마친 후 이 두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주마다 다르고, 같은 주라도 카운티마다 조금씩 다르다. 사실 강산이를 통해 미국의 특수교육을 아주 조금 경험했을 뿐 새로운 현실에 맞닥뜨리면 여전히 어리바리 하다.
강산이네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직업훈련은 학교 소식지 발송을…

IEP (1)

이미지



IEP는 Individualized Education Program 혹은 Individual Education Plan(개별교육프로그램)의 준말이다. 나의 첫째 아들 강산이 같이 장애가 있는 학생(student with special needs-장애인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로는 the handicapped, the disabled, 그리고 special needs 따위가 있다. 그 가운데 special needs가 제일 맘에 든다)은 일 년에 한 번씩 IEP를 검토, 수정, 보완하기 위한 모임을 갖는다.
보통은 일 년을 주기로 IEP 모임을 갖지만 일 년이 되지 않았을 때에도 장애학생을 교육하는데 IEP 모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부모나 교사는 언제고 모임을 요청할 수 있다. IEP 모임 일정은 학교측에서 한 달 전, 그리고 적어도 5일 전, 이렇게 두 번 알려주도록 되어있다. 한 달 여유를 두고 모임 날짜를 알려주지만 사정이 생기면 날짜와 시간을 형편에 맞게 조정할 수도 있다.
이 회의에는 학생, 부모, 특수학급 교사, 일반학급 교사는 꼭 참석하고 IEP를 결정해야 하는 사항에 따라 학교 심리학자, 과도기 전문가(transition specialist), 상급학교 교사, 학교 사회복지사(school social worker) 등이 참석하기도 한다. 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부모는 통역사를 요청할 수도 있다. 그리고 부모 입장에서 교사들에게 내 아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학교 밖에서의 생활을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을 초청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교회학교 교사나 과외활동 지도교사 등이다. 이런 경우에 부모와 함께 동행하는 사람에 대하여 학교에 미리 알리는 것이 예의인 것 같다.
IEP 모임에 대해 알고 있는 일반적인 규칙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미국에서 아이를 어려서부터 키운 부모나 이민 생활이 오래된 부모들은 IEP에 대한 경험이 많을 터이니 여기에 덧붙일 것들이 더 있을 지도 모르겠다.
강산이는 현재 공립학교의 과도기 학급(transition cl…

아버님, 편안히 가세요

이미지
한국에 계신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는데 나와 아이들은 그냥 여기, 미국에 있다. 마음이 아주 불편하다. 이렇게 기분이 싱숭생숭하고 쓸쓸할 지 몰랐다.
올해 2월 간암 수술과 6월 뇌종양 수술을 받고 집에서 투병하시던 아버님께서 음식을 전혀 못 드시고 호흡이 아주 거칠어지는 등 건강 상태가 아주 많이 안 좋아지셨다. 가까이서 아버님을 돌보시는 어머님은 첫째 아들인 남편이 한국으로 빨리 와주길 바라셨고 남편도 서둘러 비행기편을 알아보고 고향집으로 날아갔다. 아버님의 병과 수술, 그 후 건강이 악화되는 과정을 함께 겪으신 어머님과 뇌종양 수술 후 병원에 머무르며 아버님 상태를 잘 알고 있던 남편은 아버님에게 닥칠 무엇인가를 감지하고 있던 것 같다.
아버님은 화요일 저녁 늦게 한국에 도착한 남편과 하룻밤을 보내셨다. 한국이 아침 식사 시간이 되었을 즈음에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둘째 아이 윤이와 나는 전화로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그 동안 할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하던 강산이는 할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얘기를 하면 자꾸 울어서 전화 통화하도록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그 동안 고마웠어. 할아버지가 있어서 좋았고, 할아버지가 곁에 없어도 우리 마음에 있을 거야. 하늘 나라에 가서 편안히 계셔. 할아버지, 사랑해.”
아무 대꾸도, 소리도 내지 못하시는 할아버지께 윤이는 차분하게 자신의 마음 전했다. 나는 말보다 울음이 앞서 제대로 말을 못했다. 그리고 나서 그날, 10월 16일 수요일 낮 1시 30분(한국 시간)에 편안히 숨을 거두셨다.
아버님은 성실하고, 약간의 유머가 있으시고, 곧은 소리 잘하시고, 볼멘소리 하시면서도 어머님을 잘 도와주시고, 손주들에게는 무뚝뚝한 분이셨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권장하던 시기에 마을 이장 하시면서 솔선수범해야 한다며 아들 둘만 낳고 그만두신 결단력 있는 분이다. 그리고 두 아들을 대학까지 보내기 위해 아주 열심히 농사 지으셨다…

빨랫줄

이미지
밤이 점점 길어지는 시기라 그런지 해 뜨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거기에 일광절약(daylight saving) 기간이라, 한 시간이 빠르므로 오전 9 시쯤 되어야 햇살이 밝게 펴진다. 가을의 곱고 보드라운 햇살은 한낮이 되면 화씨 80 도(섭씨 26.7 도) 정도의 좀더 진하고 강한 빛으로 바뀌는데 그래도 여전히 부드럽다. 다만 해가 지고 나면 기온이 뚝 떨어져 아침 저녁으로 서늘해지는 날씨에 감기 걸리지 않도록 잠 자리 이불을 따스한 것으로 바꾸고, 덮었던 것은 깨끗하게 빨아 햇빛에 뽀송뽀송 말리면 좋을 때다.
미국에 와서 사는 동안 운 좋게 뒷마당이 있는 집들에서 살고 있다. 지금 사는 집은 뒷마당이 넓어 잔디를 돌보아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지만 답답하지 않아 좋다. 이불 같은 큰 빨래를 할 때면 건물로 가려지지 않은 한적한 뒷마당 한 가운데에 빨래틀을 펴놓고 따사로운 햇빛과 솔솔 부는 바람에 말려보고 싶은 마음이 늘 든다. 그런데 여태 한 번도 그렇게 해 보질 못했다. 가만히 눈치를 보니 집 밖에 빨래를 너는 집이 없다. 송화 가루나 꽃가루가 너무 많이 날리는 시기에는 어쩔 수 없다 해도 그렇지 않은 때에도 다른 집 마당에 빨래가 널린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불 하나 빨 것이 생겼는데 세탁기에 넣어 돌려놓고 궁금한 것이 생기면 찾아가는 곳, 인터넷을 찾아가 빨랫줄 사용에 대해 물어보았다.
주로 2008 년을 이후로 나온 글들이 많았는데, 빨랫줄 사용 운동이 전개되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운동이 벌어지는 것은 빨랫줄금지법에 반대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재미있는 법이다. 이 법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빨래를 집 밖에 널어 놓으면 가난한 모습으로 보여 보기에 좋지 않다는 것과 빨래건조기를 만드는 가전제품회사나 건조기에 사용되는 전기를 공급하는 전력회사의 정치권과의 막후교섭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8년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빨래를 실외에 널지 말라는 요구를 무시하던 남성이 총에 맞아 죽기까지 했다는 것이다(연합뉴스 10.8.2010).
조금 다…